멈출 수 없는 사랑
Notes
Transcript
<서광고등부>
데살로니가전서 2:17-20
“멈출 수 없는 사랑”
2019. 12. 15
조 정 수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인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삼 주 동안 복음을 가르쳤는데, 그것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랐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그 믿고 따른 사람들이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초창기 멤버들이 된 거죠. 그런데 이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데살로니가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었어요. 이 유대인들은 바울이 예수님을 전하면서 자기 사람들을 전도하니까 바울을 시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 바울 쪽으로 넘어간 사람들의 숫자가 상당했거든요. 또 부자들도 많이 넘어갔거든요. 우리한테 헌금을 해야되는데, 바울한테 가서 헌금을 하니까 화가 나거든요.
더군다나 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어요. 예수님을 마치 사이비 교주처럼 여겼습니다. “이스라엘을 어지럽히다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가 무슨 구원자냐, 예수는 율법도 마음대로 어기고 이상한 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던 사이비다”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질투심과 또 사이비를 전하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더 이상 바울이 예수님를 전하는 것을 막아야겠다고 여기고, 소동을 일으킵니다. 사도행전 17장 5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일으킨 소동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ppt) 여기에 보면,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이때 당시에 바울과 바울의 동료들이 야손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유대인들이 불량배들을 데리고 야손의 집에 쳐들어온 거예요. 바울과 동료들을 잡으려고.
그런데 바울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아마 바울이 이때 마침 밖에 나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바울을 발견하지 못하니까 어떻게 했냐면, 야손을 잡아갔어요. 그리고 야손을 법정에 고발했어요. 바울이라는 놈이 예수를 임금이라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데, 이 야손이 바울을 받아들이고 집까지 제공을 하고 그 악행에 동조하고 있다. 이렇게 누명을 씌워서 고발을 한 거예요.
하지만 다행히 야손이 법정에서 보석금을 내고 풀려납니다. 일정한 돈을 내면 법정에서 풀려날 수 있었거든요. 다행히 야손이 어느 정도 잘 사는 집이라 그 돈을 낼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무사히 풀려나서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소식을 듣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기 때문에 죄 없는 야손이 그런 일을 당했다는게 너무 미안했어요. 그리고 자기가 계속 데살로니가에 머물러 있으면 야손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될 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데살로니가를 떠납니다. 아직 전하지 못한 말씀이 많고, 더 가르칠 것들이 많이 남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말씀만 전하려고 하면 유대인들이 불량배들을 데리고 쫓아오지, 어디 누구 집에 머물려고 하면 쳐들어오지. 이러니까 어떻게 계속 데살로니가에 있겠어요. 그래서 밤에 몰래 데살로니가를 떠납니다.
하지만 몸은 떠났어도 여전히 마음은 계속 데살로니가를 품고 있었어요. 데살로니가에서 떠나 베뢰아라는 지역으로 옮겨가고, 그런데 유대인들이 거기까지 쫓아와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베뢰아에서 다시 남쪽 아테네까지 도망을 쳐야 했어요. 이때 바울은 함께하던 동료들과 헤어지게 됩니다. 그 동료들 중에 디모데라고 하는 바울의 제자도 있었는데, 이 디모데만 다시 몰래 데살로니가로 돌려보냅니다. 왜냐하면 디모데는 유대인들에게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데살로니가로 돌려보내도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했거든요.
그래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내서 이제 막 복음을 믿고 성도가 되어 교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가르치며 안정시키게 했어요. 그리고 그 일을 무사히 잘 끝마친 후에 나중에 디모데와 바울은 다시 합류하게 됩니다.
디모데와 다시 만난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소식을 전해듣게 되었는데, 날마다 걱정하고 염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교회가 매우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다른 지역에까지 모범이 될 정도로 신앙을 매우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바울은 일전에 데살로니가에서 소동이 벌어져 급히 도망쳐야 했기 때문에 자기가 전도했던 사람들이 매우 걱정스러웠거든요. 혹시나 이 사람들이 다시 우상을 섬기고 있지는 않을까, 복음을 버리지는 않았을까. 이런 걱정 속에 있었는데, 그들이 복음을 잘 지키고 있다고 하니까 정말 큰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났어요. 그래서 바울은 그 기쁨 속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하여 편지 한 통을 써서 다시 디모데를 통해 보냅니다. 이 편지가 바로 데살로니가전서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애초에 바울은 편지를 보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데살로니가로 가려고 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나 바울은 한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내가 너희들에게 가려고 노력을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막았기 때문에. 이 사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데살로니가에서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끌어내기 위해 소동을 일으켰던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뿐 아니라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사람을 다 가리키는 것일 거예요.
유대인만이 아니라 헬라인, 로마인, 온갖 사람들이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방해했거든요. 그런 많은 방해를 뚫고 데살로니가 교회로 다시 돌아가기는 불가능했습니다. 바울은 얼굴이 너무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데살로니가로 돌아가면 금방 들통나서 다시 도망쳐야만 했을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편지만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17절에 보면 바울이 이렇게 편지에 썼어요.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바울은 비록 몸은 떨어져 있더라도 마음은 여전히 너희와 함께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가 비록 너희를 잠시 떠나 있지만, 마음은 떠나지 않았다. 먼 곳에 떨어져 얼굴은 보지 못하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은 너희와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떨어져 있는 얼굴을 다시 보기 위하여 계속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바울이 자신의 진심을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마음이 변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죠.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열정적으로 원하고 구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그분을 믿고 그분의 뜻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사랑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을 때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분이 보지 못하는 때에 더욱 믿음과 사랑이 커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옆사람에게 한번 인사해볼까요. “사랑합니다.” 이번에는 눈을 감고. “사랑합니다.” 여러분의 눈에 보이든지 보이지 않든지, 항상 여러분의 입술로 사랑한다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좋은 거예요. 여러분도 다 사랑 해봤잖아요. 그렇죠? 사랑. 네, 상처가 될 것 같으니까 더 말 안 할게요.
어쨌든, 바울은 사랑하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 계속 사랑을 쏟고 있었고, 언제라도 돌아갈 수만 있으면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어요. 걱정과 염려로 잠 못 이루는 때도 많았고, 날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어요. 하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세력들로 인해서 멀리서 편지만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편지에 내가 너희에게 가려고 노력하고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어요.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 때문에 가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는 거죠. 어떻게든 직접 가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은데 가지 못하는 상황을 말 그대로 해명하고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회에 믿음을 지키면서 잘 지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코빼기도 안 비치는 바울에게 서운함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무슨 딴 데로 도망치더니 쫄아서 오지도 않네.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복음을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와보지도 않냐.”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가려고 노력했으나 가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해명해야만 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해명을 해야만 했던 이유는 욕 먹기 싫어서도 아니고, 변명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생색을 내려고 했던 것도 아니에요. 바울은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해명한 겁니다. “아, 우리가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구나. 바울이 우리를 기억하고 우리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구나.” 이런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쓴 거예요. 요한복음 14장 18절에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바울은 내가 너희를 버리거나 잊어버린 것이 아니고, 너희에게 가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사랑한다면 속으로만 하지 말고 말로 하시기 바랍니다. 말을 해야 알지, 안 하면 몰라요. 뭔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으면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도록 잘 설명해 주고, 다퉜으면 먼저 가서 사과도 하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해주고. 그렇게 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옆사람과 인사합시다. “사랑합니다.” 우리 고등부 친구들 2020년에는 모쏠 탈출 기원합니다.
19절에 보면, 바울은 너희가 바로 우리의 소망이고 기쁨이고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너희가 바로 우리의 소망이고, 기쁨이고, 자랑의 면류관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고, 바로 너희가.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바로 우리의 소망인 줄로 믿습니다. 또한 우리의 기쁨이고 우리의 자랑의 면류관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소망이며 기쁨입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0절도 같은 말입니다.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아멘. 우리는 모두가 사랑 받는 존재입니다. 연인, 친구, 부모. 우리는 누군가에게 소망이고 기쁨이 되는 존재들입니다. 어쩌면 내가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연인도 없고 친구도 없고, 또 때로는 부모의 사랑도 못 받는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나에겐 아무 소망도 없고, 아무 기쁨도 없다고 실망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 모두가 날 버려도 예수님 한 분만은 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습니다. 고아 같이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목숨을 버리시면서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변치 않는 소망이고 기쁨이고 우리의 사랑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서로를 사랑하고 기쁨을 나눌 때,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먼저 마음에 품고 그 분을 우리의 소망이자 기쁨으로 삼아 예수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고, 또한 그 사랑을 우리의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에게 전하는 사랑하는 고등부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