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랜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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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고등부>
여호수아 4:19-24
“신앙의 랜드마크”
2019. 9. 29
조 정 수
지난 주에는 우리가 이스라엘의 원망과 그로 인해 불뱀 재앙이 내렸던 사건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오늘은 수많은 난관과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이스라엘이 마지막 관문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40여 년간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모세가 과거 하나님의 예언처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되었고, 이제 그 뒤를 이어서 여호수아가 백성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백성을 이끌어야 하는 사명의 바톤이 모세에서 여호수아에게 넘어간 것이죠. (ppt) 마찬가지로 백성들 역시도 이제 아버지 세대가 다 죽고, 다음세대만이 남았습니다. 부모에게서 자신들이 어떻게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셨는지 듣고 배우며 신앙을 전수받은 자녀들이 그 신앙의 바톤을 이어받고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ppt) 앞에 지도를 보면 가운데 요단강이 있고, 그 왼쪽에 길갈이 있습니다. (ppt) 이것이 요단강인데요. 백성들이 이 요단강을 건너서 길갈에 도착한 거예요.
오늘 본문에는 백성들이 어떻게 요단강을 건넜는지 그 내용은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그 방법을 살짝 살펴보면, 하나님이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먼저 요단강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어요.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들어가면 강물이 멈추고 강바닥이 드러나서 요단강을 건너갈 수 있다는 거였어요. 그 말씀대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강 속으로 들어갔더니, 강물이 멈추고 그 강바닥이 드러났는데, 그 땅이 젖어있지 않고 메말라 있어서 걸어가기에 조금도 힘들지 않은 그런 길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요단강을 건너갈 수 있었어요. 마지막 관문을 무사히 잘 통과한 것이죠.
그리고 강을 건너온 백성들은 요단강 근처에 있는 길갈이란 곳에 가서 캠프를 차렸습니다. 이 길갈은 앞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한 베이스캠프가 되는 중요한 지역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 20절을 보면, 바로 이곳 길갈에 여호수아가 열두 개의 돌을 세웁니다. 요단강을 건너고 나서 요단강에서 열두 개의 돌을 챙겨왔는데, 그것을 길갈에다가 세운 거예요. 과연 어떤 방식으로 돌을 세웠는지, 그 배치방법이라든지, 돌을 얼마나 컸는지, 그것은 지금 알 수가 없지만, 아마도 상당히 큰 돌이지 않았겠어요? 아마 사람만큼 크지 않았을까. 그런 돌 열두 개를 갖고 와서 한데 모아서 누가 봐도 “아, 이 돌들은 사람이 일부러 이렇게 세워놨구나” 싶은 모양으로 세워놨을 겁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가도록.
그런데. 이걸 뭐 할라고 세웠을까? 뭐 할라고 힘들게 여기까지 옮겨와서 돌을 세울까? 궁금하잖아요. 그런데 21절에 보니까 여호수아가 그 궁금증을 곧바로 해결해주려고 하죠. (ppt)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혹시 이 돌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손들이 궁금해 할 수 있거든요. 왜 여기다가 돌을 갖다 세워놨을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에다가, 가장 땅값이 높은 명당자리에다가 왜 쓰잘데기 없이 돌을 이렇게 갖다놨을까? 이렇게 궁금해 할 수 있어요.
그래서 22절에서부터 마지막 24절까지 자손들이 궁금해하는 이 열두 돌의 의미에 대해서 여호수아가 설명합니다. 우리 22절부터 24절까지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22절부터 시작,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아멘.
긴 말이지만, 결국에 핵심은 간단합니다.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고” 이 돌을 세운 것이라는 거예요.
그냥 단순히 돌이 예뻐서 가져다가 장식해 놓으려고 세운 게 아니죠. 땅을 지키는 부적이나 토템으로 쓰려고 세운 것도 아닙니다. 왜 세웠다고요? 이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강하심을 기억하게하기 위해서. 이것을 볼 때마다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 돌을 세웠다는 거예요.
마치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신앙의 랜드마크를 세운 것입니다. (ppt) 세상에 수많은 랜드마크들이 있죠.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 피사의 사탑 등등.. 이 랜드마크들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표식이에요. 이 랜드마크만 봐도 이게 어디에 세워져 있는지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에펠탑은 프랑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구세주 그리스도상은 브라질, 피사의 사탑은 이탈리아. 이렇게 랜드마크는 단지 그 건축물을 생각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세워진 지역에 대한 기억과 이미지까지 떠오르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랜드마크”예요.
그리고 길갈에 세워진 열두 개의 돌 역시도 랜드마크입니다. 단지 돌이 열두 개 모여 있네? 신기하네? 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세워진 땅을 기억나게 하고, 이것이 세워진 역사를 기억나게 하고, 결국에는 이것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억나게 하는 신앙의 랜드마크라는 것입니다.
24절에서 여호수아가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돌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강하심을 기억했고, 하나님을 경외하였을 겁니다. 혹시 돌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모가 가르치고, 친구가 가르치고, 이웃이 가르쳐서 앞으로도 계속 이 돌의 의미를 잊지 않고 잘 기억하도록 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앞으로 성경을 통해 보게 되겠지만, 이 신앙이 처음 얼마 동안은 잘 전해져 내려갔죠. 하지만 여호수아가 나이가 들어 죽고,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도 점차 흐려지고 결국에는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다 잊어버리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아요.
(ppt) 사사기 2장 8절부터 보면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었고, 또 10절에 보면 그 세대의 사람도 다 죽어요. 그랬더니 무슨 일이 일어나요?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신앙의 랜드마크, 열두 돌이 있음에도 이제는 백성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해요. 열두 돌의 의미를 가르쳐 줄 여호수아도 죽고, 부모 세대도 다 죽었거든요. 만약에 그들이 자손들에게 신앙을 제대로 잘 전수해주었다면, 그들이 죽어서도 자손들이 신앙을 잘 간직했겠죠. 그런데 그게 안 된 거예요.
가르침을 주는 것도, 가르침을 받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은 거죠.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이 열두 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모든 것이 허공 중에 사라져버렸어요.
과거에는 열두 돌을 보면서 하나님을 기억하였고, 하나님을 경외하였지만, 이제는 단지 장식품으로, 심지어는 장식품도 아닌 그저 흔한 돌무더기로만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신앙의 랜드마크에서, 랜드마크로, 그리고 끝내는 랜드마크 축에도 못 드는 하찮은 돌무더기로. 그렇게 그들의 마음속에서 열두 돌의 가치가 추락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그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추락한 것과 동일한 말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이러한 신앙의 추락을 경험하고 있어요. 신앙을 잃어버리고 있어요. 왜 교회에 나가야 하는지, 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 왜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잊어버리고 있어요.
열두 돌을 보면서 단지 하나의 구조물로 보는 것처럼, 교회를 구원 받은 성도의 모임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건물로 생각하고, 단지 일주일에 한 번 의무적으로 참석해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가는 그런 정류장과 같은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단지 땅 위에 세워진 건물이 아니에요. 바로 우리가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믿고, 그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여기 삼각동 땅에도 세워져 있고, 일곡동에도 세워져 있고, 광주, 부산, 서울. 중국, 일본, 미국, 유럽. 세계 곳곳에 세워져 있지만. 교회는 결국 어디에 세워져 있느냐면, 바로 여기. 내가 있는 곳에 세워져 있어요. 내가 곧 교회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고, 그 부르심을 따라 우리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선생님들도. 모두 교회예요. 여러분, 교회는 교회로서의 역할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부터 16절까지를 보면 예수님께서 소금과 빛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데, 소금은 소금의 짠 맛을 가지고 음식을 짜게 만드는 역할이 있고, 빛은 어둠을 밝히는 역할이 있다고 하시며, 바로 우리가 소금과 빛과 같은 교회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짠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소금이 아니고, 어둠을 밝히지 못하는 빛은 빛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에요.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마태복음 5장 16절의 말씀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역할인 줄로 믿습니다. (ppt) 우리 함께 마태복음 5장 16절을 읽겠습니다. 시작,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아멘.
예수님은 소금과 빛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너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세상 사람들이 너희를 보고 하나님을 기억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신앙의 랜드마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만 봐도, 우리들만 봐도 “아, 저 사람을 보니까 정말 교회는 좋은 곳인가 보구나.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뭔가 다르구나. 교회 다니는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구나.” 라는 생각을 떠올리게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교회의 이미지가 많이 추락해서 교회라는 말을 들으면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이 떠오르고 있고, 인터넷에 쳐보면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사고들이 좌르륵 뜨고 있어요.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버린 거죠. 더 이상 신앙의 랜드마크가 아닌, 단순한 건축물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