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와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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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고등부>
민수기 13:25-33
“메뚜기와 거인”
2019. 9. 15
조 정 수
오늘 말씀은 지난 주 신명기 말씀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과거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로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에 대해 보고하고 있는 사건인데요.
얼마 전에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광야를 걷고 걸어 가나안 땅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을 하게 됐습니다. (ppt) 앞에 화면을 보면 이스라엘 지도가 있는데요. 여기 밑에 빨간 점이 바로 가데스 바네아입니다. 민수기 13장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각 지파마다 한 사람씩을 정해서 총 열두 명의 정탐꾼을 정해 가나안 땅으로 정탐을 보내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명령대로 12명을 뽑아 (ppt) 가나안 땅으로 보냈습니다. 바로 이 윗 지방이 가나안 땅이에요.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에서 40일 동안 이곳 저곳을 구석구석을 정탐하고 (ppt) 돌아왔습니다. 돌아올 때는 가나안 땅에서 나는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를 베어서 돌아왔어요. 그런데 23절을 보면, (ppt) 포도송이가 어찌나 큰지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서 어깨에 멨다고 그래요. (ppt) 아마도 이런 모습이었겠죠. 포도송이 가지를 막대기에 꿰어서 두 사람이 어깨에 메고 있는 모습.
그런데 이게 전혀 과장된 게 아니에요. 실제로 이스라엘에 가면 이렇게 큰 포도품종이 있거든요. (ppt) 자, 이게 실제로 이스라엘에서 생산되는 포도예요. 이게 현대에 와서 유전자 개량으로 만들어낸 건지, 아니면 옛날부터 있었던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런 거대한 포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거죠. 만약에 정탐꾼들이 가져온 포도가 이만한 크기였다면, 백성들이 느꼈을 충격이 얼마나 컸겠어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안 나는 광야에서 헤메다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이런 거대한 과일을 본다면 누구라도 놀라 자빠지겠죠. 굳이 그 땅에 안 가보더라도, “이야.. 진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맞구나.” 하고 감탄할 만한 크기 아닙니까?
정탐꾼들도 정탐을 하다가 이런 포도를 보고 얼마나 놀랐겠어요. 그래서 27절에 보면, 열두 정탐꾼이 한 목소리로 말을 해요. (ppt)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열두 정탐꾼이 모두 인정했어요. 그 땅은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엄청난 땅이다. 이 포도를 봐라. 이런 게 지천으로 널렸다. 열리는 열매마다 크고 먹음직스러운 열매만 열리는 정말로 기름진 땅이다.
이렇게 이구동성으로 정탐꾼들이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28절을 보면 이때부터 정탐꾼들의 의견이 둘로 갈라집니다. 28절을 볼까요? (ppt)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7절에서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찬양하더니 28절에서 “그러나” 라는 말로 말을 반전시켜버립니다. 그 땅이 좋은 땅인 건 맞지만, “그러나” 그 땅이 좋은 땅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클려면 과일이나 곡식만 크면 되는데, 뭣도 크다는 거예요? 사람도 커. 또 성읍도 커. 포도만 큰 게 아니고 그냥 모든 게 다 커. 정탐꾼들은 이 덩치 큰 사람들을 일컬어서 “아낙 자손”이라고 불렀어요.
“아낙”이라는 이름은 민수기 13장 22절에서 성경에 처음 등장을 하는데, (ppt) “가나안 땅 헤브론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아낙”은 그 뜻이 “목이 길다” 이런 뜻이거든요. 아마도 목이 특징적으로 길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목만 긴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키가 큰 족속이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중에 유독 목이 긴 게 눈에 들어와서 목이 긴 사람이라고 이름을 붙였겠죠.
어쨌거나 이 아낙 자손은 가나안 땅에 사는 매우 키가 큰 족속이었습니다. 정탐꾼들은 이 아낙 자손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고 심지어는 공포에 질리고 맙니다. 그래서 31절에서 이들 중에 열 명의 정탐꾼이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합니다.
(ppt)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32절도 보면, (ppt)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합니다. 뭐라고 악평하냐면, 그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다고 악평을 해요. 거주민을 삼킨다는 것은 그 땅에 전쟁이 자주 일어나서 수시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들 역시도 계속해서 전쟁에 휘말리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어요. “거기는 전쟁이 수도 없이 일어나서 거주민들이 끊임없이 죽는 땅이야. 우리가 그런 땅에 들어가게 되는 거라고!” 이렇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백성들이 싸워야 하는 적들이 어떤 사람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신장이 장대한 자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거인들과 싸워야 된다는 거예요.
(ppt) 밑에 33절을 보면 그들을 가리켜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이라고 덧붙이고 있어요. “네피림”은 (ppt) 창세기 6장 4절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그들을 용사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용사”는 “힘이 센” “강력한” 이런 뜻이 있어요. 네피림이 특별히 힘이 센 자들이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아마 그 힘만큼이나 덩치도 컸을 겁니다. 네피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성경에서 더 찾아볼 수 없지만, 오늘 본문에서 정탐꾼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네피림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매우 덩치가 크고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정탐꾼들이 보고 온 가나안 땅의 거주민들은 진짜 네피림은 아니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네피림은 노아 홍수 때 다 죽었거든요. 노아의 가족 빼고는 온 인류가 다 죽었잖아요. 하지만 네피림에 대한 전설은 계속 전해져 내려온 거죠. 인류가 다시 번성하면서 네피림에 대한 이야기들도 전해져 내려오고, 특출나게 덩치가 큰 사람이 태어나면 네피림 같다, 이런 말을 하면서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나중에는 네피림이 덩치 크고 무서운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처럼 쓰이게 됐을 겁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지금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의 거주민들에게 갖다 붙이고 있는 거예요. 저들은 네피림이다! 덩치 크고, 힘 세고, 적수가 없는 네피림. 바로 그 네피림의 후손들이야! 이렇게 자기들 멋대로 네피림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고 두려움을 조장하고 있어요.
물론 정탐꾼들이 일부러 네피림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가면서 두려움을 조장한 것은 아니에요. 그들은 순수하게 자기들이 느낀 것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이들의 눈에는 정말로 가나안 땅의 거주민들이 네피림처럼 보인 거죠. 네피림 같은 거인들로 보인 거예요.
그리고 그들을 보는 순간 정탐꾼들이 느낀 것은 저들과 너무도 비교되는 자신들의 초라함이었습니다. 저들은 거인처럼 크고 힘도 센데, 우리는 뭘까. 우리는 덩치도 작고, 평생 노예로 살아서 싸움도 할 줄 모르는데. 우리가 저 거인들과 상대가 될까?
싸워보기도 전에 벌써 진 것 같은 이런 패배의식을 느낀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나의 한계를 정해버리고, 내가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버려요.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를 뭐라고 불러요? “메뚜기” (ppt)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 “우리는 메뚜기야” “우리가 봐도 그런데, 저 덩치 큰 거인들이 볼 때는 우리가 얼마나 쪼그맣게 보이겠어?”
이렇게 자기들 스스로 메뚜기라 하면서 패배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어요. 물론 이들은 자기들이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솔직하게 말한 것뿐이죠. 일부러 백성들을 놀래키려고 한 게 아니라 정말로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전혀 이길 가망이 없어 보인 거예요. (ppt) 31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겁니다. 조금의 거짓도 들어 있지 않은 순수한 그들의 판단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보고가 제대로 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들의 보고가 정말 제대로 된 보고였다면, 왜 갈렙은 그들과 전혀 다른 보고를 했을까요? 30절을 봐 볼까요? (ppt)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갈렙은 10명의 정탐꾼과는 전혀 다른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 아주 단호하게 승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다른 정탐꾼들과 같이 네피림과 같은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을 텐데도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어요.
어째서 갈렙은 이렇게 완전히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왜 똑같은 것을 보고도 이렇게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걸까요?
그것은, 그들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서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두루 돌아다니며 열심히 명령을 수행했지만, 그들은 정탐하면 정탐할수록 자신감이 떨어지고 두려움만 커져 갔습니다. 왜냐하면 어디를 둘러봐도 자기들이 이길 만한 껀덕지가 안 보였거든요. 덩치도 크고, 가진 무기도 화려하고, 성벽도 크고 견고해서 도저히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 안 나오는 거예요. 아마 자기들 나름대로 시뮬레이션을 해봤겠죠. 여기서 이렇게 쳐들어가서 이렇게 싸우고, 언제 기습을 하고, 이렇게 저렇게, 나름대로 전략을 짜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안 되는 거예요. 도저히 가능성이 없어. 전략, 무기, 보급, 자기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동원해도 안 돼요.
그런데 갈렙은 1퍼센트의 가능성도 없는 상황에서 밑도 끝도 없이 이긴다고 믿었습니다. 전략도 안 되고, 전술도 안 되고, 무기도 없고, 먹을 식량도 없는데도, 갈렙은 이길 수 있다고 믿었어요.
왜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갈렙이 바보가 아닌데, 전쟁을 하면 불리하다는 걸 몰랐겠어요? 덩치에서부터 차이가 나버리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불리함을 뒤집고 이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거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가 저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갈렙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면서 조금의 걱정도 없이 정탐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었고, 이 땅에 이제 곧 우리가 들어와서 살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부풀어서 얼른 40일이 지나 백성들에게 돌아가기를 고대했을 거예요.
그래서 마침내 백성들 앞에 돌아왔을 때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우리가 능히 이기리라!”
갈렙의 이 외침은 전쟁에 대한 걱정이 조금도 담겨 있지 않은 확신에 찬 외침이었습니다.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외친 것도 아니고,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외친 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자기가 믿은 그대로를 외친 것입니다.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믿음을 외친 거예요.
그리고 그 믿음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온 것입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그깟 거인들이 뭐라고. 우리가 비록 저 거인들에 비하면 메뚜기와 같은 작은 사람들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저 거인들도 개미새끼에 불과해. 하나님이 입김만 후 불면 날아가 버릴 하찮은 것들이야.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직접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잖아.
갈렙은 이러한 담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이 시조처럼, 아무리 덩치 큰 거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은 피조물일 뿐이에요. 어떤 산보다 높고 강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저깟 거인들을 두려워해서야 되겠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믿음이 백성들에게는 없었어요. 민수기 14장으로 넘어가면 백성들이 열 명의 부정적인 보고에 휩쓸려서 밤새도록 통곡하며 원망합니다. 왜 우리가 여기까지 고생고생하면서 와서 거인들 칼에 죽게 만드냐. 차라리 애굽에 있었으면 노예로 살더라도 이런 생고생은 안 해도 됐을 텐데. 거인들 손에 죽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이러면서 차라리 우리가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들고 일어나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막나가지는 않았겠죠. 그런데 조금도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를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을 조금도 믿지 않은 거예요.
분명히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상황에 있었지만, 이처럼 그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분명하죠. 우리는 갈렙처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보는 대로 판단하고, 그 판단대로 살아가기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을 믿고, 그 믿음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넘어서기 힘든 일, 해결하기 버거운 일, 도저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일. 그 모든 일들 앞에서 좌절하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에 반드시 내가 그 일을 해결하고 성취하리라는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