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대로가 있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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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대로가 있는자

시편 84편 5-8
사람은 누구나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이 길에서 지치고 넘어지고, 어떤 이는 방향을 잃고 헤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 인생길 가운데 “시온의 대로”, 곧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방향과 중심을 가진 자는 복되다고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시온의 대로가 마음에 있는 자의 복된 삶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
시편 84편 5-8절
본문 말씀에는 ‘고라 자손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있습니다. 고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던 중에 지휘관 250명과 함께 모세를 거슬렀던 사람이었습니다(민 16:2).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반역에 매우 진노하셨고, 그로 인해 고라와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갈라진 땅 속으로 떨어지는 전대미문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민 16:31-32).
고라의 자손들이 모두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라의 자손들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던 가족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채로 부끄러운 이름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윗이 왕국을 세울 때에 공을 인정받아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을 수종들거나, 성막과 성전을 관리하는 등의 섬김을 맡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고라 자손의 시는 성전, 성전에서 만나는 하나님 그리고 성전에서 언약을 이루시는 여호와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1. 눈물 골짜기로 지나며
수천 년 전과 비교하면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였고 온갖 풍요로움을 누리는 시대가 되었지만, 인생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신앙의 본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쓰였는지는 정확히 가늠할 수 없는 본문의 시도 오늘 우리의 마음에 그대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시인은 지금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를 회고 하고 있습니다. 멀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고, 가깝게는 우리의 인생살이를 뜻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늘 속으며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살아온 날들을 모두 계산해도 기쁘고 가슴 벅차는 환희의 순간들은 극히 적었고, 보다 많은 날들이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다’ 라는 희망을 가지고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그 길을 시인은 ‘눈물의 골짜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지고 있는 인생의 무게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대신 짊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살이는 버거울 때가 많습니다. 바로 앞에 선 야곱도 다음과 같이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
이러한 현실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눈물 골짜기와 같은 인생길을 걸을 때에 위로를 받지 않고는 인생을 올바로 영위해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위로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위로’가 아니라 보다 완전한 위로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로 부터 온 위로’입니다.
2. 하나님의 위로
시인은 눈물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강수량이 매우 적은 지역입니다. 그래서 파종을 위해 내려야 할 이른 비와, 곡식을 여물게 하여 수확하는 데 필요한 늦은 비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 두 번의 비가 제때 내려야 그나마 흉년이 들지 않았습니다.
샘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물이 흔치 않았기에 아주 깊이 우물을 파야만 했는데, 그나마 우물을 파도 식수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가뭄이 들어도 마를 염려가 없고 단물을 내는 샘은 생명을 위한 귀중한 자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어찌 낙심과 고통이 없겠으며, 힘들지 않은 때가 있겠으며, 심지어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싶지 않을 때가 왜 없겠습니까? 그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요동치고 불안과 고통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우리 마음속에 끊임없이 기쁨과 행복 그리고 위로가 솟아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원천입니다. 만약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음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질 수 없다면, 아마 우리도 스스로를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눈물 골짜기’와 같은 혹독한 시련의 인생길에서 시인은 샘이 터지는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목마를 때 한 모금의 물은 생명과 같습니다.
곤고하고 고통스러운 인생길을 걸을 때 주님과의 한 번의 만남은 마치 죽어가는 전쟁터에서 마시는 한 모금의 물과 같습니다. 그 자체가 죽었던 자를 살리는 생명이 됩니다.
시인은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의 광야를 지났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수시로 많은 샘들을 터트림으로 그의 영혼을 두루 적셔 주셨기 때문에 그 고난의 길을 이기며 걸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찬송가 446장)
고난을 견디고 시련을 참는 인간의 능력은 작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절망에 빠지더라도 마음에 위로가 될 만한 일이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낙관적인 마음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한 고난과 시련 앞에서 힘없이 쓰러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그만큼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여전히 죄와 불순종 가운데 있는 자녀들에게, 마치 근거 없어 보이는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쓰러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고, 엎드러져 우는 자를 다시 붙들어 주셔서 눈물을 닦아 주심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낙심과 절망, 좌절과 비참으로 데려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망과 위로를 주심으로써 우리가 당한 이 인생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3. 시온의 대로가 있습니까?
길을 지나다 보면 가게 간판이 자주 바뀌는 것을 보면 걱정 아닌 걱정을 할 때가 있습니다. ‘주인이 돈을 꾸어서 힘들게 가게를 얻고, 없는 돈에 인테리어를 하고, 간판을 내걸고 손님이 오기를 고대했을 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정말로 그 주인은 인생이 뒤집힐 것 같은 걱정으로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그에게 가슴 아픈 사연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누가 시인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위로와 은혜 또한 많은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시온의 대로입니다. 앞뒤의 문맥과 다른 성경구절을 비교해 볼 때, 이 대로는 시온으로 나있는 대로입니다.
고대 근동에는 왕이 다니는 길이 있었습니다. 왕만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왕은 샛길이나 골목이 아닌 대로로 다닙니다.
왕이 어느 지역을 돌아본다고 하면 대로를 닦습니다. 높은 곳은 낮추고, 낮은 곳은 돋우어서 평평한 길을 만듭니다. 이어서 외치는 자가 “모월 모시에 왕이 행차하신다!”라고 알리면 사람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기다립니다. 그리고 왕이 지나갈 때에 모든 백성들은 부복하며 환영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대로가 시온으로 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행차하시는 그 길이 한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이 눈물 골짜기와 메마른 땅을 지날 때에 샘물이 터져서 큰 위로와 환희, 격려와 기쁨을 경험하게 된 것도, 메마른 땅에 이른 비가 내려 곡식을 파종할 수 있게 된 것도, 결국 행차하시는 왕의 은덕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을 돌아보십시오. 세상에서 형통한 것 같았으나 정말 곤고할 때도 있었고, 세상에서는 고난을 많이 받는 것 같았으나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괴로운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그 힘든 시련과 고난의 계곡을 어떻게 통과했을까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시련과 고통이 좋은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만 만나는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들은 고난과 시련의 계곡을 지날 때마다 수시로 하나님께 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고통스러운 인생의 골짜기를 지나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큰 은혜와 사랑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로와 사랑이 한없이 크고 넓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시온의 대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대로를 통하여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힘입니다. 절망은 이 힘이 모두 끝났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완전히 끊어진 것입니다.
마음에 새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대로가 있는 시인의 마음속에서 그를 수시로 만나주셨습니다. 형통할 때뿐만 아니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는 고통스러운 인생의 시련의 때에 오히려 많은 샘을 터뜨려 시인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기회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기 만나는 시련과 고통은 그것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의 시온의 대로를 잃어버리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입니다.
4. 하나님과 동행하라
하나님께서는 마치 악기를 연주하시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십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악기에서는 아무런 가락도 울려 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연주자가 능숙하게 손을 움직여 현을 뜯을 때 아름다운 가락들이 울려 퍼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평안할 때에는 마음속에 아무런 찬양이 없다가도, 하나님이 시련으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할 때에 오히려 우리의 마음에서 온 영혼의 감각들이 깨어나고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메아리치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변화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시련과 고통의 골짜기를 걷는 자녀에게 주시는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큰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절망스러운 환경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 깨달으셨습니까? 시련의 골짜기와 고통의 계곡에서 깨닫지 않았습니까?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핍할 때에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섬세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하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외로울 때에야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친구요,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다 나를 버려도 예수 그리스도만이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않으셨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눈물 골짜기를 지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마음속에 터지는 은혜의 샘이 말라 버린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길을 꿈꾸고 그 속에서 곤고하고 시련을 만났던 삶을 깊이 회개하고, 주님과 함께 우리의 인생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시온의 대로 없이도 나 자신의 재주와 능력으로 성공할 수 있고, 내 인생의 눈물의 골짜기 같은 것은 없다고 믿었던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주님과 동행하며 새 힘을 얻었던 이 시인처럼 우리도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다시 수축하여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왕으로 오시는 이 마음의 대로를 내기 위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 대로를 만들어 주는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라는 외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나라를 다스리시는 임금,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이 임박하였다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 깊이 하나님 없이 홀로 우리의 인생을 잘 살아 보려고 했던 독립적이고 비의존적인 마음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많이 사랑하시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날 우리의 인생이 눈물 골짜기에서도 위로가 없었고, 메마른 땅을 지나가면서도 쓴 물을 머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실패했던 날들을 거울삼아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써 인생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우리의 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열어주시고, 주님을 향한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걷게 하소서. 고난 가운데서도 샘을 경험하게 하시고, 날마다 더 큰 힘으로 하나님 앞에 이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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