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ss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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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23–24 NKRV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워십나이트 / 4번째 / 더디사이플 / 이번에는 청년들이 주도 / 청소년부와 함께 함이 감사 / 외부에서도 왔는데 환영 / 앞으로 더 기대가 된다
“우리는 교회입니다” / 예배로 하나되어 모일 수 있어 감사하다.
오늘 저는 예배의 본질을 대해 잠깐 나누겠습니다.
첫번째는 예배는 무엇인가, 예배의 정의입니다.
예배에 대한 정의가 수없이 많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어원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 예배라는 단어가 쓰일 때의 자주 쓰이는 헬라어 단어는 “프로스퀴네오”입니다.
이 단어는 한마디로 윗사람 앞에 엎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념적이라기보다는 생생한 동사라는 것이 흥미롭죠.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 제가 교역자 실에서 일할 때 아무래도 편하니깐, 다리를 꼬고 일할 때도 있고, 다리를 흔들면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다리까지는 안올리더라도) 편한 자세로 일을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담임목사님이 들어오시면 어떻게 됩니까?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용수철처럼 바로 꽂꽂히 일어나겠죠. 이것이 “프로스퀴네오”입니다. 자신보다 윗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사람 앞에서 합당한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는 어떤 개념과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생생한 반응입니다.
만약에 이곳에 오늘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라는 것을 믿지만, 
모두가 인식할 정도로 이곳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신다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가만히 있을 수 없겠죠. 모두 자리에 일어나거나, 그 앞에 엎드리거나 할겁니다. / “프로스퀴네오”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나보다 우월하고, 뛰어나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내가 서 있다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 존재 앞에 합당한 자세를 취하는 것, 이것이 예배입니다.
시편을 보게 되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할 때
왜 서서 손을 들고, 엎드리고, 소리를 높여,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찬양하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십니까?
이 자세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합당한 자세인 것입니다, 이것이 경배이고, 찬양, “프로스퀴네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배 때, ‘일어서서 찬양하십시오. 손을 들고 찬양하십시오.’
(손을 든다는 것은 압도적인 존재 앞에 항복한다라는 의미입니다) 라고 찬양인도자가 말하는 이유가, 예배 분위기를 좋게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의 주인 이신 하나님 앞에서의 합당한 자세를 취하라는 것이죠.
혜성교회의 장점은 무엇이냐면
회중들이 앞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들의 말을 너무나 잘 듣습니다. / 그래서, 질서가 있죠.
근데 딱 거기까지입니다. / 일어나라고 얘기해야 일어나고, 박수를 쳐라고 해야지, 박수를 치죠. / 그 이상으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나라 문화가 남 눈치보는 문화잖아요. / 예배를 드릴 때도 나를 어떻게 볼지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쓰죠. / 절대 튈려고 하지 않습니다.
근데, 성경에 튀는 한 인물이 나오죠.
사무엘하를 보게 되면 다윗이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 춤을 춥니다. /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
제가 춤을 잘출까요 못출까요 / 완전 막대기입니다. / 근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가 춤을 출 때가 있었는데요. / 첫 아들을 낳고, 집에 와서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너무나 기뻐서 저도 모르고 춤을 추고 있더라고요.
여러분, 다윗의 춤은 연습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춤이 아니었습니다. / 군무가 아니었어요. / 워십팀처럼 하는 그런 춤이 아니었음 / 하나님에 은혜에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이 되서 추어지는 춤이었습니다. / 이는 하나님 앞에서의 마땅한 살아있는 반응이죠.
근데,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보고 업신여깁니다. / 김미갈 씨라고 한국인 같아요 / “어떻게 이스라엘의 왕이 체통없이 방탕한 자와 같이 경박하게 춤을 출 수 있습니까?” /
우리 주위에도 김미갈 씨가 있는 것 같습니다. / 하나님 앞에 반응할 때 한계를 짓게 하는 / 그게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 안에 있는 자아가 될 수고 있죠 / 마음이 너무나 감격이 되서 손을 들고 더 반응하고 싶은데, 내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 여러분 안에 있는 김미갈 씨의 음성입니다. / 그게 어떤 문화가 될 수고 있고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취해야 할 반응을 막는 거죠. / 더 이상 못하게끔 하는 겁니다. / 하지만 다윗이 미갈 앞에 이렇게 얘기하죠.
사무엘하 6:21–22 NKRV
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저는 다윗의 이 고백이 예배의 교과서라고 생각합니다. /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기를 기뻐했던 다윗이 한 말을 보십시오. / “나는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의 반응이다 / 내가 낮아지게 보이고, 천하게 보이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 나는 하나님 앞에서 뛰놀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미갈이 규정짓고 있는 한계가 있는거 같아요 / 그 이상으로 하지 않으려는 것이죠 /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분의 위대하심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배의 본질은 어떤 질서와 형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전인격적으로 하는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이 각자의 예배의 현장으로 돌아가 그 한계를 깨트리는 다윗과 같은 예배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무조건 춤을 춰야 한다는게 아닙니다 / 누군가에게는 평소때와 달리 앞자리에 앉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맨날 예배에 늦게 왔는데, 10분 이전에 와서 기도를 준비하는 될 수 있습니다. / 여러분 안에 굳어져 있는 반응의 한계치를 깨트리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표현하는 하나의 단어는 워십인데요. 영어로 예배라는 뜻이죠.
이 단어는 옛 영어 단어인 가치를 뜻하는 “Worth”와 신분을 뜻하는 “ship”의 합성어인데, “존경과 존귀를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뜻이죠. “프로스퀴네오”와 맥락이 비슷합니다. / 최상의 가치가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며, 그에 합당한 존경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가장 가치 있는 것에 합당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예배라면,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것이 예배입니다. / 아니 사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예배하죠.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집안에 오래된 반지가 있었는데, 오래된 물건이라 아무도 쓰지 않아서 나중에 당근에 팔아야지라고 생각하고, 서랍에 아무렇게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보석상인 친구가 집에 놀러와서 우연히 이 반지를 보게 되었는데. 17세기에 살았던 어느 장인의 작품으로 고고학적으로 엄청난 가치가 있는 반지임을 알게 됩니다. / 감정가가 좀 과장해서 100억이나 되는 반지였던 겁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선 반지를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질 겁니다.
그리고, 반지를 보면서 ‘와 이게 백억의 가치가 있는 반지구나’ 감탄을 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반지의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할 것이고, 여러분 마음은 온통 반지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뿐만이 아니죠.
이 반지로 인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까?’ 삶에 대한 가치와 의미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깐 어떻게 되겠습니까? 행동도 변하겠죠. / 우선은 반지를 아무렇게나 서랍에 두지 않겠죠. / 튼튼한 상자나 좋은 금고를 사서 그 안에 보관할 겁니다. / 반지의 가치에 합당한 대우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반지의 가치를 더 올리기 위해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전문가들을 불러서 수리하고 손질을 해야 되는데, 견적이 몇백, 몇천이 나온 겁니다. / 여러분 하시겠습니까? / 100억 이상의 가치가 있는데, 더 들더라도 투자해야죠.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 반지의 가치를 발견함으로 완전히 변화된겁니다.
이 전에 여러분은 이 반지의 가치를 몰랐습니다. / 그러다보니 반지에 대한 올바른 태도도 갖지 못했고, 이로 인해 얼마나 내 삶이 변화가 될지 몰랐죠.
그런데, 보석상인 친구가 여러분을 일종의 예배로 인도한 겁니다. /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과 기쁨을 알게 되었고, 가치를 깨닫게 해 준겁니다.
그로 인해 여러분의 태도도 변했고, 어디에다 내 인생을 투자할지에 대한 행동도 변화된 겁니다.
여러분, 눈치채셨죠?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가치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시간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여러분이 있지만, 실제로 무엇이 여러분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까? /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무엇을 위해 인생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여러분이 가장 걱정하고, 마음을 쓰고, 투자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배의 대상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 따라서, 무엇을 예배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하죠. / 예배의 대상의 따라 여러분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은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예배한다고 말합니다. / 여러분은 무엇을 예배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라면, / 하나님에게서 최고의 가치를 발견한다면, / 여러분의 삶이 어떻게 변화가 될지 생각해 보셨나요?
더 이상 하나님을 내 삶의 구석, 서랍 안에 아무렇게나 두지 않겠죠. / 내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곳에 그분을 모실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인생을 투자하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반주]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를 보십시오.
이사야 6:1 NKRV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사야 선지자는 어느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보게 되는데요. / 이사야가 이날 처음 예배를 드린게 아닙니다. / 평소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이날 예배를 통해 마침내 그 가치를 보고, 깨달은 것입니다.
그 순간 이사야의 첫 반응이죠.
이사야 6:5 NKRV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하나님의 무한한 가치 앞에 자신의 무가치함을 발견한 이사야는 “프로스퀴네오” / 그 앞에 완전히 낮아져서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부정하며 회개합니다. 그리고, 8절입니다.
이사야 6:8 NKRV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자, 보세요. / 하나님께서 “나의 말을 듣지 않는 백성에게 나의 말을 전할 사람이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이사야가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 저는 지금껏 당신의 위해 내 삶을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는 당신에게서 위대함과 최상의 가치를 보았습니다. 내 삶을 드려도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주세요”
워십이죠. 
최상의 가치가 하나님께 있음을 발견한 이사야는 그 일을 위해 자신을 헌신합니다.
우리는 헌신 그러면, “나를 보내소서”
막,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가기 싫은데, 가라고 하니깐, 내가 엄청 희생해서 가는 것이 헌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 이런 헌신은 자기 의로 빠지기 쉽습니다. / 자기가 대단한 희생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헌신은요. 오히려 기쁨으로 하는 것이고, 그 마저도 하나님께 예배로 올려드려지는게 헌신입니다. / 내 인생의 보물이 하나님께 있음을 발견한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채 헌신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배 없는 헌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 이런 헌신은 하나님께 드려지기 보다, 내가 중심이 됩니다. / 내가 희생한다라고 생각하죠. / 오히려요. 하나님을 빚지게 만듭니다. / “하나님, 내가 다른 사람들도 안하는 이러한 헌신을 하는데, 나에게 이렇게 해주셔야죠”
그러다보니깐,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자꾸 내 뜻을 펼치려고 하고, 자꾸 내가 의로워지려고 하는 겁니다. / 이것은 엄밀히 말해 헌신이 아닙니다.
여러분, 진짜 헌신은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그 가치를 발견한 사람이 하는 겁니다. / 헌신은 예배의 기쁨 가운데 나오는거에요.
패션 공동체, 더디사이플 예배자 여러분,
예배 없는 헌신이 아니라 예배 중심의 헌신이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고, 행동과 삶을 변화시킵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최고의 프로스퀴네오, 최고의 반응, 최고의 워십은 바로 헌신입니다. 나의 삶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를 보내달라고 외치는 겁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가 자리에 일어나 손을 들고, 박수를 치고 엎드리고, 큰 소리로 외쳐 예배하는 것의 최종 목적은 바로 나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 삶의 예배자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주님을 나의 삶에 가장 귀한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는 예배자로 살아가겠습니다. 내 삶을 드리겠습니다.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기쁨으로 하나님께 삶을 내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께 먼저 우리를 위해 헌신하셨기 때문입니다.
두손을 높이 들린 그분의 손은 십자가에 못박힌 손이었고, 그분의 엎드림은 채찍에 맞아 쓰러진 엎드림이었으며, 목소리 높인 그분의 외침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탄식의 외침이었습니다. 찬양ㄴ
하나님 아들로서 받아야 할 마땅한 경배 대신 저주와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 희생과 그 사랑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고, 우리의 찬송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노래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두손을 들고, 소리 높여 찬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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