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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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리스도를 본받아
제목 : 그리스도를 본받아
본문 : 빌립보서 5:18
오늘은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빌립보서 중에서도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찬가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자주 인용하기도 하고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하곤 하는 아주 유명한 본문인데요.
그만큼이나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고 다양한 학견과 주장이 존재하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12절과 13절의 본문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는 대목은
구원론에 있어서도 매우 민감하게 다뤄지고 있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묵상하고 해석할 때에는 문맥과 흐름에 따라 읽어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2장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흐름은 공동체를 향한 바울의 메세지라는 점을 염두해둘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1-4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바울의 권면은 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
공동체 안에서 올바른 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이야기하는가 하면
또 사도는 일관되게 2장에서 너희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한다는 점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공동체 안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그리스도인다움을 구현해낼 수 있는지
일깨워주고 권면하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게 전하고자 하는 결론적인 메세지가 무엇일까요?
12절에 보면
빌립보서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5-11절까지의 내용은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찬양하는 내용이 쭉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은 그러므로 너희는,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이렇게 행하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나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어떤 일들을 행하셨는지를 설명하면서
언제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그러므로 너희는”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신데,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이렇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바울 서신에 보면 그러므로 라는 접속사가 상당히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무엇인가 하면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에 합당한 실천과 생활을 요구한다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빌립보서가 더욱 그렇습니다.
빌립보서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즉, 복음의 능력은 문자 안에 갇혀있는 이론이나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가운데 살아있는 실제가 되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마다, 말씀을 읽거나 아니면 설교를 들을 때마다
“아 그렇구나” “오늘도 좋은 말씀을 들었다”로 끝날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러므로 나는”이라는 적용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앞에 있는 설교자가 어떻게 어떻게 사십시오 라고 적용까지 알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습니다. 적용을 열어놓고 오직 말씀만을 전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의 적용은 개인이 성령님께 직접 받아야만 합니다.
아무리 설교자가 구체적인 적용까지 제시해주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각자의 삶이 어떠한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형편과 필요를 아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말씀을 받고 나서 성령님께 나아가 각자의 삶에 성령님이 주시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있길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는 대목에서 종종 잘못해석하는 경우들이 발생합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너의 구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니, 너희가 떨어지지 않으려면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
구원을 잃어버리기 싫으면 좋은말로 할 때 순종해라라는
어떤 위협과 공포를 조장하는식으로 해석할 때가 잇는 것입니다ㅏ.
하지만 복음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구원은 시작도, 과정도, 끝도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지금 “구원을 이루라”고 말할 때,
그는 구원의 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결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마치 씨앗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심어주셨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심었다는 말은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이제 그 씨앗이 우리의 삶에서 자라나고, 열매 맺고,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라고 표현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경외감 때문입니다.
내가 행한 모든 말과 행동, 마음의 중심까지도 그분 앞에 드러나게 될 날,
그 날을 생각하며 우리는 진지하게,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여기서 “두려움”은 심판받을 두려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사랑하는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자녀의 마음과 같습니다.
그래서 “떨림”은 멀어질까 두려운, 주님의 은혜 앞에서의 깊은 감격과 책임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구원을 잃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그 크신 구원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사는 이유는 구원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날에 주님 앞에 내 삶을 드릴 때,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부끄러움 없이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복음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바로 ‘구원을 이루는 삶’입니다.
이미 주어진 구원을, 이제 삶으로 증명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