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2:13-25 어리석은 야욕이 부른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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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2:13-25 어리석은 야욕이 부른 죽음
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시다(13-15)
이제 솔로몬은 왕좌에 올랐다(12절). 솔로몬은 다윗보다 훨씬 용이하게 그리고 평온하게 즉위했고, 그의 정권은 훨씬 신속히 확립되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한 사람의 선군의 종언이 다른 한 왕의 시작이 된다면, 그것은 그 나라의 행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솔로몬에게 위협이 될 인물을 얻급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다윗이 언급한 사람은 아니지만 아도니야가 밧세바에게 나옵니다. 다윗이 학깃을 통해 얻은 넷째아들로 압논 길르앗 압살롬이 죽은 지금 시점에서는 다윗 왕위의 제1상속권자라 할수 있습니다.
밧세바는 아도니야가 아들 솔로몬과 왕위를 놓고 다투던 인물이었기에 경계심을 갖고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냐’고 묻습니다. 아도니야는 ‘화평한 목적이다’며 ‘말씀드릴 일이 있다’ 하면서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권이 돌아가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솔로몬이 취한 왕위가 자신의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이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하나님이 그 일을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솔로몬이 왕이 된 것에 대한 불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본래 왕위가 자신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지 못한 사실을 과장하여 상기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왕위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솔로몬의 왕위를 인정치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은근히 밧세바의 마음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사실 아도니야는 이미 왕권을 넘보고 있었기에 솔로몬에게 늘 경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목숨이 안전할텐데 그는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불러들이는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방임해 두시고 스스로 진노를 쌓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이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자아를 부추겨 교만케 하여 불순종하게 만드는 사탄의 역사를 물리쳐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을 지키면서 결단에 의해서 우리들이 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내가 지켜야 할 마음을 지켜서 하나님께서 뜻하시고자 하신 뜻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2. 욕심을 버립시다(16-18)
아도니야는 밧세바에게 자기의 청을 솔로몬에게 전해달라고 합니다. 이는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하는 것입니다. 이는 일차적으로 아비삭의 미모를 탐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왕위를 노리는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파사 제국을 비롯한 고대 근동에서는 선왕의 첩을 아내로 삼음으로써 후왕이 자신의 왕위를 널리 인정받는 관습이 있었습니다(Herodotus).
이미 삼하 16:20-23에서도 압살롬은 백성들의 목전에서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함으로써 왕권 쟁취를 널리 선언했던 것 같이,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그의 후궁으로 간주되었기 그 때문에 이는 왕위를 노리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육신의 정욕만이 아니라 정치적 야욕(이생의 자랑)이 강하여 동생 솔로몬이 왕이 된 것에 대해서 동의하지만, 아버지(선왕)의 후궁을 아내로 맞이함으로써 왕위를 노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 2:15-16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하와가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을 때,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여자가 하와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 아담에게도 주매 그도 먹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은 데 돌이 떡이 되도록 하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도록 하고, 절하면 보이는 것을 다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모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으로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나 금식하신 후 예수님에게 한 유혹이 같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야도 육신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으로 유혹을 받아 자신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은 우리 생명 끝날 때까지 지속하여 유혹을 이기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3. 분별력을 소유합시다(19-25)
아도니야의 부탁이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입니다. 이것을 아도니야는 ‘한 가지 소원’(16절)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밧세바가 솔로몬에게 말할 땐 ‘한 가지 작은 일’(20절)로 바뀌어 있습니다. 이는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부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그는 나의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그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라고 격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의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하면서 브나야를 통하여 아도니야를 죽입니다.
밧세바는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한 가지 소원’ 속에 있던 역모의 흉계를 간파했기에 바로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어 아도니야를 죽이게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5:8-9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언제나 악한 세력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세력은 언제나 천사와 같이 위장을 하고 우리에게 침투하므로 속아 넘어가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솔로몬과 같은 지혜로 악한 영들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성령의 지혜를 받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세우신 가정과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를 파괴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가정을 지키고,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영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선과 악의 구별 곧 옳고 그름의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을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령이 충만하고 말씀과 기도를 해야 합니다.
분별력의 기초는 말씀과 기도에 있기 때문입니다.
분별력으로 영이 혼탁한 이 세대에 가정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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