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1)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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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2(목) 20250524(토)
서론
나훔은 니느웨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다. 강대국 앗수르가 영원하지 않으며 그들이 아무리 강하고 그들의 군대와 무기가 큰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들을 반드시 멸하실 것이다. 나훔은 약소국을 짓밟는 강대국의 본질과 그들에게 임할 여호와의 심판을 선언하면서 하나님 백성의 궁극적인 회복을 말한다.
제국을 영원할 실체로 여기지 말라.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여도 하나님 백성은 반드시 회복된다. 그 모든 변화의 원천은 온 땅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땅의 세력을 의지하지 않고 그 세력을 넘어서는 하나님이 계심을 신뢰하는 것이다.
니느웨를 다루지만, 유다를 향한 예언의 말씀이다(1:15).
대명사들이 매우 많이 사용되는데, 이 대명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논란이 많다. 나훔서의 초기 독자들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본문이 의도하는 바일 수도 있다. 1:9에 있는 여호와를 거슬러 계획을 꾸미는 자가 앗수르일 수도 있고 유다일 수도 있다. 1:14에서 심판을 선포하는 너는 앗수르 왕일 수도 있고 유다에서 하나님을 거스르며 사악한 짓을 꾀하는 이들일 수도 있다. 2:1에 있는 ‘파괴하는 자’는 유다를 파괴하는 니느웨일 수도 있고 니느웨를 파괴하는 하나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훔서는 구원과 회복을 당연히 우리의 것이라 여기는 사고방식에 경종을 울린다. 누구든 여호와를 거스르고 헛된 일을 꾸미고 아무 쓸모없는 우상들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여호와를 의지하고 그분의 구원을 굳게 신뢰하는 이들에게는 평화가 있고 영광의 회복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훔서에서 앗수르 왕과 니느웨는 고정된 실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거역하며 헛된 우상을 섬기고 의지하며 악을 행하는 모든 세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유다든 니느웨든 돌이키는 이에게는 은혜가 임할 것이며 자신의 힘과 우상을 의지하는 이에게는 반드시 재앙이 올 것이다.
구조
1:1 제목
1:2~8 여호와의 보복과 진노
1:9~2:2 유다를 향한 권면과 약속
9~11절. 유다에 대한 책망
12~13절. 여호와의 말씀 : 다시 너를 괴롭히지 않으리라
14절. 여호와의 명령 : 니느웨에 대한 심판 선포
1:15~2:2 유다를 향한 권면과 약속
2:3~13 니느웨에 임할 재앙 경고
3~12절. 니느웨에 임할 재앙
13절. 니느웨를 대적하시는 여호와의 말씀
3:1~17 니느웨에 대한 심판 선포
1~4절. 니느웨의 실상 고발
5~7절. 니느웨를 대적하시는 여호와의 말씀
8~17절. 니느웨에 닥칠 재앙
3:18~19 앗수르가 흩어지니 고통당한 이들이 손뼉을 칠 것이다.
제 1 장
1절. 제목
1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2~8절. 질투하시며 복수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3인칭으로 지칭하며 하나님에 대해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 2인칭 복수를 향한 말이 시작되는 9절 이하와 구분된다.
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사람의 질투는 독점적 소유가 그 목적이나, 하나님의 질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들이 허무하고 헛된 것에 굴복하지 않고 마땅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함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이 깨어지고 규례와 법도가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그냥 보고 계시지 않는다. 그런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하여 흘린 피에 대해 복수하신다. 이런 행위들은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는 것이다. 열방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그들이 행한 대로 복수하신다.
복수는 법정 상황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이 심판자이기 때문에 복수가 가능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있고 불의는 반드시 벌을 받게 될 것임을 믿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에서 말하는 새하늘과 새땅이 바로 복수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고통받는 사람들과 나라가 회복되는 것을 노래한다.
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노하기를 더디한다는 표현은 기본적으로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인데, 여기서는 노하기를 더디한 만큼 이제 임하게 될 심판과 처벌이 더욱 크고 강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회오리바람과 광풍이 그 강력함을 드러낸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4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5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6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4~6절도 자연 현상을 통해 심판의 강력함을 노래한다.
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8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하나님께 피하는 모든 자들에게, 이스라엘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은 산성이 되어주신다. 하나님께 피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예배하며 그분이 뜻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1:9~2:2 유다를 향한 권면과 약속
유다를 회복하신다는 약속(12~13, 15절)은 유다를 억누르는 앗수르에 대한 심판 선언(14절)과 맞물린다.
9~11절. 유다에 대한 책망
9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10 가시덤불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은 마른 지푸라기같이 모두 탈 것이거늘
11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악한 것을 권하는도다
여호와를 거슬러 스스로 살 길을 꾀하는 이스라엘을 책망한다.
하나님이 친히 앗수르를 멸하실 것이다.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그들을 의지하지 말라. 그런데, 너희 중에서 누군가가 사악한 것을 꾀하고 권한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바라보면, 강대국이라도 완전히 말라버린 검불로 볼 수 있지만, 이르 보지 못하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계획을 생각하고 추진한다.
12~13절. 여호와의 말씀 : 유다에 대한 약속 - 다시 너를 괴롭히지 않으리라
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혔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아니할 것이라
13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
그들이 강하고 수가 많지만, 결국은 멸망할 것이다.
한 때 이스라엘을 깨닫게 하려고 강대국을 들어 이스라엘을 괴롭게 했지만, 이제 하나님이 그 강대국을 무너뜨림으로 하나님만 의지할 대상임을 알게 된다.
14절. 여호와의 명령 : 니느웨에 대한 심판 선포
14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령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준비하리니 이는 네가 쓸모 없게 되었음이라
니느웨에 대한 심판 선고다. 앗수르의 이름이 다시는 뿌려지지 않을 것이다. 후손, 미래가 없다는 말이다.
그들이 섬기는 우상과 신들이 헛됨을 고발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선포한다. 이방이 섬기는 신들이 하나님의 행하심 앞에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 힘을 휘두르는 자들이 아무리 강하고 오래갈 것처럼 보여도 그들은 곧 망한다. 무덤이 준비되어 있다. 그러므로 악인의 종말을 깨닫는 것은 지금 살아가는 삶의 고통과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악인들의 위세가 그리 등등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체념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굳게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종말을 믿는 이들은 현실의 고난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현실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날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끝까지 지켜야 할 정의와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1:15~2:2 유다를 향한 권면과 약속
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
아름다운 소식, 화평의 소식은 곧 하나님 나라의 도래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실재가 된다. 앗수르가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임한다. 그 나라가 온다는 것은 앗수르에게는 재앙이지만, 유다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절기를 지킨다는 말은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웃과 함께 기뻐하는 삶을 회복하라는 말이다.
절기를 지키고 서원을 갚으라는 말은 새 날이 도래했다는 선포다.
앗수르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지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진멸되었다.
20210812(목) 나훔 1장
○ 상황
앗수르(니느웨)에 대한 멸망을 선고하면서 동시에 앗수르를 의지하여 살아남으려했던 유다를 책망한다.
○ 도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힘을 의지하는 것에 대해서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도전을 받는다.
○ 변화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권위, 돈, 관계, 인정...) 성찰하기
○ 기도
아무리 강해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것 앞에서도 결코 무릎 꿇지 않기 원합니다. 그 어떤 것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끊어낼 수 없음을 분명히 고백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소서.
나훔 2장
20210813(금)
제 2 장
1~2절. 유다를 향한 격려와 회복의 약속
1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지어다
2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 같게 하시나니 이는 약탈자들이 약탈하였고 또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를 없이 하였음이라
1:15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다.
야곱의 회복은 유다를 억압하고 괴롭히는 앗수르의 멸망과 관련이 있다.
야곱과 이스라엘은 동일 인물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여기에서는 야곱은 곤경에 처한 실존을, 그리고 이스라엘은 회복된 실존을 의미한다. 야곱의 영광을 이스라엘의 영광처럼 회복하시겠다는 선포다. 앗수스로 인해 유다가 유린당했지만, 이제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실 것이다.
3~12절. 니느웨에 임할 재앙
3~7절. 니느웨 멸망의 날
3 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그 항오를 벌이는 날에 병거의 쇠가 번쩍이고 노송나무 창이 요동하는도다
4 그 병거는 미친 듯이 거리를 달리며 대로에서 이리저리 빨리 달리니 그 모양이 횃불 같고 빠르기가 번개 같도다
5 그가 그의 존귀한 자들을 생각해 내니 그들이 엎드러질 듯이 달려서 급히 성에 이르러 막을 것을 준비하도다
6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7 정한 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니 그 모든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우는도다
강한 용사들은 앗수르를 물리치는 군대로 볼 수 있다. 앗수르는 강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거대 제국을 건설했지만, 동시에 강한 군대에 의해 멸망할 것ㅎ이다. 주전 612년 메대와 바벨론 연합군이 니느웨를 침공했고 앗수르 왕이 그 전투에서 죽임을 당하였고 얼마 후 앗수르는 영영히 멸망한다.
5절, 앗수르가 강한 용사들의 공격에 맞서 급히 성을 막으려고 노력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절에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고 왕후가 끌려가며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멸망의 날이 올 것이다.
8~12절. 니느웨에 임할 참상
8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9 은을 노략하라 금을 노략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10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 주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11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냐 젊은 사자가 먹을 곳이 어디냐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12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고 그의 암사자들을 위하여 움켜 사냥한 것으로 그 굴을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을 채웠었도다
물이 모인 못 같이 풍성했던 니느웨가 물이 빠진 못이 되어버렸다. 강한 군사와 사람들로 충만하던 곳이었는데, 다 떠나고 도망갔다. 한 번 허물어지니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아무 것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침략자들은 그동안 앗수르가 모아놓았던 풍성한 금과 은과 기구들을 마음껏 노략한다. 니느웨는 도망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했다. 그 많던 재물이 그들을 구원할 수 없었다.
사자의 굴과 같던 니느웨가 이제는 힘을 잃었다.
13절. 니느웨를 대적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13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내가 너의 대적이 되었다.”는 표현은 니느웨 멸망은 결국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선언이다.
강하던 무기(군대)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용맹함과 힘을 상징하던 사자도 칼에 맞아 쓰러지며,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전리품들도 다 사라진다. 즉, 니느웨가 자랑하던 힘과 그들이 쌓아두었던 물자들이 모두 사라지고 말 것이다.
파견자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다른 나라로 보낸 사신들이 아무런 응답을 가지고 오지 못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어려움에 처하여 다른 나라들, 자신들에게 조공을 바쳤던 나라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아무도 앗수르를 도와주지 않는다. 이제까지 동맹관계나 외교관계에 있던 나라들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결국 망할 것이다.
힘과 부귀, 권세와 용맹을 자랑하던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한다.
힘으로 선 자들, 힘으로 무너진다.
20210813(금) 나훔 2장
○ 상황
강대국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맞이하게 될 최후의 모습에 대해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힘을 남용하여 약자를 정복했던 자는 똑같은 모습으로 정복을 당하게 된다는 것과 역사를 움직이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 도전
힘은 얼마나 강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임을 깨닫는다. 작은 힘도 이웃을 위해 사용하면 위대함이 될 수 있고, 큰 힘도 자기의 탐욕을 추구하기 위해서만 사용하면 비참함으로 끝날 수 있다는 사실 앞에 겸허해진다. 더 큰 힘을 가지려 하기보다 지금 가진 힘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라는 도전을 받는다.
○ 변화
POGS 중간 점검하고 힘의 사용에 대한 내용을 추가하기
○ 기도
주님께서 주신 힘을 가지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 가치있게 사용하게 하소서. 힘을 추구하기 보다는 힘을 선용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나훔 3장
20210814(토)
제 3 장
1~17절. 니느웨에 대한 심판 선포
1~4절. 피의 성에 임할 재앙
1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피 : 복수형으로 쓰임 – 부당하게 자행된 폭력, 혹은 부당한 폭력에 의해 희생된 피
오직 힘이 지배하는 세상의 현실을 보여줌.
니느웨는 힘을 가지고 휘두르며 주변 약속국들을 짓밟고 유린하며 탈취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피가 흐르더라도 상관이 없다. 수 많은 희생의 피 위에 세워진 피의 성이다.
우상숭배는 힘을 숭배하는 것이다. 약탈과 거짓과 탈취를 신경쓰지 않고 그렇게 세워진 성의 번영과 부귀에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이것에 문제를 제기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소리쳐 외친다.
2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3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니느웨를 가득 채우는 것들을 보여준다. 전쟁이 그치지 않는 나라다. 피의 성의 실체는 전쟁이다. 끝없는 전쟁으로 더 큰 힘을 갖고 싶어하는 욕심을 보여준다.
4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음행, 마술, 미혹 등의 단어가 반복된다. 미혹은 팔다는 뜻이다. 노예로 삼다, 배신하다, 함정에 빠뜨리다 등으로도 번역이 된다. 음행과 마술로 여러 나라를 노예로 삼았다.
음행과 마술은 니느웨의 대단해 보이는 위세(아름다움)과 종교적 신념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를 기초로 열방을 자기 마음대로 부렸다는 것이다.
힘을 기초로 나라를 세우고 더 큰 힘과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 곧 우상숭배의 본질이다. 음행과마술은 종교적 행위를 통해 더 큰 힘을 갖는 탐욕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선하고 바른 삶, 정의롭고 자비로운 삶이 들어갈 틈이 없다. 온갖 종교적 행위와 신앙 고백이 차고 넘치지만, 전쟁을 통한 탈취, 약탈, 피흘림이 끝이 없다.
5~7절. 여호와께서 니느웨의 수치를 드러내실 것이다
5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나라들에게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요
6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이런 니느웨가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한 때 미모를 자랑하던 여인 니느웨는 그 치마가 들어올려지고 부끄러움이 온 천하에 드러나게 되며 온 몸에 더러운 것을 뒤집어 쓴 채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치마를 걷어 올린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니느웨를 수치스럽게 하시며 감추어진 치부를 폭로하신다는 이미지다. 힘을 앞세워 다른 이를 짓밟고 탐욕을 극대화할 때 그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신다. 교회의 부끄러움이 온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사탄의 공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권세있는 자를 내리치시는 분이시다.
7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
멸망하는 니느웨를 보고 있던 자들이 다 도망하면서 니느웨가 황폐하였다고 외친다. 니느웨와 함께 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니느웨의 멸망을 기뻐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더 이상 니느웨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없다.
8~17절. 니느웨에 임할 재앙
8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그는 강들 사이에 있으므로 물이 둘렸으니 바다가 성루가 되었고 바다가 방어벽이 되었으며
9 구스와 애굽은 그의 힘이 강하여 끝이 없었고 붓과 루빔이 그를 돕는 자가 되었으나
10 그가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갔고 그의 어린 아이들은 길 모퉁이 모퉁이에 메어침을 당하여 부서졌으며 그의 존귀한 자들은 제비 뽑혀 나뉘었고 그의 모든 권세자들은 사슬에 결박되었나니
노아몬에 임한 재앙. 노아몬은 ‘아몬의 도시’라는 뜻
아몬은 테베에서 숭배하던 창조의 신, 애굽 신들 중 최고의 신, 헬라에서 제우스에 해당.
도시를 뜻하는 ‘노’가 ‘아몬’에 더해져서 아몬의 도시가 되었다. 테베는 아몬의 도시다.
노아몬은 상부 애굽의 테베라고 보인다. 강들 사이에 있고 물이 둘렀으며 바다가 성루와 방어벽이 되었다는 말은 천혜의 요새라는 말이다. 누구도 함락할 수 없을 것 같은 곳이다. 더구나 구스와 애굽, 붓과 루빔은 모두 테베의 협력자가 되어 그 기세가 강했었다. 그러나 그런 테베도 결국 망하게 되었는데, 니느웨가 이 노아몬모다 나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자신들의 힘과 안전을 믿는 모든 나라 중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노아몬의 예를 들어 앗수르의 멸망을 경고한다.
11 너도 술에 취하여 숨으리라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으리라
앗수르의 참상이 곧 니느웨의 참상이 될 것이다.
12 네 모든 산성은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가 흔들기만 하면 먹는 자의 입에 떨어짐과 같으리라
산성처럼 견고해 보이나 금방 떨어질 열매와 같아 조금만 흔들어도 금방 떨어진다. 제아무리 강해 보이는 세력이라도 결코 체념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이 이들을 가만히 두지 않으실 것이다.
13 네 가운데 장정들은 여인 같고 네 땅의 성문들은 네 원수 앞에 넓게 열리고 빗장들은 불에 타도다
니느웨를 여성에 비유하면서 니느웨가 당할 비참함을 묘사한다.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여성이다. 여성들은 전쟁에서 가장 큰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니느웨 자신이 스스로 그랬듯이 똑같은 처참한 일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14 너는 물을 길어 에워싸일 것을 대비하며 너의 산성들을 견고하게 하며 진흙에 들어가서 흙을 밟아 벽돌 가마를 수리하라
15 거기서 불이 너를 삼키며 칼이 너를 베기를 느치가 먹는 것 같이 하리라 네가 느치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네가 메뚜기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14절에서 니느웨는 적들의 공격에 대비한다. 그러나 15절에서는 그 수고가 헛됨을 말한다.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물을 길어 놓고, 산성들을 견고하게 하였으나, 거기에서 불에 삼켜진다.
15절 하반절에 네가 메뚜기 같이 수를 늘여보라고 한다.
16 네가 네 상인을 하늘의 별보다 많게 하였으나 느치가 날개를 펴서 날아감과 같고
17 네 방백은 메뚜기 같고 너의 장수들은 큰 메뚜기 떼가 추운 날에는 울타리에 깃들였다가 해가 뜨면 날아감과 같으니 그 있는 곳을 알 수 없도다
그러나 역시 이것도 헛되다.
상인이 하늘의 별보다 많았다는 표현은 니느웨의 경제력이 엄청났음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도 메뚜기가 날아감 같이 다 사라져 버려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어떤 강력한 세력이라도 피와 억압과 탈취로 형성되면 반드시 무너지게 될 것을 믿는 것이다. 그 모든 강함이 하루 아침에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사라질 것임을 믿는 것이다.
18~19절. 앗수르의 몰락
18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19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
앗수르 왕에게 말한다. 너의 목자들(지도자들)과 귀족이 다 잠들었다. 죽었다는 말이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백성들도 다 흩어져서 모을 수 없다. 백성이야말로 나라의 힘인데 산산히 흩어졌으니 나라가 완전히 힘을 잃어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상태다.
상처와 부상이 심하다는 말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앗수르의 회복 불능 상태를 보고 모든 자들이 손뼉을 치고 좋아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앗수르의 행패를 당하였기 때문이다. 니느웨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보응이며 심판이다.
멸망과 심판이 다른 이들에게 기쁨이 되는 것은 니느웨와 같은 이방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예루살렘이 망할 때 지나가는 이방인들이 박수를 박수를 치며 비웃을 것이라고 했다(애 2:15~16).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여 그들에게 재난이 임했고 하나님이 그 견고한 성읍을 불타게 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이방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이방 나라든, 하나님 백성이든, 악을 행하면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마음을 찢고 행하던 악에서 돌아서면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것이다.
요나와 나훔만이 구약에서 독특하게 질문으로 끝을 맺는 책들이다. 요나서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이들을 하나님이 어찌 아끼지 않겠느냐?’였고, 나훔은 ‘앗수르에게 행패를 당하지 않은 이가 누가 있느냐?’이다. 둘 다 니느웨에 대한 말씀이다. 니느웨에 악이 있었으나 그들이 그 행한 악을 돌이킬 때 하나님은 니느웨가 악을 행했음에도 그들을 건지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힘을 믿고 거짓과 포악과 탈취를 일삼으며 자신보다 약한 나라들을 짓밟고 행패를 부려 피를 흘리게 할 때 하나님은 결코 그 행패를 그냥두지 않으실 것이다. 이방 민족이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행한 악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20250524(토) 나훔 1~3장
○ 상황
나훔서도 요나서와 마찬가지로 니느웨의 심판을 선언한다. 요나서는 회개를 통해 구원받는 니느웨를 보여준다면, 나훔서는 회개하지 않는 니느웨에 대한 심판을 선언한다. 이방 나라든, 하나님 백성이든, 악을 행하면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마음을 찢고 행하던 악에서 돌아서면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것임을 보여준다.
○ 도전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다시 기억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실제 관계가 그 삶을 결정할 것이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진노하심 사이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연습하자.
○ 변화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묵상하기
오늘 만나는 사람들을 힘으로 대하지 않고 사랑으로 환대하고 용납하기
○ 기도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없이 자신이 왕이 되어 살아가는 이 시대를 심판하시고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그 나라를 회복하시려는 계획에 우리를 포함시켜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권세를 내려놓고 자기를 희생하는 십자가 사랑으로 사람들을 환대하고 섬기며 사랑하는 석교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