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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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과거 현재 미래
제목: 과거 현재 미래
본문: 에스겔 15장 1-8절
본문: 에스겔 15장 1-8절
찬송: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찬송: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오늘은 에스겔 15장 말씀을 가지고 "과거 현재 미래"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에스겔 15장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일관된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를 초월하여 동일한 기준으로 우리에게 묻고 계신다. "너희는 과연 어떤 포도나무인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세 시대를 여행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
1-3절은 "포도나무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말한다.
기원전 586년,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절망적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충격적인 질문을 던지셨다.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2절).
이 질문은 당시 예루살렘 백성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성전이 있고, 제사가 있고, 종교적 형식들이 그럴듯하게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다른 나무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신 것이다.
포도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확연히 다르다. 참나무처럼 튼튼한 기둥재가 될 수도 없고, 소나무처럼 건축재로 쓰일 수도 없다. 심지어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3절)고 하셨듯이 작은 못 하나도 만들 수 없다. 포도나무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바로 열매를 맺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똑똑해서, 더 능력이 있어서, 더 도덕적이어서 선택받은 것이 아니다.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과거 예루살렘 백성들은 이 본질적 목적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셨던 것이다.
4-5절은 "우리 시대의 영적 현실"을 말한다.
하나님의 질문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하지 아니하였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5절). 이것은 2025년을 사는 우리에게 더욱 무거운 질문이다.
온전할 때도 무용했는데, 이미 불에 탄 후에는 어떻겠느냐? 이 말씀은 우리 시대의 영적 현실을 정확히 진단한다. 현대 교회는 이미 세속화라는 불에 상당 부분 타버렸다. 물질만능주의라는 불, 개인주의라는 불, 형식주의라는 불에 우리의 영성이 얼마나 손상되었는가?
과거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1차, 2차 침입을 당하고도 깨닫지 못했듯이, 우리도 이미 부분적인 경고들을 받았다. 팬데믹을 겪었고, 사회적 위기들을 경험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괜찮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니까"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4절)이라는 표현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양쪽 끝이 타고 가운데도 그을려있는 상태가 아닌가? 주일에는 교회에 나오지만 평일에는 세상과 구별이 없고, 기도는 하지만 삶의 열매는 보이지 않고, 말씀은 읽지만 순종은 선택적이다.
이미 불에 탄 포도나무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에 던져지는 하나님의 뼈아픈 질문이다. 온전할 때도 열매를 맺지 못했는데, 지금 이 상태로는 더욱 절망적이지 않은가?
6-8절은 "우리의 미래 선택"을 말한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결론을 내리신다. "내가 수풀 가운데에 있는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6절). 이것은 심판의 선언이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내가 그들을 대적한즉 그들이 그 불에서 나와도 불이 그들을 사르리니"(7절). 여기서 말하는 '불'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연단의 불이고, 다른 하나는 심판의 불이다.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불의 성격이 결정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7절)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무용한 포도나무가 된 이유는 "그들이 범법함이니라"(8절), 즉 배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이유는 우리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서면, 무용한 포도나무에서 열매 맺는 포도나무로 변화될 수 있다.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계속해서 형식적이고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아니면 참된 회개와 결단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살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계신다.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 우리는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다. 과거의 경고를 무시하고, 현재의 무용함을 인정하지 않으며, 미래의 기회마저 놓친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오직 불에 태워질 운명뿐이다.
그러나 아직 은혜의 때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참된 목적을 회복하고, 열매 맺는 삶으로 돌아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에스겔 15장 말씀을 통하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무용한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참된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얼마나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안주하며 살아왔는지 고백합니다. 열매 맺는 삶보다는 종교적 활동에만 만족하며,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며 살았음을 회개합니다. 온전할 때에도 무용했던 우리가 이미 세속화라는 불에 탄 지금은 더욱 절망적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아직 늦지 않았다는 소망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시고 마지막 기회를 주시는 아버지의 은혜에 감격합니다. 이제부터 참된 회개와 결단으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삶을 통해 아버지의 주권과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더 이상 무용한 포도나무가 아니라 아버지께 기쁨이 되는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내일 드려질 주일예배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주일 아침 예배하는 마음으로 깨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당에 나아오게 하옵소서. 선포될 말씀이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생명의 말씀이 되어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 심겨지게 하옵소서.
예배위원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시고, 말씀을 선포하는 종에게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충만히 부어주옵소서.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이 진정한 예배자의 마음으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들의 삶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가정에 평안을 주시고, 직장과 사업터에서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는 지혜와 능력을 주옵소서. 어려움과 질병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로와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무엇보다 성도들이 건강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영혼의 건강도 지켜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날마다 깊어지게 하옵소서. 각자가 드린 기도의 제목들을 아버지께서 선하신 뜻 가운데 응답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기도를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