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25 주일 1부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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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연합의 신비
놀라운 연합의 신비
12.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도입: 이별 준비하시는 예수님
도입: 이별 준비하시는 예수님
아마도 요한복음 15장과 16장의 말씀가지고 설교도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고 은혜도 많이 받았으리라 생각됩니다. 15장과 16장을 읽으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별준비”를 하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더불어서 남겨두고 가는 제자들에 대하여 매우 걱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5:18절 보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이어서 19절에 보면 미움받는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께 선택받아 예수님께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이 세상과 부딪힐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분간이지만 대적자 마귀가 이 세상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삶 가운데 문제가 일어나 고통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전하면 받게 되는 대적자들의 공격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자기와 다른 것을 전하는 우리를 공격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자들은 개인이든 공동체든 미움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걱정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중에 하신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15장 26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6:7절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개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남겨질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다름이 아니라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겠다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래토스” 곁에 서서 돕는자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돕는가? 예수님에 대하여 그리고 복음의 대하여 증언하는 것을 돕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처럼 살 때에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메시지를 전할 때 도우시분을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 하나님의 일부를 또는 예수님 이후 시대에 우리 가운데 보여주시는 성령님의 일부 모습을 본것이지 전부는 아닙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통해서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 성령님의 역할에 대해서 8절 이하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그 역할은 5가지입니다.
1)세상의 죄에 대해 책망하며 회개하게 하는 것입니다.
2)믿는 자에게 의의 기준을 알리는 것입니다.
3)사단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팜을 확실하게 알리는 것입니다
4)그리스도인들을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5)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많이 알리는 일에 주도적으로 일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예수님께서 3년 동안 유대인들에게 하신 일입니다. 회개를 선포하셨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진정 여호와 하나님께서 돌아오신다는 그것을 가는 곳마다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이 일을 누가 해야 합니까?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은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 안에 내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되고 우리가 하는 일이 예수님의 일이 되고 우리의 예수님의 일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덕적이고 젠틀한 기독교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부러 낮은 자리에 가는 그러한 가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연합되는 놀라운 신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놀라운 연합의 신비를 이루는 어떠한 삶을 살게 되는지 나누려고 합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슈퍼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슈퍼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성령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슈퍼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16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13절에 뭐하고 말씀하십니까?
“그러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먼저는 우리가 예수님 믿는다고 물리적으로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인 존재로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넘어지고 실패한다고 실망 할 필요 없습니다. 물론 노력은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인정하고 날마다 고백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덕목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무너질 때 어느샌가 우리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에덴 동산의 이야기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인 동시에 바로 지금을 사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은 하나님의 일은 나의 능력이나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주도적으로 우리를 그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일을 감당하실 수 있도록 생각나게 하시고 말씀을 선포하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될일은 아무것도 아니라 고백하고 사역의 현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아는 자들이었지만 그것이 진리로 인도해주지는 못했습니다. 많이 아는 것보다는 한가지만 알면 됩니다. “하나님의 경륜” “뜻” “복음”입니다. 그 것을 밝히 보여주신 분이 누구이십니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에배소서 3:9-11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예수님 믿는 자들은 슈퍼맨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가능하다고 하며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못하는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사람들이 보기에 별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는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입니다. 유일한 길이시며 통로이신 예수님을 아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연합의 신비가 우리에게 주는 놀라운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버려될 것이 뭐든지 잘해야 하고 뭐든지 잘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입니다. 우리들은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주님다시 오실 때까지 한가지, 예수 그리스도 붙들고 사는 자들인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놀라운 연합의 신비로 살아가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 주님 곧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을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두 번째, 주님 곧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을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16: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16: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16:18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16: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그리고 16장 16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원래 계셨던 자리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곧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기간에 안에 그 예수님을 사모하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결단코 쉽지 않은 시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장 20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우리는 곡하고 애통하지만 그리고 근심하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근심이 오히려 그들의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누누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특정한 때에만 마지막때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생전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박해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 믿는 우리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때까지 우리는 세상의 박해와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쁨으로 이 기간을 살아 낼수 있는 이유는 그때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21절-22절입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성령으로 충만하면요. 첫째는 예수님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기 때문에 늘 기쁨이 넘치고 행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는 이 이 기쁨으로 이 세상을 능히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에 완성될 그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기쁨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이겨 낼 수 있는 이유가 우리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이겨 낼 수 있는 이유가 우리 때문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28절까지 그 날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29절 이하에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대하여 이해했고 그 말씀을 믿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예수님은 혼자 계셔야 했고 그들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3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로 인하여 우리가 담대함을 얻고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지 우리 자체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 다른 방법으로 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도 세상에 대하여 승리를 선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승리. 그 승리로 인하여 여전히 연약하지만 세상 가운데 담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도. 세상이 힘이 있다고 말하는 가치를 가치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는 이해되지 않고 신화나 꾸며낸 이야기로 치부해버리는 “십자가의 도”로 사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도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를 인도해주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통로인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이 부정된 예수 그리스도 삶 자체인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서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는 낮아지셨고 하나님은 높임을 받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셨지만 우리는 생명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곧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슈퍼맨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는 연약한 그릇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이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그릇이라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어주시고 성령님께서 우리와 늘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가지만 알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유일한 길이시며 인도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동시 비록 지금은 고난의 때를 지나가나 반드시 그날에 주님께서 심판주로 우리의 왕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예수님과 함께 하시고,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놀라운 연합의 신비를 누리시는 삶을 한 주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