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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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5 주일예배
본문 : 빌립보서 1:27~2:4
제목 :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내가 좋아하는 성경인데, 너무 짧아서 오늘과 이번 주 수요예배 때만 말씀을 나누는 것이 아쉽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빌립보 지역의 교회에게 보낸 편지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재판 결과에 따라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뻐할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에 기뻐하라고 강조한 편지가 빌립보서라서 ‘기쁨의 편지’라는 별칭이 붙은 성경이다.
빌립보는 그리스 북부의 마게도냐 지방에 위치해 있고,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때 세운 유럽의 첫 교회다.
빌립보는 지금의 튀르키예 서쪽에 위치한 로마의 식민지인데, 제2의 로마라고 불릴 정도로 로마화 되어 있는 도시다. 마게도냐의 수도가 데살로니가인데도 불구하고 사도행전에는 빌립보를 마게도냐의 첫 성이라고 기록했을 정도로 대표적인 도시다. 군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위치라 로마군 주둔지일 뿐 아니라 퇴원 군인들을 이곳에 정착시켰다. 그래서 빌립보 사람들은 군사적 지식과 경험이 많기 때문에 빌립보서에는 군사적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빌립보는 로마제국 내에서 특별한 도시였기 때문에 빌립보 사람들에게는 로마의 시민권이 주어졌다. 지금 미국 시민권을 위해서 원정 출산까지 할 정도이고, 영주권을 얻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당시 로마의 시민권은 지금의 미국 시민권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특권이었다. 빌립보 사람들은 로마 시민권자라는 사실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빌립보 성도들에게 바울이 이렇게 말했다.
Philippians 1:27 NKRV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
여기서 ‘생활하라’의 헬라어를 직역하면 ‘시민으로 살라’는 뜻이다. 즉 이 말씀을 풀어서 해석하면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었으므로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답게 살아가라.”라는 뜻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빌립보 성도들에게 강조하며 상기시켜 주었다.
Philippians 3:20 NKRV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런 의미에서 본문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짧은 문장에는 적어도 네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로 로마 시민권보다 비교할 수 없이 좋은 하늘의 시민권을 얻었다.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며 살라.
2)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라.
3) 하늘의 시민권자로서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라.
4) 하늘의 시민권자 답게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명예롭게 살아가라.
고대에는 지금처럼 국경선이 분명하지 않았다. 그럼 어디까지가 그 나라 영토일까? 지역 사람들이 그 나라 왕의 다스리심을 받는 곳까지였다고 한다. 두 나라의 경계선에서 사는 사람은 두 나라 중 어느 왕의 다스리심을 받고 사느냐에 따라 소속이 결정된다. 빌립보 사람들은 제2의 로마라고 불릴 정도로 로마 황제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지만, 로마 황제의 다스림보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며 하늘의 시민권자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늘의 시민권자라면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세상 권세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이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과 세계관을 따라 살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늘의 시민으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다.
바울은 본문에서 복음에 합당하게 하늘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몇 가지로 설명한다.
Philippians 1:27 NKRV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하늘의 시민권자로 살아가는 것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군사적인 단어가 사용되었다.
‘한 마음으로 서서’는 단순히 함께 서 있는 모습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로마 군대의 팔랑크스 전술을 의미하는 군사 용어다. 팔랑크스라는 말은 생소해도 아마 이런 전투 장면을 다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 마음으로 서라는 말은 이처럼 상대에게 틈을 주지 않도록 완전히 한 몸인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라는 뜻이다.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에서 ‘협력하라’도 ‘함께 싸우라’는 뜻의 군사적인 용어다.
군사적 개념이 익숙했던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이 한 말의 뜻을 직관적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이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군대다.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이나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했을 때 이스라엘의 행렬을 “여호와의 군대”라고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다(출 12:41). 우리는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싸우는 하늘나라의 군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함께 싸우는 전우다. 바울도 에바브로디도를 ‘함께 군사 된 자’(2:25)라고 했고, 또 유아디아와 순두게라고 하는 두 자매들은 자신과 함께 복음을 위해 함께 싸우던 전우들이라고 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키고 전하기 위해 이 세상의 악한 영들을 대적해서 함께 싸우는 전우들이다. 그러므로 서로를 귀하게 여겨주자. 우리가 죽을 일이 많은 이 세상에서 죽지 않고 살려면 한 마음으로 굳게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를 서로를 살려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서로에게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Philippians 1:28 NKRV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우리가 서로 한 마음 한 뜻으로 굳게 서서 협력하여 싸우면 적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가 더욱 견고하게 하나가 되어갈수록 적들에게는 멸망의 징조가 되고, 우리에게는 구원의 징조가 된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다.
이처럼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기꺼이 복음을 위한 전투에 함께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군사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헌신과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고난의 길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면 그보다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일은 없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Philippians 1:29 NKRV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을 새번역성경은 이렇게 번역했다.
Philippians 1:29 NKSV
29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위한 특권, 즉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특권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특권이라고 했다. 동의가 되는가? 아마도 자신이 경외하고 섬기는 왕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는 것을 영광스럽고 명예롭게 여겼던 전사들이라면 이 말에 적극 동의할 것이다. 여러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을 영광스럽고 명예롭게 여길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면 하나님은 너무나 감동하시며 고마워하실 것이다.
이처럼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을 특권으로 여기며 기꺼이 영적 전쟁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도 이미 이와 같은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Philippians 1:30 NKRV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바울은 복음을 위해 싸우다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을 통해서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고, 그것이 너무나 영광스러운 특권이라는 사실에 공감하기를 원했다. 그로 인해 빌립보 성도들도 하늘의 시민권을 받은 사람으로서 혜택을 누리려고만 하지 않고 기꺼이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의 싸움에 동참하도록 초대한다. 바울은 그것이 바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지금까지 외부의 적과 싸우는 전투에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협력하라고 권면한 바울은, 2장에서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서로 한 마음과 한 뜻을 품고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내적인 하나 됨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Philippians 2:1–2 NKRV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김세윤 박사는 이렇게 풀어서 번역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을 받고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랑의 위로를 받고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비와 긍휼을 받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같은 마음을 품어서 나의 기쁨을 완성하시오.”
이 말씀은 우리가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과 사랑의 위로와 긍휼과 자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권면과 사랑의 위로와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 자신은 그런 걸 받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 모두에게 주신다. 하늘의 시민권자는 그런 것들을 믿음으로 받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런데 같은 마음, 같은 사랑, 같은 뜻을 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마다 마음과 생각과 뜻이 다 다른데, 같은 마음과 뜻을 품는다는 게 가능한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가능하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사랑과 뜻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다음 구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Philippians 2:5 NKRV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가장 신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뜻, 예수님의 계획, 예수님의 방식이 가장 옳고 좋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과 뜻보다 예수님의 마음과 뜻을 따른다. 바로 그리스도인이 그런 사람들이다.
같은 마음과 사랑과 뜻으로 한 마음을 품는 것은 회의를 많이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세미나를 많이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믿고 따름으로써만 가능하다. 담길교회가 그런 공동체 되기를 바란다.
Philippians 2:3 NKRV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교회가 무너지는 이유는 외부의 공격 때문이 아니다. 내부의 분열 때문이다. 그래서 교활한 사탄은 교회가 내부적으로 분열을 일으키게 하는 전략을 아담과 하와 때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오래된 사탄의 전략인데도 지금까지도 그 전략이 너무 잘 먹히고 있다. 이제는 똑같은 사탄의 전략을 즉각 파악하고 곧바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울은 내부 분열의 원인을 다툼과 허영이라고 파악했다. 그래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한다. ‘허영’은 ‘자만심’을 의미한다. 즉 내부 분열을 일으키는 원인은 경쟁심과 자만심이다. 모두 자신이 남들보다 높거나 높아져야 한다고 여기는 교만에서 나오는 마음이다.
우리의 싸움 상대는 아군이 아니다. 아군끼리 싸우는 군대는 적군과 싸우기도 전에 패한다. 그런데 아군끼리 싸우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게 아니다. 공중 권세를 잡은 악한 권세들과의 싸움인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 밖에 있는 상대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상대다. 바로 교만과의 싸움인 것이다.
바울은 교만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한다.
일단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과의 비교 대상을 바꿔야 한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하면 둘 중 하나다. 열등감 아니면 우월감이다. 그런데 우월감뿐 아니라 열등감도 사실은 교만이다. 열등감은 내가 더 우월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열등감도 우월감과 다를 바 없는 교만임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으로는 겸손할 수 없다.
겸손은 비교 대상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으로 바꿔야만 가능하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교만할 수 없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하고 어리석을 뿐 아니라 악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서야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꼭 만나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만나면 진짜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길 수 있다. 우리가 서로 그럴 수만 있다면 사탄의 계략은 완전히 무력화되어서 교회를 절대 무너뜨릴 수 없다.
Philippians 2:4 NKRV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이 말씀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 같은 뜻이다.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을 돌보듯 하라는 말씀이다.
바울은 이와 같이 빌립보 성도들이 서로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서로 겸손하게 남을 낫게 여기고 서로를 돌보면 자신이 너무나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뿐이겠는가?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쁘시겠는가?
오늘 말씀을 요약하면, 우리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것은,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영적 전투에 한 마음 한 뜻으로 협력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겸손하게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서로 다른 사람을 자기 일처럼 돌봐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이야말로 사탄과의 싸움을 이기는 강력한 전략이다.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 되면 사탄은 절대로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다. 승리를 위해서라도 치열하게 사랑하며 서로 섬기는 담길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찬양 : 주 안에 우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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