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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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자전
부전자전
어느 한 목사님이 본인이 어떻게 하다가 소명을 받고 목회자가 되기를 결심했는지를 들려주신 적이 있는데요, 그 목사님이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서 교회를 다녔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 목사님이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야, 너는 목사가 돼야겠다”라고 하셨다고 해요. 특히 자기 어머니도 신앙심이 깊어서 “내가 기도 응답을 받았는데 너는 꼭 목회자가 될 거야”라는 말씀을 어렸을 때부터 하셨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은 그때마다 매번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목사는 안될거에요”라고 성질을 내면서 대답을 했다고 해요.
고등학생이 되고, 예비고사를 치를 즈음에 이 목사님이 나름 공부를 열심했어서 이름대면 다 아는 대학교에 원서를 접수하려고 버스를 타고 떠났다고 합니다. 수학을 잘했어서 이과 쪽으로 지망을 정해서 거기로 원서를 접수하려고 가는데, 갑자기 그 원서접수하러 가는 버스 안에서 하나님께서 소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말 원서 접수하러 가는 도중에 길을 돌려서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입학했고, 그 길로 목회자의 길을 쭉 걸어오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목사님이 훗날 아들을 갖게 되셨는데, 태어난 지 한달만에 뇌수막염이 걸려서 아들이 금방 죽을 위기에 처해있었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의사가 말아길 수술이 성공해서 생존할 확률이 50대50이고, 생존한다고 해도 뇌쪽에 장애가 있는 장애인으로 살아갈 확률이 또 50대50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과 가족들과 또 섬기시던 교회의 온 교인들이 달려들어서 기도를 해주셨는데, 정말 다행히도 그 기도 덕분인지 완치 확률이 25%밖에 안되는 대수술이 성공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서원 기도를 했다고 해요. “하나님께서 살려주셨으니 이 아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써주세요.” 기도는 그렇게 하셨는데 아마 마음속으로는 “이 아이가 목회자가 되려나 보다”하셨던 것 같아요.
그 아이가 컸을 때, 그 목사님이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너 혹시 목회자가 될 생각이 없니?” 그런데 그 아들이 본인 어렸을 때랑 똑같이 성질을 내면서 대답했다고 해요., “난 죽었다 깨어나도 목사는 안될 거예요.” 그리고 그 아들도 수학같은 이과 쪽에 관심이 많아서 이과와 관련한 지망을 선택해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 또 원서 접수할 때 즈음에 그 아들이 갑자기 “나 목사될래요”하고서 소명을 받았는지 아버지랑 똑같이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진학을 해서 목회자가 되기 위해 길을 걸어갔고, 그 아들이 지금 여러분 앞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 제 아버지와 제 이야기인데요,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죠? 보통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라는 뜻으로 좋게도 쓰이고 나쁘게도 쓰이는데, 참 저랑 제 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보면 그런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다만 그것이 그냥 성격이나 습관 같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믿음이 아들에게도 흘러갈 때에, 부모의 믿음이 자녀들에게 흘러갈 때에 정말 신기하게도 하나님을 만나고 소명을 받거나 하는 일들이 비슷하게 일어나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인 창세기 26장의 말씀도 그런 믿음의 부전자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셨을 때도 느끼셨겠지만 26장에서 이삭이 겪은 일들은 대부분 아브라함에게도 거의 똑같이 일어났던 일이죠.
그랄 땅
그랄 땅
먼저 1절에 보시면 처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 땅에 거주했을 때, 거기서도 흉년이 들어서 이집트로 내려갔었습니다. 그 때 처럼 또 이삭이 거주하고 있는 땅에 흉년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랄로 이동하게 되는데요, 2절 말씀에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이 이집트로 내려가셨던 것을 의식하셨는지, 이집트로 내려가지말고, 내가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동일한 약속을 하시죠. 이 땅에 거류하면 너에게 복을 주고,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다. 네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약속한 것을 이루겠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고 그 자손들이 이 모든 땅을 가지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5절 말씀에 보시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지난 금요기도회 때, 그리고 주일 예배때도 잠깐 목사님께서 사울 왕의 청종과 순종에 대해서 말씀하셨잖아요? 사울은 백성들의 말을 청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 말씀에 어떠한 토도 달지 않고 바로 가서 100살이 되어서야 낳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말리셨습니다.
그처럼 아브라함이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도 순종하여 그 땅에 거류하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 말씀에 보시면 정말로 이삭이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신 그 그랄 땅에 거주하였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또 보면 이삭이 자기 아내인 리브가가 너무 이쁘니까 자기 누이라고 이야기해달라고 했나봐요. 사람들에게 다 리브가를 누이라고 소개해서 사람들이 혹시나 자기를 죽일까봐 그렇게 거짓말을 했는데, 이삭이 하루 이틀만 거주한 것도 아니고 그랄 땅에 오랫동안 거주하는 중에 8절에 보시면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본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이 껴안다라는 단어가요 사실 히브리어로 지난번에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다고 했을 때에 메짜헼이라고 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여기서 또 쓰입니다. 놀다, 놀리다, 웃다 등으로 쓰이는 이 단어가 이삭의 이름으로도 쓰이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부부간에 아주 다정스럽게 행하는 애무, 그러니까 머리를 쓰다듬거나 뽀뽀를 하거나 꼭 껴안는 등의 그냥 딱 보면 부부인 것을 알 수 있는 행위를 한 것을 왕이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불러다가 아브라함 때 처럼 이야기하죠, 아니 대체 네가 왜 우리에게 이렇게 하는거냐? 여차하면 우리 백성들 중에 하나가 네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들 뻔하지 않았냐? 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아비멜렉 왕도 아브라함 때에 당한 것이 있어서 인지 다행히 이번에는 자기 아내로 삼기전에 미리 이삭에게 가서 이렇게 항의를 합니다. 그러면서 백성들에게 “백성들아. 이 둘은 건들지 말아라. 건드리기만 해봐 내가 죽일거니까!” 하고 으름장을 둡니다.
그래서 이삭이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 땅에서 걱정없이 잘 지내게 되고, 그 보다 더하게 하나님께서 아주 큰 복을 주시니까 농사하기만 하면 백배로 번창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에 보시면 아주 큰 부자가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시기 질투해서 또 쫓아내려고 해요. 그래서 아브라함 때에 파놨던 우물들을 다 메꾸고 막 떠나라고 해요.
그래서 조금 옮겨서 우물을 다시 팠더니 또 거기까지 쫓아와서 싸우고, 또 옮겨서 우물을 팠더니 또 싸우고 마지막으로 22절에 이르러서 세 번째가 되서야 싸우지 않게 되고 또 지난 번에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서로 맹세했던 곳, 또 하갈이 아브라함에게서 도망쳤던 브엘세바라는 곳으로 올라가니까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다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그리고 26절부터는 다시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서로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었던 것처럼 이삭 또한 아비멜렉과 서로 해하지 않을 것임을 브엘세바에서 맹세하게 됩니다.
믿음은 반드시 물려주는 것이다.
믿음은 반드시 물려주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오늘 말씀은 사실 거의 아브라함이 겪은 내용들을 아주 축약해서 이삭이 다시 겪게 되는 일들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부전자전이 따로 없죠? 아브라함이 겪은 많은 일들, 아내를 누이로 이야기하거나 부자가 되어서 그 땅 주민들과 다투게 된 것이나 아비멜렉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것들을 이삭 또한 함께 겪고 있습니다. 부전자전,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좋은 뜻도 있고 나쁜 뜻도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과 이삭 모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좋은 일도 있지만 반드시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지요. 어려움 앞에서 회피하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 돌이키게 하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서 다툼이 생기기도 했고, 다시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며 화해하게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삭 자체에 대해서는 많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삭의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들인 야곱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이삭이 단독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거의 물려받은 듯한 이야기입니다. 이삭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을 계승하는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만난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과 믿음을 물려받아 훗날 이스라엘 민족의 이름의 기원이 되는 야곱의 아버지로서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과 믿음을 물려주게 됩니다. 이처럼 이삭은 그 중간다리의 역할을 함으로써 아버지와 아들보다는 덜 중요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죠. 이삭은 아브라함의 계보에서 믿음이 끊어지지 않도록 한 인물이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배우고 받은 믿음을 자녀에게 주는 것이죠. 이삭이 리브가를 누이를 속인 것처럼 비겁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고 그 그랄 땅에 계속 거주하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일어났었고, 결국 이삭이 믿음을 지켜서 그랄 땅에서 벗어나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모든 자녀들에게 반드시 믿음이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말씀 마지막 두 구절에 보면 에서가 헷 족속의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어서 이삭과 리브가가 근심한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 자신들의 씨족 내에서 아내를 맞았습니다. 아버지가 했던 대로, 그리고 그 아버지가 했던 대로 였지요. 이삭과 야곱 모두 장자가 아니었습니다. 원래라면 상속받지 못하는 이들이지만 결국 믿음에 의해서 상속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믿음 없이 하나님과의 언약의 계보가 이어지지 못한 장자들과 서자들은 모두 계보를 이어나가지 못했습니다.
저희들 모두 믿음을 물려받아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은 이들입니다. 물려받았다는 말은 저처럼 아버지가 목사님이고 믿음이 있기 때문에 부모님으로 부터 물려받았다라는 뜻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전도로, 누군가가 전한 복음으로, 혹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믿음 생활을 시작하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그 믿음을 소중하답시고 꽁꽁 감추고 있으면, 혹은 저희가 그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계보처럼 이어지지 않고 에서처럼 끊어지는 믿음이 될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물려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녀들 뿐만 아니라 아직 믿음이 없는 이들 역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어지게끔 우리 가족만이 아닌 이들에게도 물려주는 것입니다. 이삭이 아비멜렉과 맹세를 할 때에 아비멜렉이 이렇게 이야기하죠 28절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우리가 믿음 위에 바로 서면, 남들에게 일부러 보여주지도 않는데 눈에 보일 만큼 믿음의 역사로 나타나게 되면, 믿음은 물려주고 물려받게 됩니다. 저희를 통해서 복음이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
그래서 오늘 함께 기도하실 때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는 저희가 믿음 위에 바로 설 수 있도록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삭이 하나님께 큰 복을 받을 자로 나타나니까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도 생겼지만, 도리어 그 복받은 모습을 통해서 아비멜렉과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삭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으로 바로 서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것과 같이 저희 또한 먼저는 믿음 위에 바로 서서 세상이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뤄나갈 수 있는 힘과 인내를 허락해달라고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구요
둘째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진 것과 같이 저희의 믿음이 먼저는 저희들의 아이들과 손주들에게, 또한 세상에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그렇게 함께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이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복음을 전하거나 믿음의 역사를 이뤄나가는 모습이 모든 이들에게 다 좋게만 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삭을 쫓아내려고 했던 그랄 사람들이 먼저는 그랬구요, 또한 이삭의 가정 내에서는 에서가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전해봤자, 내가 잘해봤자 무슨 소용이야”라고 부정적으로 단념하지 않고, 도리어 야곱이 믿음의 계보를 이어간 것과 같이, 아비멜렉이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같은 일들이 저희가 복음을 전하고 믿음의 역사를 이뤄갈 때에 나타날 수 있도록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