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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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사도신경, 찬송가 342장, 440장
오늘 창세기 30장의 말씀 가운데 은혜 받고 돌아가는 시간되길 소망합니다.
남편에게 사랑을 확인받고 싶음
남편에게 사랑을 확인받고 싶음
제가 결혼한 지 어느덧 9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연애하고 결혼한 것이 저에겐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가끔은 문득 “내가 정말 결혼을 했구나?” 하고 놀랄 때가 있어요. 꿈같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지난 날 어떻게 살았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저희 부부, 보시면 아시겠지만 참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연애할 때도 “사랑해”라는 말을 정말 자주 했는데요, 결혼하고 시간이 흐른 지금도 저는 남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 사랑해?” 앞으로도 계속 물어볼 것 같아요.
이미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도 그 사랑이 여전한지 확인받고 싶은 마음있습니다. 가끔은 남편이 개인적인 일도 컴퓨터나 핸드폰을 보고 있으면 “핸드폰이 좋아, 내가 좋아? 나랑 놀아~”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며 깨닫는건 제가 한 가정의 아내로서 남편의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합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을 때 얼마나 큰 안정감과 위로를 주는지 요즘 참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레아와 라헬도 결국 남편에게 사랑받는 것으로, 그리고 남편의 사랑을 받아서 자녀를 출산하는 일로서 서로 다투고, 누가 더 많이 자녀를 낳아서 사랑받는지 겨루는 듯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편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레아, 그리고 사랑받았지만 자녀를 낳지 못했던 라헬의 이야기는 단순한 고대 가족의 이야기로 끝날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사랑받은 라헬지만 자녀없는 여인, 하나님이 기억하셨다
사랑받은 라헬지만 자녀없는 여인, 하나님이 기억하셨다
1절부터 라헬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레아와는 달리, 라헬은 야곱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사랑받는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에서 한 여인을 이렇게 사랑하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지 않는데 야곱에 라헬을 대하는 것을 보면 참 사랑하고 있다는게 느껴지고, 성경도 그렇게 설명합니다. 야곱은 그녀를 위해 무려 14년을 일했고, 그 세월을 며칠처럼 여겼다고 말할 만큼 깊은 애정을 가지며 라헬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남편의 사랑을 받는 라헬이 행복했을까요?
남편의 사랑은 받았지만 자녀가 없었습니다. 사랑은 받고있지만 언니가 계속해서 아들을 낳차, 라헬은 점점 조급해집니다. 그래서 오늘 야곱에게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요즘말로 지금 자식 안 낳게 하면 내가 죽겠으니까 빨리 나도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하라고 하니까. 야곱이 성 내며 2절에 이렇게 말하죠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이것도 요즘말로 내가 하나님도 아닌데 어떻게 임신하게 할 수 있겠냐라고 화를 냅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라헬과 요셉이 다투는 이유가 언니를 시기하는 시기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옆에서 언니가 자녀를 4명이나 그것도 남자를 줄줄이 출산하니까 얼마나 고대 근동 사회적 문화에서 시기심이 났겠어요. 아마 첫 아니는 나름 축해줬을 꺼에요. 그런데 2명낳고, 3명낳고 4명째 나니까 얼마나 마음이 조급해지겠어요. 아시다 싶이 아이 4명이면/그것도 아들로 4명이면 온 집안에 떠들석 하잖아요. 교회학교에서 자녀가 4명이 있는 집을 심방하며 시끌시끌해요. 한 사람바다 한 마디만 해도 온 집안에 사람 냄새가 납니다. 그것을 보며 라헬이 얼마나 시기하는 마음이 들었겠어요.
지금 라헬에게는 남편의 사랑이 있지만 남편의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언니가 옆에서 아들 4명을 줄줄이 출산하면서 오는 시기심이 있었고, 결국 비교하며 오는 상실감이 라헬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과 다투는 일까지 가게됩니다.
이후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아들을 낳는 것으로 경쟁하듯이 이제는 자기가 안되니까 여종을 대신 들여보내 아이를 낳게 합니다. 라헬은 여종 빌하를 야곱에게 주어서 아들을 2명 낳게하는데 이름을 보면 단: “하나님이 나의 억울함을 풀어 주셨다.” 납달리: “언니와 싸워 이겼다.” 라는 뜻입니다. 라헬이 얼마나 강한 시기심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이름들이에요. .
이후에 당시에 사람들이 다산에 좋다고 믿던 약초 합환채를 얻기 위해 언니와 거래까지 하게 됩니다. 레아의 아들인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만드레이크를 찾아 어머니 레아에게 가져다 줍니다. 이 약초는 근동에 사는 여인들에게 최음제(崔淫濟)와 강장제로 여겨져서, 이 약초는 '사랑의 과실'로도 불렀습니다.
그리고 라헬이 이 약초를 요구합니다. 이 모습만 보더라도 얼마나 집안에서 자녀를 낳는 것이 경쟁이되어서 과열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라헬이 이 약초를 요구하자, 레아가 남편과의 하룻밤을 조건으로 내걸고 거래를 하는데 당시 귀한 약초로도 불리는 합환채를 먹고도 라헬에게 자녀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노력하고 거래하고 시기하면서 얻으려고 했던 아이가 언제 생기냐면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라헬이 아이를 얻은 것은 합환채 때문도 아니었고, 여종을 통해 대리 출산도 아니었습니다.
그 어떤 인간적인 계산도, 시기심도, 비교도 진짜 생명의 열매를 주지 못했습니다.
태의 문이 열린 때는 하나님이 라헬을 기억하셨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라헬의 삶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시기심에 몸부침 쳤던 라헬이 23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하나님께서는 라헬로 하여금 긴 시간동안, 어찌보면 서러움 속에서 한 가지 분명히 알려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라헬이 아이를 얻은 것은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진정한 생명의 시작은, 하나님이 기억하셨을 때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라헬이 그토록 원했던 자녀는, 사람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억하심’ 속에서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녀를 기억하셨을 때, 라헬은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씼어주셨구나.”라고 고백합니다.
이 부끄러움은 단지 자녀가 없다는 외적인 문제가 아니라, 언니와 자녀를 두고 비교하면서 오는 시기심, 분명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자녀가 없는 것에서도 오는 여러 문제들이 라헬의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단순한 기억이 아닙니다. 그 기억은 우리를 다시 일으키고, 우리 인생의 수치를 회복시키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을 때, 그 순간순간들이 절망이 아니라, 믿음과 인내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할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고,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시고 라헬을 변화시키신 것 처럼 저희 삶 가운데 하나님의 기억하심이 충만하길 소망합니다.
야곱 – 속고 속인 인생,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셨다
야곱 – 속고 속인 인생,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셨다
이제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서 나오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야곱의 인생을 보면 처음부터 속고 속이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형 에서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빼앗고, 외삼촌 라반에게 와서도 자신이 속임을 당합니다. 그래서 야곱의 인생에서 그의 결혼, 그의 일하는 것도, 그가 가져야 할 재산 그 무엇 하나 평탄한 것이 없었습니다.
형을 피애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갔지만 20년 동안 고된 삶을 살게 됩니다. 외삼촌이니까 자신의 집에서 열심히 일한 수고를 정당하게 대우해주면 좋겠지만, 그는 야곱을 마치 자신의 재산을 늘려줄 도구처럼 여겼습니다.
야곱은 종처럼 살아야 했고, 아내와 자녀들조차 라반의 소유처럼 취급됐습니다.
그래서 25절에 보면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하는 이 말은 단순히 나를 어디로 보내라가 아니라, “나를 해방시켜 달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어로 솰라흐니는 “나를 자유롭게 하소서”라는 뜻으로 힘들어 어려운 억압된 상황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요청입니다.
당시 문화에서 종은 종살이를 마쳐도 처자식은 주인 소유로 남게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다음장에 라반은 그 딸들과 손자들까지 자기 것이라 말하는 모습이 있어요. 지금 야곱의 가족을 자신의 종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반 앞에서 정직한 조건을 제안합니다.
32절에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염소 중 점 있는 것, 양 중 검은 것만을 삯으로 달라.” 고 합니다. 이것은 흔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거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후 라반이 야곱과 계약 후, 야곱에게 갈만한 것들을 차단하려고 모든 점 있는 양과 검은 새끼를 따로 빼돌리고 사흘 길 떨어진 곳에 둡니다. (30:35–36)
인간적으로는 야곱이 성공할 수 없었고, 자신의 것을 잘 지키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 그런데 야곱은 ‘지혜’를 발휘해 나무 껍질을 벗겨 양 떼가 교미할 때 자극을 주었고 쌔기를 낳게하고, 강한 양은 자신의 것으로, 약한 양은 라반의 것으로 나누었습니다. (30:37–42)
사실 기묘해 보이는 이 방법은 과학적 근거가 있다라기 보다는 민속적 믿음에 가까운 방법이죠.
→ 그런데 신기하게도 야곱은 풍성하게 번성합니다.
야곱의 인생은 그전까지 속이고 속임당하고 자신의 것을 온전히 가지지 못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의 결혼도, 노동도, 재산도 온전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야곱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했고, 하나님은 그의 수고를 보셨고, 야곱를 기억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라고 쓰여져있습니다.
결론
결론
오늘 창세기 30장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복잡하고 엉켜 있는 한 가정의 이야기가 왜 성경에 이렇게 정직하게 기록되어 있을까 생각했어요.
라헬은 남편의 사랑은 받았지만 자녀가 없었고, 야곱은 가족을 위해 20년을 일했지만 손에 쥔 것이 없었습니다.
라반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자신만의 이익만 추구했고, 또 야곱의 가정 안에는 갈등과 긴장, 질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복잡하고 부끄러운 상황 속에도 하나님은 늘 이들곁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가만히 계시지 않고 라헬을 기억하셨고, 야곱의 수고를 보셨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30:22)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셨다” (31:42)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그 수고를 보셨을 때 라헬과 야곱은 이전과 달리 변화되었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무시해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사람들은 잊어도 하나님은 그 수고는 보시고 잊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지, 하나님의 기억하심이 임할 때 온전한 회복을 이끌어 가십니다.
야곱은 말도 안 되는 조건에서도, 심지어 라반이 사흘 길이나 떨어져 손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니 결국 풍성하게 번성하였더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이 말씀을 붙잡고, 비교보다 은혜를, 시기보다 믿음을 선택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기억하심을 통해 변화되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 기도 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 앞에 저희를 불러주시고, 이자리로 나아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라헬이 사랑은 받았지만 비교와 시기심이 그 마음에 있었고, 야곱은 묵묵히 수고했지만 인정받지 못하며, 억울한 상황 속에서 살아간 모습들이 저희의 모습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저희도 때로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고,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을 때가 있지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억하실 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회복이 시작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보았습니다.
은혜의 주님
이제는 저희가 사람을 바라보며 불안해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 넉넉한 믿음을 주시옵소서.때로 눈물로 기도했지만 응답되지 않는 것 같았던 시간에도, 주님은 저희를 잊지 않으셨고, 저희 삶을 열어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눈물로 기도했지만 응답되지 않는 것 같았던 그 시간에도, 주님은 저희를 잊지 않으셨고, 때가 되었을 때 여전히 저희 삶을 열어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이제는 시기보다 믿음을, 비교보다 은혜를 선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기억하심 안에서 다시 일어서는 삶을 살아가게 인도하여주옵소서.
우리의 부끄러움과 억울함을 아시는 주님이시기에, 주님의 강한 손을 붙잡고 오늘 하루도 담대히 걸어가는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늘 우리와 함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