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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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의 비밀
[서론]
최근에 텔레비전을 보면서 깜짝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야구선수 이대호씨의 딸이 나왔는데 안타깝게도 아빠랑 정말 똑같이 생겼습니다.
이천수씨, 백종원씨 딸도 그렇더라구요.
보면서 “아, 이게 유전자의 힘이구나” 싶었습니다.
언젠가 제 아내도 저를 보면서 나이드니까 더 아버님이랑 닮아가는 거 같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전자가 외모에만 영향을 주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격, 성격, 심지어 삶의 태도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칩니다.
제가 목양하면서 참 안타까웠던 적이 있습니다.
두 자녀가 모두 우울증, 조울증 같은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부모에게서 온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안에는 지금의 우리를 만든 정체성의 뿌리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볼 말씀은 역대상 1장입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족보입니다.
1-9장까지 수많은 이름이 적힌 족보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때 이 부분을 그냥 건너뜁니다.
목회자로서도 설교하기 참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그러나 역대기를 쓴 저자는 단지 족보의 이름만 단순히 나열하려는게 아닙니다.
이 족보는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뿌리에서부터 다시 돌아보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 DNA를 발견하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론1]
먼저 오늘 말씀의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페르시아의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이들은 기쁨과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언했던 하나님이 이루실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옛날 이스라엘의 영광을 재현할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돌아온 그들은 먼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지었습니다.
무너졌던 성벽도 재건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그들의 기대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A급 호텔을 기대하고 찾아갔는데 C급모텔 수준이었다고 할까요?
이러다보니 페르시아에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고향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이방민족과 피가 섞여 우상을 섬기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같은 유대인이라고 볼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예언자들의 예언과 달리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 왕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페르시아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이스라엘의 영광은 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실망한 그들은 하나님께 물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기억하고 계시는 것인가요?”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 맞나요?”
이런 물음에 대해 하나님은 역대기를 통해 대답해 주십니다.
그 대답의 시작은 바로 족보입니다.
1장부터 9장까지 긴 족보가 등장합니다.
읽기 싫어지는 부분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의미가 있는 부분입니다.
이 족보는 아담에서부터 시작하여 포로기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로 마칩니다.
그 시작은 아담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첫번째 인간인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럼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 족보는 말합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처음부터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과 첫 인간을 만드신 그 순간부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온 인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수많은 인물들중 동그라미를 먼저 치십시오.
아담, 셋, 노아, 셈, 아브라함, 이삭, 야곱, 즉 이스라엘
이 사람들이 이스라엘까지 이르게 한 핵심 조상들입니다.
아담부터 노아까지 10세대입니다.
셈부터 아브라함까지 10세대입니다.
그럼 이들이 과연 완벽한 사람들이었을까요?
창세기를 읽어보시면 이들이 결코 완벽한 사람들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노아는 포도주에 취해서 수치스럽게 아들들에게 벗은 몸을 보여줬습니다.
아브라함은 두 차례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믿음이 없어 이삭을 기다리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야곱은 어떻습니까?
아버지를 속여 형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저같으면 여기서 족보를 중단하고 다른 사람들을 선택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자격으로 얻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이런 선택에 결코 후회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기억하고 계실까요?
포로기 이후 실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족보는 하나님의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족보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래, 나는 처음부터 너를 계획했고, 어느 순간에도 결코 너를 잊지 않았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대와 삶이 너무 간격이 클 때가 있습니다.
답답한 현실 속에 하나님을 믿지만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멀게만 느껴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이 족보를 보며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처음부터 입니다.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단 한순간도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조차도 하나님의 크신 섭리 안에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29절 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본론2]
이처럼 하나님의 선택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선택을 언제나 세상 기준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신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같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뭘 하시겠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연약한 자를 통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세상이 미련하다고 여기는 자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십니다.
4절입니다.
노아의 자식들이 셈과 함과 야벳입니다.
그러면 셈부터 소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야벳과 함의 족보가 소개된후 마지막에 셈의 족보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은 야벳과 함이 아닌 셈입니다.
셈의 족보에서 아브라함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식들도 그렇습니다.
28절입니다.
장자가 이스마엘입니다.
그래서 장자인 이스마엘의 후손이 먼저 소개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은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입니다.
또한 이삭의 두 아들 중에 에서가 장자이고, 에돔 족속의 조상이지만,
하나님은 야곱, 즉 이스라엘을 선택하십니다.
그러다가 43절부터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의 족보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왕이 있기 전에 이미 왕이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에돔이 이스라엘보다 더 앞서나갔고, 더 강력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돔 족속을 통해 구원을 이루시지 않으시고, 작고 약한 이스라엘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세상은 가진 자, 힘있는 자, 눈에 띄는 자가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세상에서 비주류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도 그렇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속국으로 있으면서 왕도 없는 초라한 신세입니다.
민족들은 흩어져 살고 있고, 이스라엘은 주변 민족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입니다.
세상의 비주류 중에 비주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비주류인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나사렛이라는 작은 시골에서 목수의 아들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셨습니다.
그 분이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일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세상 곳곳에서 비주류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약하고, 삶은 초라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함을 귀하게 여기시고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내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에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에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세상에서 보잘것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일지라도 하나님 손에 붙들리면 세상을 바꾸는 도구가 됩니다.
이 족보는 우리에게 그런 소망을 보여줍니다.
세상 기준에서 보면 비주류인 우리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우리가 주류일지 모릅니다.
[본론3]
그럼 이 족보의 목적지는 과연 어디일까요?
분명 9장 끝 부분에 보면 페르시아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족보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진짜 목적지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누가복음 3장에 나온 예수님의 족보를 보십시오.
가장 꼭대기는 아담, 그 위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역대상에 나온 족보는 일부분일뿐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이 족보의 중심은 아브라함도 아니고, 다윗도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체성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누구의 후손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제는 육적인 혈통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롭게 태어난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새로운 영적 유전자, DNA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를 그리스도의 족보 안에 기록하여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9절 은 말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우리 역시 이 족보의 어딘가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세상의 실패가 우리의 정체성을 좌우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진짜 나입니다.
우리는 그 분을 닮아가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족보를 통해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태초부터 우리를 계획하셨고,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선택하시며, 약한 자를 통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셋째, 하나님 백성의 족보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며, 우리는 그 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서론에서 우리는 외모와 기질도 부모를 닮는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안에 있는 우리가 진짜 닮아가야 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피로 다시 태어났고, 그분의 족보에 새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상이 말하고 규정하는 정체성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자신들의 잣대로 판단하며 때로는 실패자, 약자, 비주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떠한 경우에도 내 자녀다. 넘어져도 내 자녀고, 깨져도 내 자녀다.”
“나는 너를 항상 기억하고, 연약한 너를 통해 내 뜻을 이룬다."
혹시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 작고 초라하게만 느껴지십니까?
세상 앞에서 자꾸 주눅들고 낙심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족보를 다시 보고 그곳에 적힌 나의 이름을 확인합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족보의 진짜 비밀은 그 속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족보에 속한 자답게 그 DNA로 살아가는 함께걷는교회 식구들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