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평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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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19 조금 있으면,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 그 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21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22 가룟 유다가 아닌 다른 유다가 물었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는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려고 하지 않으시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23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
24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한다. 너희가 듣고 있는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나는 이 말을 너희에게 말하였다.
26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27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28 너희는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다시 온다고 한 내 말을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했을 것이다. 내 아버지는 나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29 지금 나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다.
[서론]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에게 남기신 고별설교의 한 부분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이별의 아쉬움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떠나시며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과 두려움 가운데서도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작별을 고하지 않으시고,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그들과 함께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십니다.
이 확신은 단지 위로나 추억의 말이 아닙니다. 실재하는 평화, 곧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입니다.
[요한복음의 특징]
요한복음은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복음)과는 다른 시각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조명합니다.
공관의미는 같은 관점으로 본다는 뜻, 시놉시스라는 단어이다.
공관복음이 예수님의 생애와 행적, 하나님 나라 복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정체성, 곧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깊은 신학적 묵상을 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 세례, 광야 시험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 대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요한 1:14)는 선언으로 시작하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 자신으로 증언합니다.
2세기 클레멘트는 요한복음을 '영적인 복음서'라 불렀고,
3세기 오리겐은 요한복음을 '복음서 중의 복음서'라고 칭했습니다.
4세기 어거스틴은 공관복음을 '육의 복음서'라고 부르며 요한복음을 '영의 복음서'라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존재와 삼위 하나님 사이의 깊은 관계를 드러내는 복음서입니다.
[제자들이 느꼈을 두려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은 늘 그분 곁에서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풍랑이는 바다에서 배를 탔을 때도,
먹을 것이 없었을 때도,
바리새인들의 적대적인 시선 속에서도,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곧 그들의 평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은 떠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순간 제자들의 마음은 무너졌을 것입니다.
마치 정전된 집 안에 홀로 남겨진 아이처럼,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누군가 손전등을 비추며 “괜찮아, 아빠야”라고 말해주는 순간, 마음은 순식간에 평안으로 바뀝니다.
저도 예배를 시작할 때, 혹시나 성도들이 없을까 하는 불안함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찬양 중 눈을 감고, 기도하며 이 불안이 사라지길 구합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성도들이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그제서야 안도와 함께 평화가 찾아옵니다.
예수님의 부재는 제자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빈자리를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셨고, 그분께서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하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단지 대체물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또 다른 방식으로 계속 함께 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1. 성부 하나님: 사랑의 근원]
본문에서 유다(가룟 유다가 아닌 다른 유다)가 묻습니다.
요한복음 14:22 “22 가룟 유다가 아닌 다른 유다가 물었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는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려고 하지 않으시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이 질문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요한복음 14:23 “23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지칭하는 표현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이 아버지라는 단어는 단순히 젠더적 개념이 아닙니다. 이는 사랑과 보호, 공급의 관계를 드러냅니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십니다.
우리가 상처받는 것은 대부분 사랑의 부재, 사랑이 결핍된 상태를 경험할 때입니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마음에 서운함이 자리잡고 그것이 곧 상처가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이시며, 그분의 사랑은 우리 삶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옵니다.
[2. 성자 예수님: 사랑의 실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는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7:21 “21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교회 공동체로 부름받았다는 것은, 단지 소속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합 안에 부름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될 때, 하나님과의 연합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본문 28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는 나보다 크신 분이시다." (14:28)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빌립보서 2:6–8 “6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온전히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사셨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살게 하셨다.
마태복음 6:10 “10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성부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시라면, 성자예수님은 사랑의 실천이시다.
예수님은 사랑의 실천자이십니다. 성부 하나님이 사랑 그 자체라면, 성자 예수님은 그 사랑을 몸소 살아내신 분입니다.
[3. 성령 하나님: 사랑의 기억]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26 “26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성령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단지 과거의 이야기를 회상하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현재형’으로 살아 있게 하시는 분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 때, 절망할 때, 외로울 때, 과거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떠올리게 하시고, 그것을 오늘 우리의 상황 가운데 적용하도록 이끄십니다.
과거시제를 현재시제로 바꿔 주십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반석이 되리라고 말씀하시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의 본질을 가르치시고, 간음한 여인에게 정죄 대신 생명을 주시고, 삭개오에게 구원이 임했다고 선포하신 그 일들…
그 모두가 성령 안에서 오늘도 우리에게 살아 있는 위로가 됩니다.
[결론]
예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것은 상황의 안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로 인한 평화입니다.
어제 목동에서 행사를 마치고 다른 분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목동의 삶을 이야기해 줍니다. 박탈감과 열등감, 하나님의 평화를 맛볼 수 없는 상태를 말해 주었습니다.
상황의 안락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 임재로 오는 그 평화를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시고, 성자 예수님은 그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며, 성령 하나님은 그 사랑을 기억나게 하시고 현재화 하시는 분이십니다.
참된 평화는 삼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 주어집니다. 우리가 그 사랑 안에 거할 때, 세상의 흔들림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4:27 “27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