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권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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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권위의 시작

본문: 요 7장 45-52절

찬송: 94장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네

<말씀의 문을 열며>

지난주 우리는 예수님께서 초막절 끝날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선포하신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말씀은 단순한 초청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이 우리에게 직접 임하신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말씀이 선포된 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오늘 본문은 그 대답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같은 말씀을 들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성전 경비병들부터 바리새인들, 그리고 니고데모까지. 오늘 우리는 이들의 서로 다른 반응을 통해 참된 권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권위를 어떻게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말씀 사건으로서의 권위>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46절)

예상치 못한 증인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성전 경비병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성전 경비병들을 우리는 단순한 경비원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 원어를 보면 이들은 '휘페레타이'라고 불리는 레위족 출신의 성전 봉사자들이었습니다. 종교적 교육을 받고 율법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상관들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이 한 마디에는 얼마나 깊은 감동과 확신이 담겨 있습니까?

말씀 자체가 가진 권위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감동한 이유는 예수님의 학벌을 보고 감동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놀란 것도 아닙니다. 오직 그분의 말씀 자체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권위의 첫 번째 요소입니다. 진정한 권위는 외적인 조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가진 능력에서 나옵니다.
지난주 우리가 함께 나눈 "성경에 이름과 같이" 말씀을 기억해보면, 예수님은 단순히 성경을 인용하신 것이 아니라, 성경이 증언하는 바로 그 말씀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성전 경비병들이 경험한 것은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직접 임하신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사람의 권위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리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그 말씀 자체가 권위이시고, 능력이시며, 생명이십니다.

<종교적 권위의 맹점>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47-48절)

조직의 논리

성전 경비병들의 증언을 들은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왜 그토록 사람들을 감동시켰는지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이것은 전형적인 조직의 논리입니다. "시키는 대로 해야지 뭘 안다고 나서느냐"는 식의 사고입니다. 그들에게는 진리가 무엇인지보다 조직의 질서가 더 중요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이것은 "우리가 더 많이 알고 있다. 우리가 더 경험이 많다. 그러니까 우리 말을 들어야 한다"는 엘리트주의의 전형입니다.

지식의 함정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누구보다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지식이 오히려 그들을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절대화했습니다. 기존의 틀에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신을 나타내실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닫아버렸습니다.
이것이 참된 권위의 두 번째 요소입니다. 참된 권위를 인식하려면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열린 마음, 하나님이 내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일하실 수 있다는 겸손한 인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 우리도 "그래도 내가 교회 생활을 더 오래 했는데...", "그래도 내가 직분이 있는데..."라는 생각으로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통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말씀하십니다.

<참된 권위의 구성 요소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51절)

니고데모의 용기 있는 목소리

이때 한 사람이 용기를 냈습니다. 니고데모였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동료들과 같은 편에 서 있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달랐습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이 한 마디로 그는 동료들의 부당함을 지적했습니다. 진정한 율법의 정신은 공정한 판단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니고데모의 이 목소리는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양심을 따랐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할 용기를 냈습니다.

참된 권위의 완전한 구성

이제 우리는 참된 권위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객관적 기초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권위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둘째, 주관적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조명과 열린 마음입니다. 성전 경비병들이 예수님의 말씀에서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공동체적 차원이 있어야 합니다. 니고데모처럼 공동체 안에서 양심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동료들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이것은 전형적인 편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편견을 뛰어넘어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지난주 우리가 함께 나눈 "베들레헴 오해”처럼, 우리의 부분적 지식과 선입견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참된 권위는 지위나 학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겸손한 마음, 그리고 성령의 조명에서 나옵니다.
우리 교회의 올해 목표인 성령 충만, 믿음 충만, 말씀 충만을 기억하십시오. 성령께서 주시는 분별력으로 참된 권위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아래서 겸손히 순종하며,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참된 권위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아래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지난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 말씀의 참된 권위를 성전 경비병들이 알아보았듯이, 우리도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올바로 인식하게 하여 주옵소서.
때로는 우리도 바리새인들처럼 기존의 틀에 갇혀 하나님의 새로운 음성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니고데모처럼 용기를 가지고 옳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진정한 권위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 아래서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중앙교회가 참된 권위 아래서 하나가 되어, 성령 충만, 믿음 충만, 말씀 충만한 교회로 부흥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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