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4: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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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삶 PLUS
생명의삶 PLUS
2025.01.14 화요일
요한복음 4:43~54
요한복음 4:43~54
요한복음 4:43-54본문원어주해강해 설교주제 설교QT 설교적용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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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찬송
오늘의 찬송
(새 545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경배와 찬양)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찬양할지라 주는 너의 큰 상급 큰 도움이시라 주의 얼굴 구할 때 주의 영을 부으사 크신 사랑 안에서 주를 보게 하소서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성경본문
성경본문
개역개정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우리말43 이틀 후에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44 (전에 예수께서는 예언자가 자기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함을 직접 증언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45 예수께서 갈릴리에 도착하시자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를 환영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께서 거기서 행하신 일들을 모두 목격했던 것입니다. 46 예수께서는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곳인 갈릴리 가나에 다시 들르셨습니다. 그곳에는 왕의 신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병에 걸려 가버나움에 있었습니다. 47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셨다는 소문을 들은 왕의 신하는 예수께로 가서, 오셔서 자기 아들을 고쳐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의 아들은 거의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4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표적이나 기사를 보지 않고서는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다.” 49 신하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와 주십시오.” 5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가 보아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 그는 예수의 말씀을 믿고 갔습니다. 51 신하가 집으로 가는 도중에 마중 나온 하인들을 만나 아들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52 그가 하인들에게 아이가 언제부터 좋아졌느냐고 묻자 “어제 오후 1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종들이 대답했습니다. 53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때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와 그의 온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돌아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었습니다. NASB43 After the two days He went forth from there into Galilee. 44 For Jesus Himself testified that a prophet has no honor in his own country. 45 So when He came to Galilee, the Galileans received Him, having seen all the things that He did in Jerusalem at the feast; for they themselves also went to the feast. 46 Therefore He came again to Cana of Galilee where He had made the water wine. And there was a royal official whose son was sick at Capernaum. 47 When he heard that Jesus had come out of Judea into Galilee, he went to Him and was imploring Him to come down and heal his son; for he was at the point of death. 48 So Jesus said to him, "Unless you people see signs and wonders, you simply will not believe." 49 The royal official said to Him, "Sir, come down before my child dies." 50 Jesus said to him, "Go; your son lives." The man believed the word that Jesus spoke to him and started off. 51 As he was now going down, his slaves met him, saying that his son was living. 52 So he inquired of them the hour when he began to get better. Then they said to him, "Yesterday at the seventh hour the fever left him." 53 So the father knew that it was at that hour in which Jesus said to him, "Your son lives"; and he himself believed and his whole household. 54 This is again a second sign that Jesus performed when He had come out of Judea into Galilee.
오늘의 말씀 요약
오늘의 말씀 요약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본 갈릴리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한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와서 아들을 살려 달라고 거듭 청하자, 예수님은 그에게 아들이 살아 있다고 하신다. 왕의 신하가 말씀을 믿고 가던 중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때 아들이 나은 줄 알고,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는다.
원어
원어
원어 묵상
원어 묵상
44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προφήτης ἐν τῇ ἰδίᾳ πατρίδι τιμὴν οὐκ ἔχει프로페테스 엔 테 이디아 파트리디 티멘 우크 에케이 | τιμήν티멘은 ‘명예’, ‘존경’을 뜻한다. 선지자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함을 명시한다. ἔχει에케이는 현재형으로, 선지자가 지속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상황을 나타낸다. 이는 일반적 진리를 표현하는 격언적 현재로 볼 수 있다. ἰδίᾳ이디아는 단순히 ‘자신의’라는 의미를 넘어 친밀하고 개인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본문은 참 빛이신 메시아가 자기 땅에 왔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는 1:11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47절 청하되 내려오셔서 … 병을 고쳐 주소서 … 거의 죽게ἠρώτα ἵνα καταβῇ καὶ ἰάσηται … ἀποθνῄσκειν에로타 히나 카타베 카이 이아세타이 … 아포쓰네스케인 | ἠρώτα에로타는 ἐρωτάω에로타오의 미완료 과거로, 계속 간청했음을 나타낸다. ἰάσηται이아세타이는 부정과거 가정법으로, 치유를 바라는 관리의 간절한 기대를 보여 준다. ἤμελλεν에멜렌은 μέλλω멜로의 미완료 과거로, ‘막 ~하려고 하다’라는 뜻이다. 아들이 죽음에 임박했음을 강조한다. 관리의 절박한 상황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동시에 보여 준다. 50절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πορεύου, ὁ υἱός σου ζῇ포류우, 호 휘오스 수 제 | πορεύου포류우는 πορεύομαι포류오마이의 현재 중간태 명령형으로, ‘가라’라는 뜻이다. 지금 즉시 가라는 명령이다. ζῇ제는 ζάω자오의 현재 능동태 직설법 3인칭 단수형으로, ‘그가 살아 있다’라는 뜻이다. 현재형은 아들이 회복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예수님 말씀의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효력을 강조한다.
주해
주해
본문 주해
본문 주해
43~45절 갈릴리에 도착하심예수님은 다시 갈릴리로 가신다(43절). 갈릴리로 가시면서,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44절). 그러나 이 구절은 새한글성경처럼,41) 선지자(예언자)가 고향에서는 존경(τιμή티메: 명예)받지 못한다고 예수님이 일찍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번역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 그런데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한다. 예수님이 명절(유월절)에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45절). 언뜻 보기에 이 반응은 선지자가 고향에서 높임 받지 못한다는 말씀과 상충하는 듯하다. 그러나 영접하는 것과 높이는 것, 존경하는 것은 사뭇 다르다. 그들이 예수님을 존경했거나 믿었다는 증거는 본문에서 찾을 수 없다. ‘영접하니’는 동사 δέχομαι데코마이의 번역인데, 단지 받아들였다고 번역할 수 있다(received[NASB]). 영접과 높임(명예)의 의미 영역이 의미심장하게 겹친다면, 저자가 이렇게 모순된 표현을 인접해 쓰지 않았을 것이다. 46~47절 왕의 신하의 요청예수님은 전에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리 가나에 도착하신다. 이번에는 다 죽어 가는 아들을 둔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46절). ‘왕의 신하’는 βασιλικός바실리코스의 번역이다. 이 단어는 종종 ‘귀족’(nobleman)으로 번역되지만, 갈릴리의 분봉 왕 헤롯의 종(부하)을 가리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헤롯은 신약성경에서 왕으로 불린다. 마 14:9; 막 6:14~29).42) 문제가 있는 곳에서 표적이 나타난다. 그는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가, 다 죽어 가는 자신의 아들을 고치시러 가버나움으로 왕림해 달라고 간청한다(47절). 48~49절 아버지의 간절함예수님은 전에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반문하셨는데(2:3~4), 이번에도 왕의 신하의 요청에 핀잔을 주시듯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48절). 이러한 반응은 마치 표적을 행하시기 전에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마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이 가나안 여인에게 하신 가혹한 말씀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다(마 15:21~28). 게다가 예수님은 표적을 봐야 믿으려는 사람들의 자세를 문제 삼으셨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들을 선별해 기록한 내용을 읽고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이 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이지만(20:30~31),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더) 복되다(20:29).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들의 퉁명스러운 대꾸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하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말한 것처럼(2:5),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살갑지 않은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이 죽기 전에 내려와 달라고 애원한다(49절). 여기서 대화의 초점이 바뀌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은 왕의 신하를 포함하는 ‘너희’를 문제 삼으셨지만, 왕의 신하는 죽어 가는 자기 아들을 다시 부각한다. 예수님이 그의 아들을 고쳐 주신 배경에는 이런 끈질김이 있었고, 그의 끈질김 뒤에는 아들을 향한 그의 사랑과 간절함이 있었다. 50~53절 온 집안이 믿게 됨아들을 향한 왕의 신하의 사랑과 끈기를 보신 예수님은 아들이 살아났으니 편히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고, 집을 향해 떠났다(50절). 표적이 나타나는 곳에는 믿음의 사람이 있다. 그는 가는 도중에 종들을 만나 아들이 살아났다는 말을 듣는다(51절). 아들이 낫기 시작한 시각을 묻자, 전날 일곱 시, 즉 오후 한 시에 열병이 떠났다고 말한다(52절). 예수님이 “네 아들이 살아났다”고 말씀하신 때가 바로 그때였다. 이에 왕의 신하와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는다(53절).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떠난 왕의 신하가 언제 종들을 만났는지는 알 수 없다. 가는 도중에 종들을 만났다고만 나온다. 가나와 가버나움은 3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였으니 종들을 만난 시점을 추정하기 어렵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다고 기록된 이상, 그 길은 불안과 초조의 시간이 아니라 평강과 확신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믿음은 소망하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히 11:1).43)왕의 신하가 믿었다는 말이 두 번 나온다. 그는 아들이 살아났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고(50절), 아들이 낫기 시작한 때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시점임을 알고 한 번 더 믿었다(53절). 두 구절에 사용된 헬라어는 같다(ἐπίστευσεν에피스튜센). 53절에는 그가 무엇을 믿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은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곧 예수님을 믿는 것이기에, 믿음의 두 단계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시는 주님의 능력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능력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이다(20:31). 54절 두 번째 표적예수님이 일으키신 첫 표적은 갈릴리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표적이었다(2:11).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것은 예수님이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셔서 베푸신 두 번째 표적이다. 표적에 순번을 매길 정도로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은 많았다. 예수님은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표적들도 많이 행하셨다(20:30). 첫 표적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은 것처럼(2:11), 두 번째 표적을 통해 왕의 신하와 그의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었다. 이처럼 표적은 믿음으로 이어져야 한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지만, 후대의 독자들은 예수님의 표적들을 기록한 요한복음을 읽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20:31).
본문의 메시지
본문의 메시지
47절에는 ‘이동’을 뜻하는 동사가 세 개 나온다. 예수님이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셨고,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갔고, 예수님께 가버나움으로 내려와 달라고 요청한다. 간절한 사람은 주님께 가기 마련이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일명 ‘가나안 성도’가 많은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먼저 교회가 자성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非對面)이 익숙해졌어도, 사랑하는 사람은 직접 만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절실한 문제가 있으면 누군가를 찾아가는 법이다. 왕의 신하는 자식이 죽어 가는 상황에서 예수님의 핀잔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자식의 문제는 본인의 문제보다 더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을 사랑하는 만큼 간절했고, 간절한 만큼 끈질겼다. 간절함은 기도 응답의 필요조건이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엘리야의 능력 있는 기도 뒤에는 그의 간절함이 있었다(약 5:17~ 18).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정량 평가(定量 評價)하시기보다 정성 평가(定性 評價)하시는 것 같다. 기도의 분량을 자랑하기 전에, 기도의 간절함을 따져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표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다소 다를 수 있다.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영접(환영)하는 사람이 있고(45절),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이 있다(2:23). 믿음도 다를 수 있다. 예수님 말씀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있고(50절),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있다(53절).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은(37절) 놀랍게도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이다(31절). 나의 믿음은 어느 단계에 있는가? 혹시 예수님을 배척하지 않는 수준의 믿음은 아닌가? 기도에 응답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나의 삶을 오롯이 바칠 믿음인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주님께 요청한 사도들처럼(눅 17:5) 우리도 믿음의 성장을 사모해야 한다.
각주
각주
41) “예언자가 자신의 고향에서는 존중받지 못한다”고 예수님이 증언하신 적이 있다. 42) NET 각주. 43)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being convinced of what we do not see”(히 11:1, NET).
강해 설교
강해 설교
강해 설교
강해 설교
진정한 믿음 일부러 사마리아 지역으로 가셔서 복음 전하는 일의 중요함을 가르쳐 주신 예수님은 다시 갈릴리 지역으로 가셔서 두 번째 표적을 보여 주십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들어 거의 죽게 된 것을 멀리서 고쳐 주신 표적을 통해, 진정한 믿음은 표적과 기사를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주님을 믿는 것임을 밝히 알려 주십니다. 다시 갈릴리(43~45절)예수님은 이틀간 사마리아 지역에 머무르신 후 갈릴리로 가셨습니다(43절). 갈릴리에 도착하기 전에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십니다(44절).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환대하고 동거하고 믿었으나, 정작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거부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복음서 서두에서 이미 예수님에 대해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고 소개했습니다(1:11). 독자들은 앞으로 상황이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으리라고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갈릴리에 이르렀을 때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 일행을 영접했는데, 요한은 그 이유가 명절 중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하셨던 일들을 그들이 보았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45절). 이 대목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핵심을 잘 보여 줍니다. 이제 갈릴리 사람들도 수가성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직접 만나 믿음으로 반응할 기회를 얻은 것이 확실합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배척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구세주가 필요한 모든 이를 찾아가셨습니다. 어떻게 믿을 것인가(46~54절)예수님은 갈릴리 가나, 즉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첫 번째 표적의 장소에 이르셨습니다(46절). 왕의 신하가 이 소식을 듣고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찾아옵니다(46절). 그는 자신의 아들이 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으므로 예수님께 가버나움으로 내려오셔서 고쳐 달라고 애원합니다(47절).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차가운 책망에 가까웠습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48절). 여기서 우리는 갈릴리의 기대와 예수님의 기대가 충돌하는 것을 봅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적과 기사를 보고 놀라면서 예수님을 환대했으나, 그것은 오로지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 그리스도에 대한 반응이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내려오셔서’ 고쳐 주실 것과(47절) ‘죽기 전에 내려오실’ 것(49절)을 주문하는, 다시 말해 주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얻어 내려 하는 추종자를 바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이든, 어디서든 원하시는 대로 행하실 수 있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바라신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이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50절). 신하는 이 말씀을 믿고 돌아가든지, 아니면 이전 자세를 고수하며 예수님께 아들이 죽기 전에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서 고쳐 달라고 요청하든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그 신하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돌아갔습니다(50절).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순간에 그 아들의 병이 나았고, 그의 온 집안이 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51~53절). 믿음은 내가 원하는 신을 바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어떻게든 하실 수 있는 주권자 하나님을 신뢰하며 모든 것을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들도 구원이 절실한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표적과 기사를 보고 흥분한 군중이 아니라, 기적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를 보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기적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주권자임을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토록 보기 원하시는 믿는 자로 함께 섭시다.
주제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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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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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기대하시는 참된 믿음 핵심 주제: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적을 본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믿음을 보인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본문은 왕의 신하가 경험한 기적을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참된 믿음의 핵심이 무엇인지 교훈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예수님이 갈릴리에 돌아오시자 그곳 사람들이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와 다른 상황이 전개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한 사실을 말하고 나서 더 이상 그들에 대한 언급 없이 왕의 신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했던 사람들 중에는 기적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의 신하가 주님이 기대하시는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왕의 신하는 죽어 가는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구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의 치유를 간구하는 그에게 ‘아들이 살았으니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신하는 아무런 의심 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나서 그분을 믿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 기적이 일어나기 전,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은 크든 작든 기적을 보고 싶어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다양한 필요가 있기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우리의 문제들을 기적 같은 방법으로 해결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기적에 의존하는 믿음은 실망과 불평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보면서도 늘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을 따르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그분의 말씀에 집중하고 그 말씀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기대하십니다.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왕의 신하는 아들이 살았으니 돌아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자기의 판단과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하인들을 만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시점에 아들이 나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기적으로 인해 그는 더 큰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인간의 조상 아담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을 의심했고 불순종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눈으로 본대로 판단하고, 그 판단을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신뢰했습니다. 우리는 합리적인 사고, 이성적인 판단을 추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모든 사고의 중심에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생각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한계를 초월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랜 신앙생활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성장하지 않아 답답해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왕의 신하는 믿음이 성장하는 지름길을 가르쳐 줍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해 보라고 권합니다. 믿음의 순종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주님의 권능을 더 진하게 맛볼 것이고, 믿음이 더 크게 자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따를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믿음은 그분의 말씀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권능을 경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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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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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에 빠진 신앙을 경계하라 _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동기는 다양합니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교회에서 주는 간식 때문에 교회에 나온 사람도 있었고, 청소년기나 청년 때는 친구나 이성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온 사람도 많습니다. 병이 낫기를 바라며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필요는 출발점입니다.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_ 예수님이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에서 첫 번째 표적을 행하셨기에 사람들은 또 다른 표적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중한 병에 걸린 아들을 둔 왕의 신하 역시 기적을 기대하며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46~47절). 하지만 주님은 표적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경계하셨습니다. 표적은 신앙의 시작점이 될 수는 있어도, 신앙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표적은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도구일 뿐입니다. 참된 믿음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_ 예수님은 갈릴리 사람들을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책망하십니다(48절). 이는 표적에 의존하는 믿음을 벗어나 말씀을 신뢰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함을 교훈합니다. 성도는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뿌리를 기적이나 표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표적은 우리를 믿음으로 인도하는 통로일 뿐,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입니다. _ 예수님은 왕의 신하에게 아들이 나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왕의 신하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갑니다(50절). 말씀만을 믿고 행동으로 옮긴 왕의 신하는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믿음의 본질은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제자 도마에게 “네가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지 않았어도, 확인하지 않았어도 믿는 것이 참믿음입니다. _ 집으로 돌아가던 신하는 길에서 종들을 만나 아들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나은 때가 예수님이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고 말씀하신 때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51~52절).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능이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능력 있게 역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말씀의 능력을 믿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_ 왕의 신하는 주님 말씀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온 집안과 함께 예수님을 믿었습니다(53절). 아들이 나은 것도 은혜지만,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은 것이 더 큰 은혜입니다. 한 사람의 믿음과 순종으로 온 집안이 주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사람과 그 가족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님과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며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_ 우리의 신앙은 표적에 머무르지 말고, 말씀에 대한 신뢰로 나아가야 합니다. 표적은 믿음의 출발점일 수 있지만, 목표는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으며, 그 말씀을 신뢰하고 따를 때 우리의 삶에 변화와 은혜가 임합니다. 왕의 신하처럼 보지 않고도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우리와 우리 가정이 주님의 구원과 은혜를 깊이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
적용
묵상과 적용
묵상과 적용
일본 도쿄의 임페리얼 호텔은 미국 건축가 프랭크 라이트가 지었다. 4년 동안 호텔을 짓기로 했는데 꼬박 2년간 기초공사만 했다. 그러자 일본의 건축계와 언론은 비싼 돈 들여 외국인을 불러와서 헛일만 한다고 난리였다. 기초공사를 그렇게 오래 끄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임페리얼 호텔의 진가는 공사가 끝난 지 52년이 지났을 때 드러났다. 도쿄 대지진 때 도쿄 시내의 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큰 피해를 보았지만 임페리얼 호텔은 유리창 대여섯 장만 깨졌을 뿐 튼튼하게 서 있었다. 성경에는 ‘행하라’는 말씀이 자주 나온다. 구약성경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서도 자주 ‘행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너희는 내 계명을 지키며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22:3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눅 10:28). 예수님이 주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실행 지침인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5장에서 시작해 7장까지 이어진다. 이 산상수훈의 결론이 바로 행하라는 말씀이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열매가 나타나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튼튼한 기초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비유하면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결론지으셨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substance)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evidence)”(히 11:1)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단호하게 ‘믿음장’을 시작한다. 지금은 안 보이지만 결국 실체가 된 증거가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이렇게 믿음은 공정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예!”(Yes!)가 되는 힘이다(고후 1:20). 내가 아니라 우리 주님이 하신다. 이런 믿음이 바로 실행의 원동력이다.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 실행이 없는 비전은 비극이다! 원용일, 「일터에서 만난 예수님」(브니엘)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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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성 목사 - “기적을 구했으나 순종을 배웠다” http://gsmch.org [말씀] → [주일 예배]로 들어가서 검색 창에 제목 ‘구했으나’로 검색. 송태근 목사 - “길 위에 서 있는 믿음” https://www.samilchurch.com [예배와 말씀] → [담임목사 설교]로 들어가서 ‘검색’ 클릭, 검색 창에 제목 ‘길 위에’로 검색. 김정석 목사 - “넓혀진 믿음의 터 위에 일어난 기적” http://klmc.net [광림 예배] → [예배] → [주일 예배]로 들어가서 검색 창에 ‘넓혀진’으로 검색. 조현삼 목사 - “믿고 가라” https://www.sls.or.kr [SLS TV] → [주일 / 수요 예배 설교]로 들어가서 하단 검색 창에 제목 ‘믿고 가라’로 검색.12명이 아멘하고, 1명이 소중한 묵상을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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