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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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원리와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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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믿음의 특징
믿음은 사람을 강하게 한다. 개인의 신념, 그가 믿고 확신한 바는 그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의 말과 행동을 변화시킨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믿음은 강하여질 뿐만 아니라 강하게 한다. 그 삶의 방식과 태도는 그의 믿음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음을 통해 그는 강한 의지, 열정,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마음, 위기를 이겨내는 태도를 견지하게 된다. 뿐만아니라 그러한 강함을 통해 결국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믿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왜 그러한가.
우리의 믿음으로 하나님은 어떻게 영광을 받으시는가. 하나님은 그 분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바르고 순전하게 드러낼 때 영광을 받으신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바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이 가장 영화롭게 드러나는 순간은 언제인가. 그것은 일이 형통하고 술술 잘 풀릴 때가 아니라, 위기와 시험, 시련의 순간에 찾아온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언제인가. 축구 경기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처음부터 저돌적인 기세로 상대방을 몰아 붙이면서 5분마다 꼬박꼬박 골을 넣기 시작하더니 전반전이 끝나기전에 5:0이 되었다. 그렇다면 굳이 후반전을 볼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2:0으로 지고 있던 경기를 후반전에 2:2로 따라 잡더니, 종료 휘슬을 불기 1분전에 역전골을 넣고 승리하는 경기는 어떠한가? 똑같이 이기는 경기이고 앞의 경기는 매우 큰 점수차로 이긴 경기이다. 하지만 굳이 그 경기에서 선수들의 역량이나 끈기, 의지, 열정을 찾을 수 있겠는가?
축구 경기에 우리의 믿음을 비할 바가 아니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이러한 시련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깊이 우리 삶에서 반복되는 문제와 위기, 도저히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들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은 오늘 우리 삶에 주의 일을 행하신다. 실수가 없으신 완전한 그 사랑으로.
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에는 계속되는 실수와 실패, 크고작은 문제와 어려움의 연속이다. 다른 사람들은 곧잘 해내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잘 안된는것인지, 이것밖에 할 수 없는 거대한 벽앞에서 매일매일 한 숨 쉬며 좌절하고 무너져 내린다. 그럴 때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는가.
상황과 한계앞에서, 나의 무능함 앞에서 결국 주저앉아 버리지 않는가. 얼마전 티비 프로그램에 중년이 된 은둔형 외톨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게 되었다. 20대에 이러저러한 삶의 좌절을 맛보고 세상이 두려워 사회로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 갇혀서 사람들을 만나지않고 자기만의 감옥에 갇혀서 사는 사람들. 매일매일 시간을 흘려 보내다보니 20대의 청년은 어느새 40대의 중년이 되어버렸다. 오늘 당장이라도 새 삶을 시작하고 싶지만 도저히 세상으로 나갈 용기가 없다고 말하는 그들을 보며 마음 저 깊은 곳이 아려오는 통증을 느꼈다.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의 깊은 아픔은 아닐런지.
2. 우리는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17 NKRV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왜 하나님은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만 살 수 있다고 하셨을까. 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일까. 믿음만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드러내는 통로가 바로 우리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삶의 수많은 좌절과 고통속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가 없다.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만약 우리에게 선택이 있다면 욥의 고백처럼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은혜로 주어진 구원,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다. 누군가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는 다면 이러한 고통스러운 인생속에서 짧은 위로와 행복을 잠깐씩 맛보다가 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는 결국 죽음의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며 죽음의 레이스를 펼치는 죽음의 마라토너들이 아닌가. 영원한 승자는 아무도 없다. 끝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한 때 최고의 권력자, 최고의 영광스러운 승리, 감당할 수 없는 부를 누리는 자라고 할지라도 그 인생의 끝은 결국 죽음일 뿐이다. 죽음앞에 자유로운 인생이 있는가.
사람에게 죽음은 정해진 것이고, 그 이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히브리서 9:27 NKRV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러한 인생들을 위한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은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우리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성실하고 부지런히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 의해 일정한 정도의 삶의 보상과 열매들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사람들의 인정과 평판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그로 인해 자기 만족과 삶의 성취를 맛보며 사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정 수준으로 주어지는 삶의 보람과 만족이 과연 우리의 영원한 삶과 죽음이후의 심판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고려해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진리를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며 스스로 깨닫고 교훈을 받아, 그로인해 하나님을 알고 그분께 나아오길 원하신다. 그 영광을 알고 그로인해 하나님을 경배하며 유한한 이 삶을 통해 무한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영원하신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감탄하고 감격하며, 이 유한한 삶 속에서 그분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도록 계획하시고 인도하신다.
그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매일의 삶의 치열한 실제이며, 현재이다. 똑같은 일을 하지만, 겉으로 보이기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영원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가인과 아벨의 예배를 우리는 떠올려볼 수 있다. 똑같은 예배이지만,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지만 하나님은 왜 아벨의 예배만 믿음으로 드린 것이라고 열납하셨을까. 우리의 삶에서 동일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삶, 겉으로는 하등 차이가 없어보이는 삶 속에서 하나님은 과연 무엇을 보고 계신 것인지 우리는 깊이 묻고 생각해봐야한다. 분주히 움직이는 삶 속에서 우리의 생각은 무뎌지고 게을러질 수 있다. 지식에까지 새롭게하심을 입은 새사람으로 우리는 날카로운 지성과 새로운 판단 기준을 가진 전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골로새서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3. 삶의 향방을 결정하는 열쇠: 믿음
우리는 떠밀려 가는 삶을 살 수도 있다. 분명한 방향이 없으면 이리저리 요동치며 표류하는 배처럼, 바람이 부는대로, 파도가 치는 대로 떠밀려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불안하고 오늘의 삶은 만족스럽지가 않다. 과거는 후회되고 미래는 알 수 없고 현재는 고통스러운 것이 삶의 현실이다. 멀리서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비극인 것이 우리 삶의 현실 아닌가. 모두들 자신의 내면을 다 드러낼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 적개심과 두려움으로 정신과의 상담과 약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 매년마다 늘고 있고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식을 키우며, 결혼 생활을 하며, 삶에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어떻게해야 좋으냐고,
청년부를 같이 보낸 자매에게 닥친 슬픈 소식,
마음도 얼굴도 고왔던 그 자매는 수줍게 처음 예수님을 믿고 교회 공동체에서 사랑받으며 성장했다. 삶의 여러 이해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딛힐때마다 가끔씩 연락이 왔었지만 각자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고 결혼을 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지는 못했다. 카톡 사진으로 종종 결혼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우연히 오랜만에 연락할 일이 생겨 프로필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 연락을 했다. 아기가 중환자실에서 100일을 맞이한 사진, 작은 비석 하나에는 태어난 날짜와 하늘나라로 간 날짜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사진,
아마도 쌍둥이 중 한 아이는 하늘 나라로 가고 한 아이는 살아있지만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연락을 했다. 아이가 뇌손상으로 정상적인 발달을 하기 힘들고 예후가 좋지 않다는 소견을 들었다고 했다. 어떤위로의 말을 건네야할지 막막했다. 기도하겠다는 말은 너무 형식적인 위로 같았다. 그 밤에 한 참을 울었다. 아침에 되어 눈을 떴을 때도 또 한 참을 울었다.건강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자매는 어떻게 기도해야 좋을 지 몰라서 기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채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를 위해 작은 선물을 보내고 그리고 기도하겠다는 약속을 남긴채 또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같이 아파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나는 너무나 무기력하고 철저히 무능했다. 하지만 아이가 건강히 자라기를, 자매에게 새 소망과 새 힘을 주시기를,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살 수 없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매일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가 없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4. 믿음에 대한 오해
믿음은 짜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로마서강해p288)
마가복음 11:22–24 NKRV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믿음의 오해-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다. 믿음의 근거를 오해한다(믿음의 근거를 자기 자신에게 둔다),믿음을 자기 암시의 방식을 따라 자기 자신을 믿는다고 오해한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그것을 명할 수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믿고 그것을 받은 줄로 여기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예전에 부흥회에서 있었던 일 중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받고 싶은 월급의 금액을 적은 후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실 줄로 믿고 그에 대한 십일조를 미리 하는 것이다. 한 달에 1000만원 벌고 싶은 사람은 100만원을 미리 십일조로 내고, 500만원벌고 싶은 사람은 50만원을 미리 십일조로 헌금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믿음인가? 이것은 사이비 이단에서 하는 종교행위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다.
5. 믿음의 결국
믿음의 결국은 무엇인가 벧전1:9
베드로전서 1:9 NKRV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하나님은 분명하게 알려주고 계신다. 믿음이 결국은 문제의 해결이나, 이 땅에서의 형통이나 성공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이라는 사실을!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다. 우리가 가장 원하고 바라는 것,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종국에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영혼의 구원이다. 이것은 우리의 소망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소원이자 하나님의 의지이고 하나님의 약속이자 하나님의 결정이다. 그러기에 반드시 이루어지며 결코 실패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구원을 약속하셨다. 이것은 단순히 죽음이후에 천국에 간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단순한 도식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이 땅에서, 믿음으로 구원하시고 영화롭게 하시고 영광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의 방법이다. 믿음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지금 당장 이 순간부터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한다. 실제로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이다. 우리의 영혼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엄청난 변화가 생명을 확장시키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역사하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철학자들의 공통된 주제와 물음이 바로 사람은 왜 사는가? 였다. 우리는 도대체 왜 태어나서 무엇때문에 사는 것인가. 단순히 동물들처럼 종족을 번식시키고,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인가? 혹은 우리 나라의 속담처럼 위대한 업적이나 흔적을 남기고 어딘가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남기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삶을 연명하며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인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사람들은 행복, 자신의 만족에서 찾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우리는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구원의 길을 스스로 찾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시기 전까지, 하나님의 성령이 진리를 깨닫게 하시기 전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내면에 들어와 깊이 뿌리내리기 전까지 우리는 결코 그 길을 알 수 없다. 스스로는 구원할 수도 구원받을 수도 없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구원의 길이 바로 믿음이다. 이것은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다!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할렐루야! 감격하며 감사하며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 앞에 그 어떤 길이 놓여있다할지라도,
“내 영혼 평안해 평안해” 찬양하면서 말이다.
4. 마무리
한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설교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단순한 삶이 주는 기쁨. 하나님의 임재 연습
요한복음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작은 일부터 시작하라. 오늘부터 시작하라. 일상의 일부터 시작하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연습하라. 하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임재안에서 일상을 살아가라.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이 세상보다 크시다. 그분은 반드시 우리의 삶 속에서 주의 일을 이루신다. 매일 우리의 삶에 주의 일을 행하신다. 오직 믿음으로!
찬양
“다시 밤이 없겠고”
오늘 우리 삶에 주의 일 행하시네
실수가 없으신 완벽한 일하심으로
마침내 그날에 주 약속 이루시네
천지를 지으신 온전한 그 말씀으로
다시 밤이 없겠고 햇빛도 쓸데없으리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빛 되시네
다시 눈물 없겠고 슬픔과 고통 없으리
하나님과 우리가 영원히 함께 사네
하나님과 우리가 영원히 함께 사네
-다시 밤이 없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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