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2:36-46 죽음을 자초한 시므이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5 views
Notes
Transcript
왕상 2:36-46 죽음을 자초한 시므이
찬송가 271장 나와 같은 죄인 위해
반역에 참여했던 아도니아와 군대 장관 요압을 처형하고 제사장 아비아달을 추방한 솔로몬은 마지막으로 시므이에 대한 징계를 시작하였습니다. 1. 기회 주실 때에 근신하고 회개하는 삶을 삽시다(36-38) 시므이는 바후림에 사는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 초대 왕 사울을 배출한 자기 지파에 대해 상당한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사울을 이어 왕이 된 유다 지파의 다윗에 대해 큰 불만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불만과 적대감을 서슴지 않고 표출했던 사람입니다. 실제로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갈 당시에 온갖 모욕과 비방으로 다윗을 저주하였었습니다.다윗은 당시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 시므이를 처단하지 못하였지만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처단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9절). 그래서 솔로몬은 그 죄를 물어 다윗의 유언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주거 제한을 하여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도록 약속을 했습니다. 죽음 대신 주거 제한은 은혜였기에 시므이는 이 명령을 흔쾌히 받아들여 예루살렘에서 근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예루살렘은 오늘날 서울과 같이 큰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기껏해야 가로/세로 넓이가 1.5제곱킬로미터에 지나지 않았다고 학자들은 말을 합니다. 정사각형 형태로 말하면 가로와 세로가 각각 1300미터가 안 되는 작은 도시였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주거제한 조치를 통해, 앞으로 시므이의 행동을 계속 주시하고 있겠다는 솔로몬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시므이는 예루살렘에서 9km가량 떨어진 바후림이란 곳에 살고 있었는데 베냐민 지파의 요충지였습니다. 솔로몬은 거기에서의 그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이곳 손바닥 보듯이 들여다볼 수 있는 예루살렘에 머무르게 하여 반란의 씨를 아예 없애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2. 재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속입니다(39-43) 시므이는 삼 년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솔로몬 왕과의 약속을 잘 지켰습니다. 그런데 시므이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여 간 사건이 생깁니다. 시므이는 솔로몬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종을 찾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벗어나 가드에 가서 그의 종을 데려옵니다. 이 소식이 솔로몬에게 들어갑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도 동의한 약속을 어겼기에 죽임을 당해야 함을 말합니다. 시므이가 눈앞에 보이는 욕심에 이끌리어, 그가 준수해야 할 약속과 의무를 지키지 못함으로써 죽임을 맞이합니다. 삼 년 동안 약속을 잘 지켰는데 욕심 그 때문에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약속을 어기게 됩니다.
시므이가 갑자기 솔로몬과의 약속을 어기고 가드 지역으로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37절 말씀에서 그 답을 찾아보면, 솔로몬 왕은 시므이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면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말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가드는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지 않고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쩌면 시므이는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지 않고 가드를 여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역시 ‘삼 년’이라는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3년이나 지났는데 솔로몬이 그 약속을 계속해서 지키고 있겠는가 하는 느슨해진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문제로 잠시 예루살렘 바깥에 다녀오는 정도라면 그리 대수롭지 않게 봐줄 것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러하더라도 일단 솔로몬 왕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허락을 받고 다녀왔다면 별 일이 없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찌돼었든간에 시므이는 작은 것에 집착해 큰 것을 잃었습니다. 두 종은 재산적인 가치로 보아 시므이에게 매우 중요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목숨보다 귀하지는 않는 법입니다. 또한 시므이는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말라는 말을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행동했습니다. 시므이가 어떻게 해석하건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뜻으로 명령이 내려졌는지 솔로몬 편에서 이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시므이는 초기에 왕권을 강화하려는 솔로몬의 강력한 의지를 너무나 과소평가했다는 것입니다. 3년이 아니라 30년이 지났어도 시므이가 예루살렘을 떠나기만 하면 솔로몬은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피를 흘렸을 것입니다. 열왕기 기자는 46절에서 솔로몬의 왕위계승과 왕권확립에 대해 짧게 총평을 내립니다.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오늘 본문에서 시므이는 ‘삼 년이 지나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시므이는 3년이 지났지만 결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3년이 지나니까 솔로몬이 베푼 은혜를 어기고 죄에 대해 느슨해지면서 타협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교회에 발을 들여놓고 3년이 지나면 온갖 요령과 매너리즘에 젖어들기 시작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는 기도와 봉사와 교제의 안일함에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들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어느 정도 지키고 있다는 위안을 갖기도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다시금 곱씹으면서 우리의 오랜 신앙 연수가 하나님 말씀과 신앙생활을 오히려 왜곡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늘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조금 더 편해지려고 하고 조금 덜 손해보려고 하는 우리 자신 중심의 마음이 때로는 우리의 신앙을 갉아먹는 죄된 습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늘 이러한 마음이 들 때마다 우리의 죄를 위해 피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 앞에 엎드리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3. 공의를 행합시다(44-46) 약속을 어긴 시므이에게 솔로몬은 44 ‘네가 네 마음으로 아는 모든 악 곧 내 아버지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보내시리라’ 하심으로 솔로몬 왕은 자신을 단순히 하나님의 공의의 집행자로 간주할 뿐이고, 시므이를 처형함은 자신의 악의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요구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왕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하고, 브나야에게 명령하여 시므이를 죽입니다.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집니다. 곧 공의를 행함으로써 다윗 왕가는 시므이의 저주에서 벗어나 복과 번영을 영원토록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한 죄인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기를 바라면서, 징계를 유보하십니다. 심판의 지연은, 돌이키고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은총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 뜻을 받들어 회개하며 근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완악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선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악용하여 더 큰 죄를 짓는 기회로 삼아,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악용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에 그분의 공덕은 완전하시며 모든 길이 공평하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신 32:4).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공의를 세우기 위하여 역사하시며(사 51:4), 또한 크고 작은 일을 공의롭게 판단하십니다(렘 11:20; 시 146:7). 그리고 마지막 날에 악인과 선인을 심판하실 때에도 오직 공의로우심을 만천하에 나타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공의를 행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라는 의미입니다. 공은 하나님의 계명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일이고, 의는 사람들과의 도덕적 관계에서 정당한 관계입니다. 공의로운 치리는 지도자의 권위와 단체의 기강을 튼튼하게 해줍니다. 인간의 한계 그 때문에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의를 행해야 할 때 하지 못하면 둑 터진 댐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곪아 터진 것을 방치하면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과감히 수술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할 수 있는 한 사랑의 수고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권위가 식어 가고 성도와 교회의 참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때, 성도 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자발적인 희생적 삶을 살아가면서 공의를 행하도록 합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를 처음 불러주신 때를 기억합니다. 그 누구보다 죄 많음을 깨닫고 낮아지고 낮아지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신앙의 햇수를 거듭하면 할수록 요령과 매너리즘에 매이지 않게 하시고 나 중심으로만 신앙을 해석하지 않게 하시고, 무엇이 이 땅에서 더 가치가 있는지를 말씀 앞에서 기도 가운데 분별하여 날마다 새로운 삶의 기쁨을 경험해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