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마 5:1-12)

팔복시리즈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9 views
Notes
Transcript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1–12 NKRV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우리 장로교가 신앙의 표준으로 삼고 있는 신앙고백서중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제 1조 1항과 2항이, 가장 중요한 헌법의 기초가 되듯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문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그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으로 인하여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소요리문답 1문에서는, 분명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군중들을 향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즐거움과는 반대가 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 “애통하는 자”, 곧 슬퍼하는 작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슬퍼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빌립보서 4:4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4:4 NKRV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성경은, 이처럼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 기뻐해야 할 것을 또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애통하는 자가 복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쁨’과 ‘애통’이라고 하는 이 상충되는 두 단어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모순되지 않는지, 본문의 내용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애통하는 자는 복있다”라고 말씀하실 때, 왜 “애통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슬픔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슬픔은, 권력 앞에서 무력하거나 소중한 사람이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 자신의 죄를 깨달을 때, 악이나 악한 세력 앞에서 무력한 자신을 볼 때,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했는데, 그들의 그 슬픔은 이사야 61장에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히 이사야 61:1-3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61:1–3 NKRV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의 슬픔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자신들의 나라가 멸망당했고, 하나님의 성전이 이방인들의 손에 의해서 멸망당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로 인해 오는 슬픔이었습니다.
또한 이방인들의 손에 의해서 압제 당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없는 답답한 현실로부터 오는 슬픔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 61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러한 슬픔 가운데 방치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압제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반드시 그들을 구원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슬픔은 위로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애통’도 그러한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이라고 하는 나라에 의해서 자신의 나라가 멸망당하고, 그들의 손에 압제당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에 애통해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젠가 하나님께서 그들의 대적자들을 압제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따라서 애통하는 자는, 대적자들에 의한 압제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속에서도, 애통하고 탄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에스더서 4:3의 말씀을 보면,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이 유대를 정복했을 당시에, 총리급이었던 하만의 계략으로 유대인들이 모조리 몰살당하게 될 상황에서 유대인들이 보인 태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에스더 4:3 NKRV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그들은 단순히 애통하기면 한 것이 아니라, 금식하고 굵은 베 옷을 입었습니다.
금식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행위이고, 굵은 베 옷을 입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우리의 애통은, 우리의 내면이나 외부를 향해선 안되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애통이 되어야만 합니다.
대구 동신교회를 담임하시는 권성수 목사님은, 이 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분단과 이별, 굶주림과 죽음, 가난과 질병, 사고와 실패 등으로 삼천리 방방곡곡이 울부짖음으로 가득한 듯하다. 이 모든 눈물이 그 자체로는 복된 눈물이 아니지만, 하나님만 향하면 복된 눈물이 된다. 하나님을 향해서 우는 눈물은 그것이 어떤 눈물이건 복이 있다는 말이다.

하루는 저희 막내가 식탁 밑으로 들어갔다가 일어나면서 머리를 박았습니다.
얼마나 아픈지 악을 지르면서 울더라구요.
제가 놀래서 뛰어나왔는데, 저를 보면서 더 크게 울더니 두 팔을 저를 향해 벌렸습니다.
안아달라는거죠.
그래서 제가 얼른 달려가서 괜찮냐고 하면서 안아줬더니 눈물을 금방 그쳤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애통하는 자가 복있다는 말씀을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여전히 슬픔이 있고 아픔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기뻐해야 하지만, 꼭 기뻐하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사도 바울도, 앞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했지만, 그는 또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2:4 NKRV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9:1–3 NKRV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빌립보서 2:27 NKRV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바울도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지만, 그의 삶에 슬픔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우리의 슬픔을 듣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슬퍼할 수 있지만, 그 슬픔은,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말씀에서도 애굽의 종으로 고난받던 이스라엘 민족의 탄식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23 NKRV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해내셨습니다.
나아가, 그들을 억압하는 애굽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은, 지금은 슬퍼하나, 그들의 슬픔은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으로 변하게 될 것이고, 결국 그들의 애통은 위로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모든 슬픔을, 하나님께 토해내시기 바랍니다.
마음껏 울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우리의 탄식을 들으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 NKRV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진실로 삶의 슬픔 속에서도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며 견뎌내는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위로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까, 유대인들의 슬픔이 잘 기록되어 있는 이사야 61:1-3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사야 61:1-3의 말씀은 놀랍게도 누가복음 4:18-21에서 예수님의 입을 통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나게 됩니다.
누가복음 4:18–21 NKRV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유대인들의 슬픔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위로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이 온통 슬픈 일들로 가득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 모든 슬픔 가운데 의지할 분이 계시다는 특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플리머스 성 찰스교회에서 오랫동안 목회를 했던 로버트 호커 목사님은,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한 질병으로 인해서 목회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 질병으로 인해 목회를 내려놓으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중한 질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늘에 닿는 기도 내가 병들었을 때

존귀하신 구속자시여,

내게 자주 찾아오셔서 주님 은혜의 말씀을 허락해 주소서.

주의 지혜롭고 자비하신 섭리 가운데서 내가 질병과 고난,

시련을 겪게 될 때도 주께서 내 곁에 함께 계셔 주소서.

내 마음속에 주님을 향한 아름다운 기억들이 떠나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온갖 슬픔 속에서도

주의 위로가 내 영혼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그는 중한 질병으로 인해서 슬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살았지만, 주님의 말씀으로 슬픔을 이겨내기를 원했고, 또 실제로 슬픔을 이겨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의 위로가, 그의 영혼을 날마다 새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주님은 애통을 금하지 않으셨습니다.
삶의 슬픔으로 인해 마음껏 슬퍼해도 괜찮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그 슬픔을 위로하실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슬프지만, 주님은 언젠가 반드시 우리의 슬픔을 위로하실 것이고, 우리의 대적자들에게는 보복해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17 NKRV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요한계시록 21:4 NKRV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우리를 슬픔 가운데 위로해주실 주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모든 슬픔을 이겨내시고, 마침내 주님 안에서 참된 위로를 얻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