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 죄인이라고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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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언제 자신이 죄인이라고 느껴지십니까?
저는 조건없는 사랑을 받을 때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한 없는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부모에게 잘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또 나와 함께한 배우자의 수고를 떠올리면, 잘해주지 못한 자신이 참 부끄러워 집니다.
그런데 반대로 우리는 은혜와 감사함을 느끼지 못할 때 교만해집니다.
누군가 나에게 책임을 지울 때, 우리는 “내가 왜?”라는 불평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머리로는 받은 은혜를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강요될 때에는 그 감사가 잘 체감되지 않습니다.
그 때는 은혜가 아니라 일종의 ‘거래’로 생각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고백을 합니다.
저는 제가 받은 것들을 생각할 때 이 고백이 저절로 나옵니다.
내 삶 속에서 참 받은 것이 많습니다.
가깝게는 부모와 가족들, 그리고 교회 가족들.. 친구와 이웃 등..
참 조건없이 받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 갚으라고 한 것도 아니지만 마음 한 켠에는 그 만큼 더 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습니다.
뿐만 아니라, 좀더 넓은 시각에서 본다면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받은 것은 이들 뿐만이 아닙니다.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누군가의 노동의 결실을 누리고,
그런 시스템을 갖춘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은 그냥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세상을 꿈꾸었던 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들 위에서 세워진 것 아니겠습니까?
더군다나 더 넓게는 우리가 자연에게 받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은 사실 자연에게서 그냥 주어진 것들이 아닙니까?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깊이 묵상할 때, 결국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고백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나는 이웃과 세상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이 모든 은혜를 갚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결코 갚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받은 사랑들을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우리는 그 은혜에 응답하면서 살아갑니다.
어쩌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복음은 이런 깨달음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이 참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누리고 있는 것보다는 부족한 것에 더 눈길이 갑니다.
우리의 삶이 불안정하고 위기라고 생각될 때 우리는 자신의 것을 더 챙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감사하지 못하게 하고,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언제나 인사를 할 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삶에는 언제나 이미 받은 것이 있고,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디에 눈을 두는가에 따라 우리 상황이 “은혜”로 느껴지기도 하고, “위기”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의 “은혜”를 바라볼 때, 내가 이미 받은 것들을 헤아려볼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첫 걸음일 겁니다.
그런데 참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을 누리지 못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한편으로는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왜 이걸 누리고 살아갈 자격이 있습니까? 그들은 왜 이걸 누리지 못하는 환경에서 태어났습니까?
당연한 것은 아닐 겁니다.
때로는 교회에서 이런 “은혜”를 말할 때, 일종의 가스라이팅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도 생각해 볼 팰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 더 편안한 삶과 풍족한 삶을 바라보며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것 또한 ‘가스라이팅’ 아닐까요? 끝없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안주하지 말라고 말하고, 우리의 불안을 조장하며 남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 또한 세상이 만들어낸 ‘가스라이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는 온갖 미디어를 통해 이런 생각들을 양산해냅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어떤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일 것 같습니까?
자신의 받은 것에 감사하여 이웃과 세상에 더 도움이 되고자 하는 세상과
자신의 것을 챙기고 오직 자신의 이익에 따라 선택하고 경쟁하는 세상 중에 말입니다.
정치에서도 이 두 가지 생각이 부딪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것은 당연히 자신이 챙겨야 한다는 생각과
또 하나는 서로를 품어내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안전망과 약자들에 대한 태도에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세상은 받은 것 만큼 갚아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거래”입니다. 갚아내지 못하는 사람을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갚지 못한 것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생각.
그것은 예수님 시대의 율법주의자들의 시각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은 것들을 다 갚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찌 그것들을 다 갚아낼 수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는 그것에 감사하며 태도로써 응답합니다.
나도 주변에 그런 사랑을 흘러내겠다는 삶의 태도에 대한 결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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