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으로 가라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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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워십나이트 소감문 (1등 최영 / 2등 지정한 / 3등 채현수 전소현)
목장개강 / 양육클래스 Belonging
수련회 TF
등반/결혼
영상으로 말씀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 6번째 시간, 오늘은 열왕기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인데, 죄와 치유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 크게 3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는 나아만이 진짜 치유가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두번째는 나아만에게 행해졌던 치유에 대해서, 세번째는 치유의 결과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진짜 치유받아야 할 것
1. 진짜 치유받아야 할 것
첫번째, 나아만이 진짜 치유받아야 할 것이 무언인가
나아만은 아람의 존경받는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살이 썩어 떨어져나가는 나병에 걸렸다고 성경은 말하죠.
오늘 본문은 나아만의 나병이 치료받는 이야기인데요. / 그런데 단순히 나아만의 육체적 나병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 나병보다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병인 죄를 다룹니다.
복음서를 보게 되면, 중풍병자가 치유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친구들이 이 중풍병자를 메고 예수님께 데리고 가죠. / 지붕을 뚫어서 중풍병자를 내려 치유를 구합니다 / 예수님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아들아, 네 죄가 사해졌다”
중풍병자는 병이 낫기 위해 예수님께로 온건데 왜 예수님은 죄를 말씀하신 것이죠/ 왜 ㄱ런 것일까요?
“아들아, 너를 진짜 마비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아니? 바로 네 마음 속의 있는 죄야” /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 진짜 치유받아야 것은 병이 아닌 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병에 걸린 사람들이 다 죄 때문에 병에 걸렸다라는 건 아닙니다.
복음서의 또 다른 장면이 나오는데요 / 제자들이 날 떄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많기 때문이냐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병의 원인이 죄 때문이다”라고 함부러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이겠죠.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죄를 지적하신 이유, 또 성경이 죄를 말하는 이유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나아만의 같은 경우죠.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나아만의 나병을 쉽게 고칠 수 있었습니다. / 하지만, 그냥 고치시지 않고, 선지자 엘리사를 통해 온갖 모욕을 당하게 합니다.
나아만이 집에 찾아왔는데, 엘리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죠. / 게다가 종을 보내 말합니다. / 한나라의 군대 장관에게 모욕적이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죠. / 나아만은 이러한 엘리사의 무례한 태도에 화를 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방식으로 나아만을 치유하려고 했던 것일까?
나병보다 더 심각한 나아만 안에 있는 교만이라는 죄를 고치기 위함이었습니다. / 나아만은 나병으로 고통받았을 뿐 아니라 교만이라는 나병으로 인해 그의 삶은 썩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죠.
나아만만 그런걸까요? 오늘 우리는 어떠할까요?
우리 모두는 내가 삶을 계획하고, 내가 삶을 결정하려고 하죠. / 내가 내 영혼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누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면 화를 내고 설교하지 말라고 합니다. / 내 삶이 내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 없이도 내가 나의 삶을 책임질 수 있다는 교만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 “네 삶의 주인은 너다. 너의 삶을 결정하고, 만들어나가야 한다”
문제는 이 교만이 우리 마음 가운데 나병처럼 퍼져나가 사랑의 능력을 빼앗고, 지혜를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교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죠. / 그래서 사랑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 내 유익과 이익을 위한 이기적인 사랑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교만은 내가 내 삶을 경영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착각을 하게 하죠. /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우리 인생인데, 내가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지혜롭지 못한 생각을 하는 겁니다. / 그러다보니깐, 누군가 말에 귀기울이지도 않습니다. / 더 심각한 건 진리에 대해서는 귀를 닫는다는 겁니다.
나병과 같죠. 교만은 우리의 삶을 서서히 병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이 교만이라는 나병은 반드시 치료받아야 할 근본적인 병이라는 것이죠.
2. 치료의 본질
2. 치료의 본질
그렇다면 교만의 치료제가 무엇인가? 바로 겸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나아만을 낮추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자존심을 건드리고, 모욕적인 경험을 하게 함으로 그의 교만을 건드립니다.
여러분, 그래요. 하나님의 치유는 언제나 이렇게 시작됩니다.
복음이 우리의 영혼을 치유할 때,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교만입니다. / “내가 죄인이라니?” 모욕적이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하지만, 이 복음은요. / 우리 안에 스스로 만들어낸 거짓된 모습을 무너트림으로써 / 진짜 내가 누구인지 복음이 주는 영광스러운 관점을 얻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있던 것들을 허물어야 하겠죠.
여러분 안에 아름다운 궁전을 짓기 위해서는 / 지금 여러분 안에 있는 판잣집을 무너트려야 합니다. / 교만과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고집스러운 자아를 무너트려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은 좋은 소식이지만, 처음 그것을 깨물면 겉으로는 굉장히 쓰죠. / 하지만, 속은 말로 할 수 없을만큼 달콤합니다. / 중요한 것은 복음의 달콤함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쓴 맛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쓴 맛을 견뎌내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아만에게 세가지의 복음의 쓴 맛을 맛보게 하십니다.
나아만으로선 세가지 모두가 받아들이기 힘든 쓴 맛이었습니다. / 왜냐하면 자신이 지금까지 고수했던 방식에 반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1) 단순함
1) 단순함
첫번째 쓴맛은 단순함입니다.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말합니다. “그냥 씻어라, 그러면 나을 것이다”
여러분, 당시 이방 종교는 굉장히 화려했고, 복잡한 종교의식이 있었으며, 신비로운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의식도 하지 않고, 그냥 씻으라니? 나아만은 불쾌했던 것이죠.
그래서, 말합니다. “엘리사가 내게 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손을 대면 음악이 나오고 조명이 비추면서,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어떤 신비로운 현상이 일어나서 나를 고칠까 기대했는데, 그냥 씻으라니?”
그냥 씻고 회개하고 믿으라는 것이죠. / “믿기만 한면 된다고?” 나아만은 이 방법이 너무 단순해서 기분이 나빠 돌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2) 무력함
2) 무력함
두번째 쓴 맛은 13절입니다.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화가 나 집으로 돌아가려던 나아만을 붙잡고, 종들이 말합니다.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하라고 했다면, 씻었을 것입니다”
왜 나아만이 화가 났는지 종들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주인님에게 위대한 일을 하라고 했다면, 지금까지 이룬 위대한 업적, 탁월함을 보여달라고 했다면, 주인님은 강가에 몸을 씻엇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나아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요.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나는 이런 이런 사람이고, 이렇게 했기 때문에 치료해주셔야 합니다” /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 나의 지분을 주장하고 싶은 겁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은혜를 구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동역자로 삼는 것이죠.
나아만이 왕의 편지를 가져오고, 값비싼 보물을 가져온 이유가 역에 있습니다. /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거죠. / “나는 한 나라의 군대장관으로 훌륭한 업적과 부를 가지고 있어. 나는 치유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 엘리사여, 이것을 보고도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엘리사가 얼굴도 보지 않고 말합니다. “그냥 씻으세요”
“그냥 씻으라고? 그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거잖아. 돈도 없고, 능력도 없고, 전혀 훌륭하지 않은 나부랭이들, 바보들도 할 수 있는 거잖아, 나는 아람의 영웅이야!” / 나한테 이런걸 시키다니? 내가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모든 것들이 쓸모가 없다라는 거잖아. 어떠한 공로도 필요없다는 거잖아”
엘리사가 말합니다. “그래 맞아. 그 모든 것 필요없어, 단지 믿고 회개하면 되, 그냥 씻어”
나아만의 교만과 자존심은 또 한번 타격을 입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복음은 어떠한 화려한 의식이나 형식, 인간의 업적과 공로를 통해 구원이 임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주의 이름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말하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주의 이름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 것이죠.
도덕적으로 아무리 고결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완악한 범죄자와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이죠. / 똑같은 죄인일 뿐입니다.
그래서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있지만, / 나의 열심과 나의 헌신을 의지하고 있다면, /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격이 있고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 하나님을 부정하고, 내 맘대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내가 주인이고, 내가 구원자가 되려는 것이죠/ 똑같이 교만이라는 나병에 걸려있는 겁니다.
나아만이 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나는 특별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내가 별 볼일 없는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니” 이 사실에 나아멘은 격분하여 떠난 것이죠. 이게 두번째 쓴맛입니다.
2018년도의 일인데요. 지금보다 100배는 교만할 때입니다.
전도폭발 훈련을 받았는데요. 저희 교회 증인반이 바로 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하는데요. 강사로 섬기기 위해 훈련을 받으러 간겁니다.
그런데, 13주간의 과정을 3박 4일동안 압축해서 진행이 되다 보니깐, 쉴 시간 없이, 과제도 있고, 외울 것도 많고, 시험도 있다보니깐, 전도폭발 이전에 제가 먼저 폭발하는 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이 힘들었던 건 전도폭발 프로그램이 별로 마음에 안드는 겁니다. “과연 이걸로 전도가 될까? 예화와 질문이 좀 적절하지 않은 거 같은데.” 의구심이 들었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름 전도에 대한 많은 자료들과 방법들은 접한 저의 기준에 있어서 훈련이 제시하는 전도의 방법이 좀 별로다’라고 생각을 한 것이죠. / 저는 뭔가 대단하고, 특별한 것을 원했거든요. 그리고 뭔가 세련된 전도 방법을 기대했습니다. / 나아만처럼 단순히 몸에 물을 담그는 것이 아니라 뭔가 특별한 것을 원했던 것이죠.
하지만, 저의 이런 생각은요. 전도실습을 하면서 완전히 깨졌습니다. /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결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리고, 간증을 듣는데, 하나님께서 제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이 방법을 통해서 놀라운 전도의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겁니다.
그 순간 제 마음 속에 있는 교만이 완전히 깨지더라고요. /
복음의 단순함 / ‘아 그렇지, / 저는 무언가를 특별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단순히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인간의 말과 기술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3) 배타성
3) 배타성
세번째 쓴맛입니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나아멘은 말합니다. “아니, 다메섹에 아바나 강과 바르발 강도 있는데, 왜 꼭 이스라엘 강이어야 하느냐?” / 여러분 다메섹은 아람의 수도였는데, 마치 이런 거죠. “한강도 있고, 임진강도 있는데, 왜 꼭 성북천이어야 하는겁니까?”
나아멘이 뭣 때문에 불쾌한 겁니까? 배타성 때문입니다. “어차피 강이라면 다 똑같은거 아냐? 왜 꼭 이스라엘이 강이어야 해?”
여러분, 오늘날 사람들이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 불편해합니까?
왜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냐는 것이죠. 편협하고,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 “어차피 산의 정상에 오르는거 어느길로 다른 다 똑같은거 아냐? 그런데 왜 유독 기독교만이 왜 예수라는 길을 통해서만 구원이 있다는거야? 왜 꼭 이스라엘의 강이어야 하는거지?”
근데 여러분,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게 더 배타적이라는거 아십니까?
이말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선하게 살면 되는거 아냐? 좋은 사람이 되어 도덕적으로 훌륭하게 살면 되는 거잖아.” 라는 건데, 여러분, 이게 무슨 말이죠?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거죠.
그렇다면, 도덕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요? 태어날 때부터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나 힘든 인생을 살아가다가 죽음의 문턱 앞에 선 사람들은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많다고 말하지만, 결국 선한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게 아닌가요?
결국 성공하고 강한 사람만이 살아남고, 실패한 사람들은 배제시키자는 것입니죠.
하지만, 복음은 누구든 올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선한 자, 악한 자, 성공한 자, 실패한 자, 누구나 오라고 말합니다.
대신 한가지 조건이 있죠. 겸손하기만 하다면.
내가 어떠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겸손하게 강에 들어가 몸을 씻을 수 있는 사람. 그가 치유를 얻는 겁니다.
물론, 위대한 일이 쓸모없다라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모두는 위대한 일을 해야 한다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성경은 구원을 위해서라면 옳은 일을 해야 하고, 위대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하지만, 우리가 아니라 그 누군가가 그 위대한 일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을 할 수 없지만, 나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하신 분이 있다라는 것을 믿는 자들입니다. / 위대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율법을 완성시키 위대한 분인줄로 믿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율법의 완성을 이루신 위대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또, 그리스도인들은 “나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 위대한 일을 행한다”라고 말하는 자들이죠.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함은 아이러니하게도, 위대한 자들이 아니라, 위대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받아들이면 어떠한 일이 일어납니까? 이사야 53장은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의 상처로 인해 나음을 얻게 될 것이고, 예수님의 찢긴 피부와 흐르는 피를 통해 우리의 상처가 나음을 얻을 것이다 / 우리의 나병이 그분에게 옮겨진 것입니다.
나아만은 바로 이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을거에요, 하지만, 강가에 내려가 몸을 씻기 시작합니다.
‘내가 지금 뭐하는건가’ 나아만은 긴가민가 했을 겁니다. 그렇게 나아만은 복음이라는 강물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담급니다. 그리고, 강물에서 올라오자 놀라운 일이 일어나죠.
…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성경은 나아만의 살이 어린아이와 같이 깨끗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 이 장면은 복음이 말하는 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죠.
“당신이 무슨 짓을 했든, 아무리 더럽혀져 있고, 타락했어도 상관없다. 너 자신이 위대한 일을 보이기보다, 위대한 일을 이루신 분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마치 죄를 한번도 지은 적이 없는 것처럼 깨끗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나아만의 내면에도 무언가가 치유되고 있었습니다. /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나병이 치료된 이후에 달라진 나아만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 치유의 결과
3. 치유의 결과
마지막 3번째, 치유의 결과인데요. / 4가지를 통해 우리는 나아만의 내면의 나병인 교만이 해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짧고 빠르게 살펴보겠습니다.
1) 생각의 변화
1) 생각의 변화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치유받은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말합니다. “이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첫번째는 생각의 변화입니다. / 나아만은 병이 치유되는 초자연적인 경험을 하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마음이 변했고, 생각이 변했고, 세계관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아무리 신비한 영적인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생각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회심한게 아니죠.
나아만은 다신교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치유를 통해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 이것이 믿음의 첫 단계입니다.
2) 나눔의 삶
2) 나눔의 삶
두 번째 치유의 결과,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예물을 바칩니다.
교만의 특징은 자기중심성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내것을 움켜쥐며, 축적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더이상 움켜쥐는 삶이 아니라 나누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돈을 내것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관대하게 나누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 돈 뿐만 아니라 시간과 재능도 나를 위해 쓰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쓰게 되죠.
이것이 진정으로 회심했다는 표시입니다. / 왜? 은혜에 의해 교만이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3) 종, 순종
3) 종, 순종
세번째, 나아만이 엘리사를 향해 자신을 “당신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놀라운 변화죠. 한 나라의 영웅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주인이었던 군대장관이 나아만이 자신을 종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것은 단지 호칭의 변화가 아니라 “이제 더이상 내가 삶의 주인이 아니다. 하나님의 내 삶의 주인이시다”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만약에 나아만이 치유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무언가를 기여했다면, 종이라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삶의 좋은 동반자, 파트너”라고 불렀겠죠.
그런데,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고백할 수 있는 겁니다. / 그리고, 하나님이 주인이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고, 우리는 그것에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죠.
제가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요.
개를 키우신 분들을 알겠지만, 개의 충성심은 대단하죠. 주인의 명령대로 합니다. 왜냐하면 개는 주인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개 주인을 “견주”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묘주”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뭐라고 부르죠? / “집사”라고 부릅니다. / 여러분, 집사라는 뜻은 “집안 일을 도와주는 하인”을 뜻하는데요. / 고양이는 특성상 주인을 주인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을 섬기는 자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은 명심하세요. / 그들은 여러분을 주인이 아니라 하인으로 여깁니다. / 여러분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질문하겠습니다. /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주인입니까? 집사입니까?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해주는 집사 정도로 여기고 있지는 않나요? / 그러다보니깐 순종도 헌신도 한계가 있는 겁니다. / 그 이상을 하지 않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면 모든 한계는 사라지죠. / 전전인 은혜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그 이상의 충성을 하게 됩니다. / 그래서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정해진 것 그 이상의 것을 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한계를 넘어 그 이상으로 충성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4) 삶으로의 복귀
4) 삶으로의 복귀
[반주] 마지막, 4번째입니다.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갑자기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흙을 달라고 하죠. / 그리고 나서 말합니다.
“저는 이제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왕을 섬기는 자이기 때문에, 왕이 림몬이라는 이방신의 신전에 들어가 경배할 때, 저도 부득이하게 몸을 굽혀야 합니다. / 왕을 섬기는 제 임무와 나라를 섬기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이 점을 이해해주시고, 용서해주십시요.
하지만, 기억해주십시요. 저는 저의 행동과 말을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릴 것입니다. / 제가 몸을 굽힐 때,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림몬에게 기도할 것이지만,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외에는 어떠한 제사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이것이 마지막 회심의 표시인데요.
이것을 다시 말한다면, 나아만은 지금 “저는 이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저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상종도 하기 싫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라는 겁니다.
오늘날 이렇게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저는 세상에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 기독교 회사, 기독교 학교라면 모를까 세상 회사나 학교는 다니고 싶지 않아요. / 믿는 자들끼리 어울리고 싶지, 믿지 않은 자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습니다 / 제가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거에요”
만약 여러분들 중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 정말로 복음으로 치유된 적이 있는지.
제가 평소에도 자주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 우리가 구원받은건 우리가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 은혜로 구원받은 것 뿐입니다. / 절대로 믿지 않은 사람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 복음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으로 나아가라고 말하죠. /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해 나아가 그들을 섬기고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 복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나아만을 보십시오. 그는 이전에 우상을 섬겼던 자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자로 살아가기로 결단하죠. 어디에서? 이스라엘에서? 아닙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아람 땅으로 돌아가서. / 이전보다 더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섬겼을 것입니다.
더디사이플 공동체 여러분,
나아만과 같이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예배자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밝히고, 그들을 섬기고 사랑할 때, 그들은 하나님을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왜 나아만이 이스라엘 흙을 자신의 나라로 가져갔을까요? / 기념으로 가져갔을까요? / 아닙니다.
하나님의 땅, 이스라엘을 자신의 나라로 가져간다는 상징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어디로 가져가고 있습니까? /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곳에서 복음을 전하라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누가복음 4장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나아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부분이 나옵니다.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자, 사람들이 크게 화가 나 예수님을 절벽으로 밀어 죽이려고 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너희에게만 하나님이 있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니다. / 구원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하나님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 이유입니다.
복음을 경험하지 못하고,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면, 우리만의 하나님으로 만족할 겁니다. / 선교에 헌신하지 않을 거에요.
하지만, 은혜를 경험하게 되고, 예수님을 따른다면, 복음을 전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그 일에 헌신하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 수많은 예배자들이 있습니다. / 예배에서의 은혜의 흙을 가지고, 각자의 삶의 자리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여러분을 한사람 한사람을 통해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고 듣게 될 줄로 믿습니다.
찬양
찬양
거친 풍랑을 잠재울 힘이 내게는 없어 뱃머리를 돌려 다른 곳으로 갈까
나의 능력을 의지해 맘이 고단해 질 때 내게 다가오는 그의 음성 들리네
오라 오라 물 위로 오라 강한 믿음로 담대히 주님께 나오라
오라 오라 물 위로 오라 그의 능력으로 이기리 참 평안 얻으리
기도제목
하나님, 나의 생각과 자존심과 교만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하나님이 가라 하시면 나의 생각과 나의 방법을 버리고, 요단강으로 내려가 나의 몸을 씻겠습니다.
내 안에 있는 죄악들을 씻겨 주옵소서. 내 안에 교만들을 씻겨 주옵소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혹시 이 중에 나아만과 같이 아직 복음의 강물에 몸을 담그지 못한 자들이 있다면 복음을 받아들이므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봉헌기도
봉헌기도
하나님, 내 안의 교만을 드러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음의 쓴 맛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순종함으로 깨끗함과 변화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더 나아가 은혜의 흔적을 가지고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 예배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 목장모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내 삶과 소유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예물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을 담은 이 헌금을 통해 이 헌신을 통해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교만의 나병으로부터 치유되어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또 전하기를 원하는
이곳에 모인 청년들에게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