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5-13절[기도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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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도의 필요성(05.30 기둥속회 설교)

본문 : 마태복음 6장 5-13절
오늘은 기도의 필요성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에 관하여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이 주기도문은 마태복음 5-7장까지 산상수훈의 메세지의 중심에 위치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이 산상수훈의 저자이신 예수님의 마음과 의도를 잘 살펴보건대,
예수님은 어쩌면 이 모든 가르침의 중심에는 기도가 있어야 함을 알려주려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기도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될텐데,
이 산상수훈에서 주기도문이 중심에 위치해있는 것을 통하여 신자에게 기도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를 우리는 엿볼 수 있습니다.
기도는 신자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고 방법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오직 기도를 통하여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반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가 아니라 자기 힘과 의지로 신앙생활을 해보려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나의 힘과 나의 의지로는 온전히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하지 않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점점 어떤 열매를 피워내는가? 기쁨과 감사가 아니라
신앙생활이 점점 무거운 짐처럼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열심히 뭔가를 하기는 하는데, 점점 소진되고 메말라 가는 것이죠.
왜냐하면 모든 신자는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는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주기도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기도의 필요성에 관하여 살펴볼텐데 먼저 우리가 갖고 있는 기도에 관한 오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해라 라고 말씀하시기 이전에 저렇게 기도해서는 안된다라고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그 대상이 누구인가 하면 유대인들과 이교도들이었습니다.
첫번째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웨슬리 목사님이 기도를 무엇으로 설명했는가 하면 은혜의 수단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수단이라는 말은요, 달리 말하자면 특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예컨대 이런 거예요. 우리 허성훈 전도사님이 얼마 전에 아버지께 차를 물려 받았대요.
맨날, 걸어다니거나, 아니면 택시를 타고 다니거나 그랬어야 하는데, 아버지께서 아들을 위해서 차를 선물해주신 거예요.
이 차를 받으면 기분이 좋을까요? 안좋을까요? 좋지요. 이제는 굳이 걸어다니거나, 택시를 부르거나 할 필요가 없이
마음껏 차를 운전해서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된 특권이 생긴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만약에 허성훈 전도사님이 차를 받았는데도, 그냥 주차장에 세워놓고 관상용으로만 두고,
예전처럼 그냥 걸어다니거나, 택시를 부른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고 미련한 것이죠.
수단이 있고, 그것은 자가용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대도 불구하고 그것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 삶은 질적으로 예전의 상태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하나님이 기도의 특권을 주셨고, 그것을 수단으로 사용하라고 주셧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은 죄의 유혹을 넘어 영광으로 나아가는 삶이 아니라 예전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바보같은 사람이라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기도가 아직 습관이 되지 않고
요즘 삶에서 기도를 잃어버리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 특권과 수단을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오직 기도하는 사람에게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 수단을 잘못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에 더 큰 해를 끼친다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첫번째로 유대인들을 가리키면서 기도를 은혜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 의와 자랑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 거리나 광장에 서서
되도록 큰 목소리로 나팔을 불며 기도하기를 즐겨했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무슨 존경을 자아낸다고 생각했냐면
“저분은 저렇게 기도를 많이 하시고, 열성적으로 하시는 걸보니 과연 믿음의 사람이구나”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위대한 선생이시구나” 이런 소리를 듣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가지고 있던 신앙은 무엇입니까?
되도록 많이 기도를 하고 뜨겁게 기도를 하는 것이 좋은 믿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기도, 많은 예배, 많은 헌금이 어떻게 보면 곧 큰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도나, 예배나, 헌금은 웨슬리 목사님이 말했듯이 수단이지 그것이 곧 믿음이 되지는 않습니다.
즉 기도가 믿음을 세우는 수단이 아니라 나의 자랑이나 나의 의를 세우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7절에 이교도들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새번역 성경에서는 중언부언하지 말라를 빈말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이교도들은 기도할 때, 말을 많이 하거나, 아니면 그들만의 주술과 기도문을 반복해서 읽어서
그들이 원하는 바를 얻는 식의 기도를 했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는 이 말씀 때문에 기도를 하다가도 혹시나 내가 반복해서 말을 하고 있지는 않나
똑같은 말을 여러번 반복하면, 다시 뒤로 돌아가 새로 기도하고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기도 방식이 문제라기 보다 그들이 왜 말을 많이 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길게 기도했던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신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신이 그들의 정성과 노력을 보고 감동하여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어주는, 그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은혜의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이것도 기도라는 수단을 잘못 사용한 대표적인 예인 것입니다.
때로는 기도하다가, 상투적인 언어, 속이 비어있는 기도를 드릴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인식을 갖고 기도하기보다는 입술로만 중얼중얼하는 식의 기도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점검해보아야 할 것은 그런 기도방식과 습관 보다도 내가 그렇게라도 기도를 하고 있는 목적, 그 동기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는 자기 의를 세우고 자랑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고
기도가 자기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어떤 수단인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수단인 것입니다.
6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죠.

6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숨어서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개역개정에서는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새번역이 더욱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숨어서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를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찾아가 만나는 수단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 하더라도, 기도하는 습관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느끼기에 숨어 계시는 것처럼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숨어계시는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고 그분과 영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수단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대가들은 각자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런 주파수들을 갖고 계세요.
어려움을 만나거나, 두렵고 애매한 상황들을 만날 때마다 그때그때 사용하는 기도의 채널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습관으로 자리 잡히지 않은 경우는 위기의 순간이나 어떤 필요가 있을 때, 해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어떤 기도 위주로 되는가 하면 진심만 있을 뿐. 빈말만 많이 하는 식의 기도가 되더라는 겁니다.
그 안에 어떤 교제도, 어떤 응답도, 어떤 내용도 없고 그저 소원을 들어주기까지 떼를 쓰듯하는 기도가 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이런 기도의 오해들을 두가지 가르쳐주었습니다.
첫번째 기도가 나의 의와 자랑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기도가 나의 필요를 채우는 수단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기도는 무엇인지, 주기도문의 내용을 통하여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는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로저 그린웨이라는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멕시코에서 선교를 오래 한 분인데, 한번은 선교지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녁 어스름,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초라한 옷차림, 겁에 질린 눈빛. 말을 걸자 아이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세 살에 어머니를 잃고,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자신을 해치려 하자 넉 달 전 집을 떠나 떠돌았다고 했습니다. 쓰레기를 뒤지고 구걸하며, 이 마을까지 흘러온 겁니다. 선교사의 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저녁 한 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문을 두드렸다는 아이.
우리는 그 아이를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너는 내 딸이야. 여기는 네 집이란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뭐든지 말해. 나는 네 아버지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후로도 나에게 어떤 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서재에 들어와 조용히 섰습니다. “왜?” 하고 묻자, 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빠, 신발 끈이 필요해요.”
나는 돌아서서 울었습니다. 신발 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가 비로소, 필요를 안고 아버지를 찾았다는 것. 그날, 나는 진정으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기도의 필요성을 잘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진정 아버지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아이가 선교사님께 필요가 있어도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어느날 다가와 신발 끈이 필요해요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비로소 자신이 아버지의 딸이며 자녀라면 무엇이든지 아버지한테 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라는 신뢰관계가 생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이러한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필요를 구하고 안구하고는 그 다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안으로 들어가 그분과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아버지와 교제를 나눈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사람마다 그것은 다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 순간 교제를 하고 싶어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자는 순간까지 중얼중얼하면서 하나님과 대화를 한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거죠, 그런데 또 다른 사람들은 특정한 시간을 구별하여 집중해서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각자가 교제하는 방식들을 다르지만 교제하는 내용은 분명해야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재철 목사님의 성숙자반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때, 우리는 그 호칭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지닌다.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때, 우리는 아빠가 지닌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우리는 아버지에 대해 자식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게 된다. 어린 자식이 아버지를 아빠라 부르는 동안에는 자기 권리만 내세우지만, 그 자식이 장성하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순간부터 자식의 의무를 다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쉽게 말해서 여러분, 어릴 때, 자녀가 아빠라고 부를 때, 보통 아버지와의 자식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자녀는 아버지가 가진 모든 권리를 다 누릴려고 합니다. 아버지가 벌어온 돈도 다 지꺼고, 아버지 집도 다 자기꺼고, 아버지의 시간도 다 자기꺼처럼 누리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우리는 자녀된 권리로써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것을 모조리 상속받은 상속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와 공유하시고 가장 좋은 것을 실제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것을 나누자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상속하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생명도, 하나님의 나라도,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도 함께 하자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함정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실 때에는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얻으신 방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구할 때, 우리가 원하는 때와 원하는 방식대로 응답이 되지 않는 경우들도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지적하신 것과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교도들처럼 기도를 자신의 필요로 구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기도가 응답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절망하며 기도를 포기해버립니다. 아니면 더 큰 치성을 드리기도 합니다. 금식을 한다던가, 작정을 한다던가, 아니면 더 오랫동안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되,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가장 잘 아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아빠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자녀가 장성하여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이 온다는 거예요. 그 때는 보통 권리를 주장하기 보다 의무를 다하는 차원에서 아버지를 부릅니다. 저도 지금 아빠라고 안하고 아버지라고 부르거든요. 그 때와 지금의 관계는 여전히 동일하지만 지금의 저는 그 시간만큼이나 성숙하고 자랐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에게 권리를 행사하려 하기보다 자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다는 것은 자녀의 권리를 누리는 것 뿐만 아니라 더 수준 있는 기도는 자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예전에는 구하는 기도였다면 이제는 주님 앞에 나를 내려놓고 내 삶을 온전히 드리기 위한 간구와 기도로 변해간다라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어야 하는 교제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기도문은 자녀의 권리를 누리는 기도와 자녀의 책임을 다하는 기도가 모두 포함된 기도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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