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30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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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싸움을 싸우라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이신 여러분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으로 크신 은혜 부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지난번에 이어 디모데후서 말씀을 함께 나누게 될텐데요, 디모데후서 말씀은 바울이 자신의 마지막 시기를 앞두고 제자 디모데에게 마지막 권면을 전하는 내용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마지막 때, 말세에 대해서도 많이 전하고 있다는 것을 함께 나누었었죠.
지난주에는 우리가 말씀을 사랑해야 한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하자라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4장 역시도 바울이 다시금 말세에 대한 이야기를 디모데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모든 이들에게 어떤 모습들이 나타날 것이고, 그것을 디모데를 비롯한 성도들이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통해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부터 볼게요.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엄히 명하고 있죠.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를 서식하는 문구들이 참 많죠.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이 내용만 보아도 여러분들이 바울이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인지를 확인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로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이 땅의 모든 것들을 심판하시고 그의 나라를 이루실 말세를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겠죠.
바울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마지막 말세에 디모데에게 어떤 것을 엄히 명하고 있을까요?
이어지는 2절에 나오죠. 말씀을 전파하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 선포자로서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충실히 감당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어떻게 전하라고 하고 있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합니다. 범사에 오래 참으며 가르치고 경책하고 경계하고 권하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말세에 행해야 할 것으로 말해주는 것은 바로 말씀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승천하시면서도 말씀하셨죠. 땅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딱 그 한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말씀을 전하는 전파자의 삶을 살아가고 계신가요?
아마 여러분들 나름대로 분투하며 살고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말씀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려 노력하고, 그 안에서 메시지를 찾고 본인의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겠어요? 뚜렷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의 생각은 어떠냐,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막 열심히 싸워내면 뭐가 있어야 될 것 같다는 것이죠.
삶에서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고, 나 자신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여러분 주변사람들이 주님을 알고자 하고, 이런 식의 변화들이 뭔가 보여야 하는데, 실제 삶은 어떻다는거에요? 그런 변화들이 잘 나타나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하면 할수록 나만 힘들어요. 혼자서 나 이제 말씀 열심히 읽어야지 다짐하고 정하면 꼭 그때 과제가 쏟아지고, 친구가 만나자고 하고.
말씀을 읽으면서 이웃을 사랑하자는 다짐을 하면 꼭 가족들이 잔소리하고, 학교에 팀플하는 사람들이 트롤링을 하고. 그래서 다짐했던 마음들이 무너지도록 만든다는 겁니다.
말씀과 동행하는 삶,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사는게 그래서 참 힘이 들고 어렵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죠. ‘저는 지금 상황이 이래서 안되요. 저는 애초에 이런 것들이 어려워요.’ 이런 것들이죠. 몇번 해보다가 그것이 열매를 못 맺고 결과가 보이지 않으니 그냥 포기해버리는 경우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러한 이들에게 2절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게 결과가 있든지 없든지 그냥 열심히 전해라. 오래 참고 가르치고 전해라.
결과가 나타나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요?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결과값을 요구하시지 않아요. 그냥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상황에 맞춰서, 네가 가진 것들에 맞춰서 효율적으로 전해라! 라고 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내 상황이 좋지 못하더라도, 내가 실력이 없고 담대하지 못할지라도, 열심히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주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성경에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도 그것을 볼 수 있죠. 여러분. 하나님께서 처음 모세를 부르셨을 때 그가 뭐라고 대답했죠? 저는 말을 잘 못해서 못합니다. 그랬어요. 그때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죠? 아우 말 못해? 그럼 안되지. 이러지 않으셨어요. 말 잘하는 형을 붙여주시고 가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용사 기드온도 처음에는 용사라는 칭호가 아까울 정도로 겁쟁이었습니다. 곡식 뺐길까봐 숨어서 곡식 터는 사람이었죠. 근데 하나님께서 큰 용사로 부르시고, 그를 통해 민족을 구원하셨죠.
심지어 요나는 어땠죠? 대놓고 태업을 했죠. 니느웨에 말씀 전하기 싫어서 도망가고, 억지로 도착해서도 대충 전하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도 그 도시를 회개시키시죠.
열두제자들도 마찬가집니다. 겁많고 부족한 이들만을 모으셔서 주님은 그의 복음을 세계에 선포하셨죠.
성경만 보아도 이런 모습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라는 거에요. 당장 뭐가 잘 안되도, 내가 부족해보이고, 상황이 좋지 않아보여도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핑계를 찾고 숨을 구석을 찾는게 아니라 주님께서 행하실 것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의 삶, 성도의 삶이 어렵더라도 열심히 분투하고 붙잡고 오래 참으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분명 여러분들을 통해 이루실 것입니다.
이어서 3절을 보면, 바울이 말세가 얼마나 복음전파의 쉽지 않은 상황인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말세가 이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죠?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아요. 그래서 자기 욕심을 채워줄 자들을 세우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들을 따르게 된다고 말하죠.
사실 어쩌면 앞서 우리가 이렇게 어렵게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도 우리가 말세를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사람들은 어떤가요? 옳고 그름이 이제는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되고 있습니다. 옳고그름이라는 가치보다는 이득과 손해라는 이해를 더 높게 두고 따르죠.
무엇이 나를 바른 사람으로 만드는지보다도 무엇이 나에게 더 많은 것을 가져다주느냐를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비춰보면 어떤 경우들이 있을까요? 바울서신에서 수없이 지적하는 거짓 가르침들을 들 수가 있겠죠. 불확실하고 보이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보다도 눈에 보이고 자신에게 안식을 주는 율법적 행동을 따르는 것이 더 좋다는 잘못된 가르침들이 있었죠.
구약에서도 그런 경우들이 많았죠. 예레미야는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당장 자신들의 지위와 재물에 대한 안정을 위해 그와는 반대되는 하나님이 나라를 지켜주신다고 하셨다는 거짓 선포를 행하는 이들도 존재했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잘 보이지 않는 올바른 가치를 따르기보다는 당장의 이득을 얻고 지키기 위해 옳지 않은 행동을 그냥 행한다는 것이죠.
가볍게는 교통법규도 지키지 않고, 편법을 사용하여 물건을 구매하고 사용한다던지 하는 모습들이 있죠. 그러면서 마치 그것이 지혜로운 것인냥 포장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일들이 생기나요? 사회를 이끄는 지도층의 대부분이 범법자인 경우들이 많게 되었죠. 정치계, 경제계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재판받고 풀려나고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다 사람들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오직 이득만을 찾아 헤매이기에 나타난 모습들이겠죠.
그래서 우리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모로 비판하고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요, 그러면 우리는 다를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인들이시니까 정말 말씀 그대로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아가고 계신가요?
그러면 무엇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일까요?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이겠죠.
예수님의 삶.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낮은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드린 삶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사실 그런 삶과는 거리를 두고 있죠. 예수님처럼 나의 삶을 복음을 위해 다 드리기보다는, 일단 내 삶부터 챙기는 모습들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비춰보자면, 예수님의 삶이라는 바른 교훈을 따르기보다는 일단 나부터 잘 살고자 하는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심지어는 말씀을 대할 때도, 일단 내 마음을 위로받고자 하는, 내가 더 좋은 곳에 있고자 하는 그런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목회자들 역시도 귀가 가려워져서 그런 말씀만을 전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하면 세상에서 잘 살수가 있습니다! 이렇게하면 하나님이 삶에 복을 부어주십니다! 그러고 마무리 되어버리는 것이죠.
과연 그것이 바른 교훈이고 진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이야기들은 그저 말씀을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세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던 교황들처럼, 전쟁범죄를 정당화했던 히틀러처럼, 그저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결국 그러한 행동의 끝은 4절에 나온 것처럼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위한 행동을 하기보다는 어떤 것을 얻으려는 정치적 행동을 하고,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행동들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세가 다가올 수록 우리는 더욱 깨어야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해주는 5절의 말씀처럼 모든 것들에 신중해야 합니다.
말씀에 비추어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복음에 걸맞는 것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디모데 전후서를 다루면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성도의 삶은 고난이 필수적입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한다면 당연히 악한 세상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맡겨진 전도자의 일을 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직무를 완수해야 합니다.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모든 결과는 주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비록 이로 인해 우리가 세상에서 경제적 이득, 사회적 이득을 누리지 못할지라도, 우리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전 매일성경 큐티 말씀으로 나눴던 말씀인데요,
빌립보서 3:7–8 NKRV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바울은 유대인 엘리트였습니다. 학식도 뛰어났고, 집안의 명예도 엄청났습니다. 그는 굳이 노력 없이도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그는 자신에게 있는 그 모든 것을 다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직 복음을 위한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그에게 필요하지 않다 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바울은 정말 열심히 그것을 위한 삶을 살아왔고,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그러한 삶이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들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합니다.
6절에서 뭐라고 하죠? 전제와 같이 부어졌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전제라는 것은 유대인의 제사의식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제사 전통에 따르면 번제나 소제와 같은 제사를 드릴 때, 제물과 함께 포도주와 같은 음료를 드리는 것을 전제라고 칭했습니다.
제물을 제단에 올리면서 포도주를 그 제물 위에 붓는 것이죠.
그렇게 전제까지 드려야 제사의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바울이 전제와 같이 자신이 부어졌다는 것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전체 제사로 표현한다면 자신의 복음을 위한 모든 삶, 그리고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까지도 제사를 마무리하는 전제와 같이 복음 선포의 완성이 될 것이라고 바울이 여겼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곧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복음 사역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신에게 뜻하신 그대로 자신이 온전히 사용되었음을 바울이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바울의 고백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시나요? 바울 참 멋진 사람이다. 바울의 믿음이 정말 대단하다. 뭐 이런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바울이 이 말씀을 전한 것은 내가 참 고생했지.. 이런 의미로서 이 말씀에 적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도 더 큰 의미가 그 안에 녹아져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이 자신을 전제, 즉 포도주로 자신의 삶을 비유했죠. 그런데, 여러분, 혹시 포도주 하면 생각나는게 없으신가요?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피가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굳이 자신의 삶을 전제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비유한 것은 자신의 삶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삶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란 결국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혈의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악의 굴레가 풀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한 어린양으로서 바쳐지셔서 그 자신의 피로써 모든 죄 사함의 제사를 완결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님께서 지신 그 십자가에 우리의 모든 죄악들이 달렸기에,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표현했죠.
갈라디아서 2:20 NKRV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결국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피, 그 포도주는 예수님만의 피가 아니라 같이 달린 우리의 피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이 이루신 복음의 역사에 자신의 모든 삶을 드려 함께 참여했고, 그것이 완성된다는 의미로서 자신의 삶이 예수님의 피와 같이, 제사에 사용된 전제와 같이 부어졌음을 고백한 것이죠.
그럼 결국 바울이 이러한 고백을 디모데에게 전한 이유는 무엇이겠어요? 오늘 본문 마지막 8절에 나타납니다.
디모데후서 4:8 NKRV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이 마지막 사명을 다 마치고 주님께서 그 모든 수고를 증명하는 의의 면류관을 받은 것처럼, 그의 제자 디모데도, 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도 동일하게 전제로서 바쳐질 수 있고, 또한 그렇게 행해야 함을 바울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모두 바울과 같이 전제로 부어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이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선한 싸움을 싸우시길 바랍니다.
분명 우리는 지금 말세를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교훈을 받지 않고 허튼 이야기만 따를 것이구요, 때로는 우리도 그러한 이야기들에 귀가 간지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삶 속에서 말씀을 기준삼아 신중하게 행동하고, 고난을 우리의 사명으로 여기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열심히 그 직무를 다하면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그것이 우리에게 실제적 이득을 주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말씀대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항상 말씀을 붙잡고,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들을 기억하시고, 그것이 때로는 우리가 듣기 싫은 이야기일지라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여기고, 오래 참으며 그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말하는 나에게 즉각적인 달콤한 이야기들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잘 사는 삶이 아니라, 주님이 전해지는 삶을 목표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내가 행하는 모든 것들, 지금 여러분들이 목표하며 살아가는 모든 삶의 행동들이, 나의 어떤 것을 위한 것이 되는 게 아니라, 주님을 위한 것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도구로 삼지 마세요. 말씀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렇게 선한 싸움을 싸우는 우리들의 믿음의 길을 주님께서 함께 걸어주실 것이고,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의의 면류관을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말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하임 공동체 모두가, 주님과 같이 하나님의 복음 사역에 귀한 전제로서 드려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찬양 : 푯대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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