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3 새벽 (대상3: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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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역사

6월을 맞이하며 우리 성도님들께서는 어떤 기대와 소망이 있으십니까? 주님께서 저와 우리 성도님들에게 허락해주신 지난 날을 떠올리면 감사와 찬양을 드릴 것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허락해주신 가정을 통하여 때로는 힘들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은혜를 얻어서 살아왔던 일터와 생활의 현장을 통하여 그리고 실망스럽고,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다시금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함께 지내온 인연을 통하여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시절은 시간이 지날수록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주님의 은혜 안에 머물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와 우리 성도님들께서 함께 나누실 역대상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실 때, 특별히 저와 성도님들의 지나온 삶과 현재의 시간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점점 더 주님께 깊어져가고, 주님께 더욱 가까이 거하며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감격을 누리며 살아가는 소망이 부어지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2. 족보의 구성

역대상 1장과 2장 말씀의 내용은 아담으로부터 갈렙의 자손에 이르는 족보를 기록하며 시작하였습니다. 어제 담임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에게 민족의 정체성이 다시금 든든하게 세워지고, 민족의 뿌리가 건강하게 회복되기를 바라며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의 근본이 무엇인지 되찾길 원했던 것이죠. 과거에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맺었던 언약을 통하여 그의 왕조가 영원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 12절과 16절을 보시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12 -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6 -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언약을 이스라엘 민족과 맺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왕조는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하지 못하였고, 그들의 역사에 뿌리 깊게 내려져 있던 우상숭배와 죄악과 불의는 결국 바벨론의 포로가 되며 멸망을 당하는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 왕조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역대기 저자는 다윗 왕조의 족보에 대하여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3. 신실하신 하나님

다윗 왕조를 기록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포로에서 해방 됨을 통하여 지금도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계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상 3장의 말씀을 보시면서 저와 성도님들께서 함께 기억하시길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계절과 같다는 것이죠.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며 모든 세상이 차갑게 얼어붙어버려서 항상 따뜻한 불을 쬐면서 몸의 온도를 높여야 살 수 있는 겨울이 있는가하면 또 어느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토록 매섭던 추위가 물러가고, 세상에 따뜻한 온기가 솟아나며 생명이 살아 숨쉬는 것을 온 몸으로 만끽하는 봄이 찾아올 때가 있다는 것이죠. 이스라엘의 역사가 마치 그러했듯이 저와 성도님들의 삶에도 이와 같은 계절의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지난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믿음이 뜨겁게 일어나고, 주님께서 주신 비전이 분명하여서 그 은혜를 붙잡고, 살아가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막힌 것처럼 신앙의 사면초가를 마주하며 과연 주님께서는 오늘도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이신가? 라는 의심이 삶을 지배하는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대기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너와 나의 삶 더 나아가 언약으로 허락하신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혹시 오늘 우리 가운데 삶의 자리가 무너지고, 낙심의 자리에 머무르고 계신 성도님들이 계시다면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음으로 취하고,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3. 야베스의 이름

계속해서 역대상 4장의 말씀을 보시면 특별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말씀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9-10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라고 이름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죠. 참으로 특이한 것은 역대기 저자가 이제는 포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역사와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역대기 말씀을 기록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대기 저자는 한참 이스라엘 민족의 가문에 대해서 기록하다가 중간에 야베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불연듯이 그가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삶의 배경이 있었는지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 야베스라는 단어는 그리 좋은 의미의 단어는 아닙니다. 한편의 예로 야베스는 지역 명칭으로 사용하게 될 때, ‘습기가 없는 곳’, ‘불모지’, ‘버려진 땅’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죠. 그리고 오늘 보신 야베스 단어를 인물에 대한 명칭으로 보면 ‘그는 고생을 만든다’, ‘슬프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라는 이름은 사람에게 붙이기 난감한 이름이었던 것이죠. 방금 읽으셨던 9절의 말씀을 보시면 아실 수 있는데요.
‘야베스’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가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수고로이 낳았기 때문에’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4. 야베스의 기도

이 자리에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부모님의 입장에 계신 성도님들께서 대부분이실 것 같은데요. 한 번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도대체 야베스의 어머니에게는 어떤 수고함이 그녀에게 있었길래 그의 자녀의 이름을 ‘고생을 만드는 아이’, ‘슬픔의 아이’라고 지은 것일까요?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어렵게 할 때, 자녀에게 아쉽고, 서운한 마음, 실망하는 마음이 드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출생자체가 마치 불청객처럼 여겨지는 자녀가 있다면 어떨까요? 불청객 같은 자녀의 출생에 대한 과정이 어땠는지 자초지종을 알기는 어렵더라도 그 자녀의 이름에 저주스러운 의미를 담아서 그 이름을 짓고, 그렇게 부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야베스의 이름은 ‘고생이’ ‘슬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야베스의 기록을 보면 그는 반전의 삶을 살았던 인물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4장 10절에서 고백하고 있는 야베스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자신의 삶의 지경을 넓혀 주시길 구하며 인생에 근심이 없기를 기도하는 것이죠. 그런데 야베스의 기도는 단순히 물질과 축복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 가운데 ‘나를 도우사’라는 NIV 성경에서 ‘Let your hand be with me’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이 뜻은 야베스가 여호와 하나님께 ‘당신의 손, 그 도움이 나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야베스의 기도의 핵심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것이죠. 이 고백은 역대기 저자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그들의 신앙이 야베스의 기도와 같이 되기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야베스라는 ‘고통’ ‘슬픔’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이스라엘 민족 그 자체를 야베스라고 하는 한 인물의 삶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고 하였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의 출생은 ‘고통’과 ‘슬픔’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어 기도하게 되었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는 것에 응답하시고, 허락해주심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대반전을 이루는 인생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이와 같은 소망이 부어지길 바라며 역대기 저자는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5. 고통과 슬픔이 변하여

야베스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우리 성도님들께서 함께 기억해주시길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공동체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갈 때에야 확장되고, 성장하며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공동체가 처해진 상황과 모습이 비록 ‘고통’과 ‘슬픔’의 저주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한 나라의 운명이 ‘고통’과 ‘슬픔’의 비탄한 현실을 걷고 있다 할지라도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저와 우리 성도님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기도해주시길 바라는 것은 ‘주님의 손을 굳게 붙잡는 것’입니다.
한 사람과 한 공동체와 한 민족이 믿음의 기도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고백이 바뀌어야 할 때임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주님 나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바뀌게 될 때,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의 복과 번영을 위한 간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먼저 구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을 우선 순위로 두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시고, 한 사람과 한 공동체와 한 민족을 통하여 주님의 일을 이루어가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이 계속해서 ‘고통’과 ‘슬픔’에 놓여서 지금의 처지가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시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의 기도가 오늘 더욱 하나님께 깊이 나아가는 고백이 되길 소망합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처한 모습이 나의 힘과 의지와 능력으로는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문제와 상황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주님을 더욱 가까이 우리의 마음과 삶에 꼭 품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지금도 굳게 붙잡아 일으켜 세워 주시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믿음의 공동체에 역사하시길 소망합니다. 이 민족과 사회와 국가를 통치하시는 주님이 함께 하시길 원합니다.
이와 같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시길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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