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참된 제자
Notes
Transcript
제목: 주의 참된 제자
제목: 주의 참된 제자
본문: 사도행전 15장 22-29절
본문: 사도행전 15장 22-29절
찬송: 452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찬송: 452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평생 신뢰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은 별로 없어도 묵묵히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편할 때만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려울 때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캐나다 연합교단의 목회자 양성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신학대학원 졸업을 1년 앞둔 목회자 지망생들이 현장목회실습을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실습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항목이 무엇인지 듣게 되었는데 설교를 얼마나 잘하느냐도 아니고, 성경 지식이 얼마나 풍부하냐도 아니었습니다. 그 목회자 지망생이 일관된 모습을 보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캐나다는 다문화, 다인종 사회입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똑같은 마음, 똑같은 태도로 대하는지를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하는 것, 그것이 목회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이것은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진정한 신뢰는 일관된 행동으로 쌓입니다. 평상시와 어려운 때가 다르지 않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일관된 모습을 보일 때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게 됩니다.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 힘든 순간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결정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나바와 바울이 받은 것은 단순한 칭찬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 -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 그리고 온 교회가 이들에게 보낸 최고의 신뢰 표현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인정은 없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뿐만 아니라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모든 이방인 형제들에게 보내는 공식 편지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이라 소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토록 신뢰받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은 그 답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된 제자는 생명을 내어드리는 자입니다>
<참된 제자는 생명을 내어드리는 자입니다>
25-26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여기서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이라는 표현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헬라어 원문에서는 '파라디도미'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완전히 넘겨주다, 송두리째 내어드리다'는 의미입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기꺼이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바나바와 바울이 한 번만 이런 일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위험한 상황이 올 때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계속해서 자신들을 주님께 맡기고 드렸던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파라디도미'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을 때도 사용된 단어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생명을 내어드린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것과 똑같은 마음, 똑같은 태도였습니다. 이것이 참된 제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찬사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경험에 기반한 증언입니다. 1차 전도여행에서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을 뻔했고, 각 도시마다 유대인들의 핍박과 위협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제자들을 격려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생명을 내어드린다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자기 자신보다 주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편의보다 복음을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내 체면이나 명예보다 교회 공동체의 화평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내 시간과 물질과 능력을 아낌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밤새도록 간병하시는 부모님들, 자녀의 장래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을 내어드리는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부터 나와서 새벽제단을 쌓는 분들, 묵묵히 교회 일을 맡아서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모든 것이 생명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생각해봅시다.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가족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내어드리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것이 크든 작든, 자발적이고 기꺼운 마음으로 드리는 헌신이 바로 참된 제자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참된 제자는 주님의 이름을 위해 사는 자입니다>
<참된 제자는 주님의 이름을 위해 사는 자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단순히 생명만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 이것이 핵심입니다. 여기서 '이름'이라는 것은 단순히 호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 사고에서 '이름'은 그 존재의 본질과 권위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영광과 권위와 나라를 위한다는 의미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헌신은 자기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지고 영광받으시기를 위해서였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바나바와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겪은 모든 고난과 희생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자기들이 유명해지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위해서였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나면서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쳤을 때 사람들이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헤르메스라 하여 신으로 섬기려고 했습니다. 그때 바나바와 바울은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들어가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자신이 높아지는 것을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만 높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교회에서 하는 일들, 내가 드리는 헌신들이 혹시 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은 아닙니까?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기 위한 것은 아닙니까? 내가 열심히 교회 일을 할 때, 내가 많은 헌금을 드릴 때, 내가 봉사를 할 때, 그 마음의 동기가 무엇입니까?
참된 제자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보다 주님이 드러나시기를 더 원합니다. 내 이름이 알려지는 것보다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더 바랍니다. 내가 칭찬받는 것보다 주님께 영광이 돌아가는 것을 더 기뻐합니다.
우리 중앙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각자의 은사를 따라 섬길 때, 주님의 이름을 위해 섬기는 것입니다. 구역장으로 섬기든, 성가대에서 찬양하든, 주방에서 봉사하든,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이름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작은 헌신과 수고가 주님께 상달되고, 교회 공동체가 든든히 세워져 갑니다. 우리 개인도 더욱 복된 삶을 살게 되고, 우리 가정도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히 누리게 됩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제자의 삶>
<성령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제자의 삶>
그런데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이런 삶이 우리 힘으로 가능할까요? 생명을 내어드리고, 오직 주님의 이름을 위해 사는 제자의 삶이 우리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일까요?
28절을 보십시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성령과 우리는"이라는 표현입니다. 성령님이 먼저 언급되고 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참된 제자로 살 수 있었던 것도,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성령님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내어드리는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위해 살 수 있는 것도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성령님과 함께라면 할 수 있습니다.
5월에 우리가 묵상한 성령의 열매는 '자비'의 달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자비로운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생명을 내어드리는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위해 사는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바나바와 바울처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 제자로 살게 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 자비 충만한 참된 주의 제자들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참된 제자의 모습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나바와 바울처럼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주님의 이름을 위해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도 참된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작은 헌신과 희생이 주님께 상달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영광받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아니면 불가능함을 인정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자비로운 마음을 주시고, 헌신하는 마음을 주시고, 오직 주님만을 높이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우리 중앙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모든 성도님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비 충만한 참된 제자로 살아가며,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이 모든 기도와 다짐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