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자들을 향한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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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자들을 향한 초대
이사야 55장 1-13절
성경의 특별한 장들을 저희는 이름을 붙여서 명칭을 붙이곤 합니다. 예를 들어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이라고 하고 고린도전서 12장은 은사장, 13장은 사랑장 등으로 부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희가 함께 본 55장은 어떤 장으로 불리울까요?
이사야서의 후반부 예언은 유대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한 것을 전제로 하여 다시 회복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회복된 유다 왕국의 회복을 통해서 장차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49-55장은 이스라엘이 ‘특별한 종’의 사역에 의해서 구원받을 것을 예언합니다. 54장에는 종의 사역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 사역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부부관계가 회복될 수 있도록 했으며 영적 빈곤과 좌절을 영광과 기쁨으로 바꾸었습니다.
55장에서는 이 ‘특별한 종’의 이 사역을 통하여 회복된 영광의 장소로 초청하기에 ‘구원의 초청장’이라고 불리웁니다. 이 초대는 목마른 이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생수와 영적 양식을 주시며, 우리의 영혼을 풍성하게 하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은혜의 초대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초림 600년전에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선포되었던 약속의 말씀이 오늘 2025년을 걸어가는 우리에게도 변함없이 동일하게 약속되어 있고 목마른 자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초대는 우리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요?
첫 번째로 목마름이 만족하게 됩니다.
1절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사야는 제일 먼저 목마른 자들을 향해 외칩니다. 물로 나와서 사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초대를 할 때 돈 없는 자도 오라고 하며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합니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사라는 걸까요?
사람은 창조되어질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하지만 죄로 말미암아 그 형상이 깨어졌습니다. 그 뒤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깨어졌고 이때부터 사람에게는 채우지 못하는 목마름이 생겨났습니다. 이 알 수 없는, 깊은 곳의 공허는 다른 어떠한 것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써만이 채울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져 단절되었으니 이를 채울 수 있을리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 채워보기 위해 힘을 쓰며 살아갑니다. 이성과의 관계를 통해서 채워보려고도 하고 명예와 물질, 지식, 종교들로 채워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역시 채울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2절에서 이러한 부분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정말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4장에 삶에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가진 사마리아여인이 등장을 합니다. 이 여인은 가장 뜨거울 때 우물에 나와 물을 길어 가는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한편으로 우리를 보여줍니다. 갈증, 목마름, 공허함, 그 어떠한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을 스스로 채우기 위해 부단히 애를 씁니다. 가장 뜨거운 정오에 땀과 수고와 모든 것을 다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하지만 그렇게 애쓰고 수고하여 물을 길을 집에와서 목을 축이고 하지만 결국에는 어떻습니까?
사라집니다. 물이 떨어집니다. 그러면 다시 또 그것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봅니다.
이런 것이 계속해서 반복되어집니다. 그때 그 여인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빛되신 예수님께서 가장 밝은 정오에 가장 어두운 여인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목마름과 갈증을 아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명수로 다가가신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그 생명수로 오셨습니다.
가장 부요하신 분이 가장 가난한 자로 오셔서 양식이 되어 만나주신 것입니다.
이 초대는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이 초대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써 생명의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양식이 되신 예수그리스도에게 오라는 초대입니다.
앞서서, 돈 없이 와서 사라고 한 역설적인 말씀을 언급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라는 것은 우리에게 값을 지불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지불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돈 없이 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구원의 값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듣는 것입니다.
영적인 부유함과 만족함을 값없이 얻을 수 있는데 ‘어찌 충족시키지 못할 것들에 헛수고 하지 말고’ 와서 듣고 들으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게됩니다. 수 많은 종교와 이단은 개인의 수고와 조건 달성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반대입니다. 그냥 오라는 것입니다. 이 원리가 바로 기독교의 주춧돌 중 하나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은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어떠한 수고와 노력으로도 달성 할 수 없으며 헛수고입니다.
‘듣다’ 라는 단어는 흔히 순종하다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듣는데 좋은 것을 먹는다???
이것은 곧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듣고 경청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육신의 곤고함 속에서도 우리의 심령은 부요함을 얻고 영혼이 기름지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 영혼의 만족과 풍성을 얻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마음껏 먹고 나면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아주 간단한 원리이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초대에 응답해야 합니다. 물 없는 곳에서 갈증을 해소하듯,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풍성하게 채우십니다.
이 초대에 응할 때에 우리는 참된 만족을 맛보며 인생의 허무함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초대에는 회복이 있습니다.
6-7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로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는 여호와의 초대가 있는 있는 때입니다. 3절 하반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다윗 언약’을 맺자고 하십니다. 주님은 자기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과 언약을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초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시기에 그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의 사역을 통하여 인간들에게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하실 때 치료하시고 위로하시며 하나님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속제죄로 드림으로써 회복하시고 온전케 하시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셨습니다.
이렇게 가까이 와 계시는 하나님의 회복을 우리는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까요?
부르고 불러야 합니다. “여호와를 찾아라. 그를 부르라”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부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찾고 불러야 합니까?
7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7절입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이 여기시리라”
이 초대에 참석하여 복음을 듣게 되었음에도 불구하도 삶의 방향에 대한 혼란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이번에 친구초청잔치에 왔던 중고등부 새친구들이 그럴지도 모릅니다.
초대하였고 초대를 통해 복음을 전하였지만 여전히 목마름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초대를 통해서만 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길만이 회복의 길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변화와 새 시작을 경험하여 회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떠한 잣대로도 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속죄제로 드려지신 예수그리스도를 보심으로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약속의 성취를 봅니다. 지금은 우리가 우리의 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할 때입니다.
회개함으로 악을 버리고, 악을 버려 비워진 그 자리에 예수그리스도를 채워야 할 때입니다.
여호와를 찾는 다는 것은 악한 길과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선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의 체험으로 인하여 지난날 악이 차지했던 자리를 채워 나갈 때 비로소 진정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옛 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옛 본성을 죽이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곳에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있기 때문입니다.
회복은 하지 않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악을 버린 그 자리에 하나님의 것을 채울 때 이루어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없이는 구원이 불가능하듯이 우리도 죽음과 부활 즉, 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는 실천을 하지 않고는 구원의 능력이 우리를 변화시켜 삶의 구석구석까지 회복시킬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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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죽이는 하향 단계”-땅에 두고 있는 인간의 마음, 땅의 것을 의지하고 그 위에 삶을 세우며 하나님 대신 땅에서 정체감과 의미와 구원과 사랑을 얻으려고 함으로써 우상을 세움,
“마음을 두는 상향 단계”-생각과 마음을 위의 것,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높이는 것 말씀과 복음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묵상함으로써 마음이 그분을 향한 사랑으로 채워질 때 우상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복음의 초대에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짐으로 오는 원초적인 목마름과 이 땅을 살아가면서 생기는 갈증을 만족하게 합니다. 또한 갈증을 해소하여 풍성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회복시켜 삶을 변화시켜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놀라운 복음의 은혜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신뢰할 때 주어집니다.
11절입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8절에서는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의 그것과 너무도 다름을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각과 길은 삶의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짝입니다. 한 사람의 길은 곧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그분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주변에 입으로는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삶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다른 사고와 가치관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때가 있습니다. 또한 많은 그리스도인이 기도 열심히 하고, 경건생활 잘 하면 ‘내 생각이 곧 하나님 생각’인 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있기 일쑤입니다.
하나님의 초대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초대에 응답하는 것과 동시에 주시는 확신하는 삶에서 시작됩니다. 확신이 없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말씀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를 “하늘과 땅”의 차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완벽함 근처에 갈 수 없습니다.
본문 10-11절에서 농사를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비가 되어 땅을 적시면, 자연만물은 생기를 얻습니다. 금방 시들 것 같은 작물에도 비가 내리면 생기가 돋습니다.
비가 내려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영향도 주지 않고 그대로 그냥 하늘로 올라가는 경우가 없습니다. 땅과 소출에 생기를 주고나서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돌아갑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세상에 선포되면 모든 목적을 달성한 다음에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11절의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공간적인 개념이 아닌 영적 개념에서 하늘과 땅이 나뉘었습니다. 그 사이를 비가 연결해줍니다.
그 비는 생명을 일으킵니다. 소생시킵니다. 회복시킵니다. 마른 땅을 적십니다.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던 땅에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어린아이 같이 당장의 것에 집착하며 이러한 것들을 위해 아둥바둥 살아가지만 땅의 것들은 우리의 삶에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목마름을 해갈해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비가 땅에 내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내 삶의 구석구석에 내릴 때 우리는 열매 맺게 됩니다. 이것을 확신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스스로의 목마름을 만족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우리 쪽에서 먼저 나서기를 기다리신다고 한다면, 우리는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이고 어디에 계시는지를 우리 스스로 알아내도록 한다면 우리는 일보 삼배가 아닌 일보 백배를 한다해도 망할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한 우리는 하나님께로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의 인생에 오늘 하나님께서 초대장을 보내십니다.
이 초대장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전해지지만 듣지 않고 부르지 않고, 찾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자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에버랜드 자유이용권 - 주어진 시간 안 믿으면 끝)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집사, 김권사가 아닌 내가 복음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배 드리러 오는 것이 기쁨이 없고 일이나 의무감처럼 여겨지는 분이 계시다면 듣고 찾고 돌아설 수 있는 은혜가 다시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초대장을 받은 우리 사랑하는 소생교회 성도 여러분, 한 분도 빠짐없이 초대에 응하여 은혜의 파티를 흠뻑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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