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장 4-10절(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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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고등부 인도네시아 단기선교를 위해 작년 10월 부터 가기 전까지 찬양, CCD, 무언극, 태권무 이렇게 4가지를 준비했습니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하고,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도, 고민하지 말고 연습하라고 엄청 쪼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가는 이유가 선교를 위해 갔지,
관광이나 체험하러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주 토요기도회로, 주일에 단선기도회도 하고 늦은 시간 까지 시험기간에 상관없이 연습하였습니다.
막상 가서 첫 사역을 시작했을 때 스피커도, 블루투스도 안되고, 음악소리가 잘 안들려도,
몸이 반응하는 것을 경험하고는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임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에 맞는 훈련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고 두려운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의미 있는 위대한 일 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볼 때 준비 없이 나가는 것이 두렵고,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렇듯 복음 전파라는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사명 앞에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과 연약함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과 연약함은 우리만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눈물의 선지자라 불렸던 예레미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셨을 때를 요시야 왕 통치 13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부르신 뒤 5년 뒤에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되고 이어진 종교개혁으로 그나마 여호와 신앙의 인공호흡기간이었으나
13년 뒤에 므깃도 전투에서 요시야 왕이 사망하면서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멸망기를 달려 가는 남 유다를 지켜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위기의 시대에 위험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복음의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그런 우리에게 위험한 복음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의 시대는 7-80년대 처럼 마을을 돌면서 북치고 장구치면 줄줄이 교회를 따라왔던,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서 교회를 오는 시대가 아닙니다.
때로는 지탄을 받기도 하고,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과 그리스도, 교회와 복음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위해 부르셨고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냉정하고 냉혹하며 위기의 시대 가운데 오늘 예레미야를 부르시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깨닫고 결단하게 하시는 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5절 입니다.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하나님은 우리를 적극적으로 지으시고, 특별히 선택하여 부르셨습니다.
예레미야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은 요시야 통치 13년이 될때에 그를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 전부터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다 라고 하시면서 예레미야를 계획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성별하였다.. 특별히 선택하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선지자의 우월함이나 특별함을 이야기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신체적, 감성적, 지혜적 모든 부분들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살도록 예정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때로는 다른 사람들처럼 특별히 잘하고 뛰어난 재능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전부터 예정하시고
하나님의 사명을 각자의 삶에서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를 보내시고
또한 적극적으로 부르십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거절 합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6절 입니다.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예레미야는 자신을 아이 라고 합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기 보다는 예언자적 자질이 없다며 자신을 낮추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절은 예레미야가 처음이 아니었을 것이고, 또한 거절한 마지막 사람도 아닐 것입니다.
모세도 그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며 표징을 보여주셨음에도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출애굽기 4장 10절입니다.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또한 13절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우리가 이 말에 공감하는 이유는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할 때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 할 수 있는 말 입니다.
이렇게 말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예레미야나 모세의 초점이 자신의 약점과 제한된 능력과 부족한 경험을 보기 때문입니다.
말도 못하는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아직 준비도 안된 내가 어떻게 이야기 해? 나 같은 사람의 말을 누가 들어주겠어?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거절당하는 것을 견디기도 힘들고, 너나 잘 하라는 눈빛과 말을 듣게 될 까봐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전혀 예레미야의 말에 공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이런 예레미야의 모든 근거를 거부하십니다.
이적을 보이시면서 까지 부르셨지만, 계속해서 거부하던 모세에게도 하나님은 결국 짜증을 내시면서
그냥 가라면 가~ 말 잘 못하면 말 잘하는 너의 형 아론이 있잖아~ 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절 입니다.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 잘해~ 아니야 충분히 할 수 있어~ 라고 격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됐다!! 그런소리 하지 말고, 가라.. 말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공감 능력없고, 강압적인 하나님 같지만,
하나님의 이런 명령은 오히려 선지자의 본질을 상기 시키는 말씀 입니다.
선지자가 어떤 사람 입니까?
선지자는 예언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 입니다.
말씀을 맡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나의 생각, 감정, 상황 등을 섞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것만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가야하며,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을 말하는 자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동의를 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선지자에게, 사명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이력, 자격이 아니라 순종 입니다.
나는 아이 입니다. 아직 상황이 되지 않아서요~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요~ 라고 말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보고, 의지해야 하는 것에, 초점과 시선을 돌리라고 하십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무엇을 봐야 합니까?
복음의 주체자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보는 시선의 변화를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필요한 것은, 내가 준비되는 것, 나의 능력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갖추시고 이루실 하나님의 준비와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뭐가 전도의 성공입니까?
그 영혼이 돌아오고, 오지 않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라, 전하라, 명하실 때 순종하면서 가는 것 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 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디모데후서 4장 2절 입니다.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고 권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레미야는 순종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큰 타락과 우상숭배로 인해 심판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전해도 돌아오는 것은 온갖 고난과 반대와 실패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부르심과 사명은 실패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이미 전하였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였기에 그의 사명은 이미 성공하였습니다.
우리는 가라~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의 시선을 나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께 돌려야 할 때 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사명을 위해 우리를 태초부터 택하여 주셨고, 감당할 많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위해 순종함으로 사용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보내시는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사명자에게 주시는 약속이 무엇입니까?
8절 입니다.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주시는 첫번째 약속은 임마누엘의 약속 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말씀을 안듣고, 거부하며, 핍박 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 그것을 감당하는 자와 함께 하시며
사명자를 향하여 먼저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또 주시는 두 번째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입에 두겠다고 하십니다.
9절 입니다.
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세상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이고 거북한 메시지 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죄를 드러나게 합니다.
가장 더럽고 추악한 죄가 드러나야지 그리스도의 구원이 선포 됩니다.
하지만 세상은 죄를 감추려 합니다.
빛으로 비춰주셔도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뜻을 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 뿐 입니다.
예레미야의 입술에 하나님의 선포가 있었던 것 처럼, 우리의 일상의 대화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친밀해야 하며, 말씀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역할과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힘과 능력되신 하나님이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명자와 함께 하시고, 그것을 이루어가실 힘과 능력도 주십니다.
소명이 있다면 능력도 주어진 것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주저하지 않고, 주님이 주신 부르심의 자리에서,
주님의 마음으로 보게하신 영혼들을 위해 담대히 하나님을 전하는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복음을 위한 삶은 특별한 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특권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생명을 주셨음에 감사한다면, 우리 또한 그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두려울 때도 있고, 부족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가서 전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선택은 없습니다.
주님, 내가 준비가 안되서, 부끄러워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할 사람이 없어서, 전도는 안되겠습니다.
라는 변명은 하나님께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각자의 삶에서, 주신 것을 가지고
주를 위해 헌신하며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이 명령과 부르심에 아직도 외면하고 살아가십니까?
이번 구역하사랑잔치를 통하여 주님의 명령과 부르심을 다시 돌아보고 회복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 합니다.
개인의 신앙을 벗고, 하나님이 맡기신 영혼들을 사랑하고,
우리를 부르시며 입술에 말씀을 두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거절과 고난의 모든 두려움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