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18~25) 미련한 십자가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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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길 (톤 회복, 길이 확장본)
설교: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길 (톤 회복, 길이 확장본)
본문: 고린도전서 1:18-25제목: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세상이 제시하는 성공의 공식과 지혜로운 삶의 방식들에 익숙해져 갑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더 안정된 삶을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계획하며 노력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세상은 이것이 현명한 길이라고 가르치고, 우리 또한 그렇게 믿으며 살아가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십자가 이야기는, 우리가 붙들고 있던 세상의 지혜와는 사뭇 다른, 어쩌면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미련하게' 보이는 길을 제시합니다.
1. 십자가의 시작: 세상의 생각과 부딪히다 (고린도전서 1:18)
1. 십자가의 시작: 세상의 생각과 부딪히다 (고린도전서 1:18)
오늘 본문 1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기서 '십자가의 도(道)'라는 말은 단순히 십자가에 대한 교훈을 넘어, 십자가 사건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원리, 세상을 향한 그분의 깊은 뜻과 우리를 구원하시는 특별한 계획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심오한 하나님의 계획이 '멸망하는 자들', 즉 영적인 생명에서 멀어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미련한 것', 다시 말해 어리석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밝힙니다.
세상은 보통 힘의 논리, 합리적인 이성,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온 세상을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수치스럽고 끔찍한 형벌인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것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십자가형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공포와 치욕의 상징이었습니다. 특히 로마 제국과 같은 거대한 권력의 질서에 정면으로 반항하거나 매우 심각한 도전을 하는 이들에게 내려지는 극형이었기에, 십자가에 달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가치를 부정당하고 사회로부터 완전히 버림받는, 국가의 반역자로 낙인찍히는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런 십자가에서 죽은 이를 구원자로,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시대의 상식과 지성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여전히 강인함, 성공, 세련된 지혜, 눈에 보이는 성취를 높이 평가합니다. 반면에 십자가는 연약함, 실패, 세상적 지혜와는 다른 길을 드러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의 방식과 세상의 방식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곧이어 놀라운 반전을 들려줍니다.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석다고 여기는 바로 그 십자가의 이야기가, 실상은 우리를 얽매는 죄와 절망의 사슬을 끊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강력한 손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삶 속에서도 이러한 부딪힘을 경험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세상은 더 많이 성취하고 더 안정적인 기반을 쌓는 것이 행복과 직결된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은 때로는 세상의 기준과 반대되는 선택, 예를 들어 나를 내세우기보다 겸손히 낮아지고, 내 유익보다 타인을 섬기며, 복수보다 용서하는 삶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명백한 손해처럼, 미련한 선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미련해 보이는' 순종 속에,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샘솟듯 흘러나옴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 세상 지혜의 한계: 하나님이 드러나시다 (고린도전서 1:19-21)
2. 세상 지혜의 한계: 하나님이 드러나시다 (고린도전서 1:19-21)
바울 사도는 19절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 인간의 지혜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전합니다.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쌓아 올린 지혜의 탑을 무너뜨리시고, 스스로 총명하다 여기는 이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실 것이라는 단호한 선언입니다. 이는 인간의 지혜가 종종 하나님을 아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해의 틀 안에 하나님을 가두려 할 때, 인간의 지혜는 교만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20절에서 바울은 묻습니다.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바울은 인간적인 노력과 성취가 하나님을 아는 데 있어서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자랑하는 그 지혜의 허점을 드러내시고, 그것이 가진 본질적인 어리석음을 밝히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알리시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까요? 21절은 그 놀랍고도 역설적인 방법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인간이 스스로의 능력과 지혜로는 결코 하나님께 이를 수 없음을 아셨기에,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른 길, 즉 '전도의 미련한 것' – 세상의 관점에서는 너무나 단순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라는 메시지를 통해 – 믿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방법을 기뻐하셨습니다. 세상의 화려한 철학이나 복잡한 이론이 아닌, 이 단순하고도 충격적인 선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시대를 돌아보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지식과 정보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인간의 이성은 놀라운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이러한 지혜의 발전이 우리 영혼의 깊은 문제들, 이를테면 삶의 의미에 대한 고뇌, 관계의 어려움, 불안과 허무함까지 해결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쌓아 올린 지식과 경험이 오히려 우리를 더 교만하게 만들거나, 하나님의 단순한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가 가장 확신했던 계획이 어긋나게 하시고, 의지했던 방법이 효력을 잃게 하심으로써, 우리 지혜의 한계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 깨어짐과 낮아짐의 자리에서, 세상의 논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십자가의 도'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3. 세상의 기대와 다른 길: 걸림돌과 용기 (고린도전서 1:22-23)
3. 세상의 기대와 다른 길: 걸림돌과 용기 (고린도전서 1:22-23)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세상의 눈에는 '미련하게' 보이는 구원의 방식, 즉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은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와는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22절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하늘로부터 오는 강력하고 가시적인 '표적'을 통해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실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민족을 압제로부터 해방시킬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상이 강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로마 제국의 형틀인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은 예수는 결코 메시아일 수 없었고, 오히려 믿음의 길에서 그들을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과 같았습니다.
한편, 당대의 지성인들이었던 헬라인들은 '지혜'를 통해 진리를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세련된 철학적 논증이나 이성적인 사유 체계를 통해 우주의 근원과 삶의 의미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신적인 존재가 인간의 몸을 입고 고통받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비이성적이고 유치한 신화처럼 들렸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라는 메시지는 그들의 지적인 자부심으로는 수용할 수 없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에게는 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걸림돌이 되고, 헬라인에게는 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어리석은 이야기가 되는 바로 그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사도들은 세상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담대하게 전파했습니다(23절). 이것이 바로 복음이 가진 역설적인 힘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때때로 우리 안의 '유대인'처럼 가시적인 '표적'을 구합니다. 문제가 즉각 해결되기를, 기도의 응답이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합니다. 또는 우리 안의 '헬라인'처럼 신앙의 모든 내용이 나의 이성으로 완벽하게 이해되기를 바라고, 삶의 모든 고난이 논리적으로 설명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오거나 기도가 침묵 속에 머무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쉽게 낙심하거나 회의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다른 종류의 용기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기대와 나의 선입견을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가진 참된 의미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십자가는 모든 문제가 즉시 해결되거나 모든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 부당해 보이는 희생, 세상적인 관점에서의 실패 가능성을 우리 앞에 정직하게 드러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는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참된 구원의 길과 영원한 소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증거이며,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생명의 능력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문입니다.
4. 세상과 다른 기준: 믿음 안의 능력 (고린도전서 1:24-25)
4. 세상과 다른 기준: 믿음 안의 능력 (고린도전서 1:24-25)
세상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나 어리석음으로 여겨지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빛으로 다가옵니다. 그들의 배경이나 지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 즉 삶을 새롭게 창조하고 지탱하는 근원적인 힘이며, '하나님의 지혜', 즉 인생의 모든 의문과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으로 경험됩니다.
세상의 능력은 종종 지배하고 자신을 높이는 데서 드러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의 섬김과 자기희생, 그리고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생명력 안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단순하지만 모든 것을 포용하는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 그리고 화해의 메시지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가장 무력해 보이는 십자가 사건 속에, 우리를 얽매는 죄와 죽음의 권세를 결정적으로 깨뜨리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새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과 완전한 지혜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어지는 25절은 이 역설적인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마음에 새겨줍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물론 이는 하나님께서 문자 그대로 어리석거나 약하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십자가 사건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세상의 눈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으신 것이 지극히 어리석고 연약한 패배처럼 보였지만, 바로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가장 지혜롭고도 강력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인간의 어떤 지혜도 하나님의 '어리석어 보이는' 계획보다 더 지혜로울 수 없으며, 인간의 어떤 강함도 하나님의 '약해 보이는' 방식보다 더 강할 수 없다는 진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기준으로 우리 자신과 세상을 평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전히 세상이 제시하는 성공의 기준과 사람들의 인정을 갈망하며, 세상이 말하는 힘과 지혜를 부러워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 각자의 마음에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도전합니다. 세상의 평가와 때로는 스스로의 의심을 넘어서서,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라고 말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와 불안감 속에서, 세상은 더 강인해지고 영리해지라고 속삭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강하심에 기대는 길, 나의 지혜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길, 나의 공로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나아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이 길이 세상의 눈에는 더디고 답답해 보일지라도, 이 길만이 깊은 평안과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길입니다.
결론: 미련함 속에 감추인 능력과 지혜를 붙잡으십시오
결론: 미련함 속에 감추인 능력과 지혜를 붙잡으십시오
십자가는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세상이 힘과 성공, 자기 과시를 향해 달려갈 때, 십자가는 우리를 연약함의 자리, 섬김의 자리, 자기 부인의 자리로 부드럽게 초대합니다. 그렇기에 세상은 십자가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미련하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의 모든 지혜를 뛰어넘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온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우리에게, 바로 그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와 죽음의 절망으로부터 건져내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능력이요, 우리 삶의 모든 혼란과 방황을 잠재우는 하나님의 참된 지혜가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어리석음'처럼 보이는 것이 인간의 어떤 지혜보다 뛰어나며, 하나님의 '약하심'처럼 보이는 것이 인간의 어떤 강함보다 궁극적으로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성취하라고, 세상의 방식으로 성공해야 한다고 유혹의 손짓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서 우리가 진정한 영혼의 만족과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찾을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세상의 요란한 소리보다, 우리 영혼 깊은 곳을 울리는 십자가의 잔잔한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세상이 미련하다고 말하는 바로 그 길, 섬김과 희생으로 특징지어지는 길,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길, 나의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그 길 위에 참된 생명과 변치 않는 능력이 있음을 온 마음으로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눈앞의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기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고, 나의 유익을 먼저 챙기기보다 기꺼이 이웃을 섬기며,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보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십시오. 우리는 그 선택 속에서 섬세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과 깊은 지혜를 분명히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는 더 이상 우리에게 부끄러움이나 약함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 삶의 가장 큰 자랑이요 흔들리지 않는 능력의 반석이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걸어갈 모든 삶의 여정 속에서, 세상이 보기에는 미련해 보일지라도 우리에게는 전부가 되시는 십자가의 도를 굳게 붙잡으심으로, 세상이 결코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지혜를 매일매일 풍성히 누리며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