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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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발람이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전과 같이 점술을 쓰지 아니하고 그의 낯을 광야로 향하여
눈을 들어 이스라엘이 그 지파대로 천막 친 것을 보는데 그 때에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임하신지라
그가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 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 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그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씨는 많은 물 가에 있으리로다 그의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 그의 나라가 흥왕하리로다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그의 적국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으리로다
꿇어 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일으킬 자 누구이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민수기 24:15–19 “예언하여 이르기를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
설교에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설교자로 준비 되어져 가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도 미스테리하지만 최고의 설교자의 모습을 갖춘 한명의 설교자가 등장한다. 발락이라는 선지자가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생소하다. 그런데 이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24장에 보게되면 최고의 설교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24:1-2). 민수기는 다음세대에게 굉장히 중요한 책이다. 하나님께서 나라와 땅을 주시고, 하나님의 군사를 준비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민수기는 싸움에 나갈 자를 계수한다. 12장 - 24장은 긴 기간동안 열가지의 반역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므리바에서의 반역, 21,22장은 모세가 결정적으로 못들어간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군사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하실 말씀이 민수기에서 많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굉장히 이례적으로 22-25장 까지 하나의 스토리를 이야기 하고 있다. 발람과 발락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대대로 다음세대에게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3절에 눈을 감았던 자를 이야기 한다. 눈을 감았던 자, 눈을 뜬자라고 이야기 한다.
발락이라고 하는 왕이 이야기 한다. 이스라엘을 보고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저주하기 위해서 발람이라는 사람을 소개한다. 발락 세력이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한다. 그런데 발람이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말하겠다고 이야기 한다. “다바르” 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하나님이 발람과 발락의 세대를 통제하기 위해서 다바르를 사용하신다. 발람이 진짜 선지자인지, 거짓 선지자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오리겐과 어거스틴의 관심이 갈라진다.
발락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저주하기 위해서 23장의 스토리가 등장한다. 일곱 제단을 만든다. 이방 술사의 대표적인 특징. 가장 최고의 준비를 위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장면에서 내러티브의 긴장감이 높아진다. 하나님이 그가 저주를 하는 극 ㅣㄹ을 가니깐, 하나님은 막지 않으심. 한 스토리가 나옴. 하나님이 언약 백성을 집약적으로 축복하였는지가 보여준다. 발락과 하나님의 집요한 의지가 드러난다. 발락이 기다리는 동안, 포도원 사이에 좁은길을 가는데 당나기가 말을 안듣는다. 덩키가 길을 가더니 안간다. 발람이 분노한다. 기한이 얼마 짜린데 라고 하며 나귀를 분노의 지팡이로 세 번 내리친다. 이 발람이 자기가 보이는 것이 하나 밖에 ㅇ벗다. 자기의 몸값과 불의의 삯 밖에 없아ㅓㅆ다. 하나님으 나귀의 입을 여셨다. 저기 포도원 길 끝에 여호와의 천사가 길에 서 있다고 한다. 그 미천한 나귀가 여호와의 천사를 바라보고 있다. 나귀는 보고 있지만, 발람은 나귀를 쳐서 뭉개고 있다.
22장에 나귀의 당키의 입을 여셨다. 그 천사를 보게 하셨다. 나귀와 발락의 대화 장면. 주인님, 주인님 제가 오랫동안 모셨는데 이렇게 대한적 있습니까? 제가 이렇게 맞지 않으면 주인님이 죽어요..!!
그 탐욕에 눈이 멀었던 사람을 나귀를 통해서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 발람의 세력과 어떻게 전쟁을 벌였는가? 저주를 하려고 하는 순간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다바르”를 주시매, 축복의 예언을 주셨다. 저주가 아니라 축복으로 바꾸는 영적인 소식을 보여주고 있다. 미천한 나귀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이중적인 이 발람을 사용해서도 언약 백성을 축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런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가?
점차적으로 눈을 열어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현신이형도 그랬던 적이 있다. 오늘 발람의 눈을 열어주셨던 것처럼, 저도 사용하고 우리도 사용하실 것이다. 아멘.
12절 “다바르를 내가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심판도 있고 공의도 있고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을 더 하거나 덜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발락이 또 다가온다. 내가 시킨게 그게 아니자나! 개혁이 그게 아니자나! 처음에는 회유하고 흥정하고 협박하고,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다. 19-20절을 보게 되면, 발락이 2차 시도를 한다. 발람이 다시 저주를 하는 장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이 발람의 속성을 보게 된다. 그가 입을 열었는데, 다바르 하신 것을 하나님은 반드시 실행하신다. 구약의 주옥 같은 말씀을 발락을 통해서 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하물며, 우리들의 교회를 축복하지 않겠습니까? 그 근거는 무엇일까? 이 능력은 우리도 갖고 있다. 다윗언약으로 갱신해주시고,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끝까지 지키셔서 진정한 왕으로 오셔서 우리를 축복하신다. 이 두번재 신호가 축복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이 발람이 돌아섰겠지. 그러지 않다.
발람이 23:6절에서 말한다.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한 것을 내가 말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까?”
발락은 화를 내고 있다. 발락은 절대 포기 하지 않는다. 발락이 발람에게 다시 와서 말한다.
지금 까지 없던 것으로 하겠다. 최고의 술사라고 불렸다. 발람! 한번만 저주를 해줘라!
마지막 저주를 시도하는 이 장면에서 ,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 앞에 두고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위기와 긴장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눈을 여시면, 비전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백성인줄 알수있다. :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이 예쁘지 않지만, 예뻐 보인다.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발람의 눈을 통해서 아름답게 보이게 하신다. 6-7절
우리의 눈으로 보이면, 희망이 없지만 발람의 눈을 여신것 처럼 우리들의 눈을 여서서 전능자의 빛을 보기를 소망합니다.
8절을 보면, 힘이 들소와 같고 힘이 암소와 같다고 이야기 한다. 하나님의 강력한 전사로 일어날 것을 발람의 근거로 보여준다. 에돔과 모압과 어떤 강력한 족속이 무너뜨려질 것을 말해주고 있다. 눈을 감았던 발락이 엄청난 미래에 하나님의 비전을 보는 데 까지 나아간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재와 미래를 보게 하고, 다윗을 통해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이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고, 한 규가 나올 것 (하나님의 완벽한 통치, 아름다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보고 있는가? 영원한 승리를 주실 예수 그리스도! 전능자의 비전이 우리에게 보여져야 한다. 우리의 눈이 열어지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