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0:14-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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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의 간절한 권면이 담긴 말씀 앞에 서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바울은 아주 친밀한 표현으로 말문을 엽니다. 마치 “내 아들아”, “내 친구야”라고 부르듯, 애정과 염려가 깊이 배어 있는 말입니다. 왜 이렇게 애틋하게 부르며 권면할까요? 바울은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너지지 않고 세움받기를 진심으로 원했기 때문입니다.
15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이어갑니다.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바울은 단정적으로 명령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야 해!”라고 몰아세우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분별할 수 있는 존재로 대합니다. 이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를 권면할 때에도 바로 이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가 해보니 이게 좋은 것 같아. 너도 생각해봐.”라고 할 때, 사람은 자율성과 배려를 느낍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게 하는 권한을 줄 때, 진정한 성장과 순종이 일어납니다.

1. 우상 숭배를 피하라는 명령은 사랑에서 비롯된 절박한 외침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우상 제물과 관련된 관습에 익숙한 도시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제사에 사용된 고기를 먹는 것이 단순한 식사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신과의 관계를 맺는 영적인 참여임을 망각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20절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그들이 제사하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요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실 수 없고, 주님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함께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는 단순한 식생활 지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귐에 대한 문제입니다.

2.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를 위한 사랑의 감정입니다

22절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노여워하시게”라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질투하게 하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질투하신다는 말은 우리를 향한 사랑이 그만큼 깊다는 증거입니다. 자녀가 허무한 것에 빠져 자기를 파괴할 때, 부모는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하고, 돌이키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아무에게나 내어주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영혼의 진정한 기쁨은 오직 그분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다른 것에서 만족을 구하면, 결국 무너지고 실망하게 됩니다.

3. 오늘날의 우상은 형태가 다를 뿐 여전히 존재합니다

고대의 우상은 돌이나 나무 같은 피조물이었지만,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는 더 교묘하고 정교한 우상들이 있습니다. 사상, 이념, 습관, 사람, 성공, 돈, 심지어는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열광하고 몰입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너질 때, 우리는 허무함에 빠지고 삶의 중심을 잃게 됩니다.
우상 숭배의 본질은 하나님을 대체하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만족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우리를 망가뜨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자녀를, 직업을, 삶을 사랑하는 것은 건강한 신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그것들로 만족하려는 마음은 우상숭배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이 삶의 중심입니다

16절과 17절은 우리 신앙의 본질을 상기시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참여한다’는 것은 관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잔과 떡에 참여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관계를 맺고, 그분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일요일에만 교회에 와서 드리는 종교 행위가 아닙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은혜와 말씀에 참여하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 주님과의 진정한 사귐입니다.

5. 예수님과의 사귐이 없는 삶은 영적인 싱크홀을 만듭니다

싱크홀이란 지반 아래 물이 빠져나가면서 지표면이 꺼지는 현상입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빠져나가면, 영혼의 중심이 무너지며 영적 싱크홀이 생깁니다. 그런 삶은 결국 탐심과 욕망이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여러분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이 탐심의 잔, 욕망의 식탁이라면, 과감히 그것을 쏟아버리십시오. 그 자리에서 나와, 주님이 예비하신 주의 잔과 식탁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주님의 식탁에는 갈급한 심령을 채우는 생명의 양식이 있습니다. 매일 그 식탁에 참여하십시오.
결론:
하나님은 우리가 귀신의 잔이 아니라, 주의 잔을 붙들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능력이고 방향이며, 탐심과 욕망을 이기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주님의 식탁으로 나아갑시다. 거기서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리며, 우리의 삶이 주님 안에서 견고히 서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우리 마음을 엽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들려주신 간절한 권면처럼, 우상 숭배를 멀리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고,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않도록 우리의 삶과 마음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옵소서.
세상 속에 깊이 파고드는 욕망과 탐심,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우리를 무너뜨리는 헛된 것들 앞에서 주님의 식탁을 붙들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 우리 마음에 생명의 양식이 끊이지 않게 하시고, 주의 말씀으로 채워져서 영적인 싱크홀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매일의 삶에서 주님과 동행하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와 진리로 만족하게 하소서.
이제 우리의 손에 쥐고 있던 귀신의 잔과 식탁을 내려놓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식탁 앞으로 나아갑니다. 주님과의 깊은 사귐 속에 살게 하시고, 세상보다 크신 주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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