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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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감사와 자족
감사와 자족
오늘 바울은 편지를 마치며 이 편지를 받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 이유은 복음을 들은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 바울을 돕기 위해 헌금을 모아 바울울 후원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들의 마음에 감사를 표현하는데, 특별히 바울은 감사를 표현하며 조심하는 부분이 있습ㄴ디ㅏ.
11절에 보면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후원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가 마치 빌립보 교인들로 하여금 후원을 해달라는 메시지로 들려질 수 있을까 하는 조심스러움이 바울에 게 나타납니다.
바울은 이들의 후원이 바울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음을 확인하는데,
바울은 실제로 자신이 어떤한지 설명해주며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배운 것은 어떤 것입니까?
복음안에서 누리는 ‘자족’입니다.
12절의 고백을 통해 복음으로 사는 바울의 삶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원래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 유대인의 랍비의 교육을 받을 만큼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입니다.
풍부함과 배부름이 있던 삶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오히려 궁핍과 핍박과 배고픔을 경험해야 했던 인물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살아가는 삶은 오히려 믿기 이전보다 더 힘들어보이는 삶이었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주님께서 채우시는 능력을 경험하며 선교의 여정을 밟아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이 어떤 삶속에서 주님의 채우심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이 후원이 없음에도 이미 주님안에서 자족하는 방법을 배우며, 매 때마다 주님이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놀라움을 바울은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수험생들에게 항상 주어지는 말씀이죠. 뭐든지 도전해봐! 할 수 있어!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 이 말씀을 주곤 하지만,
바울의 고백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바울의 고백인 4:13절은 단순히 어떤 문제를 만날 때에 마인드 컨트롤 하듯이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할 수 있어!” 이런 부분이라기보단 “주님은 배부르나 배고프나 풍부하나 궁핍하나 언제나 저를 채워주셨습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저는 어떠한 형편이든 충분합니다” 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 고백을 하는 이유는 자신은 이미 주님안에 충분히 누리고 있다는 것을 말하며,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빌립보 교인들이 후원을 생각하길 원했습니다.
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바울은 이들의 후원이 개인적인 긍휼한 마음의 후원이 아닌 어떤 부분으로 보여지기를 원했던 겁니까?
빌립보 교인들의 헌신은 단순히 바울을 도운 것이 아니라 14절을 보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단순히 후원을 해준 것에 감사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닌 이들이 복음에 참여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며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의 헌신은 바울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닌 복음에 참여한 일임을 설명하기 위해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사역가운데 어떤 것을 했는지 설명해줍니다.
바울이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바울에 일을 참여한 교회가 빌립보 교회 뿐이었으며, 데살로니가에서 사역할 때에도 두번씩이나 바울을 도와 바울의 ‘사역’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다시한 번 당부하는데
선물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도움이 필요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바울은 오히려 이 계기를 통해 이들이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얻기를 구한다고 합니다.
그 열매가 무엇입니까? 19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는 은혜
바울이 복음에 참여하며 경험하고 누리게 되었던 ‘자족’의 은혜가 빌립보 교인들 가운데에도 가득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전하고 싶었던 감사의 마음은 빌립보 교인들이 긍휼함으로 한 개인을 돕는 것도 복음에 참여하고 있는 것임을 기억하며, 각 사람의 상황속에서 바울이 복음에 참여하며 누렸던 ‘자족’의 은혜를 경험하길 원하는 축복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며 기도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단순히 믿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에 참여하는 삶의 모습은 배고픔도 있고 궁핍도 있고 비천에 처하기도 하는 그런 낭만적이지 않은 삶의 모습이 있지만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족’을 배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마음은, 복음에 참여하는 과정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에 참여할 때 우리는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자족’의 은혜를 주님의 능력 안에서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하는 모든 헌신들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복음’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쁨의 자리는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전보다 더 힘든 삶의 모습일 수도 있고, 무시당할 수도 있고, 배고플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축복했던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 때를 따라 도우시고 풍성히 채우시는 주님의 능력, ‘자족’을 배우는 축복의 열매를 우리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 시간 기도하실 때에, 복음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심에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 원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을 누리는 은혜를 구하는 오늘 하루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