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장 1-2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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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장 1-2절

• 칼빈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성화의 “착한 일”이 신자들이 “복음을 들음과 성령께서 조명하심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본다. 칼빈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착한 일을 지속(또는 “실행”)한다는 것은 “의와 거룩함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더글러스 맹검, Lexham 리서치 주석: 빌립보서, Lexham 리서치 주석 시리즈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3), 빌 1:1–26.
구조
1. 마지막 권면 (빌 4:1–9)
a. 하나됨으로의 부르심 (빌 4:1)
b. 유오디아와 순두게 (빌 4:2–3)
c. 주 안에서 기뻐하라 (빌 4:4–9)
2. 빌립보 교회의 헌금에 대한 바울의 감사 (빌 4:10–20)
a. 자족에 대한 바울의 태도 (빌 4:10–14)
b. 빌립보 교회의 헌금 (빌 4:15–20)
3. 마지막 인사 (빌 4:21–23)
a. 끝인사 (빌 4:21–22)
b. 축도 (빌 4:23)
바울은 이 마지막 장을 하나됨으로의 부르심으로 시작한다(빌 4:1).
다툼을 그치고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촉구한다(빌 4:2. 비교, 빌 2:2).
그리고 이제 바울은 전체 회중에게 권면하면서, 기쁨, 관용, 기도,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특징지어지는 삶을 살도록 촉구한다(빌 4:4–9).
멜릭은 빌립보서 4:1–9를 다음과 같은 일련의 권면들로 묘사한다: 굳게 섬(빌 4:1), 하나됨(빌 4:2–3), 기쁨과 평강(빌 4:4–7), 올바른 태도(빌 4:8–9).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가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는 것은 빌립보 회중에 내재하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룽게(Runge 2011)에 의하면,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나온 부분은 바울의 논증에 있어 핵심적이다. 룽게는 이 부분에 이르기까지 편지의 상당 부분은 바울이 이 두 여인에게 충고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고, 빌립보서 4:2–3은 그 다음에 나올 그리스도인의 행실에 대한 바울의 논의를 위한 배경을 설정한다고 주장한다. 더글러스 맹검, Lexham 리서치 주석: 빌립보서, Lexham 리서치 주석 시리즈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3), 빌 4:1–23.
틸만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의 다툼이 바울이 빌립보서 전체를 통해 다루고자 하는 “불화의 기저에” 위치한 다툼이었을 것이라 주장한다: 바울이 이 여인들 각자의 이름을 언급 한다는 것은 이들 사이의 불화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빌립보서 4:2의 “같은 마음을 품으라”(토 아우토 프로네인, to auto phronein)는 표현은 빌립보서 2:2의 “한마음을 품어”(토 헨 프로눈테스, to hen phronountes)와 맥을 같이 한다
많은 학자들의 지적처럼, 빌립보 같은 도시들은 종종 시민들의 이름을 기록한 시민 명부를 가지고 있었다(참고
‘쉬쥐고스’(syzygos), “멍에를 함께 메는 이.” 빌립보서 4:3에서,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의 불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어떤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바울은 이 사람을 ‘그네시에 쉬쥐게’(gnēsie syzyge, “참으로 멍에를 함께 메는 자”)라 부른다. 많은 영어 역본들은 ‘쉬지고스’(syzygos)를 “멍에를 함께 메는 이”로 번역하지만(NIV, ASV, KJV, LEB), “동반자”(TNIV, NASB)나 “협력자”(NLT, GNT)라는 말로 더 쉽게 번역하는 역본들도 있다.
‘프루레오’(phroureō), “지키다.”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지막 권면 중 하나는 모든 상황 속에서 기도에 힘쓰라는 것이다(빌 4:6). 바울은,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다”(프루레세이, phrourēsei)라고 쓴다(빌 4:7). 동사 ‘프루레오’(phroureō)는 “지키다” 혹은 “지켜보다”를 의미한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믿음이 오기 전까지 우리를 포로로 잡고 있는 율법에 대해 말한다(갈 3:23). 베드로전서 1:5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을 “지키실 수”(또는 “보호하실 수”; NIV) 있다고 말한다. 이 동사의 유사한 용례는 70인역에도 등장한다(70인역: 에스드라1서 4:56; 유딧 3:6; 지혜서 17:15). 핸슨(Hansen 2009, 292)에 의하면, 빌립보서 4:7에서 ‘프루레오’(phroureō)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를 가리키는데, 그 이유는 “평강”(즉 하나님 및 동료 신자들과의 평화의 관계)은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멜릭(Melick 1991, 149–50)은 ‘프루레오’(phroureō)가 군사 용어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참고, 고후 11:32). 그런 의미로 본다면, 빌립보서 4:7은 하나님의 평강이 “파수꾼이 되어” 신자들의 공동체를 불안과 염려를 주는 것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뜻이다. 더글러스 맹검, Lexham 리서치 주석: 빌립보서, Lexham 리서치 주석 시리즈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3), 빌 4:1–23.
10. 기쁨과 평강의 교회를 이루라
바울은 이 단락에서 1:27 이래의 주된 생각들을 결론적으로 정리합니다. “그러므로”(“복음”에 근거한 결론적 권면).
외부 적대자들(빌림보의 관원들이나 시민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고 내분까지 겪으며 고난 받고 있는 빌림보의 교회에게 바울은 다음과 같이 4가지, 즉 주 안에서 굳게 설 것, 하나가 될 것, 그리하여 기쁨을 얻고, 평강을 얻을 것을 역설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빌 4:1). 154p.
1:27–30에서 바울은 독자들에게 권면을 시작하면서, 그들더러 스스로 멸망의 자식임을 드러내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고, 한 마음으로 똘똘 뭉쳐 굳건히 서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구원을 바라보며 복음을 위해 함께 투쟁(4:3 “복음 안에서 함께 힘쓰다-투쟁하였다.” ; 1:27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협력-투쟁 하는 것과”)해 나가라고 권면했습니다. 그것이 곧 그들이 하늘의 시민으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155–156.
“주 안에서”는 바울이 매우 자주 쓰는 문구입니다. 그것은 그가 자주 쓰는 다른 표현 “그리스도 안에서”와는 그 뜻과 쓰임새가 다릅니다.
후자는 예수의 그리스도(메시아)적 행위, 즉 구원의 사건인 그의 죽음과 부활에 초점을 맞춘 개념입니다. 그래서 그 문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죽음과 부활의 덕을 입은 상태”, 즉 “죄인으로서의 옛 아담적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새 아담적 생명을 얻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 피조물인” 것입니다(고후 5:17).
“주 안에서”라는 문구는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높임 받아 만유를 통치하는 주권을 받으심(빌 2:9–11)에 초점을 맞춘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구는 “예수의 주권의 영역에서, 그의 주권에 힘입어, 그의 주권에 순종하여”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세윤, 빌립보서 강해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동 95번지: 사단법인 두란노서원, 2002), 156–157.
빌립보교회에 대한 바울의 애정
그들을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이라 부르고,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덧붙이고, 그것도 모자란 듯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또 덧붙입니다. 빌립보의 성도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이렇게 진하게 표현하는데, 그런 사랑의 표현을 받은 교회는 그들 외에 데살로니가교회밖에 없습니다(살전 2:19–20).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마게도니아 지방의 이 두 교회들과 특별히 좋은 사랑의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cf. 고후 8:1–5). 김세윤, 빌립보서 강해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동 95번지: 사단법인 두란노서원, 2002), 157.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분규하는 이유는 서로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분규를 끝내려면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 안에” 있는 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의 영역에 있는 자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의 삶의 주라는 것을 새롭게 깨닫고 그의 뜻을 좇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생각이 옳다고 우겨대는 행위를 중단하고 함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모색할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같은 생각”을 품게 됩니다. 김세윤, 빌립보서 강해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동 95번지: 사단법인 두란노서원, 2002), 161–162.
빌립보서 강해 10장: 기쁨과 평강의 교회를 이루라

곧 빌립보교회 내의 한 지도자로서 바울의 빌립보에서의 선교에 크게 동역한 사람인 것 같아 보이나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당시의 수신인들은 잘 알고 있었을 텐데, 그 사람은 바울과 복음 사역에서 동역하되 마치 소 두 마리가 하나의 멍에를 같이 매고 밭을 갈듯이 하였으므로,

빌립보서 강해 10장: 기쁨과 평강의 교회를 이루라

하여간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빌립보교회의 내분의 중심인물들같이 나타날 뿐 아니라, 바울 역시 그들을 소개할 때 자신과 “복음 선포 사역에서 한 팀을 이루어 함께 투쟁했다”

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하는가? 왜? 빌립보교회는 기뻐할 수 없었는가?
공동체 안에 갈등으로 하나되지 못 하고 있는 상황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 기뻐하는가? 언제 가장 기쁜가?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때? 친구와 함께 수다떨고, 운동을 하며 재밌는 시간을 보낼때? 우리가 진정한 기쁨과 평안을 누릴 때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나 될 때 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되지 못 할 때, 우리는 낙심하고, 슬퍼하고, 분노합니다. 친구와 싸웠을 때, 손절 했을 때, 부모님께 대들고, 혼이 났을 때, 선생님과 갈등을 빚을 때, 사람들에게 비난과 욕을 먹을 때, 연인과 헤어졌을때, 배우자와 하나되지 못 할때, 가정이 깨질때
우리 안에 가장 큰 고통과 아픔을 주는 것은 하나 되지 못 할 때입니다. 하나되지 못하는 아픔과 반목, 우울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평안과 기쁨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 속, 빌립보 교회는 갈등과 슬픔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 있는 빌립보 교회에게 바울은 편지한통을 보냅니다. 빌립보 교회에 보낸 바울에 편지에는 특별한 애정과 사랑이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바울에게 빌립보 교회는 유럽 전도여행에서 처음으로 맺은 열매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기뻐하라”는 말을 16번이나 반복하면서 빌립보 교회가 기쁨을 회복할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 되지 못 하는 곳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갈등
우리의 반목은 주 안에서만 회복 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기도와기뻐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강해 10장: 기쁨과 평강의 교회를 이루라

지금 빌립보서를 쓰는

빌립보서 강해 10장: 기쁨과 평강의 교회를 이루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까이 계시는 주의 사랑을 덕 입지 않고는 우리의 원수를 도저히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관용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는 도저히 우리의 마음속에 평강을 얻을 수 없고 기쁨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까이 계시는 주의 사랑을 덕 입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덕 입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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