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6-17) 부끄럽지 않은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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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6-17)

서론: 흔들리는 믿음, 세상의 유혹

우리는 참으로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쉴 새 없이 새로운 정보와 자극이 몰아치는 급류 속에 떠 있는 듯, 수많은 가치관이 서로 충돌하고, 저마다의 목소리로 ‘이것이 바로 당신이 찾던 해답이다’,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의 길이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드높습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때로는 우리가 붙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상치 못하게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연약하고, 세상의 유혹과 회의의 물결은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경쟁과 성과 중심의 사회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때로 버거운 숙제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마치 화려한 조명 아래 배우들의 연기와 같은 자기 과시가 펼쳐지는 세상의 무대 앞에서, 우리의 신앙은 때로는 골방 안의 개인적인 위안 정도로 축소되거나, 심지어는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낡은 이야기처럼 여겨져,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입 밖에 내기 부끄러워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과연 이 믿음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하는 냉소적인 질문 앞에 우리는 종종 말문이 막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세태는 비단 세상의 풍파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개인 성도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한국 교회 안에서도, 복음의 본질과 그 야성을 온전히 드러내기보다는, 세상의 기준과 평가에 맞추어 복음의 색깔을 바꾸려 하거나,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분의 십자가를 전면에 내세우기를 주저하는 듯한 조심스러운 흐름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의 외형적인 성장이나 사회적인 영향력, 세련된 프로그램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정작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의 도’, 즉 자기 부인과 섬김, 세상이 어리석다고 여기는 그 길을 강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의도적으로 희석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전통적인 신앙의 구호를 힘주어 외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교회의 운영 방식이나 성공의 척도, 성도들의 삶의 우선순위가 알게 모르게 세상을 닮아갑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른 방식의 구원, 다른 형태의 행복을 제시하며 유혹합니다. 쉼 없는 경쟁 속에서 더 많은 소유와 더 높은 지위가 곧 안정과 행복을 보장할 것이라는 달콤한 약속, 타인의 인정과 부러움 섞인 시선이 삶의 궁극적인 가치인 것처럼 포장되는 문화, 혹은 인간의 지혜와 과학기술의 발전이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마침내 완벽한 세상을 도래시킬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들이 마치 우리를 구원할 것처럼 매혹적으로 속삭입니다. 이러한 거센 흐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의 메시지는, 세상의 복잡다단한 문제들과 그럴듯한 해법들 앞에서, 때로는 너무나 단선적이거나, 심지어는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볍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1. 세상의 평가 앞에 선 복음: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그러나 이러한 세상의 소란함과 교회의 주저함 속에서, 사도 바울은 단호하고도 명확한 목소리로 선언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여기서 ‘부끄러워하다’는 말의 어감을 살펴보면, 단순한 수줍음이나 민망함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대상에 대해 수치심을 느껴 외면하거나, 그 가치를 의심하여 실망하고 포기하는 태도까지 포함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 때문에 겪게 될 사회적 냉대, 지성인들의 조롱, 동족의 배척,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생명의 위협까지도 분명히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삶은 복음으로 인한 수많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이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선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어지는 구절에서 그는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힙니다. 복음이 단순한 사상이나 철학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어쩌면 더욱 교묘하고 세련된 형태로 복음을 부끄러워하도록 세상으로부터 유혹받습니다. 한국 교회는 한때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며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소망을 주었지만, 어느덧 세상의 성공 논리와 너무 가까워져 버린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야 할 때입니다. 교회가 복음의 순수함과 세상을 거스르는 야성을 잃어버리고, 세상적인 가치, 즉 건물의 크기, 성도의 숫자, 재정의 규모, 사회적 영향력과 같은 외적인 지표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할 때, 우리는 본질적으로 복음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분의 급진적인 가르침이 주는 세상과의 불편한 긴장감 앞에서, 혹시 우리는 더 세련되고, 더 합리적이며, 더 ‘세상 친화적인’ 방식으로 교회의 정체성을 설명하려 하지는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바울이 그토록 경계했던,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현대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2.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바울이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복음, 그 복음이 가진 ‘하나님의 능력’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이 ‘능력’은 단순한 개인의 심리적 위안이나 윤리적 교훈이 아닙니다. 마치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성벽을 단숨에 무너뜨리고, 굳게 닫힌 감옥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역동적인 힘과 같습니다. 이는 인간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왜곡된 가치 체계,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불의한 구조, 사람들을 절망과 무기력에 가두는 낡은 관습과 이념들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와 생명을 창조하는 혁명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과거 로마 제국의 강력한 군사력이나 화려한 철학도 해결하지 못했던 인간의 근원적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정면으로 돌파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능력은 특정한 민족이나 사회 계층, 지적 수준에 따라 차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이 능력이 동일하게 임한다고 선언함으로써 복음의 절대적인 보편성을 강조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민족이며 율법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고, 헬라인들은 인간의 이성과 지혜가 궁극적인 해답을 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러한 인간적인 경계와 자부심을 단번에 무너뜨립니다.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조건은 ‘믿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의 핵심 진리를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을 넘어, 그분을 나의 구원자요 삶의 주인으로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신뢰하는 전적인 의탁, 모두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과거의 죄로부터 용서받고, 현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힘을 얻으며, 미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품게 됩니다.

3.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사는 길

그렇다면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복음,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기쁜 소식의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우리 삶 속에서 실제로 나타날 수 있을까요? 성경의 로마서 1장 17절은 그 비밀을 이렇게 밝혀줍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의’라는 말은 복음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마치 사람의 심장과도 같이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의’ 또는 ‘의로움’이라고 하면, 흔히 사람이 행하는 착한 일이나 도덕적으로 흠 없는 완벽한 상태를 떠올립니다. 그래서 스스로 의롭게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의 완전하고 거룩하신 기준 앞에서는 자신의 노력이 얼마나 부족하고 때로는 형식뿐인 행동이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결국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완전한 의로움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깊은 절망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우리가 노력해서 얻어내는 어떤 공로나 자격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풀어주시는 선물입니다. 원래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깨어졌고, 그 결과로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특별한 선언을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아무런 조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의롭다!"라고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법정에서 판사가 무죄를 선언하듯 우리를 죄 없다고 칭해주시는 사건이며, 동시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하나님의 의’가 복음 안에서 비로소 ‘나타났다’고 증언합니다. 여기서 ‘나타났다’는 말은, 이전에는 마치 베일에 가려져 있거나 희미하게만 느껴졌던 것이 이제는 아주 명확하고 완전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 즉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율법의 여러 규정들이나 반복해서 드리는 제사들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마치 그림자처럼 그 윤곽만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거나 제사를 통해 완전한 의로움을 이룰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정해진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완전한 삶, 우리 죄를 대신해 치르신 죽음,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영광스러운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그 의를 받을 수 있는지를 온 세상에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의는 오직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처음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기로 결단하는 그 순간의 믿음으로 시작됩니다. 이것을 ‘칭의’라고 부르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처음 믿음이 우리를 죄와 죽음의 문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문을 여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변치 않으시는 신실하심이 우리를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이후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과정, 즉 ‘성화’의 삶 역시 동일하게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성화’란 우리가 날마다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처음의 믿음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받게 했다면, 그 이후 계속되는 믿음은 우리를 매일매일 더욱 거룩하게 만들어가며, 결국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바로 믿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삶으로 증명하는 신앙

사도 바울은 이 모든 복음의 진리가 옳다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이 갑자기 만들어낸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구약성경 하박국 2장 4절 말씀을 가져와 설명합니다. 거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짧은 한 문장은 복음의 핵심 원리, 즉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길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살리라’ 또는 '살 것이다'라는 말은 단순히 우리가 숨을 쉬고 심장이 뛰면서 생명을 이어가는 육체적인 생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깊은 의미가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과 아주 생생하고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그분의 뜻을 따라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이 땅에서부터 미리 맛보며 누리는 삶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활기차고 진짜 살아있는 듯한 생명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고,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돈이 얼마나 많은지, 사회에서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는지, 또는 개인적으로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졌는지는 이 참된 생명을 얻는 데 아무런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무런 대가 없이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생명을 얻고 그 생명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독교의 가르침을 머리로 이해하고 ‘아, 그렇구나’ 하고 동의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 우리가 매일 내리는 수많은 선택들,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복음이라는 진리의 빛에 끊임없이 비춰지고, 때로는 도전을 받아 바뀌기도 하며, 결국 새롭게 변화되어가는 실제적인 삶의 방식을 뜻합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의를 믿음이라는 선물을 통해 받았다면, 그 살아있는 믿음은 반드시 우리 삶 속에서 구체적인 열매, 즉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더 이상 나쁜 죄의 유혹에 끌려다니며 그것의 노예처럼 살지 않게 됩니다. 대신, 주변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정의로운 행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게 되고, 어두운 세상 속에서 밝은 빛처럼, 또 맛을 내고 부패를 막는 소금처럼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모습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받은 구원이 단순히 이론이나 관념이 아니라 얼마나 실제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맺음말: 부끄럽지 않은 복음, 교회의 사명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복음 말고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지거나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복음의 가치를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거나 때로는 비웃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때로는 우리 교회조차 이러한 세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서, 복음 자체가 가진 근본적인 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방법이나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전략에 더 마음을 쓰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을 개인적인 시간에만 국한시키고,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는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하거나, 세상 사람들이 듣기 싫어할 만한 복음의 중요한 가르침은 적당히 부드럽게 바꾸거나 타협하려는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사실을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 기쁜 소식은 결코 부끄러워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세상을 변화시킬 만큼 강력한 하나님의 힘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하나님께서 아무런 대가 없이 주시는 완전한 ‘의로움’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 ‘의로움’은 오직 믿음으로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죄와 절망감을 이기고 진정한 생명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약속을 지키시며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분은 약속하신 그대로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하심에 진실된 믿음으로 반응할 차례입니다.
특별히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다시 한번 이 복음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순수하고 강력한 힘 앞에 겸손하게 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일시적인 칭찬이나 잠깐 동안의 인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를 통해 전해진 복음만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리고, 우리 가정을 회복시키며, 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유일한 능력임을 우리의 삶 전체로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먼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삶의 모든 부분에서 믿음으로 살아내려고 노력할 때, 한국 교회는 다시금 어두운 세상에 희망을 주고 올바른 길을 비추는 등불로서의 거룩한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공동체 전체가 이 부끄럽지 않은 복음 위에 굳건히 서서,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하심에 용기 있는 믿음으로 응답하여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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