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새벽설교)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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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사야에게 나타나시고, 그가 자신의 부정함을 고백하자 하나님께서 그를 깨끗하게 하신 후 사명을 맡기십니다.
이사야가 특별해서 이런 은혜를 받았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부르시며,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준비시키십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선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준비시키며 보내시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죄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 후에야 이사야는 담대히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새벽 우리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우리의 죄를 깨달아 고백하고, 정결함을 입어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쁨으로 순종하시길 축복합니다.
[본론]
1.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사야 6:1 NKRV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 말씀은 선지자 이사야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장면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웃시야 왕의 죽음 이후 매우 불안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남유다를 잘 통치했던 웃시야 왕의 죽음은 백성들에게 불안함을 주었고, 이웃 나라들은 남유다를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이사야는 놀라운 환상을 보았습니다. 바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했고, 하나님 주위에는 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끊임없이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의 이 찬양은 하나님의 완전한 거룩함과 절대적인 순결함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특별히 세 번 반복함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얼마나 완전하고 변함없는지, 그리고 우리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신 분임을 나타냅니다.
이 장면을 본 이사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신의 죄와 부정함이 뼛속 깊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선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기비판이 아닙니다. 말은 그 사람의 본질과 마음을 드러내기에, 이사야는 자신의 입술, 즉 자신이 하는 모든 말이 부정하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더욱이 선지자는 입술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는 부정한 죄인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남 유다 백성들 또한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마음을 함께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죄 많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는 시작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매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깊이 묵상하며, 우리의 연약함과 죄를 고백하는 삶, 그리고 그분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날마다 살아내야 됩니다.
2대지: 하나님은 죄를 깨닫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회복시키십니다
이사야가 자신의 죄와 부정함을 깊이 깨닫고 솔직하게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책망하거나 멀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죄와 부족함을 아시면서도 먼저 긍휼히 여기시고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놀라운 사랑과 은혜입니다.
성경 6장 6절부터 7절을 보면, 스랍 천사 중 하나가 손에 ‘핀 숯’을 들고 와서 이사야의 입술에 댑니다. 여기서 ‘핀 숯’은 불에 달궈진 숯을 뜻합니다. 이 뜨겁게 달궈진 숯은 ‘정결함’과 ‘회복’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의 더럽고 부정한 입술을 ‘핀 숯’으로 깨끗하게 만지심으로써 그를 죄에서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로운 행위는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새롭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거나 멀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먼저 긍휼히 여기시며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보시면서도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감싸주시고, 새롭게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하신 질문,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는 단순한 물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사역을 맡길 사람을 찾는 부르심이며, 그 사명을 감당할 사람에게 주시는 책임과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주저하지 않고 담대히 응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것은 죄를 인정하고 회복받은 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정직하게 고백하고, 그 용서와 회복의 은혜를 경험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그의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이사야처럼 죄를 깨닫고 회복받아,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사명에 담대히 나아가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며, 위대한 일을 맡기시는 분이십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앞에서 자신의 죄를 철저히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정결함을 받고 사명을 받았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해피앤딩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야가 받은 사명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10절의 말씀과 같이 백성들은 마음이 닫히고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막혀 말씀을 듣지 않고 거절할 것이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셨음에도 이사야를 보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보내신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결과와 환경에 굴복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사야에게 사명의 끝을 말씀하시며 주신 말씀이 바로 13절입니다. “그루터기, 곧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여기서 ‘거룩한 씨’란 완전히 멸망하지 않고 남겨진 하나님의 백성을 뜻합니다. 그 씨앗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살려내시고 자라게 하셔서 결국 새로운 회복과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희망의 상징입니다.
여러분, 희망은 분명히 있습니다. 완전히 무너져도 하나님의 거룩한 씨앗은 남아 결국에는 구원의 길을 열 것입니다. 우리도 그 씨앗을 심는 사람,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듣지 않을 수 있고, 열매가 당장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묻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가?”가 아니라 “너는 내가 보낸 곳에 갔느냐?”, “너는 내 말에 순종했느냐?”를 물으십니다. 이사야처럼 고백합시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그리고 어떤 길이라도, 어떤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끝까지 순종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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