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8-23)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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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와 이야기 속에서 살아갑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또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가려내기 참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너무 많은 선택지와 주장들 앞에서 마치 길을 잃은 것처럼 막막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혼란 속에서도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분명한 진리가 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진리는 바로 우리를 만드시고 이 모든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너무나 명확하게 우리 주변에,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이유로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라고 변명할 수 없다는, 어떻게 보면 다소 무겁게 들릴 수 있는 메시지를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1. 감추려 해도 드러나는 진리, 그리고 하나님의 반응 (로마서 1:18)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로마서 1장 18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진노’라는 표현 때문에 조금은 무겁고 두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진노는 하나님께서 변덕을 부리시거나 감정적으로 화를 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진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 즉 하나님께서 얼마나 깨끗하고 올바르신 분인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마치 밝은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생기듯이, 하나님의 완전한 선하심과 공의는 죄와 잘못된 것에 대해 반드시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리’라는 단어는 원래 그리스어로 ‘숨겨져 있지 않은 것’,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 그분의 존재와 능력, 그리고 그분의 뜻은 결코 비밀스럽거나 애매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 분명한 진실을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하고, 귀를 닫고, 자신들의 ‘불의’로 덮어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불의’란 단순히 도덕적으로 나쁜 행동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마땅히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분이 계셔야 할 자리에 스스로 앉으려는 교만한 마음의 상태,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을 한번 돌아봅시다. 우리는 혹시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가치관이나 유행을 따라서, 혹은 나 자신의 욕심이나 편안함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다들 이렇게 사는데 뭘” 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잘못을 정당화하고, 결국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단순히 먼 미래에 있을 심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리를 거부하고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우리 삶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듯한 어두움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온 세상과 우리 삶에 새겨진 하나님의 흔적 (로마서 1:19-20)

그렇다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는 진리는 과연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요? 19절과 20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꽁꽁 숨기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알려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 첫 번째 증거는 바로 ‘그들 속에’, 즉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 영원한 것을 바라는 마음이 새겨져 있습니다. 전도서라는 성경에는 이러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아무리 멋진 성공을 하고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살아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빈 공간은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증거는 ‘그가 만드신 만물’입니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넓고 푸른 바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와 작은 풀벌레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자연 세계는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정교한 질서와 신비로운 조화, 그리고 생명의 신비는 결코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주와 생명이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더욱 놀라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런 놀라운 발견 앞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기보다 오히려 그분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모든 만물 속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고요. 여기서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는 표현은 원래의 뜻을 살펴보면, 마치 밝은 대낮에 물건을 보듯이 아주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흐릿한 추측이나 막연한 짐작이 아니라, 너무나도 분명하여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자연 만물을 넘어서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을 한번 조용히 되돌아봅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누군가의 도움으로 큰 위기를 넘겼던 경험, 깊은 절망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던 위로나 격려, 또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가 기적처럼 해결되었던 순간들이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이웃의 작은 친절이나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고귀한 희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그림자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기도 합니다. 마치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홀로 외롭게 항해하는 배를 안전한 항구로 이끄시는 보이지 않는 손길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과정 가운데 함께하시고 일하십니다.
개인적인 삶에서 중요했던 전환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삶의 방향을 바꾼 만남, 가슴 아픈 이별, 짜릿한 성공의 순간, 혹은 뼈아픈 실패의 경험들. 그때는 그 의미를 다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흘러 돌이켜볼 때 그 모든 사건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그 안에 나를 향한 어떤 특별한 계획과 메시지가 담겨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흩어져 있던 점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면서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해가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지혜와 계획을 뛰어넘는 어떤 거대한 힘, 즉 섭리가 존재함을 느끼게 하며, 그것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끌어 줍니다.
또한, 우리는 개인의 삶을 넘어 인류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도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얼룩진 전쟁과 갈등, 불의와 억압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공의와 사랑을 끊임없이 드러내십니다. 때로는 인간의 악한 행동을 심판하시고, 때로는 약한 사람을 들어 강한 사람을 부끄럽게 하시며, 결국에는 모든 것을 합하여 좋은 결과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우리는 보게 됩니다. 물론,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단순하게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이라고 단정하거나, 우리가 겪는 고난의 의미를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의 말씀을 통해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역사를 그냥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함께하시며 당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단언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알 수 있는 충분하고도 명백한 증거들을 우리 안과 밖에,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현장 곳곳에 심어두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눈을 뜨고 겸손하게 바라본다면, 온 세상과 우리의 모든 삶의 순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눈을 가리고 빛이 없다고 외치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우리 삶 속에 분명히 드러난 그분의 손길을 일부러 부인하는 고집일 뿐입니다.

3.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리석어진 사람들 (로마서 1:21-23)

하나님을 알 만한 증거가 이토록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왜 하나님을 떠나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일까요? 21절부터 23절은 그 이유와 결과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1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닙니다. 참된 지식은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감사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도 그분께 마땅히 드려야 할 영광을 돌리지 않았고, 그분이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생각이 허망해진다’는 것은 ‘삶의 목표를 잃고 마음이 텅 비게 되다’, ‘가치 없는 것이 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과 기준을 잃어버리자, 인간의 모든 생각과 판단은 공허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올바른 것을 분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무감각해졌다는 뜻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들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어리석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교만과 자기기만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근본적인 진리로부터 멀어져 어리석음의 길로 빠지고 맙니다. 그리고 그 어리석음의 최종적인 결과는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여기서 ‘우상’은 단순히 나무나 돌로 만든 형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며,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놓는 모든 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우상은 더욱 교묘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돈, 성공, 권력, 즐거움, 심지어는 자기 자신이나 특정한 생각이나 이념까지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영원하시고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언젠가는 사라지고 썩어 없어질, 사람이 만든 것들이나 다른 피조물과 바꾸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어리석음이요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모습대로 존귀하게 만들어진 인간이, 스스로를 그보다 못한 것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그것들을 섬기는 모습은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입니까?

결론: 핑계를 넘어, 진리 앞에 서는 삶

오늘 우리는 로마서 1장 18절부터 23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분명한 증거들이 우리 주위에,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여정 가운데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어떻게 그 진리를 외면하고 어리석음에 빠지게 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단호한 선언이자, 동시에 우리를 향한 안타까운 외침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절망하거나 좌절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하라고 격려합니다. 우리 삶 속에 혹시 숨어있던 잘못된 마음이나 욕심, 그리고 어리석음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 눈을 가렸던 교만과 자기만족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며, 우리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일하시는 그분의 손길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영원한 것을 향한 그리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동의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 전체를 그분께 드리는 결단이며,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더 이상 썩어질 우상에 우리의 마음과 시간을 빼앗기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분을 예배하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가 참된 지혜와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언제까지나 핑계를 대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돌아봅시다. 혹시 나도 모르게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더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온 세상 만물에 분명히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 그리고 내 삶 속에 함께하시는 그분의 세밀한 손길을 일부러 무시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모든 핑계를 내려놓고 진리 앞에 겸손하게 설 때, 그분은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의 어두워진 마음을 밝혀주실 것입니다. 더 이상 어리석음과 공허함 속에 머무르지 마십시오. 썩어질 것을 좇는 삶을 멈추십시오. 이제,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께 감사하는 복된 삶으로 함께 나아갑시다.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는 이 준엄한 말씀이, 우리를 참된 자유와 생명으로 인도하는 능력의 말씀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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