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말을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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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계속해서 새 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몇 주간에 걸쳐서 나눈 이야기를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보면서 리마인드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29절과 30절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말”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물들도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생존을 위하여 매우 단순하고 간단한 의사소통을 합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복잡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이라는 것은 아주 귀중하고 독특한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모든 것보다 귀중하게 여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말은 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언어라는 것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나홀로 사용하는 것은 언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언어는 두 명 이상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언도 혼자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언어이고, 결국 통변의 은사가 동반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가 전달되고 유익을 끼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신비주의로 빠져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입니다.
말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관계할 대상이 없다면 말이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하나님이 말씀이시라는 것과 하나님이 삼위일체로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은 공동체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처음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고 그와 교제할 때, 인간의 말이 어떠했을까요?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하며 그 안에서 만족하고 기뻐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 속에 살았을까요!
그러나, 죄가 모든 것을 망쳐놓았습니다. 우리의 언어도 그 이후로 타락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서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평안과 행복을 누리기 위한 언어가 관계를 깨뜨리는 언어로 변질이 되어 간 것입니다.
말은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힘이 나게 하는 데에 힘이 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속담을 아시듯이, 말 한마디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말은 사람을 넘어뜨리고 깊은 실의에 빠지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 중에는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뼈아픈 말이 가슴에 남아 있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장성한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면, 부모로부터 어릴 때부터 들었던 칭찬이나 격려의 말들은 많이 기억에 남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실망시키고 분노케했던 말들을 가슴에 오랫동안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백마디 칭찬을 하다가도 한마디 부주의한 말이 사람을 힘들게 하고 관계를 깨뜨리는 경우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에 살고 말에 죽습니다. 이렇게 말의 권세가 강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잠언 15:4 “4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우리는 작은 칼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다뤘다가는 자신도 다치고 상대방도 다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칼을 다룰 때에는 대단히 신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높이 치켜든다거나 공중에서 휘두른다거나 손에 들고 휙 돌아선다거나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날카로운 칼이 메스를 의사가 들고 있다면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됩니다. 이와같이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잘 다스리기 위한 기본 원리, 혹은 훈련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이 두 가지를 꼭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자.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자.
먼저 “무릇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라고 명령합니다.
먼저 “무릇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라고 명령합니다.
무릇이라고 번역된 “파스”는 모든이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모든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러운 말이 무엇입니까? 원어적으로 보면, 못된 말 혹은 무가치하고 쓸모 없는 말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말해도 그 의미가 사실 불분명합니다. 어떤 경우에 스스로에 대해서 말하기를 나는 더러운 말을 해본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항상 옳은 말만 한다고 하거나, 나는 꼭 필요한 말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더러운 말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폴 트립 목사님이 자신의 일화를 한 책에서 소개하였습니다.
그 교회는 부활주일 아침에 전교인이 아침 식사를 먼저 하고 부활주일예배를 드리는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서야 하는데, 아내와 9살짜리 아들이 출발해야 하는 시간까지도 무엇을 입을지 결정을 못하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에 참다 참다 못참고, 한 마디를 했다고 합니다. 아마 최대한 부드럽게 이야기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보, 우린 부활절 저녁식사가 아니라 아침을 먹으러 가는 거요. 지금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어서 출발합시다!”
그 말을 들은 9살짜리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빠 할 말이 있는데, 해도 될까?”
“그래 말해보렴”
“아빠는 그리스도인 남편이 아내에게 그런식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
“넌 어떻게 생각하니?”
“아빠,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안 중요해!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내가 생각할 때에 아무 문제 없는 말이든 문제가 있는 말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더러운 말, 모든 무가치한 말의 기준은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입니다.
또 이것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시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지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마음이 좋은 분들이셔서 목사 앞에서 막말을 하시는 분들은 없으십니다. 다른 곳에서는 막말을 하셔도, 목사 앞에서는 나긋나긋하고 조용하게 말씀하시지요.
저도 사실 마찬가지 입니다. 성도님들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두번째로, 덕을 세운다는 말은 건물을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두번째로, 덕을 세운다는 말은 건물을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견고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라는 것입니다. 무너뜨리고 허무는 것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누군가 무슨 일을 했을 때에, 그것을 평가하고 비난하고 잘못을 지적하기만 하면 그것은 그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반면에 칭찬하고 축복하고 권면하고 격려하는 말이 그를 견고하게 세우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교회는 목사를 비롯한 다른 지체들의 잘못과 연약함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바탕이 될 때, 다시 말하면 침묵이 훈련되었을 때에 결국 올바른 세우는 말이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누가복음 6:43–45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그렇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옵니다.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하면 예수님처럼 말하게 됩니다. 다른 길을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