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으로 돌파하라 (2) 대한민국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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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기쁨의 50일, 조이마켓을 앞두고 나눔, 넘치는 기쁨이라는 말씀을 나누었고, 2주만에 다시 무릎으로 돌파하라 시리즈 말씀을 진행한다. 이번주 설교 제목도 사실 노골적이다. 그리고 왜 이렇게 설교 제목을 지었는지도 아마 알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자리에 놓여 있다. 지금 시점에서 왜 선거가 펼쳐지는가, 그런 부분은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다. 지난번 설교 때도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도 역시 어떤 메시지를 나눌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훤하게 내다 볼 수 있을 정도의 말씀을 전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가 함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오늘 첫 번째 질문도 이번 설교 분위기와 어울리는 노골적인 질문을 한번 해보겠다. 여러분들은 사전투표에 참여하셨는가? 아마 성인이 되어 처음 투표에 참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또 총선, 국회의원 선거 투표는 했지만, 대통령선거는 처음 참여한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지난번 대선보다는 약간 떨어진 투표율이지만, 이틀 평일에 진행된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이들이 이 사전투표에 참여하였음을 알게 된다. 저는 목요일 퇴근 이후 사전 투표에 참여하였는데, 물론 지역마다의 차이는 존재했겠지만, 5시가 넘은 그 시간, 주민센터 바깥까지 줄을 서서 대기하는 광경을 보면서 솔직히 많이 놀랐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이 날을 많이 기다렸나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 말씀은 이런 때에 맞는 맟춤형 메시지이다. 그리고 흔히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해서 나라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달이기도 하다. 사실 이렇게 나라를 위하여 기도한다, 무언가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두 발 딛고, 살아가는 일상을 위해 기도하는데,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아니 이곳에 있는 우리들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을 다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동체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대한민국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라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개념은 이웃을 위한 기도라고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이웃 사랑의 구체적, 믿음의 행위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말씀은 아주 원론적이며, 하나님의 사람들이 추구해야하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두 번째로는 아주 오늘의 현실에 맞닿아 있는, 오늘의 삶의 자리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그래서 이 시대 그리스도인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위하여 더 간절하게 기도해야할 이유를 발견하고, 또한 함께 기도하는 귀한 시간이 되길 축복한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편의 표제는 이러하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편 120편부터 134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가는 길 가운데 고백하는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 말씀을 하나씩 살펴보면,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는 다윗이 이렇게 고백한다. 오늘 본문 1절.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다윗은 자기 주변에 있던 자들이 하나님의 집,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자고 할 때, 참으로 기뻤다고 말한다. 다윗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는 말의 의미는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당연히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자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우리들도 누군가 주님의 전으로 예배하러 가자라는 말을 들을 때, 참 기쁨을 고백하는 자들이 되길 축복한다. 그리고 그들이 결국 예루살렘 성전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함께 발을 딛고 있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마음을 전한다. (PPT1, 3~5절) 예루살렘이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잘 세워졌구나. 그리고 그곳으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올라가는구나. 그곳에 진정한 하나님의 통치가 있으니, 진실로 하나님이 택한 다윗의 가문에 보좌가 있다고 감탄한다.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들이 모두 모여 함께 예배하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다윗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으로 이 예루살렘을 축복한다. 우리 다시 6~9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위 본문을 보면서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그리고 그 기도제목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한다. 우선 이 시편의 화자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아가는, 하나님께 예배하고자 하는 자들을 향하여 요청한다. ①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그들이 함께 거하는 그 예루살렘의 평안, 진정한 샬롬이 임하길 간구하라는 것이다. 우선 이 말씀의 화자가 누구인가? 다윗일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다윗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배하러 가는 자들을 향하여 말한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은 단순히 하나의 지명을 의미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믿음의 근간이 되는, 또는 영적 고향의 자리일 것이다. 그곳은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시켜주는, 다른 말로 말하면 자신의 삶의 뿌리가 되어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다윗은 예배자를 향하여 요청한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오늘 우리는 이 다윗의 선포, 요청을 이렇게 변형하고자 한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오늘 우리 시대는 진실로 주님이 허락하시는 평안이 필요한 때이다. 이 평안의 히브리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샬롬이다. 이 샬롬의 의미는 분쟁과 전쟁이 없는 조화로운 관계가 이루어진 상황을 의미한다. 이 안에 다툼이 없다. 조화로운 관계가 이루어진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와 관계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조화가 이루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샬롬을 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는 이 온전한 샬롬을 경험하는 일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윗도,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이렇게 담대하게 외치며, 기도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최근 우리가 경험한 대한민국은 지독하게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하여 폭력을 사용하거나, 또는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일 마음이 전혀 없는 그런 상태가 되어버렸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난 반년의 시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각하고 바라보았던 사회,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이 이전과는 다른, 이질적인 모습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하나님을 우리의 통치자로 고백하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우리들이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바로 우리가 함께 발을 딛고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다윗은 예루살렘의 평안을 간절히 구하며, 그 예배의 자리에 함께 있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기도할지에 대해 설명해준다. 오늘 본문 6절 하반절로 7절 말씀이다. (새번역) "예루살렘아,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 네 성벽 안에 평화가 깃들기를, 네 궁궐 안에 평화가 깃들기를 빈다" 하여라. 다윗은 이렇게 기도할 것을 요청한다. “예루살렘아,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으며, 성벽 안에, 궁궐 안에 평화가 있기를 간구하라. 이 말씀을 오늘 말씀의 시각으로, 연결하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②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대한민국 안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큰 덩어리의 국가만이 아닌, 모든 국민들과 지도자를 위한 기도를 요청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기도하라고 요청하는가? 예루살렘의 샬롬은, 예배하는 자들에게만이 아닌, 그곳에 함께 하는 모든 자들에게 임하는 샬롬임을 믿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일은 우리 인생의 화평, 형통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그 은혜가 임하길 원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이유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공동체를 주셨는가, 왜 하나님을 혼자가 아닌 공동체에서 누리도록 하였는가, 이 진지한 질문 앞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종 이런 표현을 썼다.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바로 나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오직 나 한 사람만의 평화, 성공, 샬롬을 위해서 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폄훼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이미 몇 주전부터 나와 있었다. 그런데 어떤 본문으로 이 말씀을 나누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고민들이 존재했다. 나라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인데, 그렇다면 어떤 본문을 택하여 전해야하는가?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장면의 대부분이 믿음의 사람, 그 한 사람이 민족의 죄악을 두고 기도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더라는 것이다. 모세도 그러하였고, 솔로몬도 그러하였으며, 느헤미야, 그리고 다니엘도 자신들의 민족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 통렬하게 회개하고, 회복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아무리 타락하고 죄를 범하였어도,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구원받게 해달라고, 살려달라고 간구하는 이유는 결국 온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며,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허락하시는 샬롬이 임해야함을, 그 믿음의 사람은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들이 독점하는 어떤 권리, 또는 권력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풍성한 하나님 사랑의 증표이다. 우리가 그 은혜를 세상에 맛보기 위해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 시작점이 기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다윗은 8절을 통해서 말한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해서 평안이 있을지어다. 샬롬을 외친다. 처음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오늘 이 시대는 너무 많은 갈등과 다툼이 존재한다. 사실 어떤 시대나 갈등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 갈등을 풀어가는 도구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정치이다. 그리고 나라를 책임지는 지도자들이 그 역할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리더십을 세우셨다. 그래서 구약에서도 왕정제도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하셨고, 모든 것이 무너졌던 시대 속에서 에스라,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를 통해 그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셨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사람들의 갈등을 이용하고, 그래서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들이 일어나고 있다. 서로를 미워하고 혐오하고, 누군가를 분노하게 하는 일에 앞장 서는 것, 그것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죄악된 일인지를 모르고, 최소한의 양심을 저버린채, 움직이는 이들을 보게 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취해야하는 태도는 어쩌면 너무 명확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모습에 제일 앞장서는 모습이 오늘 본문에서는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들에게, 오늘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교회가 그런 갈등과 분열의 제일 앞장 서 있는 모습처럼 비춰지는 것은 아닌가, 정말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제가 그런 교회를 향하여 종종 분노를 표현했음을 기억할 것이다. 교회는 그래서는 안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래서는 안된다. 우리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하는가? 오늘 말씀의 제목, 대한민국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를지 모르겠다. 제일 우선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 평안을 구하는 기도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모두가 다 행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도 있고, 또 모두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대한민국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요청할 때, 모두 동일한 기도가 아니어도 좋다. 그치만 진실로 우리 안에 분노와 갈등으로 자신의 편을 세우려고 하는 리더십은 자격이 없음을 기억하셔야 한다. 그것을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하수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리더십 가운데 가장 하수가 편을 갈라서 자신의 사람을 모으는 것이다. 오늘 이 자리가 진실로 우리가 함께 하는 대한민국의 평안, 회복을 구하는 자리가 되길 진실로 축복한다.
제가 처음 설교 때, 이렇게 말씀드렸다. 이 평안을 구하기 위하여 우리가 오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우리는 대선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놓여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 누구를 지지하는가, 그것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대신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권리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 그 권리가 무엇인가? 바로 투표권이다. 꽤 많은 청년들에게 들었던 말이 있다. 뽑을 사람이 없다. 이 사람도 별로고 저 사람도 별로다. 그래서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것도 나의 권리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선거란 최선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그 말도 일면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 내게 주어진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않으면서 세상의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식의 양비론에 젖어들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누군가는 목회자가 왜 그렇게 정치적인가,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제가 젊은 시절, 사역에 집중한다고, 최선을 다한다고 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가 되는지에 대해서 온전한 시각을 갖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열심히 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지, 그런데 여러분들보다 조금 더 살아오면서 그런 것을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외면하는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서로를 살리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생명의 은혜가 흘러가는 것,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누군가를 이기고 살아가는, 동물의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약육강식의 태도를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세상에 많다는 것을 너무 늦은 때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후회가 너무 깊기에 이 강단에서, 이런 시기를 통해서나마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잊지 말라. 하나님 나라를 살아간다는 것은 저기 죽음 이후의 천국을 소망하는 삶도 물론 중요하지만, 오늘 이곳,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참 평안, 샬롬을 어떻게 하면 누리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인생임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누려야하는 그 권리, 그 권리를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가? 그것을 너무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가? 여기에서 지나치게 신앙적인 기준과 관점으로 설명하지 않겠다. 대신 아주 심플한 답변을 드린다. 상식선에서 바라보라. 오늘 우리가 왜 이런 상황에 놓였는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적어도 그 상식의 시선을 갖게 된다면, 어리석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자 한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 다시 말씀드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샬롬은 결코 우리들의 점유물이 아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너무 중요한 인사이트를 하나 발견하였다. 제가 설교를 준비할 때, 사용하는 성경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프로그램 샬롬이라는 단어를 검색하였을 때, 함께 연결된, 마인드맵처럼 연결된 단어가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선이 연결되었느냐 하면, 샬롬을 전후로, 조화 – 평화 – 치유가 있었다. 그 조화 앞에는 질서, 그리고 앞에는 국가가 있었다. 국가라 함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삶의 자리를 의미할텐데, 그냥 단순히 함께 한다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합의한 룰, 오늘 식으로 표현하면 법과 질서를 통해 그 국가가 유지되는데, 그 질서를 통해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서 평화, 샬롬이 임하는데, 그 샬롬 이후, 무엇이 있다고 말씀드렸는가? 치유가 존재했다. 저는 이 도표를 이렇게 해석했다. 우리가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며 조화롭게, 그래서 진정한 샬롬이 이 땅 위에 임해야하는데, 이 샬롬을 깨뜨리고,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사람들을 편가르는 아주 악한 일을 하는 리더십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런 지도자로 인하여 샬롬이 깨지고, 그 깨짐으로 사람들이 아파한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 각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고 이 귀한 하나님 나라 공동체, 교회가 해야하는 일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무엇인가? 사람과의 관계가 깨지고, 분열을 조장하는 지도자를 심판하는 일을 해야함과 동시에 우리 교회는 세상의 조화가 깨짐으로 아파하는 이들이 주님의 은혜로 치유되도록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난주 조이마켓을 통해 나눔이라는 특권을 통해 넘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오늘 광고처럼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마음이 모아져서 어려운 이들을 돕게 된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감당하는가? 깨진 곳이 아물어지고, 치유되고, 회복되기 위하여, 오늘 우리가 하는 그 일,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그런 사역들을 통해 여러분들의 생각과 시선이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이 진실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다시 말씀드린다. 왜 우리만 샬롬을 맛봐야 하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대한민국의 샬롬을 위하여 기도하라. 대한민국의 샬롬을 위하여 바른 판단을 하라. 요청하신다. 오늘 말씀이 여러분들의 삶의 가치, 세계관을 주님께 고정하며,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갈망을 견고하게 세우는 귀한 은혜의 도구가 되길 간절히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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