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0:23-11:1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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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린도전서 10:23-11:1 찬송가 315장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고린도전서 10:23–11:1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은 지금까지 어어왔던 우상의 제물을 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 대한 결론을 내립니다. 바울은 8장과 10장 1절부터 22절에서 유사한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만, 이전의 본문들과 오늘의 본문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전 두 본문은 이방 신전에서 먹는 식사의 문제를 다뤘다면, 오늘 본문은 개인 가정, 특히 불신자의 가정에서 먹는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에 대한 부분이라는 점입니다. 두 본문과 오늘의 본문은 상황적인 면에서 약간의 차이를 두고 있지만, 이 모든 본문들은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처신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지향점을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남의 유익을 구하라(23-30절) 이교도 예배 시간 동안에 먹는 독특한 경우를 제외하고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의 복리를 위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이는 6장 12절에서도 언급된 같은 표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는 바, 고린도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사용되었던 관용어구였을 것으로 추론되기도 합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자신들 주위의 문화에서 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사상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의 관용어구에 따라 학자들 가운데, 23절의 “모든 것이 가하나”를 “너희들이 ‘모든 것이 가하다’고 말하지만”으로 번역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 번역이 무엇이든 간에, 바울은 비교적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여 말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통해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할지라도 자유를 행사하는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보다는 공동적인 것, 곧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더 생각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이러한 바울의 입장을 더 구체화하고 확장해서 설명합니다.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무엇이든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 것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과 관련하여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 곧 다른 이들을 섬기는 삶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강령 첫 번째는 고린도의 시장에서 팔린 고기를 사서 먹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25-26). 고린도의 시장에서 팔리는 고기는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고기였습니다. 그에 대한 바울의 언급은 자유롭게 사서 먹으라고 입장이었습니다.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자유롭게 사먹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언급합니다.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이것은 시편 24편 1절,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를 염두한 표현입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모든 음식과 음료는 모두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물 가운데 일부이기 때문에 먹는 것에 있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도록 주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음식이나 음료도 본질적으로 불결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과 관련하여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강령 두 번째는 친구의 집에서 식탁에 차려져 있는 경우에 대한 것입니다(27-30). 친구의 집에서의 경우, 그 친구가 불신자이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아무런 가책이 없이 내오는 음식이라고 할지라도 먹을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함께 참석한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면 절제하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문제를 제기한 그는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의 신앙에 혼란을 주지 않도록 절제하도록 권면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행동강령은 타인의 유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가장 중요한 믿음의 가치를 잊고 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중심으로 놓고 사는 믿음의 기준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믿음의 혼란을 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삶에서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가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모두 유익하거나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며, 타인, 불신자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위한 기준에서 상황을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최근 한국교회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을 지내며, 한국교회의 이기심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심심치 않게 교회발, 선교단체발 확산이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고, 최근 한 교회와 선교단체로 인해 모든 화살이 다시 기독교를 향해 날아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셨던 삶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시며 사셨습니다. 태어나 누우셨던 요람은 황금요람이 아니라, 짐승의 구유, 밥통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며 타셨던 교통수단은 빛나는 백마나 여덟 필의 말이 끄는 황금마차가 아니라 새끼 나귀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죽음 이후 잠시 누우셨던 곳도 화려한 왕릉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묘를 빌려 누우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화려함이 아니라, 겸손으로 채워져 있었고, 모든 삶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을 닮고자 하는 우리들 역시, 이것이 주님의 삶임을 기억하며, 우리들의 삶의 목적을 타인의 유익을 위한 삶으로 가꾸어 가야 할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31~11장 1절) 타인의 유익에 따라 행동하라는 바울의 가르침은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자유와 제한,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그리스도인들의 자유와 제한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권면을 무시하고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유익을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경우, 도리어 거치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함께 언급했습니다. (32-33)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의 동기가 교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임을 언급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관심,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다른 사람의 구원에 있어야 함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다시금 살펴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신앙의 문제들을 맞닥뜨리게 되는 경우, 본질적으로는 자유가 있지만, 그들의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타인의 유익을 따라 행동하는 자신의 삶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우리들의 정서상으로는 나를 닮으라는 자신감 넘치는 바울의 권면이 불편하게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본받으라는 근거로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려고 한다는 점을 함께 언급힙니다. 결국 바울은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닮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또한 왕으로 이 땅에 오실 수 있었지만, 섬김의 종으로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권력자들과 손을 잡고 이 땅에서의 사역을 이어가실 수 있었지만, 약한 자와 죄인들과 함께 하시며, 자신의 공생애를 다하셨습니다. 죽음의 십자가의 고난 가운데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꾸지람을 하실만한 능력이 있으셨지만, 무능력한 한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며 죽음에 이르셨고,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그 분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 로마 시민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바울은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전도자의 삶을 기꺼이 살았습니다.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고 존경받는 랍비로 환대를 받으며 살 수 있었지만, 평생을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변호하며 때로는 멸시와 천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삶이 하나님께 는 영광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바울은 그러한 걸음을 걷는 자신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걸어달라고 요청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권면은 비단 1세기 그리스도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평화의 왕으로, 세상을 섬기는 구원자로 오셔서 나귀를 타셨습니다. 이것은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 나라의 왕이 되어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승리를 얻어 군림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섬김과 희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시며, 십자가를 지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주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원대한 사역을 이루시며, 그 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이제 말보다 나귀를 타야 합니다.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는 것을 더 좋아해야 합니다. 혹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물질이나 더 높은 자리, 더 나은 것을 허락하여 주셨다면, 그것을 더 많은 섬김의 책임으로 수용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보다 그것들을 주신 하나님을 더 크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세상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냄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써 세상을 비추고, 세상을 더 맛깔나게 만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께로 인도하는 생명의 통로로 세워져 가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포기하시고 교통수단으로 나귀를 선택하신 겸손과 섬김의 주님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저희들도 주님을 따라 겸손히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또한 주님께서 주신 자유로 인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지만, 타인을 위해 기꺼이 행할 수 있는 저희들의 권리를 주님께로 이양할 수 있는 믿음의 용기를 주시옵고, 이러한 삶을 사는 저희들을 통해 온 땅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 가운데 드러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상대방의 신앙적 선호, 그리고 그에 따른 자유로 인해 당신이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있는지를 묵상해봅시다. 2. 다른 사람들의 신앙적 유익을 위해 기꺼이 절제할 수 있는 당신의 신앙의 자유와 원칙은 무엇입니까? 3. 당신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기 위해 어떠한 행동의 판단기준을 삼고 있는지를 묵상해봅시다. 4. 동행하시는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삶을 살며, 당신의 마음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마음대로 행동하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인철)
설교 제목: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본문: 고린도전서 10:23~11:1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에 대해 최종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고린도전서 8장과 10장 1절부터 22절까지에서는 이방 신전에서의 식사를 중심으로 우상의 제물을 다루었다면, 오늘 본문은 조금 다른 상황, 즉 불신자의 가정에서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경우에 대해 언급합니다.
비록 상황에는 차이가 있지만, 바울은 일관되게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유’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 처신하는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1. 남의 유익을 구하라 (23–30절)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3절)
이 표현은 6장 12절에도 등장하며, 당시 고린도 사회에서 흔히 사용되던 관용어로 보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유를 누리는 데 익숙하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그 자유가 반드시 덕을 세우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4절)
이 한 구절은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나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유익을 위해 절제할 수 있을 때 진짜 자유가 됩니다.
시장 상황(25–26절): 시장에서 파는 고기가 우상의 제물일 가능성이 높지만, 바울은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시 24:1)임을 들어 자유롭게 먹어도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은 본질적으로 부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정 초대 상황(27–30절): 불신자의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도, 누군가가 “이 고기는 우상에게 바쳐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양심의 문제를 제기하면 그 사람을 위해 절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신앙의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1절–11: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1절)
바울은 행동의 최종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지만, 그 자유가 하나님을 높이고, 사람을 세우는 방향으로 사용될 때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33절)
바울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말은 아첨이 아니라, 그들의 유익과 구원을 위한 행동의 방향성을 뜻합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의 권리조차 내려놓는 사도의 마음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11:1)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자기를 따르라’는 바울의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함께 걷자는 권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따라, 자유를 포기하고 고난과 수고를 자처했습니다. 그는 그 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임을 알았고, 우리도 그 걸음을 걷기를 원합니다.

3. 그리스도의 삶: 섬김과 절제의 자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지만, 그 권세를 포기하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구유에 태어나셨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으며, 십자가에서 다른 이의 무덤을 빌려 누우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말을 타기보다 나귀를 타는 삶", 즉 누림보다 섬김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허락하셨다면, 우리는 그것을 더 큰 책임과 섬김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유와 자원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을 세우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결론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느냐가 핵심입니다.
우리의 삶이 타인을 유익하게 하고, 믿음에 덕을 세우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것을 절제하셨습니다. 나귀를 타신 겸손의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자유를 누리되 타인을 위한 절제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주님께 돌리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서. 섬김과 겸손의 삶을 통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게 하시고, 생명의 통로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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