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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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1 주일예배
본문 : 역대상 1:1~54 (1~4절, 17절, 24~28절, 34절)
제목 : 우리의 뿌리를 찾아서...
오늘부터 역대상 큐티가 시작되었다. 역대상하는 원래 한 권인데, 신구약 중간기에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 때부터 둘로 나눠졌다.
유대인의 성경에는 역대기가 맨 마지막 성경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구약의 전체 역사를 총 망라한 책이기 때문이다.
역대기는 얼마 전 큐티 한 에스더서와 비슷한 때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출바벨론 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성전과 성벽이 재건된 후에 쓰여진 것으로 본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해서 어렵사리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까지 재건했지만, 유대인들은 여전히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성전과 성벽이 재건되기까지 했는데 어째서 여전히 자신들의 삶은 피폐하고 힘겨운지, 오신다던 메시야는 도대체 언제 오시는 건지, 오시기는 하시는 건지, 혹시 자신들이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은 것은 아닌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등등 이런 질문들의 답을 원했던 시기다. 역대기는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역대기 전체의 주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와 성전이다. 이 두 가지가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현재의 삶이 아무리 힘겨울지라도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다윗에게 하신 약속들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므로 그 소망을 붙들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담긴 역사책이다.
오늘 예배 전에 큐티를 했는가? 어떤 생각이 들던가? 역대기를 처음 펼쳐보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다짜고짜 첫 구절부터 족보로 시작이 되는데, 족보가 계속 이어진다. 2장, 3장, 4장으로 가도 계속 족보가 나온다. 9장까지 족보가 이어진다. 그래서 역대기 앞부분은 성경을 통독할 때도 복병이지만 큐티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족보 부분을 읽을 때는 본문 자체를 묵상해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내도 된다. 족보의 수많은 이름들 중에서 아는 이름에만 표시를 해두고 전체적으로 어느 시대부터 어느 시대까지의 족보인지 정도만 파악한 후, 이미 신학자들이 연구하고 정리한 주석이나 큐티집 해설을 읽고 묵상하기만 해도 된다. 족보 하나하나의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전체 흐름 정도만 파악하면 충분하다.
그나저나 성경에는 왜 이토록 족보가 많이 나올까? 창세기 5장을 시작으로 10장에도 나오고, 출애굽기와 민수기, 에스라와 느헤미야, 그리고 신약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족보가 나온다. 사실 우리 집 가문의 족보에도 관심이 없는데 왜 이스라엘의 족보를 알아야 할까?
족보가 아무리 지루하고 재미없어도 성경에는 우리에게 필요 없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 성경의 족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름대로 몇 가지로 정리해봤다.
1) 실존했던 인물들의 족보를 통해서 성경이 역사적 사실임을 알려준다.
고대의 어느 신화에도 족보가 성경처럼 체계적으로 기록된 사례가 없다. 실제 역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실제 역사이기 때문에 창세기부터 누가복음까지 모든 연대의 족보가 연결된다. 물론 성경 각 권의 주제에 따라 족보에 몇 명의 이름을 생략한 책들도 있지만, 수천 년 동안에 걸쳐 각각 쓰여진 성경의 족보가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일관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은 고대의 다른 역사책들과 비교를 해봐도 성경이 얼마나 꼼꼼하게 실제 역사를 기록한 책인지를 알게 해준다.
2)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알려준다.
유대인들이 비록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기는 했지만, 바벨론에 의해 패망한 후 오랫동안 바벨론 땅에서 살았던 2세대 이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정체성이 굉장히 희미해진 상황이었다. 게다가 예루살렘 패망 이후 수백 년 동안 여전히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무엇보다 자신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민족이 맞는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 역대기의 길고 긴 족보는 이스라엘이 어디에서 시작되어서 어떻게 세워진 민족인지에 대한 확실한 답이 된다. 유대인들은 족보를 통해서 자신들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명맥을 계속 이어나갈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3) 이스라엘의 족보는 하나님의 예언과 성취를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어느 민족 어느 가문의 족보와도 다르다. 혹시 여러분 중에 예언과 성취에 의해 이루어진 가문에 속한 사람 있는가? 허구의 신화를 제외하면 실제로 그런 족보는 전 세계 어느 민족과 가문에도 없을 것이다. 반면에 성경의 족보만은 하나님의 예언과 성취에 의해 이어진 족보다.
한 예로, 하나님은 99세가 될 때까지 아들이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후손이 하늘의 무수한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족보는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증거다.
또한 가장 결정적이고 중요한 예언과 성취는 메시아 예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사람인 아담 때부터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하셨다. 아담의 범죄 후 뱀에게 이런 저주의 예언을 하셨다.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그 예언대로 그리스도께서 동정녀의 몸을 통해 탄생하셨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는 예언을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것이다. 그리고 유다 지파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셨는데, 그 예언대로 예수님은 다윗의 가문에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 그 외에도 메시아에 대한 수많은 예언들이 예수님에게 성취되었다.
사실 수천 년 동안의 족보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의 족보였다. 그래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음을 알린 이후에는 성경에 더 이상 족보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족보들은 우리를 포함한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예언과 약속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의 족보가 우리에게 너무 길고 지루하게 여겨지겠지만, 족보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약속하시고 완벽하게 성취하신 실제 역사를 가장 알기 쉽고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4) 성경의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지금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솔직히 우리 가문의 족보는 현재의 나와 별로 큰 연관이 없다. 우리의 수 십, 수 백, 수 천 년 전의 조상이 아무리 위대한 왕이었다고 한들 그게 지금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어떤 영향력도 없다.
그러나 성경의 족보는 지금도 천하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예언하시고 성취하신 역사가 더 이상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왜냐하면 이제는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래 이스라엘 족보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는데, 족보의 끝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편입되게 하셨다. 그 사실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만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 바울은 이로써 아브라함은 믿음에 속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고 구원을 받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같이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하신 약속의 성취다. 우리가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바울은 그 사실을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가지치기와 접붙임의 비유로 설명했다. 로마 교회의 이방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이스라엘이라는 참감람나무의 가지 얼마를 하나님께서 가지치기로 꺾어내시고 대신 그 자리에 돌감람나무 가지 같은 이방인인 우리를 접붙여 주셨다. 그 덕분에 우리는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받아서 더 이상 돌감람나무가 아니라 참감람나무의 일부가 되게 하셨다. 이스라엘의 족보에 이방인인 우리가 들어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대대로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마치 뿌리의 진액을 빨아들이듯이 받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지금의 우리가 놀라운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게 하는 현재적인 사건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접붙임 받은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미래도 보장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즉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성취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우리에게도 약속하시고 반드시 성취하신다. 이 사실을 믿으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돌봐주실 것이다. 늘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이고, 우리의 앞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구원이 완성되는 그 날에는 우리에게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새 몸으로 부활하게 해주실 것이다. 지금처럼 병들고, 장애가 있고, 아프고, 어지럽고, 공황에 빠지기 쉬운 육체가 아니라, 영원히 병들지 않고, 늙지도 않고, 쇠약해지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은 몸을 주실 것이다. 이 사실을 믿으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족보에 편입한 우리들의 현재와 미래와 영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살도록 하자.
(찬양 : 하나님의 부르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