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나음을 얻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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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지난 주에 우리는 사도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동을 줌으로써 믿는 무리가 많아졌다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일까지도 무시하거나 우습게 여기지 않고, 아주 구체적인 일까지도 관심을 갖고 넘치도록 섬길 때에 세상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감동을 주는 삶의 근원에 관심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감동을 주는 교회, 디테일하게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사도들로 인하여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들이 나음을 입었다는 본문을 통해서 오늘 우리 교회와 우리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사도들이 병을 고쳤다는 사실을 살펴보기 전에 사도들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게 된 원인이 사실 그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무엇인가 외부로부터 능력을 힘입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보아왔듯이, 사도들은 전혀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 전에 그들은 두려워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그들은 두려워 도망가버렸었고, 또 나중에 모였을 때에도 문을 꼭꼭 걸어잠근 채 숨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일을 벌이고 있는 사도들은 어떤 모습입니까?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두려워하던 자들이 두려움이 없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 그리고 그의 은혜를 입은 사도들의 모습을 비교하여 보여줍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권력이 있어 보였습니다만, 그들은 군중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까봐 로마 군인들에게 협력하고 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진리에 눈을 감은 채, 거짓과 불의를 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종교지도자들을 통해서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종류의 두려움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 두려움이 죽기 싫다는 것을 넘어서서 두려움에 억눌린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어떤 일도 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회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지위를 잃는 것, 자신의 권력을 잃어버리는 것, 또 경제적으로 실패하는 것 등입니다. 돈과 권력이 그들의 두려움이 대상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할까봐, 혹은 사회에서 쫓겨나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존재적 불안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병자들은 육신의 건강이 두려움이 대상이 되어 있던 자들입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현실과 미래로 인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이런 것들로부터 두려움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자신을 삼켜서, 그 두려움의 종, 또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대상의 종이 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이제 모든 두려움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솔로몬 행각에 서서 종교지도자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고 기쁨으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의 소문이 두루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두려움에서 자유를 얻은 자들로 인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이 고침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들의 이 변화는 단순한 심리적 용기나 상황 변화 때문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만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의 증거였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복음,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습니다.
요한1서 4:18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디모데후서 1:7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복음 안에서 두려움이 사라진 사도들은 올바른 두려움, 그것은 이전의 두려움과는 다른 두려움이었습니다. 그것은 경외감이며 우리를 안전하게 만드는 두려움입니다. 그것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 것이지요.
누가복음 12:4–5 “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사도행전 4:19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사도행전 5:29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세상의 권세로 인한 두려움에서 자유케 된 이들은 온 세상의 주인되시는 바른 권위에 대한 두려움, 경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은혜와 능력을 힘입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에게 이렇게 선포해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나는 자유롭다! 나를 위협하는 세상의 어떤 것도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내편이시라!”
모든 두려움을 이긴 사도들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자신의 전 존재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고, 우리가 또한 할 일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갈라디아서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6:14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따라서, 병든 사람과 귀신 들린 사람들이 모두 그 사도들 앞으로 나아오게 된 것입니다.
사도들의 개인적인 능력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본 것입니다.
나아가 그 능력은 정죄하고 나누는 능력이 아니라, 포용하고 위로하고 치료하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든지 병든 자들을 받아주었습니다.
또한 그 모든 이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돌보아주었습니다.
“다 나음을 얻으니라” 헬라어는 “테라퓨오” 즉 테라피의 어원입니다. 이것의 뜻은 치료하다 혹은 돌보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테라피라고 할 때에는 병증에 대한 어떤 약물이나 물리적 치료를 통해 병을 낫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그 병자를 돌보는 일이 병행이 되어야 합니다.
환자가 편안하게 눕고 편안하게 자신의 아픈 곳을 말하고, 회복을 위하여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 번 소개해 드린 것 같습니다만, “폴 트루니에”라는 내과 및 정신가 의사가 개발한 인격치료가 바로 그 의미입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돈 때문에 마음에 어려움이 있게 만든다면 그것은 테라피가 아닙니다. 그것은 돈벌이일 뿐입니다.
그렇게 보면, 교회는 바로 그런 곳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돌보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자,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 받는 자들을 돌보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돌봄을 통해서 결국 모든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나게 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오늘 병고침을 받은 이들은 모두가 또 다시 죽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또 다시 병이 들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병에 들었을 때에 그들은 이전과 다르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물론, 병을 고치기 위하여 여러 노력을 다시 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들은 그 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병의 노예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날 사도들로 말미암아 병에서 고침을 받은 이들이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병도 고치시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그 분이 자신들을 얼마나 인격적으로 돌보고 계신가를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다시는 병으로 말미암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나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아, 정말 자유롭고 인간적인 삶을 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말씀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두려움과 걱정과 근심과 슬픔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가지고 나오십시오. 영원한 부활을 주시며, 모든 눈물과 슬픔을 이기게 하시고 모든 두려움을 내어쫓으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이제 세상에 얽매여 두려움에 떠는 자가 아니라, 복음 안에 자유로운 자가 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세상을 치유하는 성도와 교회, 두려움에 사로잡히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자유를 선포하는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