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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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메모리
얼마 전에 주일날에 저랑 이주혜 전도사님이 교회에 와서 예배 준비를 하면서 문도 열고 본당 조명도 켜고 주차장 차단기도 열고 하면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요, 저희가 음악이나 방송, ppt 등을 위해서 방송실에 있는 컴퓨터를 켜야하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아예 전원도 들어오지 않고, 전원이 들어오려다가~ 꺼지고, 또 들어오려다가~ 꺼지고 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는 겁니다. 저도 어떻게 고쳐보려고 했는데 안되니까 막 화도 나고 왜 이렇게 안되는거야! 라고 하면서 다른 것도 빨리빨리 만져보면서 해결하려고 해도 더 안되는거예요.
그래서 제가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컴퓨터를 살펴보니까 부품 중에 하나가 망가졌던 건데요, 바로 이 메모리 카드, 소위 RAM이라고 하는 부품이 망가져서 컴퓨터가 켜지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제가 기념삼아서 떼어왔는데요, 여기 보시면 검은색 네모난 부품이 있죠? 여기에 아주 작은 글씨로 SK Hynix라고 써져있습니다. 반도체 만드는 회사들, 삼성전자나 SK 하이닉스 등등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에 대해서는 아셔도 반도체가 뭔지는 모르셨죠? 여러분, 이게 반도체입니다.
아무튼 이 메모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요 아주 꼬불꼬불한 선들이 나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저희가 회로라고 하는데,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아주아주 작은 전기선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꼬불꼬불 선이 나있을까요? 보기 좋게 일직선으로 쫙쫙 만들면 보기도 예쁘고 전기도 빠르게 통할 것 같은데, 굳이 이렇게 라면사리처럼 꼬불꼬불하게 만든 걸까요?
그건 이 메모리라고 하는 부품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기신호가 아주 정확한 시간에 동시에 딱! 하고 도착해야하는데, 어느 선은 좀더 길고, 어느 선은 좀더 짧고 하면 0.000001초라고 하더라도 동시에 도착하지 못해서, 정확하게 동시에 도착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다고 합니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 라는 속담이 있는데, 그 말이 이렇게 기계에도 적용되는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저도 저 컴퓨터가 망가졌을 때 급하게 고치려고 했을 때는 오히려 잘 안됐고, 천천히 뭐가 문제인지를 살펴보고 그 문제를 제거하니까 그제서야 컴퓨터를 고쳤던 게 기억나면서 오히려 문제가 생기면 급하게 처리하기 보다는 오히려 급할수록 천천히 살펴보고 해결해야하는 구나 라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지금까지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서 전해지는 말씀들을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데요, 특히 오늘 본문말씀인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이 결국엔 그 죄 때문에 멸망하게 되고 바벨론으로 끌려갔지만 결국 돌아오게 되리라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난 주 말씀처럼 그냥 2년 만에 모든게 해결되어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결국 바벨론에서 고통을 받은 후에야 돌아올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시는데요.
저희 인간이 생각하기에는 하나님께서 빨리 해결해주셨으면 좋았겠지만, 마치 저희가 오늘 보았던 이 램이라고 하는 부품의 회로처럼 꼬불꼬불한 역경을 거치고서야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말씀을 전하십니다. 오늘은 바로 왜 백성들이 그렇게 돌아갈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언서의 기록
예언서의 기록
먼저 1-2절 말씀을 보면요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셔서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내가 일러주는 말을 모두 책에 기록하라”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저희가 성경에 많은 예언자들이 있지만요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라”라고 말씀하시는 경우는 많이 드뭅니다.
성경에 예레미야를 제외하고 하나님께서 예언자에게 “기록하라”라고 명하시는 장면은 이사야와 하박국이 끝입니다. 그럼 중요한 것은 왜 그럴까? 라고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의 말씀은, 말 그대로 “말씀”입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글과는 확연하게 다른 속성이 있어요. 사람이 말을 할 때에 중요한 것들이 있죠, 먼저는 언어가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언어가 통해야 그 말이 전달이 되구요, 또 하나는 현재성입니다. 말은 “지금” 말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전에 말한 것은 오늘 말하는 것과 그 뜻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집 밖을 나가서 보니까 비가 오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비가 오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다음날에 완전히 날이 갠 상태에서 “비가 오네”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아마 이상한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만약에 이 사람이 비가 온날에 “비가 오네”라고 SNS에 글을 썼다면 어떨까요? 그 글은 말보다도 오래 남지만 또한 이 날에 이 사람이 사는 지역에 비가 왔구나, 라고 알 수도 있고 이 지역은 이 시기에 비가 또 올 수 있는 확률이 있구나, 하고 그 사람의 글을 통해서 앞으로의 미래를 좀더 잘 예측하고 그 기록을 오랫동안 보존하고 또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보통 예언자들이 전하는 말씀이 말로만 전해지는 이유는요, 바로 그 상황에 그 말씀을 전해야만 했기 때문에 예언자들은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왔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상황, 유다가 멸망하는 상황, 바로 “그 상황”에 저희들의 죄악이 부도덕함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우상을 섬김이 너희를 멸망으로 이끌었다는 “그 말씀”을 전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지금까지 예언서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역사를 계속해서 살펴보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말씀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가서 전하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기록하라!”라고 하신 말씀은 오늘의 말씀이 그날에만 전해지고 끝나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에게 “기록하라!”라고 명하시는 경우는 영원히 후세에 남아있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말로 기록된 말씀은 무려 2500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서 오늘날의 저희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남아있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말씀 외에도 많은 말씀들이 기록되었지만 보통 예언자들의 기록은 그들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을 구전으로 구전으로 전하다가 후세에 기록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언자 당시에는 예언이었는데 기록될 당시에는 예언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후에 기록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아! 우리의 스승이 하신 말씀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었구나!”라고 제자들이 깨닫고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직접 예레미야에게 “기록하라”라고 말씀하시고, 실제로 예레미야는 바룩이라고 하는 전문 서시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록하게 끔 합니다.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까지 하게 만드신 한가지 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말씀이 구원과 평안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인데요,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 받게 되리라
지난 주에 함께 읽었던 말씀대로 아직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응하지 않은 시점입니다. 한참 뒤에나 일어날 일인데요, 이것을 예레미야가 기록하게 되면 후세에 가서 하나님께서 정말로 그들을 구원하셨는지 아닌지 이 말씀을 통해서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기록된 말씀이기에 이것이 영구적으로 이어져서 오늘날의 저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을 전하시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구원
구원
본문말씀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저희가 읽은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포로 상태에서 돌아가게 할 날이 올 것이다,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와서 차지하게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시점에서는 유다 왕국의 멸망을 예언해왔었는데, 특이하게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것이다 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예레미야의 말씀이 기록된 것 처럼, 유다라고하는 특정한 민족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포함하여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을 회복시킨다는 말씀이죠.
5-7절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무서워 떠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어찌하여 모든 남자가 해산하는 여자 같이 손을 자기 허리에 대고 모든 얼굴이 겁에 질려 새파래졌는가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하나님께서 두려움에 떠는 자들의 소리를 들으셨다고 하십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는 백성들을 상상해보면 과연 얼마나 충격적일까요?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으면 남자인데도 마치 아이를 낳는 여인들처럼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라고 합니다. 또한 포로로 끌려가는 날이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을 정도로 아주 큰 일로 다가왔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어지는 말씀에 그들로 하여금 구원해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시죠.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 버리며 네 포박을 끊으리니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으리라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
여기서 그 목의 멍에를 꺾어버렸다 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저희가 지난 주에 들은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오히려 멍에를 씌운다고 하셨는데, 오늘 말씀에서는 그 멍에를 꺾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목에 걸린 멍에를 꺾었을 때 하나님께서 도리어 쇠 멍에를 씌울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 쇠 멍에를 꺾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고 살리는 것은 왕의 역할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역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멍에를 씌우시고 꺾게 하시는 겁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멍에를 꺾으시겠다고 약속을 하시면서 저희가 살펴본 바처럼 다윗의 혈통에서 세울 왕을 백성들이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요 사실 70년 후에 바벨론 포로시기를 마치고 돌아올 것을 예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아까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기록할 것을 명령하셨다고 제가 말씀드렸죠? 그 기록은 영구히 보존해서 계속해서 남아있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70년 후에 바벨론의 포로시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과 유다의 백성들은 왕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혈통이었던 스룹바벨도 왕이 아니라 총독으로서 백성들의 지도자로 세워졌거든요. 그래서 이 말씀에서 사실 이야기하는 구원, 포로 생활을 마치고 하나님께서 멍에를 끊으시는 것은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으로 말미암는 구원, 다윗의 혈통을 받았으나 다윗의 왕조를 계승하지는 않은 진정한 이 땅의 주권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구원이 이 기록된 말씀이 예언하는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 죄로부터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 죄로부터의 구원
그 이유는 단순하게 포로 상태에서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죄로부터의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요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그럴지라도 너만은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여전히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을 무죄한 자로 여기지는 않겠다, 법에 따라서 너를 징계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있는 기간은 구원과 회복의 시간이 아닙니다. 평안의 시간이 아니라고 본문말씀을 통해서 볼 수가 있죠. 도리어 두려움과 불안과 고통의 시간으로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징계고 벌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이 없고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많기 때문에 나는 네 원수가 당할 고난을 네가 받게 하며 잔인한 징계를 내렸도다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와 부상은 곧 그들이 하나님께 범한 죄입니다. 도저히 이것을 치료할 수 있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다라고 말슴하실 정도로 그 죄가 크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당한 고통과 고난이 그들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 네 고통이 심하도다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허다하므로 내가 이 일을 너에게 행하였느니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멍에를 씌운 일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일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시면서, 그 부르짖는 고통이 그들의 죄로 인한 것을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의 회복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만큼의 큰 죄를 범한 백성임을 강조하시는데요, 그렇다면 뭘까요, 치료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상처 같은 죄라고 하시면 용서하시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요?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
그러므로 너를 먹는 모든 자는 잡아먹힐 것이며 네 모든 대적은 사로잡혀 갈 것이고 너에게서 탈취해 간 자는 탈취를 당할 것이며 너에게서 노략질한 모든 자는 노략물이 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매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회복하시는 방식이 새살을 돋아나게 해서 고쳐주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멍에를 깨뜨리는 사람이 하나님이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씻을 수 없는 죄,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회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주 깊게 파여서 도저히 약을 쓸 수 없는 상처에 새로운 살이 돋아나게 해서 너를 고쳐주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고 폐허가 됐습니다. 이것은 고쳐서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죠. 집이 조금 망가진 부분은 그 부분만 고치면 되는데 폐허는 고쳐서 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올 백성들로 하여금 폐허가 된 곳 위에 새로운 성읍을 세워서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1절 말씀을 보시면
그 영도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요 그 통치자도 그들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리니 그가 내게 가까이 오리라 참으로 담대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이 올 자가 누구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백성들 중에서 영도자와 통치자가 나와서 나에게 가까이 올 자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새번역으로 보시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나에게 목숨을 걸고 감히 다가올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도 여러분 새롭게 세워질 통치자는 그들 중에서 세워진 “사람”, 인간의 지도자이긴 하지만 하나님께로 담대히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세워질 것임을 나타냅니다. 비록 사람으로 태어났으면서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는 사람, 누구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다함께 본문말슴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라고 하시는 말씀은요, 사실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말씀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내 백성이 아니니까 그 때에 너희가 내 백성이 되겠다라고 하시는 말씀인 것이죠.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은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저희가 지금 새벽기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는 언약을 세우시는 내용들을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데요, 하나님의 언약은 그 때부터 이어져서 모세가 백성들을 데리고 나올 때에는 율법을 세워서 율법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복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저주가 된다는 언약이 구약성경 내내 이어지는 한 큰 줄기 였습니다. 그렇지만 백성들이 이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죄를 짓고 우상을 숭배한 것으로 언약이 깨어지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유다 왕국 마저 멸망을 했었죠.
그래서 본문말씀의 다음장인 31장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너희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새로운 언약을 맺는 말씀으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전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에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법도를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까 기록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말과 다르게 기록은 영원히 남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기록하라고 명하신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제 새 언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제 이 언약은 깨어지지 않을 언약, 영원히 지속될 하나님의 언약을 하나님께서 새롭게 세우실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언약이 율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마음을 떠나서 율법만 지키면 되는 걸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새 언약은 마음에 기록한 율법, 즉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언약이고, 또한 구원이 될 것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도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산상수훈을 통해 “너희가 이전까지는 ~~하라고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라고 하시면서 마음에도 없는 율법을 지키지 말고, 몸과 마음으로 지키는 율법을 말씀하시죠. 그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율법은 살인하지 말라, 라고만 명시되어 있지만, 믿음은 형제에게 분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영원히 기록될 율법, 믿음으로 행하는 믿음의 역사만이 죄에 포로로 사로잡힌 백성을 구해낼 하나님의 언약인 것입니다.
돌아가더라도 도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돌아가더라도 도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말씀은 영원히 남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남기 위해서 기록된 말씀이고, 또한 영원히 변치않을 마음에 기록될 하나님의 율법, 믿음으로 구원받을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새 언약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새언약은 그저 순탄하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70년의 세월 동안 오랜 고통과 두려움에 떨어야했습니다. 구원하시지만 하나님께서 즉시 구원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고 또한 그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만 하는 구원입니다.
저희가 보통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라고 이야기할 때는요, 예수님을 믿는 즉시 구원을 받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칭의와 신생에 대해서 알아보았을 때처럼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는 즉시 하나님께서 저희를 의롭다 여겨주시며 새롭게 다시 태어나게 하심을 저희는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약에 예수님을 믿는 즉시 구원이 완성된다, 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아주아주 틀린 말입니다. 처음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될 때에 저희가 받는 것은 구원의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완전한 모습이 될 때까지 달려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구원은 점이 아니라 하나의 긴 여정입니다. 하나냐가 이야기한 것처럼 2년 안에 하나님께서 다 돌려놓으시면 좋겠지만, 꼬불꼬불한 회로를 통해서 가는 컴퓨터 부품처럼 70년이라는 길고 고통스러운 기간이 끝난 후에야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이루셨던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여러분 이 메모리를 다시한번 보세요. 컴퓨터 본체 한대가 이만큼 큰걸 생각하면 이 메모리는 엄청나게 작은 부품입니다. 근데 이걸 꽂기만 하면 그 큰 컴퓨터가 아예 켜지지도 않고 작동을 하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컴퓨터의 문제를 살피고 이 부품 하나를 제거했을 때야 비로소 저 방송실 컴퓨터가 돌아갔습니다. 그리스도인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저희 마음 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죄악을 제거하지 않고 애써 무시하며 나는 괜찮다, 나는 구원받았다 라고 한들, 그것은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마음과 행동을 점검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완전한 거룩을 향해서 끊임없이 달려나가는 여정, 비록 바벨론 포로기와 같이 죄악으로 인해서 고통받을 수도 있지만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그 길이 바로 구원의 여정입니다.
저희가 이 시간에는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데요, 먼저는 죄악때문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처럼 저희 안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지 않고 믿음을 배반하는 죄악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온전히 고백하고 내어놓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부품만 망가져도 돌아가지 않는 기계처럼 저희 안에 저희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새 언약의 백성으로서 있지 못하게 하는 죄악들이 있다면, 함께 하나님께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구요,
또 한가지는 하나님께서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을 돌아오게끔 하신 것과 같이 저희도 급하게 앞서나가려다가 저희의 영적인 문제들을 놓치고 가는 것이 아니라,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믿음의 역사를 끊임없이 이루어나가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온전하여 질 수 있는 언약의 백성으로 세워주시고, 또한 그렇게 믿음의 역사를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나가는 거룩한 백성으로 서나가길 다짐하며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