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과 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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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4:7-15
“질그릇과 보배”
찬송가 401장 ‘주의 곁에 있을 때’
2025. 6. 6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질그릇과 보배”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 안에 보배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질그릇이라고 그래요. 7절에 보니까,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우리는 질그릇이고, 이 질그릇 안에 보배가 있다는 겁니다.
질그릇은 진흙을 빚어서 만든 그릇입니다. 진흙으로 빚어서 그냥 그대로 불에 구운 거예요. 본래는 유약을 바르고 약품처리를 해야 되는데, 그런 거 없이 그냥 그대로 불에 구워서 막 쓰는 거죠.
그래서 질그릇은 윤기도 없고 쉽게 깨져요. 그래도 값이 싸니까 깨지면 버리고 새로 하나 사면 그만입니다. 별로 아깝지도 않아요. 안 깨지면 좋고, 깨지면 어쩔 수 없고. 딱 그 정도인 겁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는 질그릇이다. 우리는 싸구려고, 쉽게 깨지고, 아깝지도 않은 존재들이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이 질그릇 안에 뭐가 들었습니까? 보배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질그릇에 보배를 담지 않죠. 예를 들어서 다이아 반지를 담을 때 어디에 담겠어요? 튼튼하고 예쁜 곳에 담아서 보관하겠죠. 아무도 질그릇에 담지 않아요. 혹시라도 질그릇이 깨지면 반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잖아요. 담더라도 믿을 만한 곳에 담아야지, 질그릇 같은 데다가는 담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질그릇 안에 보배를 담았어요. 누가요? 하나님이. 가장 귀한 보배를 질그릇과 같은 우리 안에 담으셨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보배가 뭘까요? 우리 안에 하나님이 무엇을 담으셨을까요? 위에 6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나오죠. 또 4절에서는 “복음의 광채”라고 그랬어요. 복음의 광채,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이게 뭡니까? 이게 바로 복음이에요. 어두운 마음에 빛을 비추어서 영적 소경이 앞을 보게 하시는 복음의 빛입니다.
이 복음을 바울도 가졌었고, 지금 우리들도 갖고 있어요. 그런데, 도대체 왜 이 복음을 질그릇과 같은 우리 안에 담으셨을까요? 그 이유가 7절 끝에 나오는데요. 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아멘.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만 있고,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다는 겁니다. 질그릇이 어떻게 다이아 반지를 만들어 내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질그릇 안에 다이아 반지가 들었다면, 그것은 당연히 누군가가 질그릇 안에 다이아 반지를 넣어 놓은 거죠. 질그릇이 스스로 만들 수가 없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복음의 광채가 들어있다면, 이것은 우리 능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가 넣어준 겁니다. 바로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겁니다.
이것을 우리가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전히 질그릇이지만, 이전까지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담은 질그릇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을 담은 질그릇으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껍데기는 똑같지만 그 내용물이 달라요.
여러분, 질그릇이라고 다 같은 질그릇이 아닙니다. 안에 뭐가 들어있느냐에 따라 정체성이 다른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을 담은 질그릇입니다. 이 능력이 우리를 강건하게 합니다.
그래서 밑에 8절부터 보면, 우리가 여러 환난을 당하여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오늘 본문 8절, 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아멘.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환난을 크게 네 가지로 보여주는데요. 이것들은 모두 복음을 가진 자가 당하는 환난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진 자는 세상이 미워하거든요.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19절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아멘.
우리가 세상에 속해 있었으면, 세상이 우리를 사랑했을 건데, 우리가 예수께 속했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복음을 가졌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해요. 그래서 가만히 두지를 않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가 낙심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복음의 능력이 우리가 이겨낼 힘을 주시기 때문에. 바울은 살 소망까지 끊어질 지경에 처했었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밑에 10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아멘.
우리가 예수의 죽음을 짊어질 때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나요. 예수의 죽음은 위에 네 가지 환난과 연결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그 모진 환난을 예수님이 당하시고 죽으셨어요. 그러나 그 죽음 뒤에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의 생명, 예수의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생명이 예수님께 있고, 뿐만 아니라 예수의 환난과 죽음을 짊어진 우리 모두에게 그 생명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이야말로 가장 귀한 보배요, 하나님께 있는 심히 큰 능력입니다. 바로 그것으로 인하여서 우리가 심히 고난을 당할 지라도 우리는 결코 싸이지 아니하며, 낙심하지 아니하며,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망하지 아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14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아멘.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우리도 다시 살리십니다. 바울을 승리하게 하신 이가 우리도 승리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볼품없고 쉽게 깨지는 연약한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있는 심히 큰 능력이 우리를 환난에서 기쁨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실 것으로 믿고,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담대하게 구원의 확신 가지고 살아가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