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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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가 364장, 365장
오늘 창세기 34장의 말씀을 통해 말씀을 더 알아가는 시간되길 소망합니다.
저희가 계속해서 야곱의 이야기를 보고 있습니다. 야곱의 인생이 여러 우여곡절과 문제들이 있었는데 외참손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자기의 품삯도 못 받아가면서 종 처럼 일했지만 외참손의 집에서 나오면서 자유를 찾고,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온 야곱이라는 이름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20년만에 만나는 형 에서가 원수 같은 아우인 야곱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극적으로 화해하면서 야곱의 인생이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성경에서 보여줍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읽어보면 이제 과거에 문제들도 풀리고 앞으로 하나님의 언약안에서 좋은 일만 있을 것같은 야곱의 가족에게 너무 끔찍한 사건을 오늘 성경에 나타납니다.
욕보인 디나. 잠잠한 야곱.
욕보인 디나. 잠잠한 야곱.
어제 보았던 말씀에 야곱은 사실 벧엘로 올라가야 하는데 세겜 성읍에 머물게 됩니다. 거기서 1절에 보면 레아와 야곱에게서 난 딸이 등장합니다. 지금 야곱에게는 여러 남자 자식들이 있는데 단 1명 밖에 없는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가 그 땅의 추장/통치자인 세겜에게 욕보임을 당하는 일이 생깁니다.
세겜이 디나를 강간했는데 3절에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르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그러면서 6절에
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야곱에게 말하러 왔으며
지금 이들이 야곱에게 와서 사과하거나 아니면 디나를 욕보인 아들인 세겜을 바로잡는 모습이 아니라 둘을 결혼을 시키려고 합니다.
당시에 자기의 딸이 이런 욕보임을 당하는 일,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생기면 아버지로서 가만히 있으면 안되요.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있으면 아버지로서 화를 내고, 탄식하면서 자신의 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합당한 보상과 사과를 요구해야 했습니다.
창세기 20장에서 아브라함이 사라를 아비멜렉 왕에게 누이라고 속이는 사건이 있었죠. 이때 아비멜렉 왕이 사라가 누이가 아니라 아내인 것을 알게되고 다시 아브라함게 돌려보내면서 어떻게 하냐면 사라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은 천세겔을 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라가 결백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하기 위해서 합당한 보상을 줍니다.
그런데 야곱이 자기의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욕보이는 일을 당하는걸 들었는데 야곱은 어떤 모습을 취하냐면 5절에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야곱이 잠잠하였다고 설명합니다. 디나를 위해서 가장 크게 화를 내거나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하게 있습니다. 이미 디나가 욕보이는 비극적인 범죄가 이미 일어났다는 것을 야곱이 들었으면, 이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화가 야곱에게 있었는데 야곱이 그것을 수행하지 않고 잠잠히 있습니다. 처음 불행을 야곱이 막을 수는 없지만 불행한 사건을 야곱이 들었다면,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열쇠는 야곱에게 있는데, 스스로가 잠잠히 두었습니다.
왜 야곱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고 들에서 돌아오기까지 잠잠히 두었을까요?
세겜은 오늘 그 땅의 추장이라고 성경이 설명하죠. 당시 부족사회에서 개인의 생사를 주관할 만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통치자에게 괜히 해를 당할까봐, 어려움을 당할까봐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디나는 디나 대로 아버지에게 버림 받았고, 아들들은 아들들 대로 아버지가 침묵하니까 이 일에 대해서 더 분노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반응해야 할 사람이 침묵했을 때, 오히려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이 칼을 들었고, 그 결과 살인과 노략질의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여전히 이전의 야곱처럼 반응합니다. 하나님과 씨름했던 야곱은, 스스로 잠잠하기를 선택했고, 책임지지 않았고, 오직 자신만을 걱정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는자로서의 삶을 선택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잠잠하기를 선택할때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게 되고, 하나님의 기준에서 멀어지는 선택과 결과가 나오게됩니다. 저희도 믿는 자로서 살아간다고 하지만 막상 문제가 생기면 세상이 그런거지뭐, 상황이 그런거지뭐 하면서 잠잠하기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특별히 가정안에서 잘 못되었을 때 잘못된 것을 분별해주고 책임져주지 않으면 자녀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자기 세대의 방식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제가 교회학교에 특별히 어린 자녀를 들을 돌보는 부서에 오래 있다보면 보여지는게 있어요. 어릴때 신앙생활과 믿음이 들어간 아이들을 청소년기에 방황을 할지라도 돌아오고, 그 폭이 그렇게 크지 않아요. 그런데 교회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생활이 전부고 가정에서 특별히 말씀이나 기도나 신앙에 대한 고민이나 교육, 예배가 없는 집은 결국에 아무리 그 집안에 믿음이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이라고 할지라도 그 결과가, 그 열매가 없는 가정들이 있었습니다. 시대가 변화고 상황이 변할지라도 잘 못된 것을 잘 못되었다 말하며 분별하고 책임질 때에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여전히 자기만 생각하는 야곱처럼,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잠잠하는 외면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가 야곱처럼 침묵하는 자가 아니라, 잘 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말하며 문제를 바로잡아가는 자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들들의 분노
아들들의 분노
이제 디나에게 혼인을 요구하며 오는 세겜과 마훌은 야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8절부터 보면,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연하여 하니 원하건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데려가고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야곱이 유목민 이었으니까 너희가 살 땅이 세겜에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기업은 유목민으로서가 아니라 세겜 땅에 거주하 수 있는 정착권과/ 정착하게 되면 거기서 농사도 지을 수 있고 매매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재산을 증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 라는 뜻이다.)
마홀이 하는 말은 지금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딸들 너희 아들들도 많은데 너희도 우리딸을 얻고 나도 너희의 딸을 얻어서 너희가 여기서 편하게 살아가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11-12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와 그의 남자 형제들에게(야곱의 아들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니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주리라(당시에 자녀는 1명만 있어도 일꾼인데 특히 여자는 이제 이 집안의 새로운 일꾼이고 출산이 가능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여자 집안에 많은 혼수와 예물을 주는데 무엇이든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에게 속이며 대답합니다.
14절에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우리에게 부끄러운 일이)가 됨이니라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데려오며 너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너희가 만일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야곱의 아들들이 이제는 복수를 위해서 할례받지 아니한 사람들과 혼인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그것을 들은 세겜과 마훌이 좋게 여기면서 성읍으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와 친목하고 이 땅은 넓어 그들을 용납할 만하니(우리에게 우호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여기서 거주하며 매매하게 하고 우리가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데려오고 우리 딸들도 그들에게 주자
그러나 우리 중의 모든 남자가 그들이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그러면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들의 말대로 하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리라
좋은 의미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 뒷면에는 여러 생각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세겜의 설득력 있는 말이던, 아니면 당시 추장의 권한이 절대적이여서인지 성문을 출입하는 모든 자들이 할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중에 디나의 오라버니인 시므온과 헤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디나의 복수를 합니다.
25절에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그리고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
야곱의 아들들이 누이에 대한 피의 복수를 하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던 가축과 재물과 그들의 자녀와 아내들을 잡고, 집의 모든 물건들을 빼앗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입을 열어 말하는데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야곱이 잠잠히 있다가 마지막에 하는 말을 잘보면 내가 화를 입을까, 내가 다른 조속에게 죽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가장 고민인 것은 아들들이 피의 복수를 하는 잘 못된 모습을 바로잡는 일이 아니라 지금 너희가 하는 이로 다른 족속들이 나를 죽일까 두렵다는 말을 합니다.
결론
결론
오늘 읽은 말씀 전 장에서 세겜에 와서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만큼 하나님을 찾았던 야곱이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하나님도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을 때, 야곱은 문제를 외면 했고, 아들들은 복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창세기 34장을 통해서 야곱의 가족 안에서 벌어진 비극 적인 일을 보았습니다.
디나는 말이 없었고, 야곱은 침묵했으며, 아들들은 분노로 칼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부재는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지 않으셨던 것이 아니라, 야곱이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것입니다.
분명히 그는 얼마 전,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며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그는 여전히 “야곱”처럼 반응합니다.
아버지로서의 책임도, 영적 지도자로서의 분별도 없이 오직 “내게 화를 끼쳤다”, “나를 죽이리니”라며
자신의 안전만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 야곱과 같은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자녀 삼으셨는데 각 자리에서 “예배자로, 부모로, 교회의 직분자로” 부르셨는데 막상 삶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침묵하고 외면하며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기 원합니까?
믿음은 이름만 바뀐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갈 때 진정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문제를 덮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고 책임지는 것’이 진짜 믿음의 길입니다.
오늘 이 새벽에 지금 현 상황에서 다시 하나님을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불의를 분별하고,
침묵이 아닌 믿음으로 반응할 때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저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 기도 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 저희가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믿음의 사람이라 불리면서도 삶 속에서 여전히 옛 자아로 반응했던 그의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주님,
저희도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지만, 문제 앞에서, 고통 앞에서,
하나님을 찾기보다 침묵하고 외면하며 오직 나 자신만을 걱정했던 삶을 회개합니다.
디나의 아픔을 외면했던 야곱처럼, 우리 주변의 상처 입은 이웃과 자녀들,
가정의 갈등과 교회의 아픔을 보고도
말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고, 뒤로 물러섰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은혜의 주님,
이 새벽 저희가 다시 주님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침묵을 깨고, 책임을 피하지 않고,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옳은 것을 옳다 말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옵소서.
저희 가정을 회복하여 주시고, 만안교회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서게 하시며,
저희 자신이 먼저 회개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게 인도하여 주시옵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뜻을 생각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따라 순종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