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따라해봐요’는 복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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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날 따라해봐요’는 복음이 아닙니다
[서론]
이제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누가 당선되었든, 대통령이 생겼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저는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성공 스토리’입니다.
가난과 실패를 딛고, 좌절과 고난을 넘어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자극합니다.
우리는 ‘성공’이라는 단어에 쉽게 매료됩니다.
물론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은 다를 수 있지만,
더 좋은 대학, 더 안정된 직장, 더 높은 연봉, 더 멋진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마음은 우리 모두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서점에 가보면 자기계발서들이 넘쳐납니다.
성공하는 법, 시간을 관리하는 법, 돈을 끌어당기는 법…
거기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이렇게 말합니다.
“날 따라 해봐요.”
이런 흐름은 교회 안에서도 종종 나타납니다.
간증집회에서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신앙의 간증이 아닌 성공의 간증처럼 들릴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했더니 성공했다’는 이야기,
‘기도 열심히 했더니 이뤄졌다’는 이야기—
모두 “날 따라 해봐요”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신앙에 도전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그 말이 따라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성공에 꼭 필요한 조건으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노력’입니다.
농구선수로 성공한 서장훈 씨는 “성공하지 못한 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현실 속에서 노력도 재능이라고 주장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그러다보니 요즘 세대는 노력을 “노오오력”이라는 조롱 섞인 단어로 부릅니다.
노력에 대한 개그맨 김제동식 이해도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네가 실패한 건 네 잘못이 아니야.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 때문이야.”
노력이 부족해서 실패했다는 말과,
사회 시스템이 망가져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말—
이 둘은 전혀 다른 입장이지만, 우리는 그 사이에서 혼란과 열패감을 느낍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와 비슷한 혼란이 찾아옵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내가 충분히 더 기도하지 않아서 그런가?
혹은, 세상이 너무 악해서 그런가?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쪽도 확실한 답이 되지 못할 때, 우리 신앙은 점점 지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겉으로 보면, 다윗은 아주 특별하고 성공한 인물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왕이 되고, 전쟁에서 승승장구 합니다.
성공한 삶처럼 보입니다.
그럼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말하는 핵심은 “다윗을 따라해봐요”일까요?
정말 복음은 “날 따라하면 성공한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복음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본론]
먼저 오늘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역대기는 사무엘서, 열왕기서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목적과 시점이 다릅니다.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하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시기에 기록된 책들입니다.
그래서 이 책들의 핵심 관심은 “우리는 왜 망했는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며 우상을 따른 교만한 왕들,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것이 멸망의 원인입니다.
하지만 역대기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에게 쓰인 책입니다.
더이상 망한 이유를 되풀이하기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절망에 빠진 공동체에게 소망을 회복시키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역대기 기자는 의도적으로 과거의 어떤 사건을 생략하고, 어떤 사건은 강조합니다.
과거를 다르게 해석하는 이유는 속이려는게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역대상 10장은 사울의 죽음을 간략하게 요약하며 다윗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됩니다.
그런데 다윗의 왕위 등극은 단번에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그는 사울에게 약 10년 가까이 쫓기며 도망자, 피난민, 망명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미친 척했던 일도 있고, 블레셋 땅으로 피신해 이방왕의 신하가 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굴속에서 지내며 환난당한 자들과 함께 눈물과 기도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 고난의 시간을 지나, 사울이 죽은 후에도 다윗은 곧바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먼저 유다 지파만의 왕으로 헤브론에서 7년 6개월을 통치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정치적 긴장과 북이스라엘과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그 시점이 바로 오늘 본문(역대상 11장)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는 이제 다윗을 자신들의 왕으로 받아들이고, 헤브론에 와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은 우리의 목자이며, 여호와께서 당신을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정치적 지지가 아닙니다.
다윗왕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다윗이 왕으로 세움을 받은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예루살렘(여부스 성)을 점령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성은 오랜 시간 이스라엘 자손이 차지하지 못한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정복 전쟁이 시작된 지 수백 년이 지나도록 이방 민족인 여부스 족속이 그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기록된 사무엘서를 보면 여부스 사람들이 이 성을 공격하려는 다윗왕과 부하들을 비난합니다.
눈먼 사람이나 다리 저는 사람조차도 너쯤은 쉽게 물리칠수 있다며 조롱합니다.
그만큼 예루살렘은 쉽게 점령할수 있는 성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이 성은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열두 지파의 경계선 사이, 어느 한 지파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적인 지역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곳을 수도로 삼아 지파 간의 갈등을 피하고, 통합의 상징 도시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후 예루살렘은 ‘다윗 성’이라고 불리며, 이스라엘 왕국의 정치적·신앙적 중심지가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거처가 세워집니다.
이처럼 예루살렘 정복은 이스라엘 역사의 전환점이자,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구체적으로 자리 잡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예루살렘을 차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용맹한 전사여서일까요?
그의 부하 요압이 뛰어난 장군이었기 때문일까요?
본문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니, 그가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성공의 비결은 그의 실력이나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동행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다윗은 무너뜨릴 수 없는 성을 무너뜨리고,
넘볼 수 없는 도시를 하나님의 도성으로 바꾸는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우리도 다윗처럼 용감하게 어떤 성을 무너뜨려야 할까요?
어떤 학생은 이 성을 토익 900점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어떤 직장인은 이 성을 회사 임원이나 억대 연봉으로 생각할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성을 내 안에 있는 불안, 두려움, 열등감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것을 말하려는게 아닙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다윗처럼 용기와 믿음으로 넘기 힘든 목표를 이루라는게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그렇게 우리의 욕망을 더 자극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게 아닙니다.
다윗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처럼,
예수님은 죄와 사망, 마귀의 권세라는 더 크고 두려운 성을 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인간이 넘을 수 없던 죄의 장벽을 무너뜨리셨고,
사탄의 심장부를 공격하여 완전히 승리하셨습니다.
복음은 “너도 다윗처럼 네 삶의 성을 점령해봐”가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이미 점령하셨으니 너도 믿고 누리라”는 승리의 소식입니다.
우리가 할일은 더 열심히 노력해서 다윗처럼 살아야지가 아닙니다.
예수님, 이미 이루신 그 승리가 제 삶에도 임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럼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만 승리한 것일까요?
10절입니다.
“다윗이 거느린 용사들의 우두머리는 다음과 같다. 이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다윗이 왕이 될수 있도록 그를 적극적으로 도와, 온 이스라엘과 함께 그를 왕으로 세운 사람들이다.”
다윗은 홀로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요압같은 군사령관도 있었고, 수많은 용사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유다 지파 출신이 아니라 다양한 지파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중 뛰어난 세명의 용사들이 소개됩니다.
첫째 용사는 야소브암입니다.
그는 한번의 전투에서 창으로 300명을 쓰러뜨린 용맹한 전사입니다.
왜 이런 사람이 다윗 옆에 있는 것일까요?
다윗이 싸움을 더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용사는 엘르아살입니다.
사무엘서에 따르면 그는 적군과 싸울때 혼자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싸운 용사입니다.
사무엘서는 그가 칼을 쥔 손이 피곤하여 손에 붙은 것 같다고 기록하며
주님께서 그에게 큰 승리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또 한명의 용사가 삼마인데 사무엘서에만 나오고 여기에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 역시 적군들이 밀려올때 홀로 밭에 남아 밭을 지켜낸 용사입니다.
이 모든 용사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단지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걸고 헌신했다는 점입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윗과 그의 용사들 사이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장면이 등장합니다.
어느날 다윗이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의 물을 누가 자신에게 떠오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적진을 뚫고 나가서 구해와야 하는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세 명의 용사가 적진을 뚫고 가서 다윗에게 물을 가져다 바칩니다.
이는 충성심 테스트라고 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시도입니다.
다윗의 용사들은 생명을 걸고 자신을 헌신한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는 이 물이 세 용사들의 피라고 말하며 그 물을 주님께 바칩니다.
주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얼마나 멋있는 리더입니까?
다윗은 부하들이 자발적으로 충성할수 있도록 이끌어낼수 있는 리더입니다.
다윗은 부하들의 모든 헌신을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리더입니다.
하나님께도 인정받고, 부하들에게도 인정받는 훌륭한 리더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를 물어봐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다윗처럼 위대한 리더가 되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다윗처럼 성공하려면 사람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영적 리더쉽을 갖추라는 말일까요?
물론 이런 점도 우리가 배울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존중하고 신뢰하며, 그들의 헌신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태도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 말씀이 말하려는 핵심이 아닙니다.
다윗은 단지 부하들의 생명을 담보한 물을 하나님께 바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바쳐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수를 마시게 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헌신을 통해 왕이 되신 분이 아니라,
자신의 피 흘림으로 우리를 왕같은 백성으로 삼으신 분이십니다.
복음은 “네가 나를 위해 뭘 해줄 수 있느냐?”며 헌신을 요구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이미 했는가”를 선포하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헌신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은혜의 이야기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너 뭐데?”
요즘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너는 얼마나 노력했냐?",
"너는 왜 아직도 거기 있냐?",
"성공하려면 남들처럼 해봐야지, 안 그래?"
이 질문에 우리는 자꾸 움츠러들고, 비교하고, 자책하며 삽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더 노력하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합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길을 잃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느냐?"
"네가 이룬 것이 아니라,
너와 함께하신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셨느냐?"
복음은 “너도 다윗처럼 해봐”라는 성공 공식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셨다”는 승리의 소식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도 위대해져라”가 아니라,
“예수님 곁에 가까이 있어라.”
진짜 승리는 높은 자리,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걷는 평범한 삶 속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걷는 믿음의 사람들과 나눌 때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평범한 일상에 오늘도 충실하십시오.
거기에 승리가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예수님과 함께 걷는 삶을 의식하며 하루 10분만 말씀 묵상으로 출발해보십시오.
그러한 참된 복음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