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지 않는 믿음 2025 0607 에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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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 337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공동체성경읽기 에스더 1-3장
1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2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3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4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
5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6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세상의 우상 앞에 선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무릎 꿇지 않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에스더서는 참으로 특별한 책입니다. 구약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이름, 즉 '야훼'나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고, 그분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한 현실 속에서 이야기는 펼쳐집니다. 그러나 이 침묵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얼마나 강력하게 역사하시는지, 그분의 백성을 어떻게 지키시고 구원하시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에스더 1장과 2장은 화려하지만 불안정한 페르시아 제국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잔치를 벌이지만, 왕후 와스디의 불순종으로 그의 권위는 흔들립니다. 이 일로 와스디는 폐위되고,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섭리 가운데 유다인 고아 소녀 하닷사, 곧 에스더를 왕후의 자리에 앉히십니다. 그녀의 사촌이자 양아버지인 모르드개는 왕궁 문에서 충성을 다하며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발견하여 왕의 생명을 구하기도 했지요. 이처럼 에스더서의 초반부는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잔잔하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평화로워 보이던 이 이야기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에스더 3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갑자기 등장한 하만, 그는 '아각 사람'이라고 소개됩니다. 아각은 과거 사울 왕 시대에 하나님께서 진멸하라 명하셨던 아말렉 족속의 왕 이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오랜 원수의 후예가 이제 페르시아 제국의 2인자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마치 거대한 폭풍 전야와 같이,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하만의 등장과 그로 인해 촉발된 한 사건을 통해 중요한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거대한 세상 권력과 부당한 요구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과연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에스더 3장 1절부터 6절에 나타난 모르드개의 타협 없는 믿음은, 오늘날 우리에게 세상의 거짓된 우상에 굴복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참된 경배를 드려야 할 그리스도인의 단호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협 없는 믿음의 세 가지 모습
타협 없는 믿음의 세 가지 모습
1. 요구되는 복종: 세상은 무엇에 '절'하라 하는가? (에 3:1-2상)
하만은 왕 다음가는 권력의 정점에 섰습니다. 그러자 왕은 모든 신하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립니다. 2절 상반절입니다.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여기서 '꿇어 절하다'는 히브리어로 '카라 웨히쉬타카와'(כָּרַע וְהִשְׁתַּחֲוָה)입니다. '카라'는 무릎을 굽히는 일반적인 경의의 표현일 수 있지만, '히쉬타카와'는 단순한 존경을 넘어 엎드려 경배하고 예배하는, 훨씬 더 깊은 복종과 숭배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 예배하러 갈 때 사용했던 바로 그 단어입니다.
페르시아의 왕들은 종종 신적인 존재로 숭배받기를 원했고, 이제 하만은 왕의 명령을 등에 업고 자신에게 그러한 경배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궁중 예법을 넘어선, 인간을 신격화하려는 교만한 시도였습니다. 하만은 모든 사람이 자기 발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경배하기를 바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세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향해 '꿇어 절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만처럼 눈에 보이는 한 인물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가치 체계일 수도 있습니다. 돈의 힘 앞에, 성공이라는 우상 앞에, 다수가 옳다고 외치는 이념 앞에, 혹은 직장이나 사회의 부조리한 관행과 문화 앞에 우리는 얼마나 자주 무릎 꿇고 타협하라는 유혹과 압박을 받습니까? 이러한 세상의 요구들은 우리의 신앙 양심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우리의 마음과 경배를 빼앗으려 합니다.
2. 타협 없는 거부: "나는 유다인이라" (에 3:2하-4)
그러나 이러한 거센 요구 앞에서 단 한 사람, 모르드개는 달랐습니다. 2절 하반절은 간결하지만 단호하게 증언합니다.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그의 거부는 일시적인 반항이 아니었습니다. 3절과 4절을 보면, 대궐 문에 있는 다른 신하들이 날마다 그에게 왕의 명령을 따르라고 권하고 때로는 압박했지만, 모르드개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그가 이렇게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4절 하반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나는 유다인이다.' 이 짧은 고백 속에 그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유다인이라는 정체성은 단순히 혈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라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비록 에스더서에 하나님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지 않지만, 모르드개의 이 고백은 그가 왜 하만에게 절할 수 없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인간이나 우상에게도 신적인 경배를 드릴 수 없다는 그의 신앙 양심이, 그의 정체성이 그를 버티게 한 것입니다.
이는 마치 다니엘의 세 친구가 느부갓네살 왕의 금 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했던 믿음의 용기와 같습니다. 그들은 풀무불의 위협 앞에서도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라고 외쳤습니다.
주님께서도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실 때, 세상 모든 권세와 영광을 줄 테니 자기에게 절하라는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시며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역시 로마 황제의 숭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만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우리의 고백은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세상의 압력과 불이익 앞에서 우리의 신앙적 정체성은 얼마나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까? 모르드개처럼,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거룩한 용기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3. 분노와 음모: 세상의 반응과 악의 확장 (에 3:5-6)
모르드개의 타협 없는 믿음은 하만의 분노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5절입니다.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하만의 교만한 마음에 상처가 난 것입니다. 그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끔찍한 방향으로 확장됩니다. 6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한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이 한 민족 전체를 향한 말살 계획으로 비화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속성이며, 교만의 무서움입니다. 상처 입은 자존심과 제어되지 않는 분노는 종종 상상을 초월하는 악으로 이어집니다. 하만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유다 민족 전체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기 시작합니다. 이후 7절부터 보면, 그는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유다인을 학살할 날을 정하고, 왕에게 나아가 교묘한 말로 유다 민족을 모함하여 마침내 전국에 유다인을 진멸하라는 조서를 내리게 합니다.
아각 사람 하만, 이스라엘의 오랜 대적인 아말렉의 후예다운 잔인함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 백성을 향한 뿌리 깊은 증오가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은 종종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요 15:18)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려 할 때, 세상으로부터 오해와 반발, 심지어 위협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 때로는 큰 대가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궁극적인 승리를 믿는 것입니다. 시편 2편은 세상 군왕들이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여 일어나지만,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시며 그들을 비웃으신다고 노래합니다. 악이 아무리 거세게 일어나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여도,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결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보이는 충성
결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보이는 충성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세상의 거대한 권력 앞에서 무릎 꿇기를 거부했던 모르드개의 이야기를 통해 귀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자신들의 가치관과 우상 앞에 무릎 꿇고 절하라고 유혹하고 압박합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나는 유다인이라"는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을 근거로 이 부당한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의 타협 없는 믿음은 하만의 분노를 샀고, 민족 전체를 끔찍한 위기로 몰아넣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불리지 않는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모르드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보이는 충성을 그의 삶으로 증명해냈습니다. 그의 "무릎 꿇지 않는 믿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세상의 거짓된 신들 앞에 타협하지 않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만 참되고 온전한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는 지금 무엇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까? 나의 신앙 양심과 타협하며 얻으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합시다.
물론 세상의 반발과 위협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외롭고 힘겨운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그의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롬 8:28), 그의 놀라운 구원을 반드시 베푸실 것입니다. 에스더서 전체의 이야기가 바로 이 위대한 진리를 웅변적으로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모든 믿음의 싸움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를 위해 모든 죄와 사망의 권세에 결코 굴복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주님,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의 능력 안에서, 그분을 의지하여 담대히 세상으로 나아갑시다. 우리의 무릎은 오직 하나님께만 꿇고, 우리의 경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립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모르드개의 타협 없는 믿음을 통해 저희에게 귀한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유혹과 압박 속에서 저희도 주님만을 경배하며, 어떤 우상 앞에도 무릎 꿇지 않는 믿음의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이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나게 하시고,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신실하심과 인도하심을 굳게 믿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