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4장 1-20절
Notes
Transcript
1절 입니다.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든지라
14장의 스토리가 13장과 연결된다고 합니다.
13장에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는 여로보암과 하나님의 사람과 늙은 선지자 의 이야기 가 14장과 이어지고 있습니다.
13장 34절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34.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 된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 가를 보여주는데 그 시작이 왕의 아들 아비야가 병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로보암 이후 아비야가 왕위를 물려 받을 당연한 후계자 입니다.
그런데 그의 병과 죽음은 가문의 몰락과 멸망을 의미 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아비야를 향하여 본문 13절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3.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어쩌면 유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선한 뜻을 품은 자의 죽음은 나머지 그렇지 못한 사람의 운명이 어떠 한 가를 너무 잘 보여줍니다.
결국 아비야의 병은 장차 여로보암 가운데 있을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시작에 불과 합니다.
자신이 모든 권력을 쥐고 세상의 중심에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던 여로보암에게도 아들의 병을 고칠 능력은 없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의 병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 합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병을 통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길 원하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픔에도 하나님께 돌이킬 마음은 없습니다.
이제 자신이 어찌할 도리가 없자 다시 하나님을 찾으려 하는데, 회개의 의지가 아닌 아들의 안위를 위함 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왕으로 세우겠다고 전했던 선지자 아히야에게 자신의 아내를 변장 시켜 보냅니다.
이 모습은 마치 점쟁이를 몰래 찾아가는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상관없고, 단지 하나님을 나의 안위와 걱정을 해결하려는 도구로 찾고 있습니다.
왕은 왕의 부인이 찾아간다고 하는 사실이 선지자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하여 아히야를 속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백성들이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여로보암이 자신의 왕권을 지키고, 종교정책이 타격을 받지 않도록 의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로보암의 모습을 볼 때 실로에 선지자 아히야가 있었다는 사실을 여로보암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 그의 죄를 더욱 부각 시키고 있습니다.
아히야 선지자가 누구 입니까?
에브라임 지파 성입인 실로 출신으로 하나님의 명령으로 여로보암이 왕으로 등극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신분을 숨기려는 여로보암과 그의 아내의 모든 시도를 무력화 시키십니다.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그에게 말씀 하십니다.
사실 앞을 볼 수 없는 무력한 늙은 선지자를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여로보암이 속이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늙고 앞을 보지 못하는 아히야와 함께 하심으로 인해 모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속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필요에 따라 내가 원할 때 찾고, 나의 요구를 들어주는 그런 신이 아닙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여로보암처럼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필요할 때만 찾는 하나님, 평소에는 전혀 찾지 않다가 급할 때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진심으로 찾는 것도 아니고, 나의 계획과 뜻을 이루기 위해서 마치 점집을 찾듣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런 민망한 죄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할 때만 불러오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렇게 찾아온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아히야를 통하여 엄중히 꾸짖으십니다.
또한 끔찍한 심판을 선포 하십니다.
10-11절 입니다.
10.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11.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하셨나니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경고를 저버린자에게 하나님이 주실 말씀은 이것 뿐 입니다.
우리도 이 말씀 앞에서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으십니다.
물론 하나님을 생각하고 선한 뜻을 품은 그 아이가 죽는 것은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의 아내가 성읍에 들어갈 때 하나님은 이 아이의 목숨을 거두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이 그렇게 죽어도 여로보암은 돌이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말씀을 분명히 이루시는 하나님을 목격하고 직접 경험하면서도 죄의 길에서 돌이킬 줄을 모릅니다.
여로보암에 관한 말씀을 묵상하고 준비하면서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 또한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잘하고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여전히 나의 욕망과 탐욕을 위해 쫓아 살아갈 수 있는 완고하고 악한 자 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아닌 나의 안위와 만족을 위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고, 그것을 듣지 않으려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잘 아는 시편 1편 1-2절에서 이렇게 말씀 하고 있습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삶을 맞춰 나가려 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나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답답하고 완고한 여로보암의 스토리 중에 아들 아비야가 품었던 여호와 앞에 선한 뜻을 품었다는 이 짧은 한 마디가 우리에게 큰 위로와 울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그의 삶이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자신의 아버지의 왕권 보다 하나님은 그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평가 앞에 어떤 자 입니까?
주를 위해 헌신하였고,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자부해도, 하나님의 인정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 없는 삶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인정 받으시는 삶이 되며 죄인의 완고함이 아닌
말씀 앞에서 경외하며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겸손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