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1-22 (오후/2025.6.8.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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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1–4 NKRV
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주일(6월 8일) 오후 예배에 / 나오신 성도님들 /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이제 행복한 사람들의 축제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 오후에도/ 모란역에서/ 노방전도를 하였는데요.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난주에는/ 노방 전도를 하다가/
저는 물도 한 잔 얻어 먹는 일이 있었습니다.
모란역 하이마트 앞에/ 순대국집 있습니다.
순대국집 사장님께서 / 전도한다고 물을 한잔 주시더라고요.
전도가 힘들기는 하지만/ 또 이런 기쁨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전도해보니까 어떠신가요? 쉽지않죠?
날씨도 덥고/ 전도지를 받는 사람들의 반응도/ 그렇게 호의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복음을 반드시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오늘은 이사야 2장 1-4절 말씀으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
먼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우리가 전단지 나눠줄때에/
“영도교회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 믿으세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요.
복음이 무엇인지? 이사야 52장을 보겠습니다.
이사야 52:7 NKRV
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복음 = 좋은 소식 = 복된 소식이다.라고 이야기하면서요.
뭐라고 합니까?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맨 처음에 하신 말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였습니다.
마태복음 4:17 NKRV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구약에서 예언된/ 이사야에서 예언된
여호와의 기름 부은 받은 자인 예수(내가) 왔으니/
마음을 돌이키라는 것 입니다.
주님의 통치안으로 들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
오늘 우리가 볼 이사야 2장 2절 말씀도/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1.이사야 2장 2절 보시면/
1.예수님이 / 모든 인간의 주인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사야 2:2 NKRV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이말씀(2절)을 해석하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1)”말일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말일에” 는? 언제일까요?
“말일에”는/ 다른 말로하면
“그날에”고요/ 다른 말로 하면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날은 = “메시아가 오시는 날”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2장을 보면요/
사도 베드로는 /
말일을 / 예수님이 오신 날로 해석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16–17 NKRV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요엘서를 보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성령을 주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베드로는 / 예수님께서 오셔서 성취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구약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말일, 그의날, 여호와의 날을
예수님이 오신 날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5절도 보시면요.
베드로전서 1:5 NKRV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베드로는 / 구원이 말세에 나타났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하나님의 구원이 /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세 임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말일에”라는 말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말일에”라는 단어는/
아직 오지 않은 인류의 마지막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일은?
이미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날 입니다.
말일은?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
유한한 우리들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오신 날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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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그렇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네 / 우리가 다 아는대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여기 2절 후반절을 보시면/
이사야 2:2 NKRV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산 위에 뛰어날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여호와의 전의 산?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산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산이/ 다른 모든 산들보다 높이 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예루살렘 성전 산 높이는 해발 740m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산이 / 나중에 / 지각 변동이 일어나서/ 뭐 우뚝 솟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표현의 문자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이사야가 살던 시대에는 남유다 백성들이 산당제사를 지냈습니다.
웃시야, 요담, 아하스 이런 왕들의 시대에는 백성들이 모두 산당에 가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산당에 가서 제사 지냈다는 것?은
이들이 우상을 숭배하면서 살았다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고,
산당에 가서는 우상을 숭배하면서 살았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말일에/ 예수님이 오시면/
예루살렘 성전에 계신 여호와가 참된 신으로 드러나고/
산당의 우상들은 가짜 신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2장 21절을 보면요.
요한복음 2:21 NKRV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의 육체 =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2절 말씀을 다시 해석해보면요.
예수님이 오시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하나님으로 드러나실 것이라는 것 입니다.
-이때에/ 인간이 섬기는 우상들이 /헛된 것들이라는 것이 /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 말일에/ 성전되시는 예수님께서/ 모든 높은 산위에 / 뛰어나게 드러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 예수님의 높으심이 드러났습니까? 십자가에서 드러났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2절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2:32 NKRV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높이 들리면/ 십자가에서 못이 박히면/
모든 사람을 십자가로 이끌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2장 2절에서 / 예언된 것 처럼/
십자가로 높아져서/ 모든 인간의 교만을 꺽을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에서 언급된 산들은/
인간의 교만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문자적 표현입니다.
이사야 2장 2절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건으로 인하여/
모든 인간의 교만이 꺽을 것을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목이 곧고/ 완악하고 부패했던 우리가/
이렇게나마 인간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3)2절 후반절 보시면/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2:2 NKRV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예수님의 십자가로/ 많은 백성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올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을 보면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그의 영 (성령)을 보내주었습니다.
사도행전 4:4 NKRV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서/ 병든 자도 고치고/
예수의 부활을 전하였을때에/ 회심한 사람이 남자만 오천명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사야 말씀(이사야2:2)대로/
성령의 역사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ex) 예수 믿기 전에 다들 제사를 지내셨지요?
한국 사람들은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제사를 지냅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된 사람들은 /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이런 제사가 헛된 것인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이사야 2장 2절에서 말씀하듯이/
산당에서 떠나 여호와의 성전 (예수)께로 돌아오는 모습입니다.
1.이제 우리가 / 예수님의 십자가로/
예수님의 높으심/ 예수님의 주인되심이 드러났습니다.
————————————
2.그렇다면 / 이 십자가 은혜에/
우리가 반응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3절 말씀은 / 예수님의 십자가에 은혜에 반응하는 말씀입니다.
3절 말씀보시면요.
이사야 2:3 NKRV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오후예배때에/ 우리가 찬양을 하면서도/ 불렀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하나님의 전에 오르자~~~”
이 찬양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 우리의 반응입니다.
3절 말씀을 제가 한번 풀어서 말씀드리면요.
“주님 은혜 감사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보니/ 내가 얼마나 완악하고 교만한 죄인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죄악된 모습을 버리고/
주님 안에서/ 주님을 알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살고 싶습니다”
3절에서/“많은 백성”?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합니다.
이들이 하는 소리가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으로 갑시다. 그분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치실 것 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 예수님을 더 알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이사야 1장 18절에 대한 반응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이사야 1:18 NKRV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를 용서해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대속하셨으니
우리가 / 성령의 역사로/ 2장 3절 말씀처럼/
이렇게 응답을 하는 것 입니다.
1)네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겠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오른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만물의 주인되심을 드러내셨으니/
예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고 / 예배하면서 살겠다는 말입니다.
예배는 ? 인간이 만들어놓은 형식이 아닙니다.
예배는 예수님처럼 자신을 드리는 삶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것 처럼/
자신을 희생하고 사랑하고 사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니까/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는 말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모습으로 살아가자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배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배운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 하반절에서,
이사야 2:3 NKRV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3절 하반절에서,
율법이 시온에서 나온다.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똑같은 말을 2번 반복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성도들은/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 말씀을 들려주시는 것 입니다.
3.그렇다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살아갈때에?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그것이 4절 말씀입니다.
이사야 2:4 NKRV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우선 4절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보아야 하는 단어가 “판단하다”와 “판결하다”의 단어인데요.
판단하다 - “통치자가 어떤 현안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분별하다”의 의미입니다.
판결하다 - “통치자가 어떤 현안에 대하여 판단(분별)한대로/ 그 현안을 해결하다”의 의미입니다.
이 두의미를 합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들의 옳고 그름을 드러내신다는 것 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행동한 것들을/
이제 주님께서 우리의 주인되셔서/
성령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아주 작은 거지말도 / 우리 마음에 찔림이 있도록 하신다는 것 입니다.
이런 주님의 판단과 판결로 인하여/
우리가 화평한 사람들이 된다는 것 입니다.
4절 후반절 말씀은/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칼과 창은 전쟁 무기입니다.
칼과 창은 사람을 죽이는 살상 무기입니다.
그런데 보습과 낫은/ 농사를 짓는 농기구입니다.
보습은 땅을 파는데에 사용이 됩니다.
농부는 딱딱한 땅을 파서 씨앗을 심을 수 있도록 ‘보습”이라는 농기구를 사용합니다.
낫은 무르익은 열매를 거둘때에 사용되는 농기구입니다.
주님의 판단과 판결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씨앗을 심는 사람들로/ 열매를 거두는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4절말씀을/ 다시/ 해석을 해보면요.
사람이 은혜를 받기 전에는/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으면/ 변한다는 것 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칼과 창을 가지고/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혜가 임하면/ 이러한 삶이 잘못된 줄 알고/ 이러한 삶을 내려놓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은혜 받은 사람들은 주님의 통치아래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여전히 서로 싸우고 살 것 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더이상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들의 딱딱한 마음 밭을 갈고 / 열매를 맺겠다는 마음으로/
수고와 헌신과 사랑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이사야 2장 1-4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정리해보면요
2절 -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만유의 통치자로 드러나기 때문에 / 마음을 돌이키고 돌아오라는 것 입니다.
3절 -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을 돌이킨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더 부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임재안에서 예배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4절 - 그리고 이들의 삶이/ 다툼과 분열이 아닌/
화평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적용) 사랑하는 영도교회 성도여러분
이사야 2장 1-4절 말씀에 비추어 볼때에?
여러분들의 삶의 모습을 어떻습니까?
———————————-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예언된 말씀이/
그래도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사도행전 14장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을 하는 장면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나는 시리아 안디옥을 떠나 - 구브로 섬과 비시디아 안디옥을 거쳐 -
“루스드라”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서/
태어나면서 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사람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루스드라 사람들이 몰여와서/
그들이 섬기는 신들 (제우스, 헤르메스)이 내려와서/
이 사람들 고쳐주었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제사를 지내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사도행전 14:15 NKRV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바울이 루스드라의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 준 것은
참 신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 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 살던 사람들 섬기던 그리스 신화의 신들 (제우스, 헤르메스)을 버리고/
예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일후에/ 바울은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고요.
더베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 주님께로 돌아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4:20–21 NKRV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전도여행을 통하여/
많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예수님께로 돌아오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사야 2장 1-4절 말씀이 / 예수님과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
그리고/ 이제 우리를 통하여/ 그대로 성취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우리들에게 적용해 보겠습니다)
2절 말씀을 다시 보면요.
이사야 2:2 NKRV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1.말일에/ 예수님을 만난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참 주인으로 알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알고 사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면서 사는 것 입니다.
예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교만하게/ 우상 숭배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다고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교만하게 살면 안되겠죠?
이사야서는 “인간의 교만과 우상숭배”를 가장 큰 죄라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교만의 문제에 대하여/
유대인에게도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고요.
이방인들에게도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2:11 NKRV
11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이사야 13:11 NKRV
11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이사야 1-2 장을 / 유대인의 죄를 이야기 하고 있고요.
이사야 13장은 / 바벨론 (이방인의 죄)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이 교만의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이사야 2:11 NKRV
11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그날에/ 인간의 높아짐(교만)이 꺾이고/
여호와께서 높임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보면/ 교만의 비교 대상이
인간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 (인간)과 창조자 (여호와 하나님)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이라는 것이,
단지 인간 관계에 있어서, 잠시 드러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안에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본질적인 성향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에서도/ 유다 백성의 죄를 고발하고 있는데요.
맨 처음에 고발하는 것인 유다 백성의 교만입니다.
이사야 1:2–3 NKRV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소환하면서/
여호와께서 유다 백성을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이들의 죄는 무엇입니까?
소나 나귀 같은 짐승도 자기 주인을 알고/ 자기 주인을 따라서 사는데/
유다 백성은 자기 주인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입니다.
교만이라는 것은?
단순히 인간 관계에 있어서 / 남을 무시하고/ 자기자 잘난 척 하는 것을 넘어서서/
창조주 하나님을 거역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는 것이 교만인 것입니다.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인간 사이에도 / 남을 무시하는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근본적이 죄는 “교만”이라는 죄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은?
절대로 교만하면 안되겠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1)우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영접한 것까지는 됩니다.
2)그런데요 다른 사람들을 /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 첫번째, 두번째 모두 문제가 되는데요.
1)우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지 못합니다.
2)그리고 당연이 이런 자기 중심적인 태도가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에/
교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영도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살고 있습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되시고요.
우리는 주님의 종에 불과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다른 사람들 무시하지 말고 살라고 하셨습니다.
고아와 과부에 대하여 어떻게 이야기 하셨습니까?
출애굽기 22:22 NKRV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그런데/ 남 유다 백성들은 /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약한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살았습니다.
이사야 1:23 NKRV
23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우리가 주님과의 관계가 올바른 관계가 되었다면,
이웃과의 관계도 반드시 화평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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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그리고 예수님을 더 알아가기 원하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3절 말씀을 적용하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여호와의 산은/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요.
예배당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 =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하나님의 임재는/ 성령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주님이 항상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는 말은
날마다 주님의 임재 안에, 주님의 사랑 안에 있는 것 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이사야 2장 3절의 모습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마더와이즈도 마쳤고, 성경일독도 마쳤습니다.
그리고 제자훈련도 1학기 종강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데요.
이렇게 주님을 알아가기 위해서 애를 쓰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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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이사야서 말씀은 예수님 오시기 전 약 700년 전에 예언된 말씀입니다.
지금으로보면/ 약 2,700년 전에 예언된 말씀입니다.
이렇게 오래 전부터 복음이 선포되어 있고요.
하나님의 은혜가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복음에 참으로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으로/
나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날마다 고백하며/
예수님의 주인됨을 밖으로 드러내며/ 예수님을 날마다 더 알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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