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8) 32~3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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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30(금) 20250604(수)
32~37장 : 엘리후의 발언
38~41장 : 하나님의 말씀
32장. 엘리후의 등장
1~5 엘리후가 욥과 세 친구들에게 화를 냄
침묵하며 논쟁을 지켜보던 젊은 엘리후가 입을 연다. 그는 화가 나 있다. 세 친구들이 욥을 설득할 수 없는 말을 반복하고 있기에 화가 났다. 욥이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고 말하기에 화가 났다.
6~10 어렸기 때문에 기다렸다. 그러나 세 친구들의 실패가 나를 담대하게 하였고 내 안에 있는 영의 능력으로 말한다. 그러니 내 말을 들으라.
11~22 세 친구 모두 욥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 내가 말하겠다. 내 안에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영이 나를 압박한다. 사람을 보지 않고 사람들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33장. 내 말을 들으라.
1~11 욥에게 엘리후를 주목하라고 요청.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옳고 하나님이 자신을 학대한다는 욥의 말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도 너와 똑같이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이어서 내 능력으로 설득히지 못할 것이다.
12~30 그러나 내가 대답하겠다. 너는 의롭지 않다. 하나님이 사람보다 크다.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하나님과 논쟁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이미 여러 경로로 말씀하고 계시다. 부당하지 않고 오히려 욥의 고난을 통해 욥에게 교훈을 가르치려고 한다. 고난은 훈육의 역할을 한다. 욥은 중재자의 개입을 통해 고난을 모면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건져 생명의 빛을 비추려는 것이다.
31~33 욥에게 조용히 하고 자기에게 귀를 기울이라고 초대한다. 욥에게 지혜를 전하겠다.
32:6~33장. 엘리후의 첫 번째 변론
욥에게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기보다 고난이 주는 연단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보다 진전된 논증을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의인도 고난을 받을 수 있음을 인정.
○ 세 친구들에 대해서 : 당신들은 욥을 설득하지 못했다.
○ 욥에 대하여 : 너는 의롭다고 주장하지만, 하나님이 너보다 크다. 그러므로 만약 네가 의롭다고 주장한다면, 하나님이 불의한 분이 된다. 그러므로, 너는 의롭지 않다. 하나님이 불의한 분이 될 수는 없으니까.
의롭다는 욥의 주장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도 하나님보다 작기 때문이다.
만일 욥의 의롭다면, 지금 욥이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이 불의하다는 것이냐?
엘리후가 지키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의로움, 그러므로 욥은 죄인이어야 한다.
욥이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의한 분으로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고난 중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것.
엘리후가 말하기를,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들을 귀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말씀하신다. 친구를 통해서, 자연을 통해서, 침묵 속에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법은 다양하다.
엘리후가 말하는 핵심 : 33:19~22
“혹은 사람이 병사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그의 생명은 음식을 싫어하고 그의 마음은 별미를 싫어하며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그의 마음은 구덩이에, 그의 생명은 멸하는 자에게 가까워지느니라.”
엘리후는 세 친구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인과응보가 아니라, 욥을 고쳐주기 위한 방편이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사람은 자신의 본래성을 회복하게 된다.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천사를 보내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하신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러면 하나님이 고쳐주실 것이다.
치유는 상처를 전제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상처가 있다.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상처만 붙들고 있으면 치유가 없다. 상처를 도려내는 것은 치유가 아니다. 진짜 치유는 상처를 빛나는 보석으로 바꾸는 것이다. scars turn stars. 상처받을 일을 상처로 받지 않고 그 상처를 삶으로 받아들여 더 나은 삶으로 지향하는 디딤돌로 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치유다.
엘리후는 고통의 원인이 아니라, 고통의 의미에 집중한다. 그러나 욥의 고통의 자리에까지 내려가지는 않는다. 새로운 안목을 가지고 있으나 여전히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공감이야말로 관계의 최고 형태다. 아직 엘리후는 공감까지 가지는 못했다.
34장. 엘리후의 두 번째 변론
1~6 엘리후는 욥이 자기는 온전하며 하나님은 까닭 없이 자기를 공격한다고 말함으로써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고발한다.
7~9 욥은 하나님에게 순종한 자를 보상하지 않았다고 하나님을 고발했는데, 이것은 잘못한 것이다.
10~12 하나님이 사람들의 행동에 따라 보응한다고 말함으로써 다시 인과응보를 주장한다.
13~15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모든 육체는 다 죽어 흙이 된다.
16~30 하나님이 정의롭고 욥은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잘못 고발했다고 말함. 하나님은 결국 악인을 처벌할 것이다. 악인들이 번영하는 것 같지만, 그들의 성공은 일시적이다.
31~33 사람들이 하나님의 훈육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고 한탄. 욥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꼬집는 것. 욥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권면.
34~37 그러나 욥은 진리에 반응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이 예외 없이 공평하게 세상을 다스린다고 말하여 세 친구와 같은 입장에 서 있음을 드러냄.
엘리후가 요약하는 욥
5절. 욥은 말하기를 “나는 의롭지만, 하나님이 내 의를 부정하셨다.”
6절,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가 되었고 허물이 없으나 상처를 받았다.”
8절, “비방하기를 물 마시듯 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5,6절은 욥이 한 말이 맞으나, 8절과 같은 말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푸념하긴 했다. 엘리후는 욥의 푸념을 진술로 바꾼다. - 이것이 우리들의 문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내 마음대로 해석한다.
엘리후는 여기에 대해 변증한다.
10절.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않고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않는다.
11절.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신다. 전능자는 공의를 굽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엘리후가 강조하려는 것
1) 13~15절.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자유: 땅의 영향을 받지만, 세상을 당신의 마음대로 운행하신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다. 누구라도 하나님이 거두어가시면 끝이다. 만약에 하나님이 정의를 미워하시는 분이라면 하나님은 의롭다고 할 수 없다.
2) 21~22절. 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길을 감찰하시나니 행악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사망의 그늘이 없다. - 하나님이 우리를 주목하신다. 이 말은 상황에 따라 달리 들린다. 내가 고통당할 때 이 말씀은 소망이다. 하갈의 고통 속에서 찾아오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 하갈이 하나님을 감찰하시는 분으로 고백. 고통받는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고 마음 아파하시는 분. 때로 어떤 사람에게는 감시자처럼 느껴진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 지켜본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엘리후에게서 따뜻함을 찾아볼 수 없다. 신학적 진술이 논리적이고 딱딱할수록 따뜻함이 자리 잡을 수 없다.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으나, 아픔에 동참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따뜻함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자유는 하나님에게 맡겨두어야지, 내가 하나님을 대변하려고 하면 안된다.
체험 – 내면화 – 외면화
표현한 것이 체험과 일치하는가? 언제나 부족하다.
교리는 체험을 외면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리로 사람을 제단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된다. 가이드 역할을 할 수는 있으나, 이것만으로 사람을 보기 시작하면, 사람의 아픔이나 설명될 수 없는 어떤 것들을 볼 수 없다. 교리적 진실에 너무 사로잡히는 사람들은 사람을 위로하지 못한다.
31~37절.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벌을 받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는다고 욥을 꾸짖음. 죄를 지어서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데,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하여 반역하는 죄까지 지었다고 공격.
20210430(금) 욥기 32~37장.
○ 상황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편에 서서 진리를 말한다고 하지만, 욥의 고통의 자리에는 내려가지 않는 엘리후에게서 나를 본다.
○ 도전
하나님의 입장이 되어 진리를 전하고자 할 때, 그것이 상대방을 억압하거나 비난하거나 교정하려고 하는 폭력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도전받는다.
○ 변화
말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 기도
주님, 제가 알고 있는 지식과 진리가 사람들에게 폭력이 되지 않게 하시고,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20250604(수) 욥기 32~34장.
○ 상황
가장 젊은 엘리후가 등장하여 세 친구와 욥을 모두 꾸짖는다. 그는 비록 연소하여 말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자기 안에 있는 영의 능력을 따라 말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말도 결국 욥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하기보다는 신학적 내용(인과응보)을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도전
하나님의 입장이 되어 진리를 전하고자 할 때, 그것이 상대방을 억압하거나 비난하거나 교정하려고 하는 폭력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도전받는다.
○ 변화
말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진리를 전할 때 ‘사랑’이라는 그릇에 담아 전하기
○ 기도
주님, 제가 알고 있는 지식과 진리가 사람들에게 폭력이 되지 않게 하시고,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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