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기도는 완벽하지 않습니다(시2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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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5년 6월 4일 수요일
제목 : 당신의 기도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본문 : 시편 25:1-10
1. 기도가 어렵습니다
1) 기도가 어려운 이유 : 1. 기도의 지속성에서의 어려움
이 자리엔 기도를 쉽게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꽤나 많은 분들이 여전히 기도를 어렵게 느끼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막혀, 이를 해소하고자 중보기도팀에 들어 오신 분들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기도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님들은 ‘왜’ 기도가 어려우십니까?
저는 여기에 몇 가지 이유들이 있겠다 생각이 듭니다. 먼저는 ‘지속성’에서 찾아오는 어려움 일 수 있습니다. 1시간 침대에 누워 쉬는건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데, 기도 1시간은 너무 더디게 흘러갑니다. ‘이정도 기도하면 꽤나 시간이 지났겠는데?’ 하고 눈을 떠 보면 겨우 10분 지난 상황에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시간의 지속성에서도 어려움은 있지만, 매일 기도해야 한다는 지속성에서도 어려움이 찾아오곤 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하루 기도 30분을 채웠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럼 내일은 기도 안해도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30분 했다 해서 한 주간 기도 면제권이 생기지 않습니다.
2) 기도가 어려운 이유 : 2. 기도 응답에서 찾아오는 어려움
또 다른 기도의 어려움이 있다면, 아마도 ‘응답’에 대한 어려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응답에 있어서 어려움을 찾는 이유는 이런 약속을 예수님께서 하셨기 때문일 것 같아요.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분명 예수님께서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찾게 될 것이고 두드리면 열린다 하셨는데, 막상 기도의 결과가 열리지 않아서, 그래서 응답에 대한 어려움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의 응답에 있어서 어려움이 찾아오는 또 다른 환경은, 기도하지 않는 내 주변 사람이 더 형통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기도에 있어 어려움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보며 “넌 결코 잘 되면 안 됐었어! 어떻게 너가 나보다 먼저 인생이 풀릴 수 있어? 저주할꺼야!” 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축복하고 응원을 보냅니다. 하지만, 불현듯 찾아오는 질투심에 100% 떳떳한 축복은 하지 못하는게 우리 아닙니까?
그래서 기도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렵다 해서 우리는 기도를 건너 뛸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습니다.
2. 우리는 길잡이가 필요합니다.
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저의 꽤나 수려한 외모 탓에 종종 저를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자란 도련님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그 이미지가 나쁘지 않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제 삶은 꽤나 재밌는 삶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이야 별 수 없지만, 20살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나름 열심히 살았습니다. 학기 중엔 수업 이후에 카페에서 알바를 하기도 했고, 종종 새벽에는 택배 상하차 알바 후 학교를 향하기도 했습니다. 방학 중에는 평일에 공장에서 일했고, 주말엔 식당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때론 독학으로 배운 영상 편집 덕분에 종종 새벽에도 현장에 나가 촬영을 돕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저 웃어 넘겨보는 추억이기는 하나, 스무살 초반의 삶임을 기준으로 볼 때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았다’ 라는 평가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 해서 삶이 극적으로 평탄해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일을 좀 덜 할 때나 두 세개의 일을 할 때나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느낌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 인생의 길잡이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한 교수님이 제게 오셔서 불현듯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광원아. 나는 너가 참 좋은 목회자가 될 것 같은데, 너의 잔재주들이 너무 많아서 그 길을 방해하는 것 같네. 주변을 정리해보면 어떨까?”
신대원을 준비하던 시점이란 것 외엔 ‘어디서? 왜?’ 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 말을 들은 후 동기들이랑 맥도날드에 햄버거 먹으러 간건 기억에 선명합니다.
여하튼, 저는 그 말이 생각보다 꽤나 귀에 맴돌아 하나 하나 주변을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저는 그 덕에 신학대학원에 합격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선을 다했지만 사실 그 최선엔 뚜렷한 방향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안내해 줄 길잡이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기도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지만 여전히 기도가 어려운 이유는 우리의 기도에 길을 안내해 줄 길잡이가 없거나 혹은 길잡이를 잘못 설정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의 기도가 어려움 없이, 혹은 어려움이 온다 해도 이를 능히 이겨내고 계속해서 기도를 이어갈 수 있으려면 우리는 기도의 길잡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4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이제 우리는 어렵게만 느끼던 기도에 있어서, 기도의 방향성을 주실 길잡이를 재설정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으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길잡이로 모시고 기도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3. 우리의 기도의 길잡이는 하나님
1) 길잡이 된 하나님 따라가는 기도 : 1.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몸에 새겨라!
10절을 봅시다.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몸에 새겨야 합니다. 몸에 새기라는 것은 문신하듯 흔적을 남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습관을 들이라는 겁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농구선수로 거론되는 마이클 조던 선수를 다들 아실 겁니다. 그가 어느 경기에서 환상적인 곡예 덩크슛을 성공하자, 한 방송사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덩크슛은 사전에 계획된 슛입니까?” 그러자 조던은 이런 답변을 합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로 점프한 뒤에 공중에서 결정합니다.”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농구가 멋진 스포츠라는 걸 말하고자 하는게 아닙니다. 조던의 본능적인 감각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겁니다. 조던은 덩크슛을 할 때 코트 밖 감독을 보지 않습니다. 그저 본능적으로 반응한 겁니다. 그리고 그 반응이 아주 좋게 적중한 겁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잘은 모르지만, 덩크슛을 하기 위해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을 아무리 길게 잡아 2초라 볼 때, 그 본능적인 반응이 결코 쉽게 만들어질 수도 없는 것이란 걸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조던은 수도 없이 연습했을 겁니다. 셀 수 없이 뛰었고, 셀 수 없이 시도했고, 수많은 실패와 함께 몸에 새겼을 겁니다. 이는 오랜 연습을 통해 본능적 감각을 갈고 닦은 결과였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날마다 몸에 새기고 사니, 그는 본능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갔고, 본능적으로 하나님께 회개하며 삶을 살아냈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몸에 새기는, 그래서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서도 본능적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묻지 않아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어느 길로 향해야 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2) 길잡이 된 하나님 따라가는 기도 : 2. 순종,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라!
길잡이 된 하나님을 따라가기 위해선, 그렇게 기도하기 위해선 둘째, 순종 곧 하나님 말씀에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5절 입니다.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순종하라는 말이 너무 뻔하디 뻔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만큼 어려운 길이기 때문에 우리는 순종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앞서 기도가 어려운 이유를 지속성이나 응답에서 찾기는 했지만, 엄밀히 보면 모든 문제는 결국 순서가 바뀌었기 때문에 찾아오는 겁니다. ‘내가’ 힘들기 때문에 기도를 지속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내가’ 응답을 기다리지 못하기에 그 기도가 힘이 드는 겁니다. 순종, 순종 노래를 부르지만 사실 순종은 정말 어렵습니다.
찬양 중 ‘주님 말씀하시면’ 이라는 찬양의 가사를 보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 이끄시는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이 찬양 수도 없이 불렀지만, 정말 그렇게 살아내고 계십니까? 주님이 말씀하실 때 정말 그곳이 가시밭길이라도 걸어 나아가셨습니까? 주님 뜻이 있던 그곳이 황무지 같을지라도 정말 그곳에 서 계셨습니까? 그가 이끄시는대로 정말 순종하셨습니까?
순종은 우리 생각만큼 쉬운 길이 아닙니다. 단순히 말 잘 듣고 잘 따르는 것을 순종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정말 그 분께 얼마나 내 삶을 맡기고 있는지 보이는 겁니다.
시편 23편은 다윗의 고백 중 가장 아름다운 고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 4절의 말씀을 우리 함께 선포하며 고백해봅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3) 길잡이 된 하나님 따라가는 기도 : 3. 믿음, 하나님 말씀의 약속을 기다리라!
마지막으로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 말씀의 약속을 기다리는 겁니다. 3절입니다.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여기서 ‘바란다’는 것은 곧 아직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아 하염없이 기다리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질련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기에 정말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답답한게 마땅하고, 막막한게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수많은 동물 중 하필 ‘양’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왕 선택하실거라면 용맹한 사자라든지, 부지런한 개미나 혹은 지혜로운 돌고래나 올빼미 정도면 좋았을텐데, 애석하게도 우리는 양입니다.
양에는 여러 특성이 있습니다. 감히 제가 성도님들을 놀리려 하는게 아닙니다. 양의 특성입니다. 일단 멍청합니다. 혹시 찔리거나 하지는 않으시겠죠? 또 시력이 형편 없습니다. 빨리 달릴 수도 없고 방어 능력이라곤 제로에 가깝습니다. 혹여나 강물에 뛰어 들기라도 하면 돌아오는 결과는 익사입니다. 마지막으로 넘어져 배가 위로 올라오기라도 하면 혼자 일어날 수도 없습니다.
정말 하찮은 양의 특성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이런 양으로 부르셨습니다. 세상에서 제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아무리 부유하다 해도 모두 ‘양’에 불과합니다. 이는 곧 우리는 늘 곤경에 빠진 채 살아가는, 그렇기 때문에 답답하고 막막한게 마땅한 우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친히 목자가 되셨습니다. 양이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은 양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가 압도적으로 탁월하기에, 그 인도를 믿고 따르는 겁니다.
잠언 3장 5-6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 말씀은 정확히 우리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알게 합니다. 우리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신뢰함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기도할 때 너무나 많은 어려움을 마주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지루하게만 느껴지고, 반복해서 하는 기도에 실증도 나고, 응답 없는 기도에 지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평가할 능력이 하나 없음을 인정하고 고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우리의 능력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인도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해야만 합니다.
4. 결론
저는 차마 이 말씀을 들은 여러분들이 이제 기도가 쉬워질 겁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길잡이 삼아 기도하십시오! 이제 기도가 편해질 겁니다! 라고 뜬구름 잡는 소리를 선포하고 싶지 않습니다. 애석하게도 기도는 여전히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포기는 하지 말자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그래도 계속해서 기도의 끈을 붙잡아야 하지 않겠냐고 권면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의 기도의 맥을 뚫을 힘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 임하신 하나님께서 일하실 겁니다. 그 분을 의지하십시오. 우리의 기도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하나님은 완벽합니다. 능력있는 기도는 내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결단찬양 및 기도]
1. 주님 말씀하시면
[들은 말씀을 근거로 중보기도팀을 위해서]
- 나의 나됨을 내려놓게 하소서
- 나를 비우고 그 자리에 예수님으로 채우게 하소서
- 내 기도가 나의 정욕이 아닌, 주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가 되게 하소서
[교회를 위해서]
-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세워져 가는 교회 되게 하소서
- 주의 말씀 앞에 모든 것을 견주어 행하는 그런 교회 되게 하소서
[공동체와 가정을 위해서]
- 다락방이 날마다 말씀 반석 위에 세워지게 하소서
- 서로를 위해 열심으로 기도하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 공동체의 기도 응답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올려지게 하소서
2. 물 위를 걷는 자 + 주가 일하시네
[나라를 위해서]
- 새로 새워진 대통령 위에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임하게 하소서
-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일하시는 그런 나라 되게 하소서
[교회를 위해서]
- 담임목사님의 영육의 강건함을 허락 하소서. 청년의 체력을 허락하사 지치지 않게 하시고 선포하는 모든 입술 가운데 주님 붙드사 오직 말씀만이 선포되게 하소서
- 교역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오직 은혜, 오직 말씀으로 살아내게 하소서
- 이어진교회가 이 땅에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해내는 교회되게 하소서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